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67화-우리가 만들어가는 방향(3)
나와 윤희는 거의 동시에 교실로 들어섰다. 교실에는 대략 열 명 정도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예상보다는 많은 숫자로구만.
애들과 정답게 인사를 나누고 나서 내 자리로 향했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애들이 언제 수업을 하냐며 재촉했다.
“책은 챙겨야지.”
오늘 내가 수업을 맡은 과목은 수학과 과학.
윤희는 국어였고, 도연이는 영어를 맡았다.
나는 가방에서 수학책을 꺼낸 뒤 범위를 한 번 더 체크했다. 그러면서 어제 담임선생님에게 들은 주의사항을 상기했다.
수업은 적어도 30분 이상 진행할 것과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지 않도록 지켜본다는 것.
다행히 교실 분위기는 수업을 하기에 딱 좋은 상태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교탁으로 향했다.
“오! 영재쌤. 드디어!”
규원이가 외치자 나머지 애들도 환호성을 냈다. 아니, 뭐 그렇게까지 오버할 건 아니지 않나?
교탁 앞에 서자 갑자기 심장이 쿵쿵거리기 시작했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아서 그런 걸까.
나는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심호흡을 했다.
긴장하지 마라, 한영재.
넌 이미 스터디부를 홍보한다고 모든 교실을 다 돌았던 경력이 있는 놈이잖아. 심지어 정문 앞에서 윤희와 함께 홍보물을 돌리기까지 했고.
그래. 이제와서 수업 같은 걸로 벌벌 떨면 안 되지.
심장이 안정을 되찾았다. 나는 책과 새하얀 분필을 손에 쥐고 나서 금테 안경을 한 번 추켜 올렸다.
“자, 그럼…….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러자 모두가 박수갈채를 보냈다. 규원이는 아예 휘파람을 불었다.
“모두 86쪽의 1번 문제를 봅시다.”
책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가 화음처럼 뒤섞였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이고 나서 문제를 읽기 시작했다.
“1번 문제. 이차방정식 엑스제곱 마이너스…….”
읽으면서 칠판에 문제를 똑같이 적었다.
뒷자리에 앉은애들도 다 볼 수 있도록 가능한 큰 글씨로.
……열렬한 눈길들이 뒤통수를 찌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선생님들은 수업할 때마다 이런 느낌을 받는 걸까.
문제를 다 적고 나서 이해하기 쉽게 풀이해 나갔다.
“여기서 알파 더하기 베타는 3이고, 알파베타는 1이라고 했을 때, 베타의 함수값은…….”
모두들 풀이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게 느껴지자 목소리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나는 모르는 부분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서 문제 풀이를 계속 이어나갔다.
그랬더니 순식간에 1시간이 흘렀다.
30분을 아득히 넘어갈 줄은 예상 못 했는데.
“이상으로 수학 수업을 종료하겠습니다!”
허리 숙여 인사하자 또 다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동안 규원이의 공부를 봐준 보람이 있었군.
나는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물로 목을 축였다.
다음 차례는 윤희.
“후우. 어떡하지. 떨리네.”
옆을 보니 윤희가 심호흡을 하는 중이었다. 시선은 펼쳐놓은 국어책에 못 박힌 상태.
슬쩍 곁눈질을 해보니 교과서 여백마다 붙여놓은 포스트잇이 보였다. 철저하게 준비해 왔구만.
물론 준비를 완벽하게 했다고 해서 긴장감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아까 내가 했던 것처럼 하면 될 거야.”
“응. 그렇기 한데…….”
“아니면 애들을 전부 규원이라고 생각해 봐.”
“규원이를 가르쳐준다는 마음으로 해보란 거야?”
“맞아.”
역시 척하면 척이다.
윤희는 엄지로 턱을 받친 채 생각에 잠긴 눈을 했다.
“……엄청 자세하게 설명해줘야 할 것 같아.”
긴장을 풀어주려고 했는데 역효과가 나버렸군.
“그래도 규원이 가르치는 건 좀 익숙해졌으니까.”
윤희는 한결 편안한 표정을 지은 채 국어책을 챙겼다.
“갔다 올게.”
“힘내.”
우리는 찰나의 시간 동안 시선을 교환했다. 이내 윤희는 돌아서서 교탁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윽고 교탁 앞에 선 윤희는 가벼운 목례와 함께 인사말을 했다.
“이번에는, 국어 수업을 맡게 된 심윤희입니다…….”
뒤에서 말려 들어가는 목소리.
“이미 알고 있어어.”
규원이가 외치자 모두가 짧게 웃었다. 이어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윤희는 애들의 면면을 하나하나 둘러보더니 목을 가다듬었다.
“그럼, 교과서 59페이지부터 시작할게요.”
윤희가 분필을 집어 들었다.
* * * *
윤희의 수업은 초반에는 다소 불안했다. 하지만 계속 진행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는지 점차 목소리에 힘이 붙었다.
이후로 이어진 나의 과학 수업과 도연이의 영어 수업.
과학 수업은 사실상 개념 위주의 설명과 공식 대입법을 알려주는 것 위주여서 수학보다 빨리 끝났다.
도연이는 애들이 좋아할 만한 영어문장 예시를 직접 만들어 와서 유쾌한 분위기로 수업을 이끌었다.
하긴, 도연이가 괜히 반장을 하는 게 아니지.
그렇게 맞이한, 한가로운 점심때.
규원이가 우리들의 자리로 달려왔다.
“너넨 점심 어떻게 할 거야? 나는 떡볶이 먹고 싶은데.”
의견을 물어보면서 대놓고 희망 사항을 피력하는 규원이.
“근처에 떡볶이 하는 데가 있던가?”
“한 15분만 걸어가면 있어. 읎기떡볶이라구.”
“너무 먼데?”
“내 생각에도 좀.”
윤희까지 동조하자 규원이가 헉, 하고 숨을 삼켰다.
“설마 지금, 떡볶이 신의 계시를 무시하려는 거야?”
언제부터 그런 신이 존재한 거냐?
황당한 눈빛을 보내는 우리는 안중에도 없는지 규원이가 말을 이어나갔다.
“오늘 그 분께서 나에게 속삭이셨다구! 얘야, 오늘 점심은 떡볶이다, 죽어도 떡볶이다, 라고 그랬다니까! 그런데 그 15분이 아까워서 못 가겠다고?”
““응. 못 가겠는데.””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반대표를 던졌다.
“이럴 수가!”
규원이가 양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절망에 빠졌다.
윤희는 그런 규원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다음에 먹자. 솔직히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려면 귀찮아.”
나는 옆에서 고개를 연신 끄덕거렸다. 사실 그 이유 때문에 반대했거든.
“진짜로 먹고 싶었는데…….”
“어디 가서 먹을까?”
윤희는 규원이를 내버려둔 채 내게 말을 걸었다.
“무난하게 편의점 갈까? 제일 가깝기도 하고.”
“그게 낫겠네. 거긴 식탁도 있으니까.”
그리하여 우리는 편의점으로 직행했다.
윤희는 김밥 도시락과 음료수를 골랐고, 나는 무난하게 컵라면 하나만 샀다.
“난 오늘 이걸로 달랠 거야.”
규원이의 선택은 즉석 떡볶이였다. 그것도 똑같은 걸로 두 개.
저 정도로 떡볶이를 좋아할 줄이야.
“내가 자타공인 떡볶이 킬러란 말야.”
계산대 앞에서 규원이가 자랑스레 어깨를 폈다.
다음에는 규원이를 위해서 떡볶이집을 가는 게 좋겠군.
각자 계산을 마친 뒤 4인용 테이블에 앉았다.
“항상 적게 먹네.”
막 라면 한 젓가락을 먹으려다가 멈추었다.
“나?”
“응.”
윤희가 고갯짓을 했다.
“너무 배부르게 먹으면 공부할 때 집중이 안 돼서 그래.”
“그렇구나.”
납득한 표정을 짓는 윤희.
“아니지. 많이 먹어둬야지. 그래야 머리가 잘 돈다구.”
“그래서 네가 오후 수업 때 그렇게 잘 자는 거였구나. 그렇구나.”
내 지적을 받은 규원이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윽. 그, 그건……. 햇살도 따뜻하고 뭔가 편안한 느낌도 들고. 그래서……. 그, 그렇다고 해서 여기 있는 소중한 아이들을 포기할 수는 없어!”
규원이가 주먹을 불끈 쥐고 외쳤다.
“거기 학생, 조금만 정숙해주지 않겠니?”
“아……. 죄송합니다.”
카운터를 보는 아주머니에게 고개를 숙이는 규원이.
나와 윤희는 웃음보를 터뜨렸다.
규원이가 이쪽을 흘겨보길래, 나는 보란 듯이 어깨를 들먹였다.
“으으, 영재 짜증 나.”
주먹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식겠다. 어서 먹자.”
말하고 난 직후에 곧장 면발을 후루룩 삼켰다. 규원이가 혀 차는 소릴 냈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규원아. 하나만 맛봐도 될까?”
나긋한 윤희의 음성에 규원이가 발랄한 목소리로 응답했다.
“당근이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언짢아하더니 금세 풀어지네.
윤희가 떡과 어묵을 한 번에 집어 와서 김밥과 함께 먹었다.
“그나저나 윤희 너, 요새 좀 변했다? 뭔가 수학여행 갔다 온 이후로 좀 밝아진 것 같은 느낌이랄까.”
눈꺼풀을 깜빡이는 윤희를 향해 규원이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전에는 좀 차가웠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좀 다가가기 어려웠는데. 요즘은 분위기가 많이 변했어. 진짜로. 그래서 요즘은 뭔가 친숙한 느낌이야. 벽이 좀 허물어진 것 같기도 하구.”
윤희가 문득 고개를 돌려 나에게 눈길을 보냈다.
아마 지금 우리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뭐야? 둘이 무슨 일 있었어?”
규원이 치고는 날카로운 질문이 비집고 들어왔다.
“아냐, 아냐.”
나는 허공에 대고 손을 내저었다. 이건 나와 윤희만의 비밀이므로.
윤희가 규원이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고마워.”
“응? 갑자기?”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우뚱하는 규원이.
하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다.
윤희의 변화를 몸소 느꼈다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그걸 좋게 봐주고 있다는 걸로도 충분하니까.
윤희가 덥석 규원이의 손을 잡자 규원이가 깜짝 놀랐다.
하지만 윤희는 개의치 않아 했다.
“정말로, 고마워.”
윤희의 옆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도 기쁨에 차올라 있었다.
* * * *
오후에는 교실이 아닌 스터디부에 공부를 하기로 했다.
“언니한테 전화해 볼게.”
규원이가 스마트폰을 꺼냈다.
“주현 선배도 같이 데려와 달라고 해 줘.”
내 부탁에 검지와 엄지로 동그라미를 그리는 규원이. 그러고는 지아 누나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우리는 가방을 챙겨서 스터디부로 갔다.
열쇠로 문을 따는 동안 지아 누나가 도착했다.
“어? 주현 선배는요?”
내가 지적하자 지아 누나가 조심스레 운을 뗐다.
“음, 그게…….”
우리들의 눈치를 보고 다시 입술을 열었다.
“같이 내려가자고 몇 번을 얘기해도 자기는 교실에 있겠다고 그러더라.”
누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미안. 애가 보기보다 고집이 세서.”
“언니가 잘못한거 아니니까 괜찮아!”
규원이가 곧장 침울해진 지아 누나를 위로하고 나섰다.
“맞아요. 너무 괘념치 마세요.”
나도 뒤이어 위로의 한 마디를 건넸다.
“휴. 진짜 주현이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좋을지 감이 안 잡혀.”
지아 누나의 푸념에 우리 둘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런 기분을 느끼고 있으니까.
윤희는 검지를 턱에 댄 채 골똘히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왜일까?”
의문 부호를 띄우고 있었지만 혼잣말에 가까웠다.
“일단 문 열었으니까 어서 들어가자.”
우리는 늘 앉던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비어있는 한 자리가 유독 시야에 잘 들어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부에서 손을 놓을 수는 없는 일.
우리는 각자 책을 펴서 공부를 했다.
한참을 집중해서 하던 중 규원이가 불쑥 내뱉었다.
“그나저나 영재 너랑 윤희 부럽다. 학생 교사해서 문상 3만원도 받고.”
진짜로 부러움에 찬 눈길이었다.
하긴 3만원이면 우리 같은 학생들에게는 엄청 큰 돈이지.
“원한다면 넘겨줄까?”
“뭐? 진짜?”
윤희의 깜짝 제안에 규원이의 목청이 올라갔다.
“응. 나는 별로 필요가 없어서.”
선선한 대답.
여기서 오직 나만이 수저의 차이를 느끼는 중일 것이다.
아, 불공평한 인생…….
규원이의 시선이 갈팡질팡거렸다.
당연히 넙죽 받아먹을 줄 알았더니 꽤 의외다.
“……아, 아냐. 역시 그건 좀 아닌 것 같아.”
“웬일이래?”
윤희가 놀라움을 표시했다.
“오늘 처음으로 상식인처럼 보였어.”
나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헐. 언제는 안 그랬던 것처럼 말하네?”
“노코멘트할게.”
“아, 그런 게 어딨어어!”
“윤희야. 그럼 그 문상 나 주면 안 될까?”
이번엔 지아 누나가 불쑥 끼어들었다.
“네?”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는 윤희.
아직 서로 친하지 않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아……. 필요하시다면야 얼마든지.”
“아냐. 그냥 해본 소리일 뿐인 걸.”
지아 누나가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선배라고 하지 마. 그냥 편하게 언니라고 불러. 언니.”
“그, 그치만…….”
윤희가 망설이자 지아 누나가 아예 가까이 다가왔다.
“이제부턴 언니. 알겠지?”
박력이 담긴 단단한 음성에 윤희가 고장 난 로봇처럼 어색하게 고개를 움직였다.
저녁이 되어 우리는 스터디부 활동을 마쳤다.
“내일도 스터디부에 모여서 공부할 거야!”
다들 좋다고 찬성했다.
“지아 누나. 주현 선밴에게도 전해 주세요.”
“그래. 오늘 같은 일은 없게 할게.”
누나의 대답이 꽤 믿음직스러웠다.
* * * *
집으로 걸어가는 길.
주머니에서 잠들어있던 휴대폰이 울음을 터뜨렸다.
「야. 나 낼 시간 나는데 같이 놀자!」
형준이의 문자메시지였다.
「내일 스터디부원들하고 공부하기로 해서... 다음에 놀자」
「진짜? 리얼? 그럼 나도 같이 해도 되냐??」
그러고 보니 이 녀석, 그간 스터디부에 계속 관심을 표출해 왔지.
나는 번호를 모르는 주현 선배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에게 의견을 물어보았다.
결과는 모두들 찬성.
그리하여 다음날 우리는 스타박스에서 모였다.
형준이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