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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내가 와도 되는 건가? (227/304)

여기 내가 와도 되는 건가?

강운 무역과 거래하는 거래처들은 담당자의 경조사까지 꼼꼼하게 챙기곤 한다. 한정희의 결혼도 비슷하게 흘러갔다.

“강운 무역 사장의 전 여비서 결혼이요? 부장님. 여기까지 챙겨야 합니까?”

“박 차장. 어쩌겠어. 강운 무역이 갑인데.”

강운 무역에서 청첩장 한 장이 날아왔는데, 현 직원도 아닌 전 직원이었다. 문제는 그냥 직원이 아니라 사장의 비서로 일했다는 경력이었다. 임원들과 가까이 지내는 비서 업무의 특수성을 고려해 봤을 때 중요 임직원들이 결혼식에 참석할 가능성이 컸다.

“에이. 그래도 그렇지. 이미 퇴직한 사람이라고 하잖아요. 이제 회사랑 상관없을 텐데요?”

“비서로 일했다니까 혹시 모르잖아. 강운 무역 임원들이라도 볼지.”

“저는 주말에 약속이 있어서…. 장 대리 보내겠습니다.”

“장 대리? 걔는 강운 무역 임원들 얼굴도 모르지 않나?”

“오지도 않을 임원들이고 온다 해도 제가 있으면 뭐 달라집니까? 우리 회사에서 다녀갔다는 것만 강운 무역에서 확인하면 될 겁니다.”

“…끄응. 별일 없겠지?”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장님.”

박 차장은 장민환 대리를 불러 이번 일요일 결혼식에 갈 것을 지시했고, 장민환 대리는 가기 싫은 티를 팍팍 내면서도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

“눼에.”

‘나도 빨리 결혼하든가 해야지.’

박 차장은 주말에 가족과 처가댁에 간다고 했다. 자신도 그런 이유가 있다면 신입을 대신 보내고 싶었다.

“축의금은 회사에서 나오니까 가서 공짜 밥이나 먹는다고 생각해. 집에 혼자 있으면 밖에 나가서 사 먹을 거잖아. 강운 무역 전 직원이라 별로 중요한 사람은 없을 거야.”

“그보다… 주말 특근 수당 없습니까?”

“캬악! 트윽근? 너 지금 특근이라고 했냐?”

“농담입니다. 차장님. 헤헤.”

괜히 흰소리했다가 한 대 맞을 뻔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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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당일. 장민환은 멀끔하게 차려입고 결혼식 장소로 향했다.

청첩장을 보니 장소가 고려호텔이었다.

“여자 집이 잘사나? 큭. 오늘 스테이크 좀 썰겠는데?”

식장에 가까워져 오면서 장민환은 점차 위축되고 있었다.

“뭐야. 왜 이렇게 사람이…. 뭐야. 이거 없으면 들어가지도 못해?”

식장 입구에서 청첩장을 확인하는 과정까지 거치고 있었다.

“손님. 청첩장 확인 도와드리겠습니다.”

“여, 여기 있습니다.”

‘으아…. 예쁘다.’

호텔 여직원은 역시 얼굴을 보고 뽑는구나 싶었다.

여직원은 청첩장을 돌려주지 않고 말했다.

“신우 인더스트리 직원께서는 지정된 좌석으로 앉아 주시길 바랍니다. 58번 테이블입니다. 여기 번호표입니다. 해당 자리에서만 식사 가능합니다.”

“네에. 감사합니다.”

신부 측에 축의를 넣고 일찌감치 자리에 앉았다. 아직 많은 사람이 오진 않았지만, 간간이 정장을 입은 남녀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래도 회사 직원들이 좀 왔나?’

아직 강운 무역 직원들 얼굴을 익히지 못한 장민환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스테이크라도 미리 갖다주든가.’

일반 결혼식처럼 뷔페식당이 있다면 바로 내려갔을 텐데, 호텔 예식에서 밥을 얻어먹으려면 무조건 식이 시작될 때까지 테이블에서 기다려야 했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멀리서부터 엄청난 존재감을 가진 얼굴이 둥실 떠서 옆을 지나갔다. 환한 빛이 스쳐 간 기분이다.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입을 벌리고 있던 장민환은 잠시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허억! 임아현이 여길 왜 와?”

오늘 거래처 결혼식에 와서 임아현을 본 것만으로 만족스러웠다.

고아한 한복을 입은 그녀였기에 더욱 빛나 보였다.

“우아. 진짜 연예인은 다르네. 사람이 아니라 선녀라고 해도 믿겠다.”

장민환은 임아현을 한 번 더 보고 싶어 괜히 식장 밖으로 나와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장민환의 눈 호강은 끝이 아니었다.

‘헙. 김승철! 가수 김승철이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지만, 알아보긴 어렵지 않았다.

‘사인해 달라고 해야 하는데….’

그리고 강운 무역 김성우 사장도 등장했다. 강운 무역의 다른 직원들은 몰라도 사장을 몰라보긴 어렵다. 김성우 사장이 지나쳐가기 전에 얼굴도장을 찍으며 명함을 내밀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신우 인더스트리에서 왔습니다. 장민환입니다.”

“아. 신우에서 오셨습니까. 장 대리님이시네요. 예.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잠깐의 인사와 악수 한 번이 전부였지만, 얼굴도장을 찍은 것으로 만족이다. 자신의 명함까지 받아 줬으니 충분히 성공적이었다.

‘큭. 박 차장이 배 좀 아프겠는데? 강운 무역 사장이 내 명함을 받아 줬어!’

강운 무역 사장은 바로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나이가 지긋한 임원들과 대기 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뭐지? 김 사장은 혼주도 아니잖아.’

의문은 곧 풀렸다.

“허억!”

김성우 사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허리를 접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강운 그룹 강운모 회장의 등장이다.

“어. 그래. 먼저 들어가 있어. 난 양가 어른들과 인사 좀 하고.”

“예. 회장님.”

강운모 회장은 신랑 측으로 먼저 가서 사돈댁과 인사했다.

“축하드립니다. 아드님이 오늘따라 더 멋있습니다.”

“바쁘신데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

오늘 결혼식으로 들떠 있는 영수도 인사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

“당연히 와야지. 수안이는 어디 있는지 아나?”

“동생과 신부 대기실에 있습니다.”

“일찍 와있었나 보군. 축하하네. 사돈총각. 오늘까지만 총각이라고 부르겠구먼.”

“하하하.”

강운모 회장은 몸을 돌려 신부 부모 쪽으로 향했다.

신부 부모는 강운모 회장의 존재감에 벌써 몸이 굳어가고 있었다.

“결혼 축하드립니다. 신부가 아주 미인입니다. 그리고 한정희 비서는 현명하고 똑똑한 직원이었죠.”

“가, 감사합니다. 강 회장님.”

강운모 회장과 신부 아버지가 대화를 나누는 중, 근처에 있던 장민환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엿듣고 있었다.

“…….”

장민환의 모든 의문이 풀렸다. 이제야 신랑의 얼굴도 알아볼 수 있었다.

‘뮤직비디오의 그 남자야.’

김승철의 뮤직비디오에 나와 청혼했던 남자였다. 그래서 김승철이 결혼식장에 온 것이다. 그리고….

‘강운모 회장의 아들과 결혼한 임아현!! 신랑 이름은 임영수! 강운가 패밀리였어. 오늘 이 자리는 보통 중요한 자리가 아니야!’

장민환은 화장실로 달려가며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 전화를 꺼냈다.

“받아라. 제발. 빨리.”

-어. 장 대리. 왜?

“박 차장님 오늘 결혼식 큰일 났습니다.”

-뭐? 무슨 일인데? 누구 중요한 사람이라도 왔어?

부장님께 아무도 안 온다며 장 대리를 보내겠다고 했던 박 차장이다. 신우 인더스트리에 중요한 직원이 등장했다면 부장님께 한 소리 듣는 건 확정이었다.

문제는 지금 상황이 그 수준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수준이라는 점이다.

“로열 패밀리 결혼식입니다.”

-뭐, 뭐?!! 로열패밀리? 무슨 소리야?

“강운 무역 전 비서가 결혼하는 남자가….”

화장실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수안이 손을 씻고 있었다. 화장실로 들어가다가 장민환은 수안과 눈을 딱 마주쳤다.

감히 로열패밀리의 일을 입에 올릴 수 있는 순간이 아니다.

“…….”

-장 대리! 왜 갑자기 말이 없어!

“편히 통화하세요.”

“허읍! 안녕하십니까. 예. 예. 조심히 가십쇼.”

수안은 한마디만 하고 화장실을 나섰다. 장민환은 납작 허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빠져 있었다.

-…야. 뭐야? 무슨 일인데?

장민환은 휴대 전화에 말하기 시작했다.

“…아까 배우 임아현이 지나갔습니다. 오늘 결혼하는 남자가 임아현 배우의 오빠라고 합니다. 임아현 배우가 누구의 아내인지 아시죠? 강수안 부회장님의 아내 임아현, 친오빠는 오늘 처음 알았는데 임영수라고 합니다. 오늘 임영수 씨가 강운 무역 전 여비서와 결혼합니다. 그러니까 강운 그룹 총수님의 사돈 결혼식입니다. 강운 그룹 임원진이 총출동했습니다.”

-……!!!

“그리고 방금 화장실에서 강수안 부회장님을 만났습니다. 아내의 오빠가 결혼하는데 안 올 수 없는 일이죠.”

-컥! 강 부회장님!

“좀 전에 강운모 회장님도 제 앞에 지나가셨고요.”

-허읍!!

“아까는 강운 무역 김성우 사장님과 인사하고 악수도 했습니다.”

-억! 김 사장님까지 오셨어?

강운 그룹 강씨 일가는 천외천의 일이라고 여기면 그만이지만, 강운 무역 사장까지 왔다면 그거야말로 난리가 날 일이다. 신우인더스트리와 직접적인 거래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장님께 보고 드려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박 차장님께 먼저 말씀드립니다. 제가 지금 부장님께 연락드려도 될까요?”

자신이 여길 와도 되나 싶을 정도로 높은 사람들이 계속 보였다.

-하, 하지 마! 내가 전화할 거야.

욕을 먹겠지만, 다른 사람을 통해서 얘기가 들어가면 욕을 두 배로 먹는다. 걱정스러워도 자신이 직접 얘기하는 편이 낫다.

“그럼 저는 조용히 결혼식을 지켜보겠습니다. 부장님이 아셔도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것 같습니다. 청첩장 없으면 들어오지도 못합니다. 아까 청첩장은 가져갔습니다. 아마 기자들을 막으려고 그런 듯합니다.”

게다가 경기도에 사는 부장님이 주말에 막히는 길을 뚫고 여기로 달려오는 동안 이미 결혼식은 끝나있을 것이다.

-…썩을. 명함은 챙겨 갔냐?

“아까 김성우 사장님께 한 장 드렸습니다. 남은 명함이 다섯 장입니다. 그런데 더 줄 곳도 없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이 있어야죠. 그룹 임원들만 잔뜩 온 것 같습니다. 어? 연예인들도 들어옵니다. 동의보감 허준에 나온 배우들입니다.”

아현과 작품을 함께했던 배우들이 결혼식장을 빛내기 위해 찾아와줬고, 한때 아현이 더블 엔터에 이사로 근무했었기에 다른 소속 가수들도 뒤이어 들어오고 있었다.

“별들의 향연이네요. 결혼식 양보 감사합니다. 차장님. 덕분에 오늘 눈 호강 제대로 합니다. 김승철 축가로 귀 호강도 하겠네요.”

-마, 많이 즐기고 와라. 혹시라도 강운 무역 임직원들 찾아내면 친분도 좀 나누고.

“옙. 알겠습니다. 차장님. 내일 뵙겠습니다.”

일요일에 남의 결혼식에 온 불만이 싹 사라졌다.

‘즉석 복권이라도 사볼까?’

복권이 사고 싶을 만큼 행운이 가득한 날이다.

‘어휴. 신부 친구들은 왜 이렇게 예쁘냐. 예쁜 애 옆에 또 예쁜 애가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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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이 끝나고 돌아온 집이다.

“휴가 다녀온 게 얼마 전인데 형님 신혼여행 가는 걸 보니까 또 쉬고 싶네.”

“그러게요. 요트 정말 예쁘고 편하더라. 바다도 너무 예쁘고.”

“요트 하나 살까?”

“비싸지 않아요?”

“비행기는 안 비쌌나 뭐? 그래봤자 전용기보다 저렴해.”

“그래요? 그럼 국내는 좀 그렇고 미국에 두고 쓰면 좋긴 하겠어요.”

“그래? 알았어. 이 사장에게 주문해 놓으라고 할게.”

아현도 남편의 돈과 BE 인베스트먼트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거액의 요트를 사는 것에 아무런 부담도 없었다.

“그나저나 당신 젊은 여자들에게 인기 많던데요?”

“…….”

신부대기실에 있다 보니 한정희의 친구들이 달라붙어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기 일쑤였다. 덕분에 수안은 젊은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사진을 찍어 댔다.

“난 당신 때문에 자동으로 여자들에게 면역이 생겼어. 당신 거울은 보고 살아? 매일 당신 얼굴을 보고 살면 평범한 여자는 여자로 보이지도 않아. 아마 당신 태우고 다니는 김 기사 아저씨도 다른 여자들 얼굴 보면 식겁할 거야. 그래서 지금까지 결혼을 못 하는 걸지도 모르지.”

“푸흐흐. 그만 해요. 그냥 이런 얘기도 해 보고 싶었어요.”

질투도 뭣도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당신은 보통 남자들이 입에 올리지도 않을 말을 잘도 하네요?”

“이런 얘기가 껄끄럽다는 말은 진심이 아니라는 뜻이니까. 난 당신한테 항상 진심이거든. 부끄러울 일이 없지. 사랑하는 여보. 오늘도 사랑해.”

“…우리도 오늘 신혼 기분 낼까요.”

남편의 말에 스위치가 올라갔다.

“애들은.”

“나현이는 어머님이 데려갔고, 정원이는 꿈나라.”

“좋은 날이군.”

“…좋은 날이죠.”

“문 잘 잠그고, 정원이 깨서 문 두드리면 알지?”

예전 부부의 시간을 보내는 중에 어린 정원이가 눈치 없이 잠에서 깨어 들어온 적이 있었다. 부부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 이후 방문은 꼭 잠그고 있었다. 정원이가 깼다면 이후는 간단하다. 둘 중 하나가 화장실로 뛰어가고 하나는 옷을 입고 정원이를 안아 줄 것.

“정원이는 오늘 결혼식장에서 많이 돌아다녀서 좀 피곤해요.”

“정말 좋은 날이네.”

“아흥.”

“어흥.”

이제 고작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

아이가 둘이지만, 불타오르기 쉬운 젊은 부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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