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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을 심다 (128/304)

폭탄을 심다

수안이 국내에서 위기 극복을 위해 뛰는 동안 해외에선 이방효 사장이 뛰고 있었다.

수안의 지시대로 롱텀 캐피털(LTCM)이 파산할 위험에 대비한 보험 상품을 매입하고 있었다.

혼자서는 힘든 일이다. BE 인베스트먼트의 고위 임원들이 다 나서서 거대 금융 회사와 보험 회사에 찾아가 관련 상품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고 있었고 보상 비율을 협의하는 중이다.

그리고 그런 이방효와 BE 인베스트먼트의 행보는 모종의 장소에서 논의되고 있었다.

“BE가 롱텀의 파산에 걸었다지?”

JP모건 CEO 토마스의 말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이번엔 골드만삭스 CEO 새뮤얼이다.

“울기는 왜 우나? 안 그래도 너무 날뛰는 신입을 조만간 교육하자고 하지 않았었나. 스스로 불구덩이에 기어들어 간다니 우린 그냥 즐겁게 웃으면 그만이네. 하하.”

마지막은 모건 스탠리의 CEO 마커스였다.

토마스는 주변 누구도 염려하지 않고 있는 이번 일에 자꾸만 더 신경이 쓰였다.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LTCM)가 파산할 가능성은 얼마나 되겠나.”

“롱텀은 설립부터 지금까지 성장하지 않은 때가 없었어. 올해 모인 투자금이 1천억 달러에 이를 거라는 예상까지 있었지. 그런 롱텀이 파산해?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게다가 롱텀 놈들은 우리보다 수수료까지 더 받아 처먹는다고!”

“하지만 이번 보험은 롱텀에 80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이 발생하면 지급하는 보험이잖나. 손실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그러니 더 웃긴 일이잖나. 아무리 우리가 롱텀의 차익 거래 투자 전략을 따라 해서 롱텀의 수익률이 떨어졌다지만, 말 그대로 떨어진 것이지 벌지 못한 것은 아니야. 게다가 보험 기간이 고작 1년이란 말이네. 롱텀이 1년 이내에 800억 달러를 잃는다고? 그 똑똑한 놈들이? 차라리 내가 모건 스탠리 CEO 자리에서 잘리는 것이 빠르겠어.”

“이번엔 마커스 말이 맞아. 토마스. 우린 거액의 보험금을 받아 내면 그만이야. 덕분에 올해 수익률이 상당할 거야.”

“새뮤얼. 골드만삭스에선 얼마나 팔았지?”

“7억 달러.”

“골드만삭스는 고작 그거밖에 못 팔았나? 난 9억 달러를 받아 냈지.”

“JP모건에선 12억 달러를 팔았네.”

“이봐! 자네가 제일 많이 팔아 놓고 앓는 소리를 했단 말인가? 정말 믿을 놈이 하나도 없군!”

“그런데도 BE 인베스트먼트는 더 사려고 해. 오늘도 보고를 받고 오는 길일세. 런던 지점에도 관련 상품의 판매를 요청했어.”

“도쿄미쓰비시 은행에서도 연락을 받았지. 일본에서도 관련 상품을 사고 있는 모양이야.”

BE 인베스트먼트의 행보는 월스트리트에서 초유의 관심 사항이다.

게다가 이번엔 남들이 생각지도 못한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거대 금융사들은 이번이 기회라고 여기고 파생 보험 상품을 개발해 내놓고 있다.

“…아무리 계산해도 답이 없는데 왜 자꾸 신경이 쓰이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보험금이 너무 크기 때문이겠지.”

“맞아. 보험이 발효되면 무려 80배를 토해내야 하니까.”

JP모건에서 12억 달러를 팔았으니 보험이 유효해지면 960억 달러를 지급해야 했다. 회사를 팔아도 지급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금액이다.

“난 더 팔 수만 있다면 더 팔고 싶군.”

마커스는 이번에 BE가 오판했다고 확신하는 듯했다.

“…마커스. 잘 생각하고 판단하게. BE는 지금까지 투자에 실패한 적이 없었어.”

“하하하. 토마스. 미안하지만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LTCM)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네.”

날카로운 창으로 대변될 수 있는 공격적인 투자의 대명사 BE 인베스트먼트와 희대의 천재들이 모여 이룩한 헤지 펀드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LTCM)는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진 방패라고 할 수 있었다. 둘이 붙으면 누가 이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BE는 롱텀과 맞붙겠다는 것도 아니고 1년 안에 스스로 무너질 거라는 데에 베팅했어. 말이 되는 소리인가?”

문제는 둘이 맞붙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BE는 그저 롱텀이 거대한 손실을 볼 거라고 판단하고 그 예상에 맞는 상품을 매입한 것이 전부다. 롱텀이 거래하는 것은 국가의 채권. BE가 나라를 망하게 하지 않는 이상 공격은 불가능했다.

“그건 그렇지. 나이가 드니 괜히 걱정만 늘어.”

“배율을 조정해서라도 이번 상품을 더 팔아야 하네. 고작 수억 달러로는 성이 차질 않아.”

“좋아. 나도 동참하지.”

“이번 기회에 BE를 확실히 꿇어 앉히기로 하지. 우리가 미국 정통 금융시장의 힘을 보여 주세.”

이들 외에도 많은 금융 회사가 BE의 방문을 받았고 관련 파생 상품을 팔아먹었다.

나락으로 향하는 걸음이다.

* * *

수안은 배영성과 김현성을 불러 새로운 일을 지시하고 있었다.

“국내 역사학자를 모아 봐.”

“…역사학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새로운 사업과 연관이 힘듭니다.”

항상 새로운 사업을 지시할 때 이렇게 시작했지만, 이번엔 도통 예측할 수 없었다.

역사학자를 통해 어떤 사업을 할 수 있겠는가.

“사업과는 관계없어. 그냥 내 변덕이라고 생각해 줘.”

수안은 역사학자를 지원해 해외로 보낼 생각이다.

“국내 역사학자들의 과거사 연구 활동비를 지원하고 해외에서 출판하는 세계역사에 관한 책에 우리나라의 역사가 제대로 실렸으면 해. 각 나라에서 배우는 교과서에도 세계 주요 나라의 역사가 기록되잖아. 거기서 우리나라의 역사도 한 자리 차지한다고 생각해 봐. 얼마나 대단하겠어?”

“기업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개념으로 생각하면 되겠군요.”

“간단하게 생각하면 한없이 간단하겠지. 하지만 돈이나 몇 푼 던져 준다고 생각하면 안 돼. 전 세계 주요 출판사와 웹사이트 전부에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고 확실하게 표기되어야 하고 동해, 서해, 남해가 전부 글자 그대로 표기되어야 해. 또한 단군에서부터 시작한 우리나라의 역사가 세계 역사서에 정확하게 기록되어야 해. 누구도 우리의 역사에 손대지 못하게 만들자는 뜻이야.”

“…….”

배영성은 김현성 사장과 함께하고 있어서 더 묻지 못했지만, 이번에도 미래의 뭔가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역사 하면 우리나라잖아. 세상에 조선왕조실록만큼 대단한 기록 문화유산을 가진 나라가 어디 있겠어. 우리나라가 기록만큼은 최고야. 해외에 나가서도 이를 강조하고 관련 연구에 꼭 함께하라고 해야 해.”

중국의 역사가 사실 대단했지만, 그들은 문화 대혁명(1966.05~1976.12)을 거치며 유·무형 문화재 대부분이 실전되었다. 공자를 봉건사상의 상징으로 취급하고 묘를 파헤쳤고 비석도 부서져 가루가 되었다. 공자의 후손들 무덤도 파내서 아직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신은 나무에 매달았다. 공자의 고향에 있던 공자상도 도끼로 박살 냈다. 모두 홍위병이 한 일이다.

이것 말고도 많았다. 유교 경전 소멸, 제향법 소멸, 곽릉 파괴, 제갈량의 사당인 무후사의 3개 석방과 인물소상 파괴, 포청천묘 파괴, 항우의 패왕묘와 우희묘는 파헤쳐져 폐허로 변했다.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문화재를 파괴하고 사료를 불태웠다.

명·청 시대의 사료가 다수 소실되어서 독자적으로 역사 연구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사실의 역사를 그렇게 비틀어서야 쓰나. 그것도 남의 역사를 말이지.’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 야욕에 맞설 수안의 비방이다. 미리부터 세계만방에 대한민국의 역사와 영토를 각인시킬 생각이다. 훗날 한국의 위상이 커졌을 때를 위함이다. 어려서부터 배운 역사는 세계인의 관념 밑바닥에서 한국이라는 나라를 기억하게 만드는 중요한 바탕이 될 것이다.

배영성은 수안의 말대로 진행할 뜻을 비쳤다.

“국내에서 역사학자를 찾아보겠습니다. 해외 학회, 출판사와 접촉해 관련 연구나 집필을 진행하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약속하겠습니다.”

김현성은 수안이 원하는 바를 파악해서 한 단계 발전시킨다.

“아예 관련 연구를 확실하게 지정해서 참여하게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진행해야 저희가 원하는 방향으로 성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회성 지원은 안 하느니만 못합니다. 꾸준하게 진행해야 성과를 보일 수 있습니다. 장기 사업으로 편성해 자금을 집행하겠습니다.”

수안은 배영성과 김현성의 답을 통해 담당자를 결정할 수 있었다.

“이 부분은 김 사장이 맡아서 진행하는 걸로 하자고.”

“예. 회장님.”

배영성은 약간 아쉬운 얼굴이다. 자신의 제안이 부족했다고 여긴 탓이다.

수안은 배영성을 향해 말했다.

“배 사장은 이제 통신사 지분 매입 시작하자.”

“……!”

통신사 업무는 김현성이 맡고 싶었던 일이다.

“하지만 기간통신 사업자는 통신기기 제조업을 겸업하기 쉽지 않습니다.”

“세기 통신 지분 매입은 더블 스타가 아니라 펜타그램에서 진행할 거야. 어차피 더블 스타는 휴대폰 제조사를 갖고 있으니 다른 회사가 맡아야 해.”

“그래 봤자….”

어차피 관련 계열사라고 할 수 있었다. 현재 다른 통신사에서도 자회사를 통해 휴대폰을 제조하지만 판매 대수 제한 등의 규제가 심각하다.

“펜타그램 산하에만 없으면 되는 일이야. 거기까진 생각할 필요 없어.”

수안이 괜찮다면 걱정할 필요 없다. 실제로 이후에도 GL이 휴대폰 제조사를 갖고도 통신 사업을 영위한다. 펜타그램은 지분교환으로 강운 그룹과 얽혀 있지만, 자회사라고 볼 수도 없고 모회사라고 볼 수도 없었다. 트집이야 잡기 마련이지만, 국가에서도 국회에서도 트집 잡을 존재가 없었다.

“예. 회장님. 지분 매입은 공격적으로 진행할까요. 아니면 모르게 진행해야 할까요.”

“세기 통신이 모르게 진행해. 하지만 다른 기업에서 매집을 시작하거든 눈치 보지 말고 다 사들여. 우선 우리 지분을 늘려 놓고 1대, 2대 주주와 담판을 지을 테니까. 오랜 줄다리기를 해야 할 거야.”

“거긴 서로 뭉치기 힘들죠. 알겠습니다. 우리 계열사와 관계사를 통해 분산 매집하겠습니다.”

“BE도 일부 사 두라고 해. 2% 이하로 매입해 두면 될 거야. 관계사는 1% 안으로 작업해.”

“예. 회장님.”

바로 성과가 나올 수 없는 일이다. 솥에서 삶아지는 개구리처럼 천천히 불을 지펴야 했다.

배영성과 김현성은 수안의 말이 끝난 것으로 보이자 들고 온 서류를 펼쳤다. 이제 더블 스타와 펜타그램에서 진행 상황을 보고해야 했다.

“일전에 지시하신 종묘 회사 인수보고 드리겠습니다.”

한국의 종자 주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던 종 자회사들을 수집해 왔다.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지만, 수안은 지시 이후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차피 다 인수했을 거 아닌가?”

돈이 넘쳐나는 상황이라 인수에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 농우 종묘를 제외한 4개 종묘 회사를 전부 품에 넣었습니다. 흥 농종묘와 중앙 종묘를 손에 넣었으니 앞으로 종자 주권은 확실하게 지킬 수 있게 됐습니다.”

“농우는 문제없다고 해?”

“농협에서 지원하기 때문에 저희가 따로 손대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힘들어 보이면 무너지기 전에 지원부터 먼저 시작해. 일부 지분이라도 받아두면 서로 협력하기도 쉽지 않겠어?”

“예. 회장님. 말씀대로 진행하겠습니다.”

김현성이 종묘회사 보고를 끝내자 배영성이 서류를 내밀었다.

“기화 자동차 국제입찰이 곧 시작됩니다. 응찰가 결정이 필요합니다.”

일전에 있었던 첫 기화 자동차 입찰설명회에서 기화 자동차의 부채 탕감과 상환 조건을 제시했었다.

11조 8천억 원에 이르는 부채 중 3조 원에 못 미치는 부채를 탕감한다고 발표했다. 물론 수안이 원하는 금액이 아니었다. 또한 감자에 대한 부분도 문제였다. 100% 감자를 요구했지만, 90% 감자를 발표했고 부실 경영에 책임이 있는 김 전 회장과 이와 관련된 제조 직원들의 지분도 전액 감자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부분도 수안의 제안과 맞지 않는 부분이다.

“기화 차에 5,010원을 쓰고 아세아 차에 5,005원을 써서 내.”

“우리가 불만에 가득 차 있다는 걸 알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러다 삼디 그룹에서 기화 차를 가져갈 수도 있습니다.”

“괜찮아. 그 부채 다 끌어안는다고 하면 오히려 환영할 일이니까.”

“부채 탕감 원칙이 불투명한 상태이긴 하죠.”

“청와대에 연락해서 일정 확인 다시 해 봐. 2차 입찰에 일부 탕감을 추가하되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을 정도로 하고 3차 입찰에서 확실하게 부채 탕감을 진행하도록.”

“예. 회장님.”

지금 수준의 부채 탕감으론 절대로 낙찰이 불가능했다. 당연히 이미 청와대 및 채권단과 협의한 사항이다. 삼디 그룹과 포드 자동차가 모르는 것은 당연했고, 강운 그룹에서도 일부 핵심 인원만 BE에 대해서 알고 있다.

기화 차를 팔아서 일부의 외채라도 갚으려면 해외 업체인 수안의 BE 인베스트먼트가 최적의 수였다. 이 때문에 낙찰에 관해선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보고할 일이 남았어?”

“나머지는 서류를 직접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수천억 규모의 자잘한 회사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조 단위 인수에 관련한 일이나 수안이 직접 보고를 받고 의사를 표한다. 나머지는 김현성과 배영성의 협의로 일을 진행한다. 강운 그룹과 인수할 회사를 나누는 것도 두 공동대표의 업무였다.

“아! 그리고 BE 인베스트먼트 대표로 제시카가 온다고 들었습니다.”

“제시카? 한국어 할 필요 없다니까 제시카를 보냈어?”

토종 미국인을 BE의 대리인으로 보내라고 지시했던 수안이다.

그리고 제시카는 벽안의 금발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미국 여성이다. 눈은 실제 푸른 눈이 맞지만, 머리카락은 일부러 금발로 물들이고 다닌다고 들었다.

“이방효 사장이 적극적으로 추천한 모양입니다.”

“그렇다고 부장급도 아닌 과장급을 보내면 어쩌라고?”

“여자를 보내야 안심한다고 하더군요. 관련 업무는 함께 간 실무진이 처리할 테니 제시카가 할 일은 외부에 BE의 대리인으로 얼굴을 비추는 일이 될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니네. 어차피 삼디와 포드에선 BE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을 테니….”

나중에 3차 입찰에서 BE가 최종 낙찰자로 선택되면 뒤통수가 상당히 아플 것이다.

“제시카는 아무도 모르는 폭탄이 되겠어.”

“제시카가 들으면 억울하겠는데요?”

금발의 벽안으로 끝이 아니다. 제시카는 눈에 확 들어오는 서구 미인이다.

“억울할 것도 많다. 이방효 사장 비서가 BE를 대표하는 업무를 맡았으면 출세했지 뭐.”

제시카는 이방효 사장의 비서 일을 하는 참 순수(?)한 여성이다.

“제시카가 외모에 관심이 많지 않습니까. 한국에서 폭탄이 못생긴 여자를 뜻하는 단어라는 걸 알면 서운하겠죠.”

“…제시카 원하는 대로 마음껏 꾸미라고 해. 스포트라이트가 전부 제시카에게 쏠리도록.”

“생각해 보니 이것까지 생각해서 이방효 사장이 제시카를 추천한 모양입니다.”

“이방효 사장은 인선이 확실한 사람이지.”

거대한 금융 회사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이방효 사장이다.

<『재벌가에 끼어들었다』 7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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