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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1일 (282/304)

3월 11일

수안과 배영성은 2011년 초에 다가올 거대한 사건을 앞두고 있었다. 오직 수안만이 예측하는 일이었고, 배영성도 수안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바로 동일본 대지진이다.

“말씀하신 대로 대비 중입니다.”

“어차피 대비한다고 달라질 건 없겠지만….”

“예. 막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사후 처리에 도움은 될 겁니다. 게다가 원전과 마을에 쌓은 제방은 확실히 도움이 될 겁니다. 마을 제방 공사는 몇 년 전부터 시작해서 3개월 전에 완료했습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에서 발생하는 거대한 지진과 지진해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함이었다. 이미 후쿠시마 원전의 차수벽을 높여 놨고, 근처 마을에도 향후 해일 피해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높은 방벽을 쌓아 놨다. 어떤 마을은 지자체에서 직접 설치해 둔 것도 있었기에 최초의 방벽은 아니었다. 마을 주민들은 바다 경관을 해친다고 싫어했지만, 그들의 불만조차 돈으로 해결해 버렸다.

또한 일부 마을은 그조차 거절해서 제방을 설치하지 못했지만, 대부분의 마을은 제방 설치에 동의했다.

“또한 중장비와 구조 및 의료를 담당할 사람들, 그리고 집을 잃은 사람들이 묵을 숙소까지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일본 정부엔 아직 알리지 않았습니다.”

“잘했어. 어차피 믿지도 않을 테고, 근거도 없잖아.”

“저니까 믿는 거죠. 아무도 안 믿을 겁니다. 그렇게 큰 지진이 일어난다면 믿고 싶지도 않겠죠.”

한국이 일본에 뭔가를 해 준다고 일본 정부가 감사할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도의적인 책임감에 하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해야지. 아니면 누가 해?”

미래를 보고 돌아온 자신과 자신을 믿어 주는 배영성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일본은 항상 우리 BE 인베스트먼트를 도와주잖아.”

“이럴 때 돈 버는 게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도와주니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기분입니다. ”

게다가 BE 인베스트먼트가 일본에서 벌어들인 돈이 한두 푼도 아니었고, 이번에 벌어들일 돈 또한 한두 푼이 아닐 터였다. 이득의 일정 부분을 일본에 돌려준다는 마음으로 진행하는 일이다.

“그런데…. 정말 일본 정부가 한국의 도움을 그렇게 무시할까요?”

“응. 한국 정부의 정치인과 같은 이유야.”

일본은 한국이 전한 지진 성금마저 순위에서 쏙 빼 버리며 한국의 도움을 자국민에게 알리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자격지심을 가진 한국에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이 달갑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한국에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 인기가 치솟는다. 한국 정치인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에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며 과거사 청산과 위안부 문제를 언급하는 것만으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일본은 말로만 이웃이지 진짜 이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일본이 방파제 역할은 확실히 하잖아. 이번에 원전만 터지지 않으면 그걸로 충분해.”

후쿠시마 원전이 터질까 무서워 도쿄전력에 뇌물까지 주면서 미리 차수벽을 높였다. 원전 지하에 바닷물이 들어오지만 않아도 절반 이상의 성공이었다. 거기다 이번에 근방 여러 마을에 방벽을 올려놨으니, 지진 자체를 막지는 못해도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을 터였다. 구조를 위한 인력과 장비도 준비되어 있으니 방비부터 사후 처리까지 모두 진행하는 셈이었다.

“차 사장과 한국인 파견 직원들은 우선 귀국하라고 얘기해 놨습니다. 명목은 해외 워크숍입니다.”

차진호 사장에게 수안의 예측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던 배영성이 그럴싸한 이유를 들어 차진호를 한국에 불러들인 것이다.

“일본 전역에서 지진이 관측될 거야. 어디서 어떤 건물이 쓰러질지 예측하기 어려워. 차라리 한국에 워크숍을 왔다가 사고를 피했다고 하는 편이 좋지. 잘했어.”

이제 대지진을 기다릴 시간이었다.

.

.

.

이후 3월 11일. 일본 산리쿠 연안 앞바다에서 거대한 해저 지진이 발생하며 수안의 예언을 현실로 만들었다.

지진파를 먼저 확인한 일본의 TV 방송국은 저마다 지진 경보를 띄웠다.

-緊急地震速報です。強い揺れに警戒して下さい: 긴급 지진 속보입니다. 강력한 진동에 대비하시기 바랍니다.

바닷가 마을에는 해저 지진으로 인해 해일이 발생, 쓰나미가 덮쳤다. 또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는 지진으로 인해 송전선로와 변전시설 등의 전력이 차단되기에 이른다.

“원전에 전력이 차단됐어! 비상사태다!”

“예비 전력은 어떻게 됐어!”

“지하에 비상 발전기 돌아갑니다. 그래도 8시간 내로 다시 전력이 공급되어야 합니다.”

“해일이 몰려온단 말이야! 지하로 물 들어가지 않는 건 확실해?”

“차수벽 높이 이상의 해일이라면 지하 비상 발전기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당국에선 뭐라고 했지? 해일 높이 말이야!!”

“…당국에서도 정확한 해일 높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진만으로 패닉 상태입니다.”

“우리 원전이 터지면 그게 진짜 패닉이야! 체르노빌은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야!”

벌써 해변가 물이 바로 빠져나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해변의 물이 빠져나간다는 뜻은 곧 해일이 덮친다는 뜻이었다.

“해일 옵니다!”

바다 멀리 거대한 파고가 눈에 들어왔다. 상당히 높은 해일이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내의 직원들은 원전 차수벽이 해일의 파고를 막아주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 차수벽은 어디 있지? 빨리!”

이제야 차수벽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원전 담당자였다. 부임하고 처음 보는지도 모르겠다.

“이쪽입니다. 여기서 확인 가능합니다.”

“……!”

그런데 차수벽은 생각보다 상당히 높았고 단단해 보였다.

“차수벽이 언제 저렇게 높아졌어? 분명 방벽 공사비가 축소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일전에 일본 BE 인베스트먼트에서 원전을 해일에서 보호해야 한다며 보강공사를 했습니다. 당시 도쿄 전력 고위인사들이 돈을 받고 허락해 줬다고 들었습니다.”

“…돈을 받아도 시원치 않은데, 돈을 줘 가면서 저 공사를 해? BE가 왜? 미쳤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야 저도 모르죠.”

그래도 추가로 높인 제방 덕분에 긴급으로 운영되던 비상용 디젤 발전기가 전력 공급을 멈추지 않고 노심 냉각을 이어 갔다.

“해일 막았습니다! 살았습니다!”

“휴우. 이게 끝이 아니야. 언제까지 비상 발전기를 돌릴 수는 없잖아. 빨리 전력부터 복구해! 지진으로 발생한 균열이 있는지도 파악하고.”

“예!”

한국에서도 관련 속보가 계속 전해졌다.

[日대지진 10m 쓰나미. 도쿄 등 아수라장.]

[日대지진 국내 기업 직원들도 대피.]

[日대지진 졸업식서 학생들 부상. 도쿄 도심 화재.]

[日대지진 쓰나미, 공항폐쇄. 침수 등 피해 잇따라 발생.]

[日대지진 일본 모든 하역작업 중단.]

[日대지진 전화·인터넷 불통.]

[日 열도, 대지진에 무너지고 잠겼다!]

많은 기사가 쏟아지는 와중에 한국에 있는 배영성도 바쁘게 움직였다.

“일본 정부는 뭐라고 합니까!”

-일본 정부는 저희의 진입을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놈들은 지금 뭐가 중요한지도 모른답니까!!”

기껏 준비한 구조용 중장비와 인력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일본 정부의 구조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의 사고 지휘소는 아직 명령 체계도 제대로 잡혀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연락을 잘 받지도 않고 연락이 되어도 답을 주지 못합니다.

“…지금 우리 쪽 인원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일본 서부 해안에 대기 중입니다. 이쪽은 해일이나 지진 피해가 없어서 대기하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조금 더 기다려 보세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이 부분도 수안에게 언질을 들었던 배영성은 반쯤 포기하고 기다리는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 정부가 늑장 대응한다는 것까지 다 맞아 버렸어.’

그렇다면 일본 정부가 한국의 도움을 반기지 않는다는 말도 맞을 것이다. 열심히 도와도 도움을 반갑게 여기지 않는다는데, 이렇게 혼자 열을 올리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우린 발등에 불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립니다. 구조대원들이 편히 지낼 수 있도록 조치하세요. 체력이라도 비축해야 합니다. 앞으론 바빠질 겁니다.”

-예. 알겠습니다.

회장님의 숭고한 뜻이 퇴색되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이는 일본이 자초한 일이었다.

“대신 우리가 도우려 했다는 것은 정확히 알리세요. 증거를 남겨두란 말입니다. 특히 일본 언론에 휘둘리지 않도록 외신과 접촉하세요.”

-아. 예.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일본이 아무리 한국의 도움을 무시하려 해도 외신까지는 무시하지 못하리라는 판단이었다.

[CNN. 日대지진에 가장 먼저 발 벗고 나선 한국. 반면, 일본 정부는 여전히 오락가락.]

-일본의 이웃 나라인 한국은 이번 일본의 대지진에 도움을 주고자 중장비와 인력을 파견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구조에 늑장 대응으로 도움조차 받을 수 없는 현실이다. 한국 정부의 요청으로 강운 그룹에서 파견된 이들은 현재 일본 서부 지역에서 대기 중이며 …중략… 또한 일본 동부 해안 마을에 방벽을 쌓아 해일에 대비한 것도 일본 정부나 지자체의 결정이 아니었다. BE 인베스트먼트 일본 지점의 자의적 판단으로 진행된 일이라고 전해졌다. 제방이 설치된 마을은 이번 해일에 전혀 피해를 당하지 않았으며, 일부 제방이 설치되지 않은 마을은 해일에 휩쓸려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 * *

-이봐. 후배. 언제 일본에 그런 작업을 한 거야?

“일본에서 따로 연락 왔습니까?”

대한민국의 현 대통령인 이현창의 전화였다.

-일본 총리한테 직접 전화가 들어왔어. 외신 뉴스를 보고 화들짝 놀란 모양이야.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 차수벽도 자네가 추가로 올렸다며? 그거 아니었으면 아찔한 일이 발생했을 거라고 하던데?

“그래봤자 외부엔 일언반구도 안 하겠죠.”

문제가 생겼다면 감추고 감추다가 인정했겠지만, 이번엔 문제도 생기지 않았으니 일부러 들추지는 않을 것이다.

-그 작자들 하는 짓이야 매번 그렇지.

“우리 쪽 구호 인원이라도 진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일본에 언론 플레이도 좀 하시고요. 그래야 등 떠밀려서라도 우리를 받아들일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회에 생색이나 좀 내지 뭐.

“부탁드립니다.”

-일본 정치인들이 후배가 생각하는 반만이라도 일본 국민을 생각해야 하는데 말이야.

“일본 국민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같은 사람이라서 돕는 겁니다. 할 수 있는데 안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내 말이 그 말이야. 저들이 해야 할 일도 제대로 못 하는 것들이 말이야…. 정치인이라고 거들먹거리는 것만 좋아하는 놈들이 바로 그놈들이지. 나도 자네 아니었으면 청와대에서 대통령 노릇이나 하겠나.

“아휴. 얘기가 또 왜 이리로 튑니까.”

가끔 이현창은 수안 덕분에 대통령이 되었다며 이렇게 공치사하곤 했다. 수안이 아니었다면 한신당 의원들의 꼬임에 넘어가 대선에서 낙마했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아! 그리고 장 보좌관 데려가.

“네? 장 비서를 내치시려고요?”

-자네랑 너무 오래 있었나 봐. 내 옆에선 영 적응을 못 하네?

수안의 비서로 있던 장세진은 대통령이 된 이현창의 요청에 다시 곁으로 보내 줬었다. 해외 비밀 계좌를 비롯해 내밀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라 수안 곁에 두기는 불편했을 것이다. 그래서 수안도 두말하지 않고 보내 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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