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화 〉3화-고르디우스의 매듭(1) (3/131)



〈 3화 〉3화-고르디우스의 매듭(1)

스터디드림(StudyDream).
이것이 제일 고등학교 스터디부의 정식 명칭이었다.
참 구린 네이밍이다. 모여서 공부만  뿐인 곳에 꿈(Dream)이라니.
쓸데없이 거창한 게 느껴지기도 하고.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스터디부는 별관 2층에 위치해 있다.
나는 이사장님에게서 받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활동을 시작한 지 이틀 차. 이제는 익숙해진 풍경이 나를 맞이했다.
우리 반의 딱 절반 정도 되는 공간.
운동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창가 아래에는 2단 서재가 있었다. 거기에 꽂힌 문제집과 참고서는 전부 다 새것이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부실의 정 가운데를 차지한 책상 다섯 개다. 깔끔한 상태에 교실 책상보다 더 널찍했다.
공부하는데 넓은 책상만큼 쾌적한 게 없지.
이사장님이 스터디부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점을 알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책상을 반원 형태로 배치해 놓아서 다소 기묘한 느낌을 주었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 책상 위치를 바꿔보려고 시도했지만, 책상다리를 바닥에 고정해 놓아서 불가능했다.

대체 무슨 의도가 담긴 걸까.
하지만 의문을 구태여 해결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럴 시간이면 영어 단어  개라도 외우는 편이 더 효율적이지.
나는 가운데 자리에 앉아서 영어 모의고사 문제집을 꺼냈다.

손에는 까만색 몬아미 볼펜.
나는 1번 문제부터 빠르게 풀기 시작했다.
방과 후의 조용한 교정. 공부하기에 이보다도 적합한 환경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나에게는 해야  일이 있다.

심윤희를 스터디부의 첫 번째 부원으로 데려오는 것,
이사장님은 심윤희를 데려오기 전까지는 공식적인  활동을 하지 못한다고 못을 박아뒀다. 부 활동을 못하게 되면 스터디부는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없게 되고, 내 목표마저 좌절된다.
한성고 편입이 걸린 만큼 자신 있게 하겠다고 했는데…….

생각이 꼬리를 물자 자연스레 손이 멈췄다.
목적을 이루려면 당연히 심윤희에게 접촉해야 한다.
하지만 이틀째 아무런 시도도 하지 못했다.
사방에 벽을 두르고 있는 듯하여 왠지 다가가기 어렵게 느껴진다고 할까.

결국 집중력이 끊겼고 나는 가벼운 한숨을 내뱉었다.
나머지는 집에 가서 해야겠군.
결국 풀고 있던 문제집을 덮었다.



* * * *




집에 돌아왔을 때 벽시계가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평소보다 1시간 일찍 들어온 셈이었다.
슬기는 전기장판 위에서 얇은 이불만 덮은 채 잠들어 있었다. 단발로 자른 머리칼 한 줌을 입에  채로.
나는 입가에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엄마는 동네에 있는 마트에서 일하며, 항상 11시를 넘겨서야 퇴근한다.
나는 스터디부에서 따로 공부를 하다 보니 귀가가 많이 늦어졌고.
자연히 슬기 혼자서 집을 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방에서 내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더니 슬기가 눈을 비비면서 일어났다.

“오빠. 오늘도 스터디부인가 뭐시긴가 갔어?”

슬기가 입을 큼직하게 벌리면서 하품을 했다.

“응. 그렇지.”

오늘은 집중이   됐지만.

“으으. 진짜 공부벌레야.”

슬기가 몸서리 치고 나서 이불을 벽으로 대충 밀어내고 TV를 켰다.

“슬기야. 내가 항상 이불은 어떻게 하라고 했지?”
“…….”

슬기가 슬쩍  눈치를 보더니 꾸물거리며 이불을 정리했다.

“지금 저녁 먹을까?”

지금 시간은7시 반.
원래 우리는 8시에 저녁을 먹는다.
다만 오늘은 내가 비교적 일찍 왔으니까.
저녁 먹기 전까지 잠깐 공부를 해도 되지만, 그럴 바에는 먹고 나서진득하게 하는 게 훨씬 낫다.

“좋지!”

슬기가 아주 명랑하게 대답했다. 학교 급식을 먹은 뒤로 아무것도 못 먹었을 테니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을 것이다.
나는 좁은 부엌으로 가서 저녁상을 차릴 준비를 하는데 슬기가 외쳤다.

“오빠아, 나 불고기!”

나는 고개를 돌려서 냄비에  내용물을 확인해 보았다.
슬기야. 안타깝지만 오늘의 저녁 메뉴는 양파랑 무만 넣어서 끓인 연한 된장뿐이구나. 덤으로 냉장고에는 신 김치가 우릴 기다리고 있지.

“5년 뒤에.”
“너무 길잖아!”
“네가 지금 당장 돼지를 잡아 온다면 불고기든 삼겹살이든 뭐든 해주마!”
“칫.”

혀를 차는 슬기를 내버려 둔  반상을 들고 거실로 향했다. 조촐한 상이지만 엄마가 해준 된장국은 무척 맛있었다.
슬기는 정말로 배가 고팠던 모양인지 금세 밥그릇을 비워냈다.
그런 뒤 숙제를 시작했는데 문제가 잘 안 풀리는지 연신 끙끙 앓는 소리를 내었다.
나는 설거지를 끝내고 나서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오빠아아.”

평소보다 간드러진 목소리. 나는 이게 뭔지 잘 알고 있다.
바로 SOS 신호!

“왜?”

모른 체하고 되물었다.

“숙제하는 것 좀 도와줘어.”

내 이럴 줄 알았지.
웬일로 밥을 먹자마자 책을 펴 놓는가 했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나에게 갖은 애교를 부리던 애였는데.

지금은 이렇게 도움이 필요할 때만 애교를 사용한다.
하지만 항상 도움을 받기만 해서야 어디 발전이 있겠는가.
나는 오빠다운 모습을 보이기로 했다.

“슬기야. 이 오빠는, 오늘 못 다 한 공부가 있단다. 그리고 숙제는 스스로 해야 의미가 있지 않겠니?”

슬기가 뚱한 얼굴로 볼을 부풀렸다. 그래봤자 귀여운 여동생으로 보일 뿐이지만.
내가 방으로 향하려고 하자 슬기가 얼른 달려와서 내 팔에 매달렸다.

“오빠아! 한 문제만. 딱  문제만. 응?”

슬기가 검지를 세운  내 눈앞에 대고 흔들었다.

“진짜 오늘만! 오늘마안.”

나는 알고 있다.
슬기의 ‘한 문제만’은 절대로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하지만 이렇게까지 매달리면 마음이 약해진다. 오빠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란 이렇게 사소한 것들뿐이니까.

“그럼, 진짜 딱 한 문제만이다?”
“응, 응!”

슬기가 세차게 고개짓을 했다. 그러고는 밥상 앞에 나를 앉혔다.
책을 보니 5학년 수학의 첫 단원인 약수와 배수였다.

“이거 쉬운 건데?”
“오빠니까 쉽겠지.”

참고로 슬기가 받아온 가장 높은 수학 시험 점수는 35점이다.

“나도 오빠처럼 머리가 좋았으면…….”
“공부 잘하는 거랑 머리 좋은 거는 크게 상관없어. 노력이 중요한 거야. 노, 력.”
“나도 노력한단 말야. 그치만 잘 안 되는 걸.”
“무슨 노력을 했어?”
“그야…….”

슬기가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집에 와서 맨날 낮잠 자거나 TV만 보던 애가 노력은 무슨.

“그나저나 약수와 배수의 개념은 알고 있어?”
“당연하지! 오늘 배웠거든!”

오늘 배웠으면서 숙제는 못한다고 하는 거냐.

“한 번 설명해 봐. 약수 먼저.”
“그러니까 약수는…….”

슬기의 눈길이 점점 천장으로 향했다. 목소리도 갈수록 기어가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빠가 설명해줄게.”

나는슬기가 개념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알려준 뒤, 첫 번째 문제까지 풀어주었다.

“오빠. 2번 문제도!”

슬기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었다.

“응 안 돼.”

손까지 휘휘 내저었다.

“오빠아. 제발 이것만. 응?”
“나 이제 공부해야 해.”
“1분만! 아니 30초, 30초!”
“안 돼, 안 돼. 누누이 말하지만숙제는 스스로 하는 거야.”
“치이…….”

슬기가 다시 밥상에 앉았다. 나는 슬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힘내라 동생아.”
“응…….”

슬기가 시무룩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서 공부할 책을 펼쳤다.
내일은 반드시 심윤희에게 입부를 권할 것을 다짐하면서.



* * * *


다음날.
이사장님과 거래(?)를 한 지 사흘째가 되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심윤희의 동향을 줄곧 살폈다.

심윤희는 항상 혼자 있었다.
HR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항상 시집을 읽거나 이어폰을 끼고 살았다. 어쩌다 화장실을 갈 때를 제외하면 자리에서 일어나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말을 걸 타이밍을 잡기가 힘들었다.
교실에서 대놓고 했다가는 오해를 살  불 보듯 뻔하니까.

하지만 계속 머뭇거리기만 해서야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는다.
오늘은 꼭, 말하겠어!
오후 5시가 되자 모든 정규 수업이 끝났다.
야자가 없는 학교라서 부 활동 인원을 제외하면 대부분 학생들은 하굣길에 올랐다.

심윤희는 오늘도 느긋하게 짐을 챙기고 있었다.
나는 교실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기회는 바로 지금.

“저기.”

머릿속 시뮬레이션으로는 좀 더 당당하게 말을 거는 모습을 그렸는데, 정작 현실에서는 조심스럽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나?”

윤희가 가방끈을 쥔 채 나를 바라보았다.
눈이 참 맑았다. 나도 모르게 예쁘다는 생각이 들 만큼.

“잠깐 할 얘기가 있어서.”

윤희의 눈길이 위아래로 천천히 움직이면서 나를 탐색했다.

“잠깐 따라올래?”
“어디를?”

내가 하려는 얘기는 지극히 단순하다.
스터디부의 부원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는 것뿐.
만약 거절한다면 이 자리에서 설득할 작정이고.

“일단 따라와.”

담담하고 차분한 음성. 협박을 하는 것도, 그렇다고 고압적인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왠지  말을 들어야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윤희가 나를 지나쳐 갈 때 자신의 머리칼을 한 번 쓸어넘겼다.
쓸데없는 반론은 들어주지 않겠다는 태도 같았다. 윤희의 발걸음에는 일말의 머뭇거림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어쩔  없이 보폭을 유지한 채 그 뒤를 따라갔다.
우리는 3층 계단을 올라갔다. 복도를 따라 걸어가다 보면 별관으로 이어지는 구름다리가 있다.
우리가 향하는 곳은 구름다리가 있는 방향.
한참을 가던 중 반대 방향에서 오던 누군가와 마주쳤다.

“어? 한영재네?”

이규원이 이쪽을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보이시 보브컷 스타일의 까만 단발머리가 특징적인 애였다.
윤희가 걸음을 멈췄다. 규원이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심윤희,  있고… 무슨 일 있어?”

옆으로 살짝 째진 규원이의 눈이 나와 심윤희를 번갈아 보았다. 흥미로운 사건을 접한 것만 같은 표정.
하긴 남녀 단둘이서 교실이 아닌 어딘가로 가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십중팔구는 확신할 것이다.
로맨스의 기운이 느껴진다! 고.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냐.”

미리 부정문을 읊조렸다.

“그래애?”
“별 일 아냐.”

윤희도 한 마디 거들었다.

“흐응?”

규원이의 눈이 반달 모양이 되었다. 아주 정확하게 오해를 하는 모양새였다.

“뭐, 둘이 잘해 봐.”

규원이는 다시금 가던 길을 갔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하지만 지금은 윤희에게  일이 있으니까 잠깐 신경 끄기로 했다.
윤희 역시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눈치고.
우리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윤희가 멈춰 선 곳은 별관의 2층과 3층 계단의 중간 지점이었다.

“지금 말해도 돼?”

내가 입술을 떼려고 하자 윤희가 검지를 자신의 입술에 갖대 대었다.  모습이 왠지 요염하게 느껴졌다.

“한 번 맞춰볼까?”

그저께 잠깐 한두 마디 나눈 일 말고는 없는데 무슨 수로 맞추겠다고.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윤희가 입을 뗀 순간 뛰쳐나갔던 어이가 부리나케 되돌아왔다.

“영감탱이지?”
“어?”

나도 모르게 반문이 튀어 나갔다.
느닷없이 들어온 훅이라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윤희가 영감탱이라고 부를  있는 인물은  세상에 단  명뿐이니까.

“어떻게…….”

윤희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그려졌다.
그리고 손을 들어서 2층 방향을 가리켰다.

“여기 2층에 있는 스터디드림, 이었던가? 여하간 우연히 보게 되었거든. 물론 이것만 가지고 알아낼 수 있는 건 아니지.”

나는 가만히 윤희의 말을 들었다. 대체 어떻게 눈치를 챘는지 궁금했으니까.

“사흘  5교시 영어 시간에는 교실에 아예 없었고. 그때 담임선생님이 결석자에 대해서 아무 말씀도  하셨거든. 담임선생님이 너랑 같이 3층에 올라가는 모습도 봤고.  정도면 충분히 연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무엇보다.”

나는 침을 삼켰다.

“그 영감탱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으니까.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사람이거든.”

마지막 말에서 가시가 돋친 듯한 느낌은 단순한 기분 탓일까.
하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다.

“심윤희. 스터디부의 부원이 되어줬으면 해.”

들켰다고 해서, 얌전히 물러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윤희는 짧게 한숨을 내뱉더니 팔짱을 꼈다.

“눈치가 없는 걸까, 아니면 뭔가 사정이 있는 걸까. 어느 쪽이든 나랑 상관없지만.”

윤희가 미간을 찌푸렸다.

“거절할게. 공부에는 별로 마음이 없거든.”

윤희가 왔던 길로 천천히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옆을 스쳐 지나갈 때  마디 내던졌다.

“앞으로 말 걸지 마.”

적의마저 느껴지는 날카로운 어조에 나는 동상처럼 우두커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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