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세 번째 (166/304)

세 번째

“대운 자동차가 개발하던 신차라고 해서 다를 것으로 생각합니까? K-5랑 비교가 될까요? 대현 자동차에서 야심 차게 출시한 이번 그랜저 디자인도 K-5에 비교해서 많이 밀린다고 평가받고 있어요. 하물며 기존 대운 자동차가 개발하던 차량이라면 안 봐도 뻔합니다.”

수안은 이미 알고 있었다. 출시를 준비하고 있는 라세티와 매그너스는 영 아니었다.

“만약 대운 자동차를 인수하게 되면 개발 중이던 차량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할 겁니다. 그러니 개발 중인 차량에 관한 기대는 지우시고 인수에만 신경 씁시다.”

“예. 부회장님.”

수안에겐 아직 사용하지 않은 많은 자동차 디자인이 남아 있었다. 기화 자동차에서 써먹었으니 대운 자동차를 인수하고 나면 대운에 써먹을 차례다.

“대운 자동차 협력사 관리는 어떻게 진행 중입니까?”

“대운 자동차가 법정관리에 돌입하며 일부 업체가 부도로 폐업한 상황입니다. 핵심 협력사의 경우 미리 손을 써뒀지만, 중소 협력사는 지금 존립 위기에 서 있습니다.”

“…그 부분은 강운 홀딩스에서 맡아서 진행하기로 하죠. 이미 기화 자동차 협력사를 관리한 경험이 있으니 쳐 낼 곳은 쳐 내고 남길 곳은 남길 겁니다.”

대대적인 협력사 솎아내기 작업이 필요했다. 그래야 품질을 유지하고 협력사와 완성차 기업이 상생으로 갈 수 있다.

상생이라고 표현하면 거창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별것 아니다.

협력사는 적정한 부품 가격을 책정하고 완성차 기업은 적시에 그 돈을 지급한다. 적당한 벌이를 유지하는 협력사는 소속 직원들에게 충분한 급여를 지급하고 남은 돈을 기술 개발에 투자해 더 나은 기술을 확보, 좋은 부품을 생산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만약 여기에 이기적인 사장이 끼어들면 모든 것이 틀어진다. 품질을 유지하기보다 구매팀을 구워삶아 높은 단가로 납품을 진행하려 한다. 당연히 품질은 다른 기업에 비해서 부족할 것이고, 이 낮은 품질의 제품은 차량에 잔고장을 일으킨다.

돈을 많이 받았다고 해도 직원들에게 제대로 된 급여를 주지 않는다. 접대비로 들어간 돈도 있지만, 회삿돈을 빼다 쓰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수안은 대형 외제 차를 타면서 직원들 월급은 항상 미루는 악덕 사장을 많이 봐 왔다.

“남은 문제는 민주노총 계열의 금속 노조입니다.”

여기도 노조가 골칫거리다.

대운 자동차 노조는 해외 매각만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국내 재벌에 매각하는 방안도 반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쩌라는 말일까.

“노조는 대운 자동차를 공기업으로 전환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 자동차 업계가 해외 자동차 업체의 하청 생산 기지로 전락해 고용불안이 우려된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벌써 다 정리되지 않았습니까?”

대운 자동차 부평 공장에서 있었던 노조 집회 해산은 외신에도 보도될 정도로 큰 파장을 남겼다.

노동자를 보듬어 주리라 여겼던 김대준 대통령이 이렇게 강경하게 일을 진행할 줄은 사람들도 예상하기 힘들었다. 노조에서 부평 공장을 점거하자 전의경 40개 중대가 투입되어 진압했다. 이후에 외부에서 농성을 이어 가던 노조가 다시 법원의 허가를 받고 부평 공장으로 진입하려다가 전의경에게 무차별 구타를 당했다. 이 영상이 뉴스에 알려진 것이다.

“정부에서 경찰을 투입해 노조위원장과 노조 간부를 연행했습니다. 다행히 시국이 시국인지라 총파업으로 연결되지 못했지만, 불씨는 남아 있습니다. 사측에서 정리해고를 강행했기 때문입니다.”

수안은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미 정리해고로 떨어져 나갔다면 구워삶기가 더 편하다.

“이 부분도 강운 홀딩스가 해결하죠. 다행히 일이 수월할 것 같습니다. 해고된 노조를 끌어들이죠.”

“아! 그렇다면 남은 것은 간단합니다. 이번 입찰은 기존 기화 자동차와 달리 제한 입찰 방식으로 진행한다고 알려왔습니다. 저희는 인수 의향서에 가장 합리적인 조건을 제시하면 됩니다. 대운과 GM의 관계가 있지만, 우리는 채권단이 있으니까요.”

강운 그룹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채권단은 없다. 하지만 같은 방법을 또 쓸 수 없어서 고민이 크다.

“정부에서 요구하는 최소 금액이 얼마입니까.”

“적정가액은 3조 원에서 4조 원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정부는 그 이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김대준 이 양반. 또 시작이야.’

대운 자동차는 과거 70억 달러를 준다던 포드에 끌려다니다가 닭 쫓던 개 신세가 되기도 했었다. GM에서 인수를 진행할 때도 수많은 허점을 노출했다. 결국 노련한 M & A 전문가인 GM에 고작 4억 달러의 본계약을 진행하며 대운 자동차를 정리하게 된다.

물론 지금은 발생하지 않은 일이지만, 이쪽도 M & A 전문가들이 상당하다. 전문가가 아니라고 해도 수안이 최소한의 역할은 할 수 있었다.

“그것도 내가 연락해 보겠습니다. 요즘 연락이 뜸하긴 했죠.”

대통령과 다이렉트로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수안이다. 기화 자동차도 이렇게 먹었다.

“…….”

‘내가 부회장님을 부려 먹는 기분이네.’

야심 차게 시작한 대운 자동차 인수의 중요 업무가 부회장님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이번 TFT 수장이 어차피 부회장님이긴 하지만….’

“이번 인수의향서 제출에 계약이 추가될 겁니다. 의향서 제출 후 스스로 제시한 내용을 일방 파기할 시 기재한 금액의 50%를 위약금으로 지급한다는 내용입니다. 또한 모든 협의는 서류 작성을 기본으로 진행하며 법률적 책임을 지게 될 겁니다.”

이렇게 하면 포드나 GM이 함부로 높은 금액을 제시할 수 없다. 애초에 싹을 잘라 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입찰이 무산되지 않겠습니까?”

“경쟁자들이 도망칠지도 모르지만, 우리야 더 좋죠. 무조건 의향서를 제출할 테니까요.”

대운 자동차의 인수는 수안이 자동차 사업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생각해 온 일이다.

“대운 자동차 TFT는 적정 제시 금액을 계산하겠습니다.”

강운 그룹의 대운 자동차 TFT는 나중에나 바빠질 것이다. 지금은 닥친 일을 먼저 해야 한다.

“그 부분은 나중에 보고하시고, 우선은 협력사에 집중하세요. 강운 홀딩스가 협력사 관리를 한다지만, TFT에서도 내용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예 같이 업무를 진행해도 좋겠습니다.”

* * *

수안은 회의를 마치고 회장님 집무실로 갔다.

평소와 같이 보안을 거쳤다. 이젠 금속 탐지기를 지나고 보안 요원이 몸을 더듬으며 수색하는 것도 익숙하다.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부회장님.”

“수고 많습니다. 조만간 이 지겨운 업무도 변화가 있을 겁니다.”

국정원의 홍정욱 요원에게 들어온 소식이 있었다.

“예. 부회장님.”

수안은 집무실에서 한결 편안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벌써 보고 받으셨습니까?”

“신문에 나왔는데 보고가 무슨 소용이야? 기사 잘 뽑았어.”

대통령 인수위에서 밀어 넣었던 친강운 그룹 인물들을 이번에 활용할 수 있었다. 앞으로 자동차 산업을 영위하면서 크게 도움이 될 사람들이다.

“국토교통부에서 신경 써 줬고 기자들도 잘 받아 썼습니다.”

“정영수 회장이 충격 좀 받았겠군.”

“전화가 계속 들어오는데 아직 연락은 하지 않았습니다. 기화가 외제 차라고 떠들 때만 해도 봐줄 마음이 있었는데, 품질 이슈를 수면으로 끌어올린 순간부터는 저도 참기 힘들었습니다.”

“적당히 마음 풀어 주고 앞으로 잘해 보자고 해. 그래도 전통의 대현 자동차를 무시하긴 힘들어.”

“예. 회장님.”

“앉아 봐.”

수안은 자리에 앉아 지금까지 진행된 국정원의 업무를 풀어놨다.

“국정원이 일본에서 야쿠자 조직을 정리하며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국내 범죄 조직원들도 다 잡았습니다.”

“둘 중 어디야?”

강운모 회장도 골드만삭스와 모건 스탠리 중 하나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야쿠자에 의뢰한 인물은 칼슨. 일전에 국내에서 총기를 입수했다가 잡혀 출국한 용병 드레이크와도 연결점이 있는 인물입니다. 드레이크는 골드만삭스 한국 지점 소속으로 입국했었고 칼슨이라는 인물은 프랭크 골드만 회장의 최측근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골드만삭스가 문제였군. 그럼 모건 스탠리는 관여하지 않았다는 뜻이야?”

“더 파악해 봐야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들어온 정보로는 동조한 수준으로 보입니다. 마커스의 일은 잭 회장이 프랭크 회장에게 해결을 부탁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국정원이 미국에선 힘쓰기 어렵잖아.”

용의자를 특정했으니 이후의 일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묻는 것이다. 국정원을 활용하기 어렵다면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수안도 국정원을 통해 미국에서 일을 진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후의 일은 따로 맡아 줄 사람이 있다.

“돈은 제가 더 많습니다.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수안은 그동안 로버트 전 장관까지 구워삶아 놨다. 수안 대신 벤자민이 열심히 만나 일을 성공시켰다. 상당한 자금이 소요되었지만, 아깝지 않았다.

예상보다 조금 일찍 퇴임한 로버트는 특별한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고, 이번에 수안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너 어떻게 하려고…. 아니다. 난 모르는 편이 낫지.”

아들이 그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지만, 물어보기가 두렵다. 평소 가족을 끔찍하게 아끼는 아들이다. 이번 위협은 가족의 목숨과 자신의 안전을 위협하는 수준이었으니 아들이 어디까지 보복을 진행할지 짐작됐다.

자신 같아도 절대 가만두지 않는다. 아들이라면 아주 확실하게 끝을 볼 것이다.

“…예. 모르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수안이 직접 명령하지 않는다. 이번 작전은 욕심에 눈이 먼 로버트 전 재무부 장관의 의뢰로 시작될 것이다.

“…위험하지 않겠어? 네가 나중에 문제 생길 일이라면 보안 요원들이 고생하는 편이 나아.”

모르는 편이 낫다고 했지만, 걱정을 놓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살해 위협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아들이 그들을 정리한다면, 이후 일이 틀어져 돌아올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었다. 차라리 이대로 경호를 강화한 상태로 지내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

“프랭크 골드만 회장은 포기를 모르는 인물이라고 합니다. 정말로 죽을 때까지 시달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단 한 번만 경호를 허술하게 해도 당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저 혼자라면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아이들. 제 동생들까지 생각하면 이대로 둘 수 없습니다.”

“…….”

아들은 확고하게 마음먹은 모양이다.

“저 아시지 않습니까. 어디에도 제 흔적은 남지 않을 겁니다.”

“그래. 알았다. 그래도 조심해. 네가 제일 걱정이야.”

회장으로서가 아니라 아버지로서 하신 말씀이다. 누군가를 살해한다는 말을 꺼내기 쉽지 않았지만, 아버지라서 할 수 있었다. 거기다 아버지는 아들의 이런 독심도 이해해 주고 있었다.

“예. 아버지. 조심하겠습니다.”

수안은 분위기를 환기하려고 대운 자동차 얘기를 꺼냈다.

“대운 자동차 인수는 무리 없이 진행하겠습니다. 정부에 연락해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인수를 진행하려 합니다. 인수 의향서를 제출할 때….”

부자는 회사 업무에 열중하며 마음을 짓누르는 걱정을 지워나갔다.

아버지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수안은 처음이 아니다.

‘벌써 세 번째 살인. 제 손에 피를 묻힐 생각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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