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뮤직비디오 (217/304)

뮤직비디오

“허. 노래는 그렇다 치는데… 언제 작곡까지 배우셨담?”

준영과 수혁은 말도 꺼내고 싶지 않았다.

“…….”

“…….”

‘천재들은 다 죽어 버려야 해.’

‘이 울화를 어디서 풀지?’

대기업 재벌 3세가 잘생기고 성격도 좋은데, 운동도 잘하고 머리까지 좋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심기를 건드리는 친구였는데, 이제는 자신들의 영역을 넘보고 있었다.

“노래 연습 충분히 하시고 녹음은 나중에 진행합시다.”

“오케이.”

“그리고 뮤비 작업도 들어가야 합니다. 관련 콘티도 있으니 확인 부탁합니다.”

“호오.”

“그리고 이번 곡의 프로젝트 계약은 꼭 필요합니다.”

“당연하지. 계약 없이 무슨 일을 해?”

“이쪽에서 대부분 준비했다고 해서 불합리한 계약은 맺지 않겠습니다. 먼저 협의를 진행한 후에 선배님 소속사로 보내겠습니다.”

“콜.”

가수부터 의욕적이라 일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다.

“시원시원하셔서 마음이 편합니다. 나중에 제 곡도 후보로 넣어 주시겠죠?”

방수혁은 김승철이 자신의 노래를 불러 줘도 좋을 것 같아 제안했다.

“물론입니다. 좋은 곡이면 제가 먼저 욕심을 낼 겁니다. 그나저나… 나도 나중에 회장님을 뵐 수 있습니까?”

김승철이 부리나케 달려온 이유가 강수안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더블 엔터에 오면 만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그 부분은 확실치 않고, 회장님 인척은 볼 수 있겠네요. 회장님 인척분이 뮤비에 출연하신다고 했어요.”

“푸흐흐. 그래요? 그래서 더블 스타에서 나섰다고 했구나? 그 정도야 얼마든지 가능하겠죠. 그분이 연예계에 데뷔하고 싶다고 해요? 뮤비 말고 다른 것도 많을 텐데…. 그래도 재미는 있겠네요.”

둘은 김승철이 뮤비 콘티를 보고도 웃음이 나올지 무척 궁금했다.

툭.

김승철 앞에 뮤비 콘티 서류 뭉치를 내려놨다. 얼마나 많이 봤는지 반들반들하게 윤이 날 정도였다.

“뮤직비디오 콘티도 확인 부탁드립니다.”

“어휴. 준비도 철저하셔라.”

한동안 콘티를 확인한 김승철이 고개를 들고 한참 멍하니 있다가 입을 열었다.

“아…. 이건 정말 너무 잘 만들었다. 어쩜 이렇게 참신한 설정을 생각했지? 주제가 프러포즈인 것도 좋지만, 사이사이 설정이 정말 신선해…. 대한민국 여자라면…. 아니지 남녀 구분 없이 누구든 뮤직비디오를 보고 감동하겠어. 우아. 이거 꼭 해야겠는데?”

김승철은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가 콘티를 확인하며 주저리주저리 혼잣말을 늘어놨다.

“참고로 뮤비 콘티도 회장님 작품입니다.”

작사, 작곡에 이어 뮤직비디오 시나리오까지 수안이 만들었다는 말에 김승철은 불쑥 화가 치밀어 올랐다.

“…천재는 다 죽어 버려야….”

본인도 천재 소리를 들었던 가수지만 이건 해도 너무했다.

강수안 회장을 만나 보고 싶었던 마음이 싹 가셔 버렸다.

“아, 아닙니다. 실언했네요.”

“괜찮습니다. 못 들은 걸로 하죠.”

“저희도 같은 생각이라.”

“그럼 출연한다는 분이 뮤직비디오에 남성분으로?”

“네. 연예계에 데뷔하려고 뮤비에 출연한다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대중엔 엄청난 반향이 있을 겁니다.”

“이런 뮤직비디오라면 누가 봐도 가슴 설레지. 청혼받는 여자는 계 탔네.”

“동감입니다. 선배님.”

* * *

뮤직비디오 촬영 & 프러포즈까지 D-14일.

뮤직비디오를 촬영할 레스토랑을 전세 내기로 계약하고 뮤직비디오에 출연할 연기자들의 고용을 끝냈다.

D-13일. 임영수는 김승철과 노래 연습을 시작했고, 출연자들은 자신들이 맡은 부분을 숙지하고 연습을 시작했다. 수안이 뮤직비디오 콘티에 상세하게 설명했지만, 추가로 살이 붙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덕분에 뮤직비디오의 볼거리는 더욱 풍성해졌고 주인공을 위한 깜짝 파티는 완성도를 더해갔다.

D-10일. 늦은 저녁 손님이 없는 레스토랑에서 동선 점검과 1차 리허설을 진행했다. 카메라를 숨겨 놓을 장소도 정해졌다.

D-9일. 임영수는 한정희의 친한 친구들을 포섭해 D-Day에 레스토랑에 데려올 것을 부탁했다.

D-1일. 최종 리허설을 마치고 모든 준비를 끝낼 수 있었다.

D-Day. 지하에서 김승철과 임영수를 비롯해 연주자들과 오케스트라가 대기 중이었고, 밖에선 무전기를 들고 있는 뮤직비디오 감독과 관계자들이 차 안에서 밖을 살피고 있었다.

-여자 주인공 입구로 들어온다. 스탠바이.

-준비 완료.

오늘 뮤직비디오의 여자 주인공이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한정희가 친구들과 함께 레스토랑에 들어서고 있었다.

* * *

“우아. 여기 레스토랑 예쁜데? 어떻게 예약했어?”

“아는 오빠가 예약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 온다고 하더라고. 세 명으로 식사비까지 전부 결제했는데 환불은 안 된다잖아.”

“오오! 나중에 밥이라도 사 준다고 해.”

“왜 네가 사 주게?”

“나보단 얘가 낫지 않나?”

“야. 얘는 애인 생겼다잖아. 네가 잘해 봐야지.”

“…….”

‘요즘 영수 씨는 바쁘다고 나랑 잘 만나 주지도 않는데….’

세 친구는 조잘거리며 계단을 올라 예약된 좌석에 앉았고 주변엔 많은 사람이 대화하며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쓰리. 투. 원. 시작!

조용한 음악이 들려오는 가운데 근처 자리에 앉아 있던 커플의 대화가 시작됐다.

“오빠. 그럼 이런 식사는 왜 해? 그렇게 돈이 아까울 것 같으면….”

“그만해.”

“그만하긴 뭘 그만해. 오빠는 맨날 이런 식이잖아….”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크게 소리쳤다.

“그만하라고!!”

“가지 마….”

가지 말라는 작은 여성의 목소리에도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뜨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정희와 친구들은 갑작스러운 소란에 놀란 얼굴이었다. 타인의 심각한 애정 싸움이 긴장감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너 지금 나가면 나랑 끝이야!!”

여성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지만, 남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실내에 앉아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다 들릴 정도로 울고 있는 여성 곁으로 직원이 다가왔다.

“손님. 괜찮으세요.”

“흑흑….”

그때 잔잔히 깔리던 음악이 다른 노래로 전환됐다.

이벤트의 시작이다.

약간 커진 음악에 주위를 둘러보던 한정희는 아까 그 여성과 종업원이 어깨춤을 추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

여성과 종업원이 전부가 아니었다. 자리에 앉아 있던 모든 사람이 일어나 같은 춤을 추고 있었고 시선은 본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뭐, 뭐야?’

앞에 앉은 친구들은 놀람도 없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정희는 친구들의 얼굴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친구들은 자신을 감쪽같이 속이고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다.

“야. 너희들 이러기야?”

친구들에게 따질 새도 없이 정희는 종업원의 손에 이끌려 이동해야 했다.

직원을 따르면서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색다른 이벤트로 생각한 것이다.

‘흐흣. 영수 씨도 깜찍하네.’

곧 자신과 결혼할 영수의 아이디어라는 것도 대강 짐작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 이벤트의 규모는 짐작으로 알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누구도 짐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아.”

이동한 곳에는 종업원들이 단체로 춤을 추고 있었다.

‘종업원이 아니야. 진짜 댄서들이었어.’

그리고 다시 이동이다. 정희가 이동하는 바닥에는 붉은 레드 카펫이 깔려 있었고 그 길은 아이들이 바구니에서 던져 준 꽃비로 수놓아졌다.

정희는 레드 카펫 위로 사뿐히 걷고 있었다.

가는 곳마다 새로운 무대가 펼쳐진다.

마술사는 신기한 마술쇼를 보여 줬고, 발레리나와 발레리노의 아름다운 춤사위도 아름다웠다. 그렇게 걸음걸음마다 나타난 신선한 이벤트는 정희의 감정을 한껏 끌어올렸다.

“아으. 하흣.”

입을 다물고 싶어도 다물어지지 않았다. 속절없이 웃음만 새어 나왔다. 방금 받은 예쁜 꽃다발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는 데 쓰고 있었다.

‘오빠는 대체 얼마나 준비한 거야?’

이렇게까지 준비할 줄 몰랐던 정희는 근래 영수의 이상한 태도를 기억해 냈다.

‘아! 그래서 날 못 본다고…. 이 앙큼한 오빠 같으니. 흐흐흐.’

오늘의 이벤트를 위해 자신을 만날 시간도 부족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마지막은 홀로 들어선 컴컴한 지하.

TV 화면이 켜지고 영수와 자신이 찍었던 사진과 함께 영상 편지가 흘러나왔다. 계속 흘러나오던 음악은 다시 잔잔한 클래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정희야 놀라게 해서 미안. 나야.]

“…흑.”

격해지는 감정을 참을 수 없는 순간이다.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영상 편지는 정희에게도 통했다.

얼굴 가득 번지는 눈물은 아무리 훔쳐내도 다시 흘러내렸다.

[…그동안 얼마나 당신한테 고마웠는지 몰라. 당신을 힘들게 한 날도 많았지. 어리숙하고 부족한 날 따라와 줘서 고마워. 앞으로 내가 더 잘할게. 사랑해.]

“흐흑.”

정희는 이것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영상이 끝났으니 영수가 나타날 거로 짐작했지만, 조명은 켜지지 않았다.

내려오며 배경으로 깔렸던 그 음악이 다시 시작되었다. 검은 커튼이 양쪽으로 쳐진 끝에 밝은 무대 조명이 비추고 있었다.

그 뒤에 나타난 사람은….

가수 김승철.

정말 유명한 가수가 거기에 서 있었다.

“Oh~ 햇살이 밝은 아침보다 밤의 달빛이 어울려요~”

“……!!”

정희는 지금까지 스피커로 들려오던 노래를 실제 가수의 라이브로 들을 수 있었다.

검은 커튼이 주르륵 걷히며 양쪽에 가득 들어선 오케스트라와 연주자들도 나타났다. 김승철은 정희에게 가까이 다가오며 계속 노래를 불렀다. 프러포즈 이벤트가 절정을 향해 달리는 중이다.

“와아. 허.”

말문이 막힐 정도로 큰 스케일에 정말로 말문이 막혀 버렸다. 인기 가수가 직접 노래하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직 자신을 위해 연주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자신을 위해 춤춘 사람들까지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규모였다.

“이별의 그 입맞춤 잠시 접어 둔 채 이대로 이렇게 힘껏 안아 줄게 널 그리고 말할게 나 이렇게 너를 외치면서 My Love 넌 보지 못할 내 마지막 눈물….”

지금까지 정희를 뒤따르던 연기자들이 정희와 김승철을 지나쳐 뒤로 향했다.

김승철도 마이크를 내리고 뒤이어 나타날 주인공을 환영했다.

영수는 모두의 환호를 받으며 나타났다.

“…힘껏 안아 줄게 널 그리고 말할게 나 이렇게 너를 외치면서 My Love 넌 보지 못할 내 마지막 눈물.”

임영수가 노래를 부르며 다가오자 참았던 눈물이 다시 터져 나왔다.

“크흡.”

퍼엉!

영수의 뒤에서 리본 폭죽이 터지고 천장에선 꽃비가 내린다.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는 자신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결혼반지를 내밀고 있었다. 주변에 가득한 사람들은 손뼉을 치고 환호하며 둘을 축하해 주고 있었다.

정희가 감히 꿈꿀 수도 없었던 환상적인 순간이었다.

“…나와 결혼해 주겠어?”

목이 메어 답을 할 수가 없었던 정희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

“끄흐흑.”

영수가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주고 일어서자 정희는 잡아먹을 듯이 영수에게 달려들어 키스를 퍼부었다.

““와아아!!””

사람들이 환호했고 마지막 미션까지 성공적으로 마친 영수도 두 팔을 들며 포효했다.

“아자자자!!”

정희와 영수에게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일 것이다.

뮤직비디오를 보는 팬들의 얼굴에 따스한 웃음을 선사할 김승철의 새 뮤직비디오는 이렇게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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