〈 101화 〉 101화쉽게 보낼 수 없어!(1)
* * *
부실에 있던 모두가 말을 잃은 사이 깨톡창에 또 다른 알림이 떴다.
(김주현님이 나갔습니다.)
나는 멍한 시선으로 스마트폰 화면만 뚫어져라 응시했다.
실화냐?
머릿속을 뱅글뱅글 맴도는 생각은 그것뿐이었다. 그만큼 멘탈이 붕괴하는 상황이었다.
“허얼?”
규원이의 외마디 소리는 모두의 심경을 대변하는 소리이기도 했다.
우리 중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은 지아 누나였다.
“얘, 얘들아 잠깐만. 내가 전화를 해볼게. 기다려 봐.”
평소답지 않게 말을 더듬는 지아 누나. 그만큼 갑작스러웠고, 경황이 없는 상황이었다.
지아 누나가 전화를 걸자 모두가 누나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했다.
정적이 내리깔린 부실에 전화 연결음만이 메아리처럼 울렸다.
[연결이 되지 않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삐 소리 이후…….]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두를 허탈하게 만드는 결과가 나왔다.
지아 누나가 전화를 끊고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언니. 한 번만 더 걸어봐.”
규원이가 주문했지만 지아 누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아니면 내가 할게!”
“소용없을걸.”
규원이를 향해 윤희가 말했다. 그 어조는 마치 단념한 사람의 것과 같았다.
“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거라구!”
규원이가 비장한 얼굴을 한 채 주현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연결되지 않았다.
“으으.”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며 신음성을 내는 규원이.
윤희는 그 모습을 응시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물론 주현 선배에게 전화를 걸려고도 하지 않았다.
하긴, 두 번씩이나 전화를 받지 않았는데, 더 해봤자 무의미하지.
그나저나 이게 대체 무슨 날벼락일까.
“영재야아. 우리 이제 어떡해?”
“나도 모르겠어.”
나는 질문을 던진 규원이를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혼란스럽기는 나도 매한가지였다.
오늘 점심때까지만 해도 주현 선배에게서 그럴 기미는 느끼지 못했으니까.
“헤어질 때 주현이가 내일은 꼭 온다고 했었는데……. 이럴 거라곤 생각도 못했네.”
지아 누나가 자조 섞인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언니 탓 아녜요.”
위로하는 윤희의 목소리도 기운이 없었다.
분위기가 심각하게 가라앉았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내일로 계획된 단합회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러나 주현 선배의 탈퇴 선언으로 단합회는 사실상 물 건너 가버렸다.
게다가 모두들 저기압 상태.
이대로는 부 활동을 제대로 진행할 수가 없겠다고 판단한 나는 해산을 알렸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도록 해요. 손에 안 잡힐 것 같으니까.”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 뒤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 * * *
부실을 나선 우리는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해가 서편으로 넘어가며 하늘을 붉게 수놓았다.
“…….”
걸음을 옮기면서 그 누구도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규원이와 대판 싸웠던 그때보다도 더 심각한 분위기였다.
“갑자기 왜 나간다고 한 걸까?”
가라앉은 목소리로 의문을 표한 이는 윤희였다. 우리 셋은 일제히 윤희를 향해 시선을 모았다.
엄지로 턱밑을 문지르고 있던 윤희가 어깨를 움찔 떨었다.
그래도 윤희가 먼저 물꼬를 튼 덕분인지 규원이도 덩달아 입을 열었다.
“혹시나 말인데.”
웬일로 진중한 목소리를 내기에 모두가 귀를 쫑긋 세웠다.
“오늘 갑자기 우리가 싫어진 거 아닐까?”
“응?”
지아 누나가 미간을 모은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뚱딴지 같은 소리에 나와 윤희도 의아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규원이가 우리들의 눈치를 살피더니 말을 이어갔다.
“아니, 농담이 아니라. 사람 마음을 두고 갈대 같다고 하잖아. 주현 선배도 그랬던 걸지도 모르지. 여름방학 동안 주현이 언니 혼자서 기숙 학원에서 공부하기도 했으니까.”
“그러니까 네 말은, 여름방학 동안 떨어져 있었던 탓에 마음이 멀어진 거라는 얘기지?”
규원이의 중구난방한 발언을 윤희가 명쾌하게 정리했다.
“응, 맞아. 그거.”
규원이가 머리를 수차례 끄덕거렸다.
“이거 참…….”
나는 무어라 할 말이 없어서 뒷목을 문질렀다.
차라리 농담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규원이의 눈빛은 정말로 진지했다.
하지만 규원이의 그런 엉뚱한 생각을 나무랄 마음은 들지 않았다.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원인 분석을 해보려는 태도 자체가 보기 좋았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럴 리 있겠어.”
옆에서 지아 누나가 가볍게 핀잔을 주었다.
“그치만 언니! 사람 일은 모르는 거잖아.”
“네 말대로야.”
윤희는 오히려 규원이의 말에 공감을 표했다. 그러자 규원이가 놀란 토끼 눈을 한 채 윤희를 바라보았다.
“물론 나도 주현 선배가 갑자기 우리들이 싫어졌을 거란 의견에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아. 웬일로 뜻이 통하는 줄 알았더니. 그럼 그렇지.”
규원이가 어깨를 한 번 들먹였다.
“하지만 아주 가능성이 없다는 생각은 안 들어. 네 말대로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거 봐. 아주 허무맹랑한 얘기는 아니라니깐.”
규원이가 윤희의 지지를 발판 삼아 자신의 주장에 힘을 보탰다.
“난 다른 데에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우리 셋은 지아 누나에게 눈길을 보냈다. 지아 누나가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우리 저번에 바다 놀러 갔었잖아. 그때 주현이를 기숙 학원에서 몰래 데리고 나왔던 일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엥? 그거 가지고?”
규원이가 깜짝 놀라며 반문했다.
“그냥 추측이야, 추측.”
누나가 추측이라는 단어를 힘주어 발음했다.
“규원이의 의견보다는 신빙성 있어 보여요.”
“네 생각에도 그렇지?”
지아 누나가 나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제게도 언니 말이 그럴싸하게 들려요.”
“앗! 윤희마저…….”
그렇게 규원이가 순식간에 버림받고 말았다.
규원이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표정을 지었고,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워서 우리 셋은 거의 동시에 웃음보를 터뜨렸다.
“왜들 웃어어.”
입술을 삐죽 내미는 규원이. 덕분에 무거웠던 분위기를 완전히 몰아낼 수 있었다.
만약 윤희가 먼저 말문을 열지 않았더라면.
만약 규원이가 엉뚱한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지아 누나가 다른 의견을 얘기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가라앉은 분위기를 환기 시킬 수 있었을까?
아니. 절대로 못했을 것이다.
나는 우리 스터디부의 슬로건을 다시금 떠올렸다.
‘헤매지 말아요. 망설이지 말아요. 우리 함께 나아가요.’
여기에는 당연히 주현 선배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까 가능하다면, 반드시 설득하여 돌아오게 만들고 싶었다.
시끌벅적하게 수다를 주고받는 동안 경사로를 완전히 다 내려왔다.
우리는 동시에 발걸음을 멈췄다.
“근데 진짜 이유라도 알고 싶다. 왜 갑자기 나가겠다고 했는지.”
“맞아! 이대로는 갑갑해서 못 살겠다구.”
규원이가 내 말에 동조했다.
윤희는 생각에 골몰하는지 입을 열지 않았다. 어쩌면 생각하는 바가 있지만 분위기상 말을 아끼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
지아 누나가 짤막한 한숨을 내뱉었다.
“일단 내가 내일 물어볼게. 같은 반이니까.”
우리는 누나에게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런 뒤 서로를 향해 잘 가라며 인사를 나누었다.
나를 제외한 세 사람이 버스정류장 방향으로 나아갔다.
조금씩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응시하다가 나도 집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주현 선배가 스터디부를 탈퇴한 이유는 본인의 입을 통해서 듣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주현 선배는 한 가지 중요한 점을 간과했다.
스터디부 멤버들이 주현 선배를 많이 아끼는 것.
내가 상당한 노력파에 끈질긴 놈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 스터디부 멤버들 또한 만만치 않게 질기다는 것.
나는 턱을 쳐들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글거리며 구름을 태우는 시뻘건 노을은, 아직 태양이 지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듯했다.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주현 선배를 그리 쉽게 보내지 않겠다고 결심하면서.
* * * *
다음날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날이 활짝 개었다.
스터디부가 맞닥뜨린 초유의 사태는 마치 별일 아니라는 것처럼.
학교 갈 준비를 하는 동안 잠에서 깨어난 엄마가 일어서서 기지개를 쭈욱 켜고 있었다.
슬기는 여전히 이부자리에서 뒤척거리고 있었다. 아직 개학식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여유부릴 만도 하지.
“언제 봐도 귀엽지?”
엄마가 그렇게 말하며 슬기를 내려다보았다.
“귀엽긴. 공부도 못하는데.”
대답하며 피식 웃자 엄마도 따라 웃었다.
엄마가 부엌으로 간 동안 나는 방에 들어가서 가방을 메고 나왔다. 그대로 집을 나서려는 도중 엄마가 나를 불렀다.
“왜?”
“잠깐 기다려 보렴.”
잠시 후 엄마가 지갑을 손에 든 채 내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2만원을 꺼내서 내밀었다.
“엄마가 어제 용돈을 안 줬잖니.”
어제 경황이 없어서 완전히 잊고 있었다.
“아 맞네. 고마워.”
나는 감사 인사를 전하며 그 돈을 받았다.
“요새도 계속 버스 타고 다니니?”
“응. 안 타면 죽을 것 같아서.”
선선히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지폐를 동전 지갑에 넣었다.
엄마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나저나 어제 무슨 일 있었니? 평소보다 기운이 없어 보이던데.”
“아. 그게…….”
역시 엄마의 눈은 매보다 예리했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응. 속상하더라고.”
“그 애도 아마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거야.”
부드럽게 타이르는 엄마.
“음. 그래도…….”
이성적으로는 납득해도 감정이 따라가지 못했다.
엄마가 내 머리에 손을 올리더니 살며시 쓰다듬어 주었다.
“그 애가 좋아?”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부원이고, 좀 더 친해지고 싶기도 하고 그래.”
“다시 데려올 생각이니?”
나는 결연한 눈빛을 보내며 머리를 끄덕였다.
“엄마가 응원할게.”
엄마가 부드러운 눈웃음을 지었다. 덕분에 없었던 기운이 다시금 샘솟았다.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중에 주머니에서 깨톡 알림음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지아 누나가 보낸 것이었다.
지아 : 어제 예고한대로 주현이한테 꼭물어볼께!! 그리고 반드시 스터디부로 돌아오게할테니깐!
깨톡 아래로 파이팅 포즈를 취하는 캐릭터 이모티콘이 올라왔다. 곧이어 다른 애들의 깨톡도 올라왔다.
윤희 : 잘 부탁해요!
규원 : 언니만믿고있겟심돠!!!!!!!
나도 질 수 없지.
나 : 믿고 기다리겠슴다~
지아 누나의 설득으로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는데.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저 멀리서 서서히 버스가 다가오는 것을 발견한 나는 정류장을 향해 달음박질했다.
* * * *
스터디부 깨톡방에 지아 누나의 메시지가 올라온 것은 2교시 쉬는 시간 때였다.
지아 : 얘들아! 지금당장 3층계단으로 와줄래??
주현 선배에게서 뭐라도 들은 모양이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윤희는 시집을 읽고 있었다.
“윤희야. 지금 누나가 3층 계단으로 와달래.”
“그래?”
윤희가 시집을 덮었다.
규원이도 깨톡을 확인했는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우리를 향해 얼른 오라며 손짓을 하고 있었다.
우리 셋은 지체없이 3층으로 올라갔다. 지아 누나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누나. 어떻게 됐어요?”
물음표를 던지고 나서 누나의 안색을 살펴보았는데 근심이 어려 있었다.
“주현이가 자꾸만 나를 피해 다녀서 고생 좀 했어.”
주현 선배가 그렇게 할 정도라면 우리 예상보다 더 큰 이유가 있는 걸지도 모른다.
“와. 그럴 수가…….”
규원이는 경악으로 말을 잇지 못했고, 윤희의 눈빛은 한층 더 진지해졌다.
“그래도 쉬는 시간마다 계속 들러붙으니까 마지 못해서 털어놓더라구.”
거기서 흐름을 끊은 지아 누나가 우리를 빙 둘러보았다.
나는 누나를 재촉했고, 누나는 한숨을 내뱉은 뒤 말문을 열었다.
“자기 엄마가 그만두라고 했대. 그래서 다시는 스터디부로 돌아갈 수 없다고 했어.”
“…….”
지아 누나가 침통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모두들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예상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었으니까.
“어떻게 해야 될까?”
지아 누나가 나를 바라보며 자문을 구했다.
어렵다. 시험으로 치자면 고난도 응용 문제 수준.
하지만 그럼에도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데려올 거예요.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