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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은 꼬리를 물고 (210/304)

의혹은 꼬리를 물고

“어차피 돈 있어 봐야 쓸 데도 없습니다. 기껏해야 사회 복지 단체에 기부나 하겠죠.”

강운모 회장은 기부라는 말에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너도 쓰고 싶은 데 쓰면서 살아! 너 아직도 쇼핑 한 번을 제대로 안 하잖아!”

“가끔 아내와 나갑니다만….”

“나가서 얼마나 쓰고 들어오는데?”

“한 천만 원 정도….”

가장 많이 썼을 때가 천만 원을 겨우 넘겼다. 보통은 백만 원 이하로 끝이다. 예전에 비하면 씀씀이가 커졌다고 할 수 있지만, 아직도 소시민의 삶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수안이다. 전용기를 산 것도 가족과 회사를 위함이었지 자신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고작 그것밖에 안 쓰면서 무슨 쇼핑이야? 네 엄마는 걸핏하면 수십억짜리 그림을 사고 보석도 사고 그러는데?”

“전 그림이나 보석은 별로….”

“나처럼 차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차량은 예전에 대학에 입학할 때 산 BMW와 결혼 후 험비를 산 것이 전부다. 지금은 회사에서 나오는 법인 차량만 타고 다니는 중이라 딱히 차를 사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래도 땅하고 건물은 좀 삽니다. 하하하.”

“그건 소비가 아니라 투자잖아?”

실제로 수안이 투자한 땅과 건물은 수십 배까지 뛰곤 했다. 일전에 판교에 투자한 토지가 벌써 평당 350만 원을 넘어서고 있었다. 70배가 넘는 수익이다.

‘그때 50억에 샀으니까 지금은 3천 5백억쯤인가? 추가로 더 샀던가?’

그 외에도 서울, 경기도를 포함해 전국 곳곳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당장 계산이 불가능할 정도로 많았다. 김현성 사장이 워낙에 일을 잘해서 생긴 결과였다.

“투자가 맞죠. 가치가 내려가질 않으니까….”

자동차는 타면 탈수록 가치가 0에 수렴하지만, 땅은 절대로 사람을 배신하지 않았다.

“그럼 넌 돈 벌어서 다 어디다 쓰려고 자꾸 모아? 정말 다른 사람들만 다 퍼줄 생각이야?”

“…….”

이 부분은 수안도 깊이 생각해 보지 못한 문제였다. 책임감에 회사를 지키려 했고, 미래를 알고 있으니 쉽게 돈을 벌어들였을 뿐이다. 앞으로도 다가올 기회와 위험을 생각해 보면 돈은 더욱 많이 쌓이게 될 것이다.

“저도 고민해 보겠습니다. 생각해 보니 아깝네요. 무척….”

기껏 고생해서 돈을 벌었는데, 자신을 위해서는 크게 소비하지 않았다. 대부분 남을 위해 소비할 때만 크게 썼다. 그간 수안은 자신이 훌륭하게 재벌 3세로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인제 보니 착각이었다.

나이를 먹어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음에도 여전히 과거 정금용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젠 정금용이 아니라 강수안의 삶을 받아들일 때였다. 국내 재벌 중에서도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강운 그룹 맏아들의 삶, 국제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투자 은행 BE 인베스트먼트 회장의 삶을 다 누리고 살고 싶었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더니, 딱 널 두고 하는 소리였나 보다.”

“버는 건 충분히 배웠으니 이제 쓰는 법을 배우겠습니다.”

“돈 쓰는 것도 배워가면서 쓰려고? 하여튼 너도 한결같다.”

“소비와 낭비는 전혀 다릅니다. 저는 죽었다 깨도 허튼 곳에 돈은 못 쓰겠습니다. 돈 쓰는 법을 제대로 배워서 쓰겠습니다.”

돈을 쓰더라도 제대로 쓰고 싶었다.

“그럼 이번 포상금부터 받아서 써.”

받지 않으려 했지만, 이렇게까지 권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외면하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알겠습니다.”

“방법은 학주에게 찾아보라고 할게.”

수안은 방법이라는 말에 그래핀을 처음 발견했었던 영국인 학자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방법이 없진 않겠네요. 에피소드야 만들면 그만이니까요.”

“으응?”

* * *

다움과 네이보에 재미있는 글이 올라왔다. 글의 조회 수는 순식간에 만 단위를 뚫고 창의 메인을 차지했다.

[그래핀 발견의 놀라운 진실. (feat: 강수안 부회장)]

-강운 전자 배터리 연구소에서 그래핀을 발견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 여기엔 사실 숨겨진 뒷이야기가 있었다.

(참고로 본인이 간접적으로 들었음을 밝힌다. 보안을 위해 익명으로 올린다.)

강운 전자 배터리 연구소 직원들에게 무려 1천억 원 규모의 포상금을 지급한다고 밝힌 강운 그룹. 하지만 연구원들에게 돌아가는 포상금은 사실 200억이라고 한다.

(왜냐고? 그건 아래를 더 읽어 보시라. 귀찮으면 글 맨 뒤로 가서 결론만 확인하도록.)

강운 그룹은 발명 포상금으로 해당 제품의 향후 10년간 영업 이익 5%를 지급한다. (무려 러닝 개런티!) 실로 엄청난 금액의 포상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그래핀을 발견한 연구원들의 경우 매년 1조 원의 영업 이익이 발생했을 때 5%는 무려 500억이다. 10년 동안 같은 규모의 영업 이익이 발생하면 5천억 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솔직히 5천억 원이라는 돈의 규모가 짐작도 되지 않는다. 나 같은 소시민은 평생 만져 보지도 못할 돈이겠지?)

그런데 왜 강운 그룹은 그래핀을 발견한 연구원들 몫으로 1천억 중에 200억만 지급하는 것일까? 1천억이 5%라고 했을 때 200억은 고작 1%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나머지 4%가 단 한 사람에게 귀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1천억에서 200억을 뺀 나머지 800억이 바로 그 4%에 해당한다. 박사급 연구원들을 쩌리로 만들고 4%를 차지한 사람은 누구일까. 개인적으로 그 사람의 신상을 확인한 나는 처음 분노에 가득했다. 바로 그 사람이 강운 그룹 부회장인 강수안이었기 때문이다.

(워워. 거기 몽둥이는 내려놓자. 돌멩이도 내려놔. 나도 강수안 선수를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임을 밝힌다.)

처음엔 왜 강수안 부회장이 4%를 받아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누구나 나처럼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이유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었다. 그래핀을 그렇게 발견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렇다! 강운 전자 배터리 연구소에서 그래핀을 추출한 방법!

그 방법이 문제였다.!!

연구소 직원에게 확인한 그래핀 추출 방법은 바로바로….

고작 스카치테이프라고 한다.

스카치테이프! 오타 아니다! 진짜로 스카치테이프 하나로 그래핀을 분리했다고 한다. 아주 완벽하게 순수한 그래핀을 말이다!

평소 연구소에 자주 출두하는 강수안 부회장은 연구소 직원들과 세상에서 가장 얇은 물질을 만드는 놀이를 진행 중이었다고 한다. 결과는 강수안 부회장의 승리. 그라파이트(흑연)를 스카치테이프로 붙였다 떼어 내고 거기에 붙어 있는 순수 그래핀을 발견한 사람이 바로! 강수안 부회장이었다.

(재벌은 뒤로 넘어져도 금덩이가 생겨! 누군 코가 깨지는데!)

그렇게 추출한 그래핀을 시작으로 함께 연구를 진행한 강수안 부회장은 이후에 다른 추출법까지 연이어 개발. 그래핀 대량 생산의 기틀까지 마련했다고 하니 4%(800억)가 강수안 부회장에게 주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많이 바라지 않습니다. 10억만 적선해 주세요. 10억만 주시면 평생 강수안 부회장님의 무병장수를 기도하며 살겠습니다. 매일 아침, 저녁마다 강운 그룹 사옥 방향을 향해 절을 하겠습니다.)

* * *

누군가의 소설처럼 여겨지던 글은 기사가 속속 등장하며 진실로 변하기 시작했다.

[강수안 부회장. 평소 연구소 출입 잦아.]

[강운 전자 배터리 연구소. 실제 스카치테이프로 그래핀 발견!!]

[신소재 그래핀의 첫 발견자가 강수안 부회장?]

[그래핀이 처음이 아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공정 개선에도 참여한 강수안 부회장.]

[강운 그룹 포상금 질문에 묵묵부답? 진실은 언제 밝혀질 것인가.]

[익명을 요구한 강운 전자 연구원 강 부회장이 맞다고 제보!]

[강운 전자 보도 자료. 신소재 그래핀 발견자 강수안 부회장이 맞아. 포상금 지급 준비 중.]

하나가 밝혀지자 다른 사실들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예전 팬탁에서 일했던 관계자들이 팬탁의 삐삐 디자인 출처를 제보한 것이다.

[강수안 부회장은 신소재 개발자가 아니라 디자이너. 90년대 후반을 풍미한 팬탁의 삐삐 디자인은 모두 강수안 부회장의 작품.]

[현재 강운 전자 & 팬탁의 휴대 전화 디자인도 강수안 부회장! 강 부회장의 디자인은 지금도 진행 중!!]

[XX대학 미술교수. 자신이 강수안 부회장에게 그림의 기초를 가르쳤다고 밝혀.]

“그가 예술계에 등장했다면 한국은 대단한 예술가를 만났을 것이다. 강수안 부회장은 모친의 예술적 재능을 확실하게 이어받았다.”

기화 자동차 개발자들도 합류했다.

[기화 자동차 K시리즈 디자인은 강수안 부회장의 작품]

[K시리즈 모든 차량 디자인 강수안 부회장이 직접 고안해.]

[디자인뿐이 아니다. K시리즈에 적용된 신기술 대부분을 강 부회장이 고안한 것으로 밝혀져.]

대현 자동차는 이번에 출시할 그랜저와 소나타의 광고를 위해 이 아수라장에 참전했다.

[대현 자동차에서 출시할 신차 디자인. 강수안 부회장으로부터 비롯.]

[대현 자동차 신차의 자태 공개!]

[강수안 부회장의 디자인 특허 매입이 신의 한 수! 그랜저와 소나타의 대변신.]

강운 자동차도 한 다리 걸치며 보도 자료를 뿌렸다.

[강운 자동차의 신차! 이번에도 강수안 부회장의 디자인!]

[기존의 혁신을 뛰어넘을 또 다른 혁신적 디자인! 강운 자동차!]

[실루엣만으로 존재감이 드러나는 강운 자동차.]

[강운 자동차의 신차. 처음부터 끝까지 강수안 부회장이 관여한 것으로 드러나.]

* * *

배영성 사장은 수안 앞에 신문을 늘어놓으며 말했다.

“대단히 시끄럽네요.”

신문의 모든 헤드라인이 수안의 이름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내버려 뒀더니 이 지경이 되어 버렸다.

“…예상보다 약간 심해. 이렇게 다 터질 줄은 나도 몰랐어.”

스카치테이프 건으로 그래핀 발견을 포장하려 했는데, 엉뚱한 곳에서 진실이 터지고 있었다.

“휴우. 걱정입니다.”

“벌써 다 터졌는데 또 뭘 걱정해?”

“고작 이런 사안으로 이렇게 시끄러우면 앞으로 BE는 어쩐 답니까.”

“젠장.”

조만간 미국 정부에서 BE의 주인을 공개한다. 포브스지는 부호 순위 맨 꼭대기에 수안의 이름을 올릴 것이다.

“미리 예방 주사를 맞았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을까요?”

“BE는 결이 다른데? 내가 가진 BE 지분 가치가 1천조가 넘어. 쉽게 잠잠해지지 않을 거야.”

“…큰일이네요.”

“어쩌겠어. 버텨봐야지.”

“당장 기자들과 방송국부터 난리입니다.”

“적당하게 보도 자료 보내고 끝내자.”

“SBS에서는 기대가 큰 것 같습니다.”

“…….”

다른 방송사는 무시한다 해도 계열사인 SBS에는 뭐라도 해 줘야 했다.

“조만간 시드니로 가야 하니까 겸사겸사 인터뷰라도 잡아.”

2000년 호주 시드니 올림픽 초청으로 개막식에 참석하는 수안이다.

바로 전 올림픽의 MVP이자 지금까지 단거리 육상 세계신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수안이 초대받는 것은 당연했다.

“논란이 될 만한 질문은 피하라고 할까요?”

“자연스럽게 녹여야지. 지금까지 배 사장이 남긴 자료도 넘겨주고 편집해서 내보내면 되겠네.”

평소 배영성은 수안과 함께 업무를 진행하며 기록을 남겨둔다. 수안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 업무는 배영성이 없을 때도 비서들의 기본 업무로 다뤄지고 있었다.

“영상 자료와 함께라면 의심을 지울 수 있겠습니다.”

강운 그룹 내부에서 수안이 한 일이 맞는다며 증언하고 방송과 신문에서 떠들어도 아직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번 인터뷰에 수안의 연구소 영상을 살짝 흘리면 많은 사람이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번 그래핀 발견은 기록 영상에 없을 텐데?”

발견 이후에 연구원들과 잠시 함께하긴 했지만, 실제 스카치테이프로 그래핀을 추출할 때는 없었다.

“그래핀 쪽은 보안상의 이유로 영상을 공개할 수 없었다고 해도 됩니다.”

“그럼 이전에 성공한 공정 개선으로 하려고?”

“반도체, 디스플레이 공정 개선과 신차 개발 프로젝트 건을 주로 보여 주고 디자인 건은 약간만 보여 주면 될 것 같습니다.”

“너무 작위적이면 안 돼. 자연스럽게 포장해야 반발이 없을 거야.”

“자연스럽게 포장하려면 부회장님의 인간적인 면모가 꼭 들어가야 합니다.”

“잘됐네. 이번 기회에 아버지의 재벌 회장 이미지를 평범한 가장의 이미지로 변화시킬 수 있겠다.”

“이러다 강수안 부회장님과 총수님 일가의 일대기가 나오겠는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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