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권-파티를 열어라 (129/304)

파티를 열어라

1차 입찰

부동산

못된 가신

후계자를 위해

경영자 협의회

형제

독대

맞선

유찰

도박

인생의 주인공

엄지가 가리키는 사람

저 하늘을 날아

수용

둥지

현충원

협력사

파티를 열어라

집에 돌아와서 아내와 인사하고 바로 아들과 놀아 줄 생각이었는데, 아내의 표정이 미묘했다.

‘뭔가 불만이 있는 얼굴인데….’

아이가 벌써 세 살이다. 아현과 결혼한 지 햇수로 4년. 이제 말하지 않아도 얼굴만 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우리 데이트하러 갈까?”

“……!”

반색하는 표정을 보니 아내의 속마음을 제대로 읽었던 모양이다.

“요즘 집에만 있어서 답답하지?”

“집에만 있는 건 아니지만,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요.”

“영화?”

수안에게 영화는 투자 대상일 뿐이었다. 어떤 영화가 흥행할지 다 알고 있으니 투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원이는 어머님께 맡기고 우리끼리 가요.”

“뭐든 안 되겠어? 극장을 빌려서라도 당신 영화 보여 줄게. 요즘 재미있는 영화가 뭐 있지?”

아현은 잔뜩 기대하고 있던 영화를 입에 올렸다.

“타이타닉이요!”

“아….”

아주 잘 알고 있다. 영화관에서 보진 못했지만, 20년 후에 TV에서 방영해 줄 때는 봤던 기억이 있다.

“이 영화 찍는 데 제작비가 얼마나 들었는지 알아?”

“글쎄요.”

“2억 4천만 달러.”

“우아. 대작은 대작이네요.”

수안이 영화 타이타닉의 정확한 제작비를 아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 영화 수익의 절반은 아마 내 주머니로 들어올걸.’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전작에서 물을 배경으로 한 영화 두 개를 말아먹어 제작이 쉽지 않았다.

영화 타이타닉도 결국 물을 배경으로 하는 데다가 물에 가라앉기까지 하는 배를 다룬 영화였다. 거기다 비용은 또 왜 그렇게 많이 들어가는지 세트 제작비만 2억 달러에 달했다.

BE 인베스트먼트는 타이타닉 초기부터 제작사인 20세기 폭스사와 함께했다. 본래라면 파라마운트에 공동 투자를 부탁하고 북미 배급권을 넘겨줬을 테지만, BE가 있으니 파라마운트는 필요 없었다. 폭스사에서도 환영할 만한 투자자였다. 불패의 BE 인베스트먼트가 함께한다고 하니 폭스사에서도 상당히 고무적인 반응이었다.

엄청난 규모의 제작비 덕분에 BE 인베스트먼트가 아니었다면 폭스사도 난감했을 것이다. 추가 비용이 발생하며 투입한 자금 덕분에 BE 인베스트먼트는 영화 수익의 절반 이상을 가져갈 수 있게 계약서를 수정할 수 있었다. 영화 타이타닉의 성공을 확신하던 수안이기에 가능했던 투자라 할 수 있다.

“나도 영화관에서 보고 싶었어. 가자. 예약하고 시간 알려 줄게. 당장은 힘들 것 같고.”

“오예.”

“…….”

수안은 즐거워하는 아내를 보며 잠시 상념에 빠졌다.

‘당신도 대단한 배우였는데….’

자신과 결혼하는 바람에 아직도 연예계에 복귀하지 못했다. 국내 재벌가 중에서도 가장 이름 높은 강운 그룹. 강운 그룹의 맏며느리 임아현. 강수안 선수의 아내 임아현.

‘배우 임아현이 누군가의 아내로만 불려도 되는 걸까.’

이번에 둘째까지 갖는 바람에 복귀는 또 멀어져 버렸다.

‘이 핑계 저 핑계 대다 보면 아무것도 안 되는 법이야.’

수안은 아현의 손을 잡고 말했다.

“여보.”

“왜요?”

“당신 배우로 복귀하지 않을래?”

“……!!”

“임신 초기니까 짧은 작품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단편 드라마도 해 볼 수 있을 거고. 독립 영화도 괜찮겠다.”

“나… 복귀해도 되요?”

아무도 말리지 않았지만, 스스로 자제해 왔다. 그룹에서 남편이 차지하는 위상이 커질수록 더욱 몸가짐을 조심하게 된다. 행여 TV에 나왔다가 작은 실수로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린다면 강운 그룹에 큰 영향을 줄 것 같아서였다.

“우리 집 알잖아. 내가 해도 된다면 해도 되는 거야.”

“여보. 흐응.”

울먹이는 아현을 품에 안고 스스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내 아내는 내가 지지해 줘야 하는 거야.’

“아! 여보. 정원이는 어쩌죠?”

“정원이는 어머니께 맡겨도 되고, 처가댁에 잠깐 맡겨도 될 거야. 그리고 정원이 주변은 우리 경호원들이 잘 지켜 줄 거고. 앞으론 더블 엔터로 가서 들어온 시나리오 있는지 잘 찾아봐. 알았지?”

“고마워요. 당신 아니면 배우는 이대로 포기하려고 했어요. 다시 희망이 보이네요.”

“영화 보고 나면 어차피 당신이 먼저 하고 싶다고 했을 거야.”

대작 영화엔 대배우들이 즐비했다.

영화를 찍기 전까지만 해도 대배우라고 할 수 없었지만, 전 세계에서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와중이니 이제는 대배우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그런 디카프리오와 케이트의 연기를 보면 아현도 참지 못했으리라.

“당신하고 같이 볼 영화도 기대된다.”

“기대할 만해. 제임스 감독도 그렇고 배우들도 그렇고 정말 열심히 만들었으니까.”

“꼭 당신이 본 것처럼 말하네?”

“직접 보진 못했지만, 보고는 받았거든.”

“보고? 할리우드 영화 촬영은 얼마나 보안이 철저한데요. 아무리 강운 그룹 비서실이라고 해도 거기까진 못 들어가요.”

“…….”

투자사에 제작 진행 상황을 알리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마침 타이타닉 관련 보고서가 서재에 있었다. 투자는 이미 오래전에 집행되었고 관련 보고도 한참 전에 받았다. 이미 작년 말 북미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킨 타이타닉이다.

“영화 보기 전에 촬영 현장 보고서 먼저 볼래?”

“엥? 정말 있다고요?”

아버지 어머니와 놀고 있을 정원이도 보고 싶지만, 오늘은 아내가 우선이다.

“이리 와 봐.”

수안은 서재에서 보고서들을 훑어보다가 원하는 자료를 찾아냈다.

“여기 있다.”

아현은 남편이 내미는 두꺼운 책자를 받아 반신반의하며 앞장을 펼쳤다.

“엄마야!”

포스터에서 봤던 남녀 주인공이 웃으면서 뱃머리에 서 있었다.

사진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 준비하는 단계에 찍은 것으로 보였다.

한 장 한 장 뒤로 넘길 때마다 현장의 뜨거운 열정이 느껴진다. 위험천만한 촬영도 있었고, 거대한 세트장과 물탱크가 어마어마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후아.”

“이제 믿겠어?”

“이, 이거. 어떻게 보고 받았어요?”

“내가 이 영화 투자자야.”

“강운 그룹에서 투자했어요? 할리우드 영화에?”

“아니. 강운 그룹이 아니라 내가 투자했다고.”

이제 아내에게도 BE의 실체를 알려 줄 때가 됐다.

“강운 그룹이 아니라 내 회사가 따로 있어. 미국과 일본에.”

“미국과 일본?”

“숨기다가 나중에 얘기하긴 했지만, 아버지도 알고 계셔.”

“난 이제 알았는데? 나한테까지 숨겨왔단 말이잖아요.”

“미안. 보안이 필요해서 지금도 아무한테나 얘기할 수는 없어.”

“…….”

볼을 부풀리고 있던 아현이 번뜩 생각난 것이 있어서 물었다.

“당신하고 미국에 가면 이 사람들도 만날 수 있어요?”

아현의 손가락이 디카프리오와 케이트를 가리키고 있었다.

수안은 그런 일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면서 답했다.

“당연하지. 타이타닉은 전 세계 대흥행 작품이라 성대한 파티가 열릴 거야. 제작사와 투자사를 포함해 모든 제작진이 다 모이는 행사가 될 거고.”

BE에서 직접 성대한 파티를 열어 타이타닉의 성공을 축하해 주면 된다. 방금 수안의 머리를 스친 계획이다.

“그러면 파티에 배우들도….”

“배우가 빠지면 쓰나. 당연히 참석해 줘야지.”

“당신이 갈 수 있다는 거죠?”

직접 파티를 열 생각이다. 파티의 호스트가 파티에 거절당할 일은 없었다.

“당신하고 같이 가면 되겠다. 정원이도 멋지게 입혀서 데려가지 뭐.”

“오예!! 우아!”

아까 타이타닉을 본다고 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환호성이다.

“아! 당신이 미국과 일본에 가졌다는 회사 이름은 뭐예요? 내가 공부할 기업 목록에 넣어야 하거든요.”

“BE 인베스트먼트.”

“아. BE 인베…. 뭐라고요?”

아현도 수없이 들어 본 이름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유명한 투자사 가운데 하나였다.

“BE 인베스트먼트. 미국 월스트리트 투자 금융사 중에 하나야. 당신이 모를 수도 있지.”

“그걸 모르는 게 아니라고요! BE는 흰머리 수리를 뜻하는 약자잖아요. 미국 금융 회사라고 알고 있었는데…. 어, 어떻게 샀어요?”

“처음부터 내가 설립한 회사야. 내가 직접 주춧돌부터 쌓아 올려 거대한 성을 만들었어. 우리 여왕님을 모시려고 멋지고 거대하게 만들었지. For my Queen. 사랑하는 아현을 위해서.”

가끔 이렇게 아내의 이름을 불러 주면 색다른 느낌이 든다고 해서 불러 봤다.

“허응. 여보.”

역시나 감동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와락 안겨 온 아내를 가슴 깊이 껴안아 주다가 허리를 펴고 말했다.

“당신하고 미국에 가면 클린턴에게 배웅 나오라고 할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요?”

“오라면 올지도 몰라.”

“호호. 됐어요. 농담은 거기까지만.”

‘하긴. 괜히 무리수를 둘 필요는 없지.’

클린턴은 부른다고 나올지 미지수였다.

“그럼 로버트 재무부 장관을 나오라고 할까? 그 사람은 파티에 같이 가자고 하면 얼씨구나 좋아할걸?”

“재무부 장관이요? 혹시 당신 일전에 미국 출장에서….”

수안은 아내가 뭘 말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았다. 당시 아내는 수안의 인터뷰를 나중에 확인하고 이를 위해 출국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맞아. 클린턴 대통령하고 로버트 장관을 만나고 왔거든. 클린턴은 아무래도 엉덩이가 무거워서 힘들고 로버트는 같이 파티에 가자고 하려고.”

안 그래도 로버트 장관이 매번 전화로 같은 소리를 한다. 같이 상류층이 모이는 파티에 가자고 성화였다. 수안은 그런 파티의 호스트가 대부분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은 동양인을 은근히 무시하고 있기에 절대로 참석하지 않는다.

이번엔 수안 스스로 주최하는 파티이니 히스패닉이나 동양계를 가리지 않고 초대할 생각이다.

“아….”

“아직 시간 있으니까 예쁜 파티복 골라 놔.”

“벌써 기대돼요.”

“미안하지만, 파티가 열리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야. 우선은 영화나 재미있게 보자.”

파티는 지금부터 준비해야 했다.

“알았어요. 나 영어 회화 점검부터 받아야겠네요.”

아내의 기대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깊은 밤. 수안은 아들과 아내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서재로 나와 전화를 걸었다.

“이 사장. 바쁜가?”

-아! 회장님. 아닙니다. 일이 절로 잘 풀리고 있어서 요즘은 앉아서 보험을 사들이고 있습니다.

“푸흐. 돈 갖다 바치겠다고 용을 쓰는데 말릴 필요 없지.”

-각 금융사가 배상할 수 있는 최대 규모를 고려해 보험금을 산정하고 있습니다.

“최대 규모라면….”

-빤스만 남기고 모조리 벗겨 먹을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큭. 너무하지 않아?”

-지금까지 BE가 유대계 자본에 무시당한 일들을 생각하면 이것도 양호하죠. 그들은 파산하지 않게 해 준 것만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하여튼 이 사장이 계산은 확실해.”

-서울은 지금 한밤중 아닙니까?

“아. 갑자기 부탁할 일이 있어서 연락했어.”

-맡기신 일이 끝나가고 있어서 여유롭습니다. 뭐든 말씀하십시오.

“영화 타이타닉이 굉장한 성공을 달성하고 있잖아.”

-아. 예. 그렇습니다. 저희 BE에 떨어지는 수익도 상당하죠. 회장님의 선견지명으로 투자할 수 있어서 발생한 수익입니다.

“그런 얘기 듣자고 한 말은 아니야. 폭스사에서 타이타닉 성공 관련 파티를 주최한다는 소식이 있었는지 궁금해서 말이야.”

-지금까지 그런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만….

“그럼 우리가 직접 파티를 주최할 수도 있을까?”

-미국식 스탠딩 파티 말씀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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