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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화 〉2화-브라질 나비의 날갯짓(2) (2/131)



〈 2화 〉2화-브라질 나비의 날갯짓(2)

돌이켜 보면 정말 지지리도 운이 안 따라줬다.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천지신명님, 부처님, 하나님, 심지어 알라님까지 연호하며 제출했던 한성고 입시 원서.
결과는 칼 같은 퇴짜였다.

결국  대신 닭이라는 심정으로 동진고를 1지망에 적었다. 선생님이 2지망까지 적으라고 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적지 않고 비워뒀다. 그건 마지막 자존심이었으니까.
이조차도 끝끝내 행운의 여신이 나를 외면할 줄은 몰랐지만.
내가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자 담임선생님이 어깨를 가볍게 움켜쥐었다.

“뭐해. 들어가야지.”
“선생님. 갑자기 이사장실에는 무슨 이유로…….”
“널 찾는 사람이 이사장님이거든.”

그걸 묻는 게 아닌데요…….
하지만 더 물어볼 수가 없었다. 선생님도 나를 호출한 이유에 대해서는 짐작 가는 바가 없는 듯했으니까.
선생님이 이사장실 문에 대고 노크를 했다.

“이사장님. 데려왔습니다.”

문 너머로 작게 들려오는 허가에 선생님이 문을 열었다.
일개 학생인 내가 무엇 때문에 학교에서 가장 높은 사람과 만나는 거지?
여전히 영문을 알  없는 상태로 나는 이사장님과 마주하게 되었다.

“네가 한영재구나.”

이사장님이 시선만 슬쩍 들어서 이쪽을 바라보았다. M자 탈모 탓인지 이마 평수가 넓어보였다.

“아, 네.”

이사장님의 손은  새 없이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고 있었다.

“우리 학교 역사에서 첫 남학생이라……. 좋구만.”

여기에 대답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판단이 서지 않아서 나는 눈알만 이리저리 굴렸다.

“이사장님,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수고하게.”
“앗, 선생님! 5교시 수업은요?”

이사장실을 나서려던 선생님이 이쪽을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야. 5교시는 내 수업이잖아. 걱정 말아.”

다행히 출석 걱정은 덜었구만.
선생님이 나가고 나서도 이사장님은 타이핑을 멈추지 않았다.

“소파에 앉아 있겠래? 10분만 더 하면 끝날 것 같구나.”

이사장님의 눈길은 여전히 노트북에 머물러 있었다.

“네.”

그래서 일단 소파에 앉았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려니 어색함이 배가 되었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이사장실을 둘러보았다.
책상 위에는 한자로 적힌 명패가 놓여 있었고, 노트북 옆에는 서류철이 몇 개 쌓여 있었다.

구석에 있는 조그마한 탁상에는 전기포트와 믹스 커피, 티백, 종이컵 등을 쌓아놓은 쟁반이 있었는데, 그 외에는 특별히 눈에 띄는 물건이 없었다.
이사장님은 정확히 10분이 지난 시점에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구나. 업무가 좀 많았거든.”
“아녜요.”
“뭣 좀 마시겠어? 커피나 녹차나.”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듯 부드러운 어조였다.
여기서 바로 대답하면 예의 없어 보이겠지?
눈치를 살피면서 머뭇거리자 이사장님이 동네 할아버지처럼 허허 웃었다.

“너무 눈치만 살펴도 좋지 않아. 당당한 태도가 신뢰를 주는 법이지.”
“그럼 저는, 커피로 할게요.”

이사장님이 소파에서 일어난 다음 믹스 커피 두 잔을 가져왔다.

“여기 있다.”
“감사합니다.”

나는 이사장님이 내민 종이컵을 양손으로 받아들었다.
한 모금 들이켜자 달달한 맛이 혓바닥을 적셨다. 오랜만에 느끼는맛이었다.
커피가 지닌 온기 덕분인지, 아까보다 한결 긴장이 풀어졌다.

“즐거운 점심시간을 빼앗은 점은 사과하마.”
“아니에요. 괜찮아요.”

인사치레가 아닌 진심이었다.
아직까지 친하게 지내는 애들이 없으니까 즐거운 점심시간이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지.

“바로 본론부터 들어가지. 내가 너를 부른 이유는 부탁할 것이 있어서란다.”
“저한테요?”

나는 검지손으로 내 쪽을 가리켰고, 이사장님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사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나한테 부탁을?

“입학식 때 수석대표로 단상에 올랐지?”
“네, 맞아요.”
“그러니 네가 적격이란다.”
“…뭐가요?”

문맥을 파악할 수가 없어 멍한 표정을 짓고있는 와중에 이사장님이 드디어 목적을 밝혔다.

“제일 고등학교 스터디부의 부장을 맡아주었으면 한다.”
“네?”
“스터디부 말야, 스터디부.”

이사장님이 그러면서 커피를 쭉 들이켰다.

“스터디부라면, 애들끼리 모여서 공부를 하는,  스터디부가 맞는 거죠?”
“그래.”

이사장님이 고개를 살짝 움직였다.
나는 종이컵을 든 채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제일 고등학교가 부 활동을 활성화하고 있고, 성과를 거두고 있는 부서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중에 스터디부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다.

“이 학교에, 그런 부는 없지 않나요?”
“그동안 없었지. 하지만 어제 내가 만들었다.”

완전 신생 동아리잖아.
그러니까 지금 이사장님은 나에게 그런 동아리의 부장이 되어 달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조심스레 목소리를 내었다.

“이사장님.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물론이지.”
“왜 하필 저를 부장으로 선택하시려는 건가요?”
“너 만한 인재가 없기 때문이란다.”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즉답이 나왔다. 확신에 차 있는 태도.
솔직히 좀 부담스러운데…….

“음… 저는 부장이 될 만한 재목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끌어나갈 자신도 없고요.”

솔직한 의견을 내비쳤다.
함께 모여 공부를 하는  얼핏 보면 즐겁고 좋을 것 같지만, ‘스터디부’라는 그룹 아래에 모이는 것이다.
정해진 모임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강제성을 지니게 된다.

그만큼 사람 대 사람으로신경 쓸 거리가 많아지겠지.
오직 공부에만 집중하고 싶은 나에게는 방해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1분 1초도 아까운 마당에 사사로운 일로 시간을 빼앗길 수는 없다.

“영재야. 이건 수석대표인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란다.”
“그리 말씀하셔도…….”

나는 이사장님의 눈을 보았다.

“그런데 왜 꼭 저여야만 하나요?”

아직 이사장님은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이유를 밝힌다고 해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거라는 점은 변함없지만.

“이유라. 얘기가 좀 길어질 것 같구나.”

이사장님이 소파의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한 잔 더 마시겠니?”

이사장님의 목소리에 나는 손에  종이컵을 내려다보았다. 밑바닥이 보이기 직전이었다.

“네.”

이사장님이 새로이 커피를 타왔다. 나는 감사히 받아들고  모금 머금었다.
이사장님은 입에 대었던 종이컵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제일 고등학교가 원래 ‘제일 여자고등학교’였다는 건 알고 있나?”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건가. 괜히 커피를 가져온 게 아니었군.
나는 일단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로부터 이사장님의 사정 설명이 시작되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제일 고등학교는 ‘제일 여자고등학교’였다.
한때 제일여고는 한성고만큼은 아니어도, 동진고와 쌍벽을 이룰 만큼 공부를 잘하는 학교였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10년 전에나 통하던 얘기.
언제부터인가 제일여고의 위상이 쇠락하기 시작했다.
오늘에 이르러서는 동네에서공부를 가장 못하는 학교라는 불명예 딱지가 붙어 있는 상황.

“나는 2년 전에 이 학교의 이사장으로 취임했어. 그리고 직후에 통폐합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지.”

좋지 않은 학교 이미지와 저출산 등의 문제가 겹쳐서, 입학생 수는 매년 감소 추세였다.
더구나 동네에서 유일하게 ‘단성 학교(單性 學校)’이다 보니 문제가 더 심각했던 것이다.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했지. 바로 공학으로 전환하는 일이었단다.”

공학 전환.
제일 여자고등학교를 되살릴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첫 번째는 동문.
학교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동문의 전통도 깊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반발이 매우 심했다고 했다.
이사장님은 학교를 되살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들을 끈질기게 설득했고, 결국 찬성표를 얻어낼 수 있었다.

재학생들의 찬성표도 얻어냈는데, 문제는 학부모들이었다. 의견이 반반으로 나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대다수의 동의를 얻어야만 추진할 수 있는 일이었으므로, 이사장님은 학부모 설명회를 여러 차례 개최했다.

“설명회 덕분에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동의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지. 그렇게 모든 준비를 끝마쳤어. 마지막으로 교육청의 허가를 받는 일만 남았지. 교육청에서는 주로 사업성이나 타당성 등을 위주로 하여 검토를 한단다, 승인을 할지, 기각을 할지.”

그리고 작년 9월 경, 교육청의 허가가 떨어졌다.
공학 전환 사업을 추진한 지 1년 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공학으로 전환되었고, 기반 시설도 마련했고, 홍보에도 힘을 썼지. 거기서 나는 낙관한 거야. 작년보다 입학생이 늘어날 거라고.”

하지만 이사장님의 기대는 완전히 어긋나고 말았다.
입학생 총원 113명.  중 남학생은 나 혼자.
처참하다는 표현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성적표였다.
참고로 작년 입학생은 132명이었다고 한다.

“결국, 이미지가 문제였던 것 아닐까요?”

속으로 아차 싶었다. 거의 확인 사살이나 다름없는 발언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그렇지.”

이사장님은 순순히 인정했다.

“두발 규제를 없애고, 야간자율학습을 폐지하고, 자율적인 부 활동을 보장해 주어도, 결국 공부를 못하는 학교라는 꼬리표가 있는  우리 학교의 미래는 없는 셈이지.”

이사장님이 오랫동안 묵힌 것 같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거나 지금의 상황이 절박하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의문이 남았다.

“이사장님. 그런데 왜 하필 스터디부인가요? 다른 해결 방법도 얼마든지 있을  같아서요.”
“예를 든다면?”

이사장님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것은 학생이 내놓을 답을 기대하는 인자한 교사의 눈이었다.
나는 한동안 머리를 굴린 끝에 입술을 떼었다.

“야간자율학습을 부활시키면 될 것 같아요.”

이사장님은 느릿한 동작으로 고개를 저었다.

“너처럼 공부 습관이 밴 학생들이라면 가능할 테지. 하지만 수십 년 간 교직을 하면서 그런 학생들은 보기 어려웠단다. 무엇보다, 자율이라는 이름하에 모든 학생들을 밤까지 강제로 교실에 남아있게 하는 게 정말 옳은 일일까?”

정론이었다.

“강제로 시키면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는 있어. 하지만 나는 그런 걸 바라지 않는다.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에 의미가 있으니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드는 말이었다.
스스로 내켜서 하는 것. 공부의 성취도는 거기서 좌우된다.

“나비 효과를 알고 있나?”
“베이징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에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다, 는 말이죠?”
“미국의 기상학자였던 로렌스가 한 말이지. 정확하게는 베이징이 아니라 브라질이지만.”
“그렇군요.”

나비 효과라는 용어 덕분에 이사장님이 왜 스터디부를 개설했는지, 왜 내가 스터디부의 부장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갈피가 잡혔다.
이사장님은 스터디부라는 나비의 날갯짓을 진원지로 삼아서 학교 전체에 면학 분위기가 형성되게끔 하려는 것이다.
강제성이 없다는 점에서 확실히 좋은 방법이다.

“의도하신 바는 알겠어요. 하지만 나비의 날갯짓이 반드시 토네이도를 일으키지는 않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실패 확률이 더 높아 보여요.”
“일리 있는 지적이야. 하지만 성공할 가능성 또한 분명히 존재하지. 나는 이 세상에 가능성이 없는 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

그 말에서 왠지 모를 무게감이 느껴졌다.
모두가 어려울 거라고 여겼던 공학 전환을 기어이 성공해낸 사람의 말이라서 그런 걸까.

“성공할 거라고, 보시는 거예요?”
“확신은 못한다. 다만 느낌이 좋구나. 이런 직감은 대체로 맞았으니까.”

이사장님이 몸을 앞으로 구부리자 시선이 가까워졌다.

“스터디부의 부장은 너 말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오직 너만이  수 있는 일이야.”

이사장님의 눈빛이 단호했다.

“그럼 만약 제가 부장이 된다면…….”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마.”

오래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나의 인생 목표는  한 가지.
한성대학교를 나와서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 단추를 다시 꿰매야 한다.

“한성 고등학교에 편입하게 해 주세요.”
“성공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해 주마.”

이사장님이 오른손을 내밀었다.

“올  해 잘 부탁한다.”
“네!”

나는 그 손을 맞잡았다.
이로서 나는 제일 고등학교의 스터디부 부장이 되었다.

“참!  가지 더 해 주었으면 하는 일이 있다.”

이사장님이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서 화면을 보여주었다.

“이 아이. 내 손녀를 첫 번째 부원으로 데려오도록.”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화면 속의 인물이 내가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바로 심윤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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