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버트 (167/304)

로버트

수안 대신 손에 피를 묻힐 사람이 있었다.

바로 미국의 재무부 장관인 로버트였다.

로버트의 욕심을 부채질한 도구는 바로 골드만삭스.

골드만삭스 회장 자리면 충분했다.

로버트는 골드만삭스 출신의 경제관료였고, 골드만삭스를 나오고 나서도 자신의 출신을 상당히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래서 재무부 장관의 자리에 올라서도 골드만삭스 최고 경영자인 새뮤얼과 친분을 유지했다. 덕분에 모건 스탠리의 마커스, JP모건의 토마스와도 친분을 갖게 된 것이다.

일본의 일을 보고 받은 수안은 가장 먼저 로버트에게 전화했다.

수안은 골드만삭스에서 일을 진행하겠다고 했었다.

당연히 아무것도 듣지 못한 로버트는 수안의 말에 이렇게 물었다.

“일을 진행해? 그게 대체 나랑 무슨 상관인가?”

-죄송합니다. 일전에 말씀드린 줄 알고 넘어갔습니다.

이번 일에 관심을 끌기 위해 던진 말이다.

“상관이 있다고?”

-골드만삭스에 관심 있으시면…. 회장 자리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제가 말씀 안 드렸던가요?

혹할 만한 이야기였지만, 가능성이 없는 말이다.

“…이봐. 프랭크 회장이 가진 지분이 20%가 넘어. 그 지분과 우호 지분을 가진 이사들이 있는 한 어림도 없는 소리야.”

-프랭크 회장만 없으면 로버트가 골드만삭스의 회장직에 오를 텐데요. 아쉽군요. 그런 범죄자보다는 로버트 장관님이 골드만삭스에 잘 어울릴 텐데요.

“이봐. 스티븐. 아직도 프랭크 회장을 의심하고 있나? 내가 다시 알아봤지만 정말 깨끗했어. 나도 새뮤얼의 죽음은 슬프다네. 하지만 자네와 같은 의심은 하지 않아.”

수안은 프랭크 회장의 힘이 위에서 사용되지 않고 밑에서 사용되었음을 파악했다. 미국의 탐정 아서 마틴이 관련 정보를 전달해 줘서 알 수 있었다.

결국 로버트는 프랭크 회장의 마수에 걸려 있지 않았다는 뜻이다. 평소 골드만삭스를 자랑스러워했기에 프랭크 회장에게 믿음을 가졌을 뿐이다.

-일본 경찰은 야쿠자 조직 하나를 소탕했습니다.

뚱딴지같은 소리가 시작되었지만, 로버트는 그러려니 했다. 평소 많은 돈을 주는 스티븐이라 이런 쓸데없는 말을 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본 경찰은 대대적으로 야쿠자를 섬멸한다는 각오로 뛰어들진 않았어요. 거물이라고 할 수 있는 큰 조직은 풀어 주고 작은 조직만 잡았죠.

“슬슬 지겨워지는데? 미안하지만, 본론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어.”

그래도 중요한 말을 하는 순간에 이런 이야기를 듣기는 쉽지 않았다.

-거의 끝났습니다. 조금만 더 들어 주시죠. 사실 야쿠자 조직은 제가 일본 경찰을 움직여 잡아들였습니다. 일본 정부와 국내 정보 조직까지 동원했죠. 나름 거대한 작전이었습니다.

“이유가 뭔가?!”

-누군가가 저를 죽이려 청부 살인을 주문했기 때문입니다. 시작은 국내 범죄 조직이었습니다.

“자네를 죽이려 했다고?”

-국내 범죄 조직의 끈이 일본 야쿠자로 이어져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야쿠자를 소탕했습니다. 이것이 이번 야쿠자 소탕의 숨은 이유랍니다. 다행히 작전은 성공적이었고 청부 살인이 어디서 시작했는지 파악할 수 있었죠.

“그게 누군가! 내가 도울 수 있다면 돕지.”

수안은 숨김없이 사실을 털어놨다.

-마침 그 사람이 미국에 있습니다. 청부 살인의 최종 지시자는 칼슨이라는 인물로 프랭크 골드만 회장의 수행 비서입니다. 설마 수행 비서가 살인에 미쳐서 이런 일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으시겠죠? 명령을 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

-그리고 새뮤얼의 죽음에 관한 단서도 많이 찾아놨습니다. 미국엔 뛰어난 사립 탐정이 널려 있더군요. 그들을 통하니 퍼즐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 새뮤얼의 죽음 뒤에도 칼슨이 있었습니다. 관련 정보를 원하시면 보내드리죠.

수안은 미국에 가지 않아도 돈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정말…. 프랭크 회장이 그런 짓을 했단 말인가?”

-프랭크 회장이 새뮤얼 전 최고 경영자에게 소송을 걸지 않은 이유는 화풀이를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이후 잭 회장이 소송으로 힘들어할 때 마커스를 처리한 것도 바로 칼슨이라는 인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저를 죽이려고 했던 그놈이죠.

“FBI가 필요하겠군.”

-미 정부의 도움도 좋지만, 우린 경제인 아닙니까. 이번 기회를 살려 보면 어떨까 싶은데요. 제가 처음에 드린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이런 짓을 하는 놈들과 무슨 경제를 논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로버트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그들이 법원으로 간다면 제대로 된 형량을 받을까요?

“그야….”

어려울 것이다. 유능한 로펌이 함께하는 프랭크 회장은 상당히 낮은 형량을 받을 것이다. 칼슨이라는 수행 비서를 법원에 먹이로 던져 준다면 무죄가 나올 확률도 높았다.

-당신의 친구이고 나의 친구이기도 한 새뮤얼과 마커스가 그의 손에 죽었습니다. 그들은 참 괜찮은 친구들이었죠. 파티에서 그들과 대화했던 시간이 그립군요.

“…내가 그 자리에 그들을 초대했었지.”

수안의 말에 죽은 그들이 떠올랐다. 웃고 떠들었던 파티의 기억이다.

지금은 다 죽고 토마스 하나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친구들을 죽였다는 사람이 바로 프랭크 골드만 회장이다.

-이 원한을 갚는 길은 그의 손에서 골드만삭스를 빼앗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 자리엔 로버트 장관님 같은 사람이 잘 어울리죠. 하지만 방법이 문제로군요. 법으로도 안 되고 경제적으로도 힘들고요.

“……!!”

수안의 말엔 아까와는 다른 무게감이 있었다.

‘법을 벗어나면…. 가능하다는 뜻인가?’

-나이 든 그가 갑자기 죽기라도 하면 골드만삭스 이사회는 새로운 회장을 선출하려 할 겁니다. 프랭크 회장의 자식들은 이사회에서 원하지 않을 것이고 대외적으로 명망 있는 사람을 좋아하죠. 딱 로버트 장관님 같은 분이 아닐까요? 미국의 재무부 장관 아닙니까.

“이봐. 스티븐. 아무리 내가 골드만삭스 출신이라지만,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야.”

프랭크 회장이 당장 죽는다고 해도 골드만삭스의 회장 자리는 자신에게 돌아올 일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하다.

-BE 인베스트먼트에서 골드만삭스에 가진 채권이 500억 달러에 이릅니다. BE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힘들 것 같습니까?

“뭐? BE가 가진 골드만삭스 채권이 500억 달러라고?”

골드만삭스는 함부로 알리고 싶지 않은 일이었고, BE 인베스트먼트에서도 떠들고 다닐 필요는 없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지만, 외부엔 입을 다무는 것만으로도 숨길 수 있었다.

-그리고 대출 서류엔 프랭크 골드만 회장의 보증 사인도 들어가 있습니다.

이런 일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한 일은 아니다. 이방효가 프랭크 골드만 회장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려고 일부러 넣은 부분이었다. 지금은 이 장치가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덕분에 외부에 정리하던 골드만삭스의 채권도 모두 정지하고 회수 작업에 돌입해 있었다. 많이 팔리지 않아 다행이다.

“설마….”

-예. 그가 죽으면 유산에 소유권을 주장 할 수 있게 되죠. 프랭크 회장의 유산에 골드만삭스의 지분이 안 들어갈 일은 없고요.

골드만삭스 자체에 가진 거액의 채권, 여기에 추가로 프랭크 골드만 회장의 지급보증.

‘내가…. 골드만삭스의 회장이 될 수 있다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점차 가능성을 보이고 있었다.

-문제는 우리가 경제인이라는 점이겠죠. 프랭크 골드만 회장은 마음대로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정신이상자인데, 우리는 아주 정상적인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해야 그가 사라질 수 있을지를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당장이라도 죽어 주면 참 좋을 텐데요. 그렇죠?

‘법을 넘어서는 것은 어렵지 않아. 녀석도 내 친구들을 죽였잖아!’

“…미국엔 유능한 탐정뿐 아니라 유능한 청부 살인 업자들이 많다네. 직접 뭔가를 하지 않아도 편하게 해결할 수 있지.”

로버트는 욕심에 눈이 멀었다. 친구들의 복수라는 명분이 밑바탕에 깔려 위험한 일도 거리낌이 없었다.

-역시 무시무시한 미국입니다. 저는 이런 부분에 지식이 어두워요. 이번 청부살인 건도 국가 정보 조직이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당했을 겁니다.

“그가 죽으면 정말로…. 내, 내가….”

예전처럼 무턱대고 움직이지 않는다. 수안은 로버트를 도구로 사용하고 있었다.

골드만삭스까지 경영할 여력은 없었다. 로버트에게 추후 회장 자리를 약속하고 이번 처리까지 맡겨 버리면 위험을 부드럽게 회피할 수 있었다.

‘로버트 장관은 프랭크 회장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채워줄 거야.’

-그가 죽으면 상속이 개시되기 전에 움직일 겁니다. 변호사가 동석한 자리에서 상속자들이 갚아야 할 채무의 규모를 안내해 주고, 원활한 협상을 이어 가게 됩니다. 상당히 유익한 대화가 될 겁니다. 이후 이사회 포섭은 어렵지 않은 일이죠. 골드만삭스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BE와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

이대로 진행된다면 자신이 골드만삭스 회장이 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프랭크 골드만 회장의 지분에 포섭한 이사회 멤버들을 더하면 게임은 끝입니다. 로버트는 조직의 수장이 되어 수많은 금융 전문가를 손가락으로 부리는 사람이 되겠죠. 게다가 친분이 있는 금융사 사람들이 오죽 많습니까? 저와 토마스를 포함해 국제 은행 관계자들도 대부분 알고 있지 않습니까. 로버트는 제2의 전성기를 여는 셈이죠.

로버트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확신을 얻고 싶었다.

“확답을 줄 수 있나?”

-우리 사이에 그런 말씀을 꼭 하셔야 합니까? 서운한데요?

지금까지 건네준 벤자민은 신뢰의 상징이기도 하다.

파이자 제약 이후 별다른 도움을 주지도 않았는데도 항상 거액을 후원해 준 수안이다.

“미안하군. 내가 자네를 믿지 않으면 누굴 믿을까.”

-미국에서의 중요한 일은 로버트 장관님께 다 맡기겠습니다. 저는 뒤처리를 진행하고 결과를 넘겨 드리는 주변 작업만 진행합니다. 저는 제 안전만 확실하면 그 이상은 바라지 않습니다.

“…조만간 사임하려 했는데 오히려 잘됐어. 돈이 너무 많아서 쓸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지.”

-인생에 돈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기 마련이죠. 골드만삭스 회장의 자리는 나머지를 채워 줄 겁니다.

이 대화 후 로버트는 재무부 장관 자리에서 사임하고 자연인으로 돌아왔다.

* * *

타앙!

쨍그랑!

칼슨이 서 있는 곳 옆. 탁자에 놓여 있던 도자기가 산탄총에 의해 터져나갔다.

타앙!

퍼석!

이번엔 화분 하나가 깨져 나갔다. 총구가 조금만 비틀렸다면 칼슨의 다리가 터져나갔을 것이다.

‘젠장, 젠장!!’

속으론 잔뜩 겁에 질렸지만, 애써 태연함을 가장했다. 자신이 모시는 회장은 약자에게 더 잔인해지기 때문이다.

“칼슨!! 대체 왜 일을 이따위로 해!”

“…….”

일본 야쿠자를 통해 진행했던 일에 아무런 진척이 없었던 것은 용인할 수 있었다.

사람의 일이라는 것이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성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행하던 일을 실패한 것도 모자라 역추적당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 야쿠자가 하위 야쿠자를 보호하지 않아 발생한 일입니다. 일본 경찰까지 동원되어 대대적인 소탕작업에 나섰고, 야마구찌파는 종속된 야쿠자 일부를 내주고 빠져나왔습니다.”

“거기에 우리가 의뢰한 놈들이 섞여 있었다?”

“일본 경찰이 노리고 들어왔습니다. 한국 내 범죄 조직을 이용하려던 것이 첫 번째 패착입니다. 스티븐 회장이 자국에서 갖는 위치를 간과했습니다. 그는 베이브 루스와 같은 위치에 있습니다. 모두 의뢰를 거절해서 작은 조직까지 흘러갔는데, 이들은 배후까지 모조리 밝히는 바람에 일이 이렇게 됐습니다.”

“…녀석이 일본에 영향력을 행사했단 말이야?”

“일본에도 BE 인베스트먼트가 있습니다. 그간 BE에서 일본 정치인들을 꼼꼼하게 살펴왔음을 파악했습니다. 오랜 시간 상당한 자금을 집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거야!”

칼슨은 회장의 말에 안도했다. 일 처리를 물었으니 그때까지 자신에게 일을 맡긴다는 뜻이다.

지금 당장 죽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했다.

칼슨은 이미 뒤처리를 진행 중이다.

“아무리 흔적을 찾아 올라와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또한 일본 정부에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BE뿐이 아닙니다. 일본에 확인해 보니 자국에서 일어난 일도 아니라 더 이상 수사를 진척시키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처벌받는 놈들은 일본 야쿠자들이 전부입니다. 설령 국제 인터폴에 수사를 의뢰해도 우릴 찾을 수 없습니다. 증거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일의 마무리도 마무리지만, 이거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일이야! 당장 다른 방법을 찾아봐! 이번에도 실패하면 그땐 정말로 가만두지 않겠어!!”

상대가 법적인 대응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칼슨과 프랭크다.

법을 넘나드는 일은 본인들만 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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