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박 (139/304)

도박

‘COVID-19’.

초기엔 항주 폐렴이라고 불렸고 이후엔 그저 감염증 19라고 불렸다.

중국에서 WHO에 영향력을 행사해 자신들 나라의 지명을 지운 것이다.

이후 WHO(World Health Organization: 세계보건기구)에 의해서 COVID-19라는 이름으로 정해졌고, 점차 짧게 부르기 시작해 나중엔 감염증 19라고 부르게 된다.

수안이 죽기 직전 겨울까지 전 세계 인류의 1억 명 가까이 이 감염병에 감염되었고, 200만이 넘는 생명을 거둬갔다. 정금용인 시절의 자신은 전염병이 아니라 본래부터 앓던 지병으로 골골대고 있었기에 퍼지는 전염병이 무섭지 않았다. 차라리 걸려서 죽기라도 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자살은 싫었기 때문이다.

강수안으로 사는 현재는 이 병이 너무나 두렵다.

새로운 삶을 살며 얻은 것이 너무 많았다.

이는 결국 잃을 것이 많다는 말도 된다.

‘이걸 막으려면 어지간한 돈으론 어림도 없어.’

수안이 돈을 벌어들이는 것은 보통의 다른 이들과 같이 자신의 행복을 위함이다.

이 전염병을 막아야 2020년 노인이 되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건강을 보장할 수 있고, 태어난 아들 정원이와 태어날 자신의 아이 그리고 아내와 형제들을 모두 건강하게 지킬 수 있었다.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자신의 행복이었다.

‘아무리 한국이 세계적인 팬데믹 전염병을 잘 막아낸다고 해도….’

교회발 슈퍼 전파는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왔다. 막아도 다시 새롭게 터지는 교회발 슈퍼전파는 진저리나는 기억이었다.

‘다른 나라로 가기엔….’

해외 어떤 나라는 잘 막아냈다고 들었지만, 인류를 위해서는 병 자체를 막아야 했다.

우선 마스크를 제조하고 진단 시약을 만들며 전염병 대비를 미리 해 둔다는 선택지도 있었다.

COVID-19가 모습을 드러내려면 아직 멀었지만, 바이러스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바이러스의 전파가 시작될 때 수안의 회사들은 이미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중국의 항주 연구소가 미국과 합작하여 해당 바이러스에 관련 연구를 시작한 것이 2015년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부터 시작하면 팬데믹이 오기 전 백신이나 치료제를 먼저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미국에 제약회사도 조금 더 인수해야겠어.”

수안은 이번 롱텀 캐피탈 매니지먼트(LTCM) 사태를 통해 벌어들일 자금의 일부를 미국과 전 세계 제약 회사 지분을 인수하는 데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왜 전부가 아닌 일부일까.

벌어들일 돈이 너무 막대하기 때문이다.

‘이방효 사장이 얼마나 샀으려나.’

* * *

롱텀 캐피탈 매니지먼트(LTCM)는 설립 후 수익률이 매년 20%를 넘었고 96년엔 57%를 기록하기도 했다. 특히 보통의 헤지 펀드들은 1천에서 2천%까지만 레버리지를 운용하지만 롱텀은 최고 1만%까지 레버리지를 일으킨다. 롱텀은 레버리지를 통해 800억 달러 정도의 운용자산을 1조 2천억 달러로 만들어 굴렸다.

꾸준히 수익률을 올려주었기에 시장의 신뢰도 강했다. 덕분에 상당히 많은 자금을 끌어들였다. 이들의 투자에는 많은 사람이 투자했고 투자 금액만 1,250억 달러에 달했다.

롱텀의 금융 천재들은 자신들이 망하게 될 확률까지 계산하는 괴짜들이었고, 결국 그 확률을 구해냈다. 그 확률은 10시그마. 6시그마가 0.00034%로 계산되니 10시그마는 100해분의 1보다 낮은 확률이다. 이런 숫자만 믿고 있던 롱텀 캐피탈 매니지먼트(LTCM)의 수학 천재들은 위험에 대비하지 않았다. 물론 매번 투자 때마다 실패 확률을 계산했지만, 그 계산은 그들의 발등을 찍으러 다가오고 있었다.

이미 지난 3월 러시아에선 20만 명 이상의 공무원 감축을 포함해 긴축재정계획을 발표했다.

스스로 위기를 감지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롱텀의 발등을 찍으러 러시아 불곰 사냥꾼이 도끼를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 * *

“…그냥 출국해 버렸단 말입니까?”

청와대는 제시카의 출국 사실을 파악했고, 김대준 대통령에게 그 사실을 보고했다.

“예. 대통령님. 부채 탕감에 관한 협의 일정을 잡으려고 BE 인베스트먼트 한국 지사에 연락했다가 들었습니다. BE의 대리인 제시카는 미국으로 돌아가 협의 일정을 잡을 수 없다고 전했습니다.”

대통령은 이때까지만 해도 작은 앙탈이라고 생각했다.

“본 주인은 따로 있으니 상관없겠지요. 그럼 강수안 회장에게 연락해서 일정을 잡고 논의하세요.”

“이미 연락해 봤습니다. 더블 스타 강수안 회장도 같은 날 미국으로 출국했습니다.”

“응?! 3차 입찰은 어쩌고?!”

“…BE 인베스트먼트 없이 진행해야 하지 않을지.”

“그건 안 됩니다!”

기화 자동차를 해외 자동차 기업에 빼앗길 수 없었다. 그리고 국내 업체가 인수하게 되면 폭탄 돌리기밖에 되지 않는다. 대현 자동차라고 해도 기화 차를 소화하기 쉽지 않다.

“…대현과 삼디라면….”

“대현 그룹과 삼디 그룹까지 진창에 처박을 셈입니까? 그럼 우리나라에 뭐가 남습니까?”

BE 인베스트먼트는 되어야 흔들림 없이 기화 자동차를 다시 일으킬 수 있었다. 게다가 외국자본이면서도 외국자본이 아니다. 생산도 국내, 판매도 국내, 그리고 돈을 벌어도 국내에서만 돌게 된다.

“죄송합니다.”

‘원하는 수준으로 부채 탕감이 이뤄지지 않으면 인수를 포기하겠다는 메시지로군.’

이제야 수안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허.”

이번에 가서 협의하려던 내용 또한 수안이 원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이렇게 강수를 둘 줄도 알았어.’

항상 허술한 듯 선량하게 자신을 보여 주던 수안이라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면 결국은 받아 주리라 생각했었다. 이미 얘기된 부채 탕감을 뒤집으려고 했지만, 수안은 확고하게 자기 뜻을 표명했다.

“3차 입찰 일정은 최대한 뒤로 미루고 부채는 처음 얘기된 대로 탕감하기로 합시다….”

“하지만!”

“내 말대로 하세요. 산업 은행장 불러서 시중 은행 중에 퇴출할 은행을 찾아 놓으라고 해요. 기화 차 채권을 다 받으려는 은행은 퇴출을 각오하라고 하세요. 은행은 당장 망하든지 나중에 망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겁니다.”

“예….”

* * *

수안은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이미 공항에 도착하고 있었다.

“여긴 벌써 덥네요.”

“여긴 1년 내내 온도가 비슷해.”

수안과 아현 그리고 아들 정원은 열대성 해양기후를 가진 나라에 도착했다.

“후우. 다행히 스콜은 내리지 않는 모양….”

쏴아아아.

갑자기 스콜이 쏟아지고 있었다.

“배 사장님은 어쩜 그렇게 비가 오는 걸 잘 맞추실까.”

“하… 하하.”

배 사장 아내와 아들도 함께한다. 덕분에 이번 외유에서 배영성 사장은 수안에게 존대를 들을 수 있었다. 배영성의 아내와 아들 앞에서 나이가 한참 어린 자신이 반말로 지시하는 것이 꺼려졌기 때문이다.

‘부모는 어디서도 무시당하면 안 되는 법이거든.’

배영성은 민망함에 고개를 돌렸다가 반가운 얼굴을 찾았다.

“여기!”

배영성은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과 재회하고 수안에게 데려갔다.

“기억하시죠? 볼트의 아버지와 어머니입니다.”

“반갑습니다. 오랜만입니다.”

수안과 일행이 미국에 가기 전에 먼저 들른 곳은 바로 자메이카였다.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뵙네요. 그동안 더 유명해졌어요. 수안 강.”

볼트의 얼굴을 잠깐이라도 보고 가려고 자메이카에 들렀다.

흔들거리는 차를 타고 한참 달려 도착한 곳에는 훌쩍 커 버린 볼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볼트!”

“와아아!”

더 빨라진 볼트는 수안의 목소리를 듣고 엄청난 속도로 달려와 안겼다.

“하하하. 너 언제 이렇게 컸냐? 금방 나 따라잡겠는데?”

수안과 볼트가 해후하는 사이 아현이 배영성에게 물었다.

“볼트가 수안 씨가 말하던 후계자 맞죠?”

“맞습니다. 회장님이 개인적으로 계속 후원하고 있었습니다.”

볼트가 자메이카로 돌아가고 나서도 꾸준히 육상복이나 운동화를 지원해 줬고 볼트의 병원비를 지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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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안은 요즘도 병원에 잘 다니는지 물으며 허리에 대해서도 물었다.

“허리는 좀 어때?”

“나아지고 있어요.”

수안은 볼트의 척추 측만증을 알고 있었고, 이를 조기에 치료할 생각으로 병원비까지 지원한 것이다. 어려서부터 치료를 이어왔고 코어 근육 발달을 도왔기 때문에 볼트의 실력이 날로 발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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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현은 남편의 선택을 믿었다.

“볼트가 올림픽에 서는 날 남편과 저도 거기 있을 것 같아요.”

“추측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하셔도 됩니다. 볼트는 무조건 올림픽에 나갈 것이고 회장님은 가장 앞줄에서 볼트를 응원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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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안은 운동장에서 운동화로 갈아 신고 볼트와 함께 출발선에 섰다. 오랜만에 함께 뛰기로 한 것이다. 깃발이 내려가자 둘의 몸이 앞으로 튀어 나갔지만, 아직 어린 볼트는 수안을 따라가기에도 벅차다.

“Good! Go ahead! Go! Go!”

수안은 볼트 곁에서 뛰면서도 여유롭게 말을 할 수 있었다.

“보폭을 더 넓게 가져가란 말이야. 좋았어! 잘한다!”

“허억. 허억.”

“그렇지! 마지막 스퍼트!”

200m 결승점에 약간의 차이를 두고 나란히 들어왔다.

“허억. 허억. 코치님은 왜. 허억. 숨이. 허억. 안 차요?”

“넌 아마추어. 난 프로.”

“아.”

“부상 조심하고 특히 허리 조심해. 한번 뛰면 충분히 쉬면서 근육 풀어 주고.”

“예. 코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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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 아직도 저렇게 잘 뛰네요.”

“폼이 어디 가겠습니까. 여전히 운동을 계속하시잖습니까.”

볼트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헤어졌고, 차로 공항 근처 호텔로 돌아가고 있었다.

수안은 배영성에게 추가 지원을 부탁했다.

“볼트가 있는 자메이카 육상부를 지원하시려고요?”

“어차피 녀석은 400m 계주도 뛰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볼트와 함께 뛸 녀석들도 키워야 하잖습니까.”

“국내가 아닌 해외라 조금 그렇네요.”

“괜찮습니다.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고요.”

수안은 녀석이 가졌어야 할 타이틀을 자신이 먼저 챙겼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부담감이 더욱 볼트를 지원하도록 만든다.

“…회장님에겐 큰돈이 아니죠. BE를 통하면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겠습니다.”

“BE까지 끌어들이긴 그런데…. 그럼 이런 일에 사용할 돈을 따로 마련해야겠습니다.”

“뚝딱하면 돈이 나오십니까?”

“그야 당연히 뚝딱하면 나오지요.”

“저희도 알려 주시면 안 돼요?”

차로 함께 이동하고 있던 배영성의 아내 수애가 물었다. 배영성은 눈으로만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회장님하고 대화할 때는 조용히 있으라니까!’

수안은 아무렇지도 않게 수애의 물음에 답했다.

“별거 아닙니다. 극도로 위험한 보험 상품이 하나 있거든요. 그 보험이 발효되면 대박이고 안 되면 말 그대로 다 잃게 되고요.”

“…도박이네요.”

“도박이나 다름없긴 합니다. 복권에 연속으로 10번 당첨될 확률보다 낮다고 들었거든요.”

“…저는 빠질게요. 죄송합니다.”

이런 얘기를 듣고도 수안과 같이 투자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배영성은 수안이 무엇을 언급하는지 알 수 있었다.

“롱텀 캐피탈 매니지먼트(LTCM) 관련 보험 말씀이십니까?”

“맞습니다. BE 인베스트먼트에서 팔아 주면 나도 살 수 있으니까요.”

“아! 괜찮은 방법입니다.”

수애는 방금까지 뭘 들었냐는 얼굴로 남편을 보고 있었지만, 배영성은 고개를 슬쩍 흔들며 끼어들지 말라는 표정이다.

* * *

수애는 호텔 방으로 돌아와서 아까 남편과 상사 사이의 말을 다시 캐물었다.

“여보. 회장님이 잘못된 판단을 하시면 당신이 말려야지 부추기면 어떻게 해? 그러다 크게 손해 보면 당신이 혼나는 거 아냐?”

“회장님이 언제 잘못된 판단을 했다고 그래?”

“아까 그러셨잖아. 복권 10번 당첨될 확률보다 낮은 확률로 이득을 얻을 수 있고 아니면 다 잃는다고. 회장님은 그걸로 돈을 벌어 보겠다고 하신 거잖아. 당신이 말렸어야지.”

“…수애야. 우리 회장님이 확인도 안 해 보고 그런 투자를 하겠어? 생각해 봐. 당신 2년 전만 해도 은행이 망한다고 생각이나 해 봤어? 그런데 지금은 종금사도 망하고 은행도 망하고 난리가 났잖아.”

IMF는 사람들의 기존 인식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그렇긴 하지….”

“회장님이 투자한다는 보험도 같은 류의 상품이야. 회사는 자신들이 잃을 확률이 없다고 자신하고 있고 회장님은 그 회사가 큰 손실을 볼 것이라 확신하고 있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남편의 상사는 자꾸만 믿음이 간다.

“만약… 따면 얼마나 따는 거야?”

그 믿음이 도박판에 참여하도록 부채질하고 있었다.

“오오. 우리 주원이 엄마가 도박에 눈을 뜨셨나?”

“말이나 해 봐. 한 50% 정도 먹을 수 있나?”

“어림없는 소리 하지 마.”

“그렇지? 50%는 너무 했지?”

“천만 원을 투자하면 8억을 돌려받아.”

“흡!”

고작 100%, 200%가 아니었다.

“1억을 투자하면 80억이야. 믿어져?”

“억! 80억!”

천만 원이 문제가 아니었다. 배수를 확인하니 욕심이 자꾸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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