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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음 (121/304)

아버지의 마음

정 회장과 미팅을 마무리하고 배영성과 집으로 가는 차 안이다.

“인수 진행 상황 보고는 모레 올리겠습니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은 긴 비행 시간에 질려 버렸다. 정 회장과 만나는 일정까지 더 했으니 배영성이 내일 보고를 하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내일은 김대준 당선인과 일정이 잡혔습니다. 그 후엔 이현창 총재와 따로 보셔야 합니다.”

“어지간히 궁금한가 보네. 그냥 전화로 할 것이지.”

미국의 재무부 장관과 대통령까지 만나고 돌아왔으니 그 결과가 궁금하긴 할 것이다.

“김일삼 대통령의 요청은 나중으로 미뤘습니다. 여긴 무시해도 될 것 같았습니다.”

“굿. 거긴 이제 신경 쓰지 마. 나라 경제가 이 지경이 됐는데 제대로 일 처리도 못 하잖아.”

경제부총리를 포함한 관련 공무원들이 발바닥에 땀 나도록 뛰고 있을 때 제대로 회의 한번 한 적이 없었던 김일삼이다.

“이번 IMF 외환 위기의 원인이 바로 그 사람이야. 괜히 욕먹는 게 아니라고.”

“오랜 비행으로 힘드셨을 텐데 쉬십시오. 도착하면 깨워 드리겠습니다.”

“배 사장이 곁에 있으니 마음이 편해.”

.

.

.

덕분에 수안은 차에서 편히 쉬고 집에 도착할 수 있었고, 바로 서재로 들어가 아버지를 만났다.

“다녀왔습니다. 회장님.”

“클린턴이 뭐래?”

“나중에 또 보잡니다.”

“또? 사과 한 번으로 끝이 아니야?”

아들이 이번 대량의 달러 입금을 해명하고 사과하러 간다고 들었다.

“사과는 한마디도 안 했습니다. 고개 빳빳하게 들고 말했죠. 이번에 입금한 달러 덕분에 돈 많이 벌었다고요. 아! 민주당 정치 후원금도 한 푼도 안 줬습니다. 나중에 보자는 말은 그냥 인사였습니다.”

“크흐흐. 네 녀석이 그럼 그렇지.”

내심 아들이 미국 대통령 앞에서 기가 팍 죽었으면 어쩌나 걱정하던 차였다.

“그리고 로버트 재무부 장관에게 별장 하나 사 주고 IMF 캉드쉬 총재 좀 잘 관리하라고 했습니다. 한국에서 한마디도 안 진다면서요? 또 그러면 제가 직접 가서 만나죠.”

“푸흐하하하. 너랑 얘기하면 속이 후련해.”

질질 끌려만 다니던 IMF 협상이 아들의 존재로 인해 전환점을 맞고 있었다.

“회장님. 회사에서 보유해야 하는 새로운 분야의 사업이 있습니다. 회장님께서 나서주시면 좋겠습니다.”

“네가 나서도 안 되는 일이 있어?”

할 수야 있겠지만, 아버지가 나서면 더 수월하다.

“돈 주고 살 수 있으면 제가 나서도 좋겠지만, 이번 일은 회장님의 인맥으로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부탁이로구나. 누가 소유한 회사를 사 주랴. 전경련 회원이겠지?”

“태영 건설이 소유한 SBS를 사 주십시오. 우리 강운 그룹도 방송사 하나 소유합시다.”

SBS는 국가가 소유한 방송이 아니라 법인이 소유한 방송사였다.

공영 방송과는 결이 다르지만, 그래도 케이블 방송이 아닌 지상파 방송이다. 파급력이 신문과는 차이가 있었다. 수안이 갖고 싶었던 언론이 바로 서울 방송이었다.

“…SBS라면 서 울방송?”

“예. 이거 우리가 먹고 언론까지 틀어쥐면 좋겠습니다.”

“너 이 녀석. 하하하. 나중엔 언론을 마음대로 부리겠구나. 미국에서 뭘 보고 와서 그래?”

“우리는 검사를 칼잡이라고 부르지만, 국민에겐 언론이 칼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론의 매서운 공격이 기사로 반복적으로 송출되면 국민을 속이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죄가 있는 사람도 선량하게 꾸밀 수 있고 죄가 없는 사람도 세상에서 가장 흉악한 죄인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언론의 힘은 국민의 지식수준이 높아질수록 힘을 발휘한다.

여론을 선동하는 언론에 대항하려면 기업에서도 언론사 하나 정도는 갖고 있어야 했다.

수안이 선택한 언론은 신문이 아니라 방송이었다.

“언론을 잡아야 세상을 손에 쥘 수 있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좋은 이미지를 얻을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세상을 피해서 살아야 한다면 우리가 가진 돈은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

강운모 회장은 아들의 말에 생각이 깊어진다.

‘수안의 말이 백번 옳다. 언론은 정말 큰 힘이지. 과거 정권이 모든 힘을 갖는 시대는 지났어. 국민이 바로 권력이다.’

쉽게 결정 내릴 수 있었다.

“태영 건설 윤 회장도 꽤 돈줄이 말랐어. 내가 얘기해 보마. 얼마 쓰지 않아도 방송사를 우리 품에 안을 수 있을 거다.”

수안의 말대로 태영 건설 회장을 만나서 담판을 지어야 하는 일이라면 자신이 나서는 것이 수월하다.

“부탁드립니다. 아버지.”

“프흐. 넌 항상 재미있는 일을 가져와.”

“그리고 지난번 더블 스타와 펜타그램 계좌에 달러를 입금하고 곧장 출국해서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환전한 원화를 강운 그룹 계열사로 뿌려서 계열사 확장에 사용하려 합니다.”

“유상 증자? 아니면 차입?”

“차입은 아닙니다. 유상 증자와 지분 교환을 동시에 사용하려 합니다. 더블 스타 지분을 각 계열사로 편입시키고 계열사 지분을 더블 스타로 모으겠습니다. 계열사 유동 자금이 대폭 늘어날 겁니다. 차입으로 확보한 자금이 아니라 지분 발행으로 들어온 자금이니 부채 비율도 많이 줄어들 테고요.”

“이번에 순환 출자 회사의 중심축이 바뀌겠군.”

“예. 지분 구조에 복잡성이 더해지긴 하지만, 차근차근 바꿔나가겠습니다. 외국계 자본의 공격까지 예상하고 준비해야 하니 미리 지분 방어가 용이한 구조를 만들어 놔야 합니다.”

수안의 보고가 또 이어진다. 아직 할 말이 많았다.

“그리고….”

“됐다. 나머지는 내일 얘기하자. 정원이가 아빠를 많이 찾았어.”

평소 회사가 항상 먼저지만, 오늘만큼은 예외였다. 정원이가 아비를 찾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아. 그럼 내일 추가 보고 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대하고 있으마. 얼른 아들에게 가 봐.”

“예!”

수안은 아들을 보러 방에 들어갔지만, 잠에서 깬 아내의 검지가 입에 닿아 있는 것을 보고 발소리를 죽여야 했다. 아들은 침대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잠든 아들의 얼굴만 봐도 세파에 찌들었던 마음이 치유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 잠든 아들을 보다가 다시 밖으로 나와 아버지 서재로 향했다.

“응? 왜 또 들어와?”

“정원이 잡니다.”

수안은 다시 강운 그룹 부회장으로 돌아왔다.

“회장님. 추가 보고 계속하겠습니다.”

“…그래. 무슨 일인데?”

“기화 자동차 인수에 있어선 이미 정권과 얘기된 것처럼….”

기화 자동차 건은 강운모 회장도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다. 새로운 진행 상황도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해외 자본을 우선 선정하는 국제입찰 방식을 따른다고 했고, 입찰에 가장 중요한 조건은 바로 회사의 규모. 즉, 현금 동원력이 많은 쪽이 유리했다. 절대적으로 BE 인베스트먼트에 유리하게 만들어진 조건이었다.

“그리고 오늘 공항에서 정영수 회장을 만났습니다.”

“응? 대현 자동차 회장?”

“예.”

“지난번에 왕 회장까지 만나서 얘기 끝났다고 하지 않았어?”

기화 자동차 입찰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확실하게 경고했고, 대현에선 그 경고를 받아들였다고 보고 받은 강운모 회장이다. 아들의 영향력을 다시 평가한 일이다.

‘씨티 그룹 대출까지 마음대로 할 수 있을 줄은 몰랐지.’

확실히 끝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대현에서 BE 인베스트먼트를 파악한 모양입니다. 제가 일으킨 회사라는 건 모르고 있지만, 강운 그룹이 일으킨 회사라고 알고 있으니 크게 다르진 않겠죠. 정 회장 꼬리가 확 내려갔습니다.”

“크흐흐흐. 달러가 들어왔으니 파악했겠지. 정 회장 얼굴이 볼만했겠어.”

강운모 회장은 그 얼굴을 못 봐서 너무 아쉬웠다.

“대현에서 엔진 기술 이전을 약속했고 대현의 부품 협력사와 A/S 공업사 공유를 제안했습니다. 앞으로 자동차 산업에서 강운 자동차와 기화 자동차 그리고 대현 자동차가 빅3로 자리 잡는다면 상당한 비용 절감과 효율 증대를 노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공짜로 주진 않을 것 아니냐? 정 회장이 뭘 원한다고 하더냐?”

“훗날 정 회장이 대현의 왕좌를 차지할 때 도움을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풋. 말로 때웠다는 말이야?”

“…예. 처음엔 쌍륭 자동차와 삼디 자동차를 제안했지만, 정 회장이 내켜 하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대현 주식이나 담아 두면 될 것 같습니다.”

“쌍륭은 대운이…. 아! 대운 그룹 세무조사와 검찰 조사가 시작된다 했으니 인수는 힘들겠군. 그리고 삼디 자동차는 네가 기화를 인수하면 사업을 이어 갈 수도 없을 테고….”

“대운은 강운 자동차에 맡기려고 합니다.”

“너는 기화 자동차를 먹고, 강운은 대운 자동차를 먹으면 되겠구나. 좋아!”

“쌍륭과 삼디가 남는데 대현이 내켜 하지 않으면 여기도 저희가 먹어야죠.”

“삼디 자동차는 그렇다 치는데 쌍륭 자동차의 경우 매출은 적고 부채는 크지. 하지만 쌍륭 자동차 충성고객도 있으니 계륵이야.”

“채권단과의 협상이 주요 변수가 되겠죠. 기화 자동차는 협상할 수 있지만, 쌍륭은 미지수입니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죠.”

“어차피 지금은 기화 자동차에 집중해야 할 때다. 일이 어찌 될지 봐가면서 결정해도 늦지 않아.”

“예. 혼자서 다 잡으려다 놓치는 수가 생기겠지만, 그래도 둘은 확실하게 잡아 둬야 합니다. 저는 기화를 잡고-”

수안의 말을 강 회장이 받았다.

“나는 대운을 집어삼키마. 법정 관리가 빨랐으니 입찰은 기화가 빠를 것이다. 게다가 우린 하나가 아니라 둘이지. 으하하하.”

입찰이 빠르면 뭐 하나. 수안은 1차에서 유찰, 2차에서도 유찰, 3차에서 겨우 될까 말까 할 입찰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일이 쉽게 처리되어봐야 바라는 것만 많아진다. 채권단 힘을 빼기 위해서라도 3차까지 진행되어야 했다.

“내일 김대준 당선인과 약속이 있고 모레는 이현창 총재와 약속이 잡혀 있습니다.”

“부채 탕감과 상환 조건에 대해서 확실하게 못 박아. 특히 기화, 아세아 자동차는 자본금 전액을 감자해야 해.”

“여지를 남겨두지 않겠습니다. 입찰은 2회 유찰시키고, 3회에 끝내겠습니다. 강운 자동차에서 보조할 것이니 BE는 계속해서 입찰에 참여토록 하겠습니다. 다만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삼디 자동차가 변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현에겐 목줄을 걸어놨고, 강운 그룹은 BE와 한 몸이다. 남은 것은 삼디 자동차인데, 삼디 그룹은 이미 예전부터 기화 자동차를 눈독 들이고 있었다.

“삼디는 염려하지 마라. 이번에 고순 후보와 김대준 당선인 사이에서 줄타기했다더라. 아무리 목소리 높여 봤자 어디에서도 편들어 주지 않을 게다. 1차는 차라리 삼디에게 양보하고 물 먹이는 편이 좋겠어.”

삼디는 기화 자동차 낙찰에 성공하더라도 채권단에서 그 어떤 부채도 탕감해 주지 않을 것이다. 거대한 부채를 조정받지 못하면 기화 자동차는 절대로 인수할 수 없다.

“그럼 삼디 자동차도 워크아웃 수순으로 갈 테니 강운 자동차가 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대운이 너무 크지 않느냐. 강운 자동차는 이것만 먹어도 체할 것 같은데? BE에서 같이 인수하는 편이 낫지 않아?”

“삼디 자동차는 국내 별도 자동차 회사로 끌고 가십시오. 새 회사에서 연구 개발 목적의 차량을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연구 개발? 또 네가 연구 개발에 달라붙을 거야?”

“예. 전기차를 개발해 보려고 합니다. 결국엔 완성차 시장이 궁극적으로 향하는 곳은 전기차입니다. 지금 움직이면 남들보다 세 걸음은 빠르게 움직이게 됩니다. 내딛기 시작하면 따라오기 쉽지 않을 겁니다.”

웃음을 터트릴 줄 알았던 강운모 회장이 흐뭇한 얼굴이 아니라 안쓰러운 얼굴로 수안을 보고 있었다.

“수안아. 그러다 너도 내 꼴 난다.”

“예?”

“어느 순간 집에 돌아오면 다 커버린 자식들을 만날 수도 있어. 일하느라 가장 중요한 시기를 놓치는 거야. 내 자식 크는 것을 보고 가족과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돈을 벌지만, 그 돈 때문에 함께할 수가 없었지. 모순적이지만, 다른 사람도 다 그렇게 살았다. 나도 그게 당연한 줄 알았고….”

아버지 얼굴은 회한에 가득했다.

“아들이 자식을 낳고 나서야 새로 눈이 떠지더구나. 내 손주를 보면서야 자식 예쁜 걸 알았어. 네가 클 때도 내가 함께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다. 아비가 널 많이 예뻐했음에도 정작 너와 함께하지 못했어. 제대로 된 추억 하나 남겨 주질 못했다.”

수안은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울컥한 마음을 숨겨야 했다. 아버지 입에서 이런 감상적인 말이 나올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너뿐만이 아니지. 수진이, 수현이, 수용이도 마찬가지다. 그 애들이 널 아비처럼 믿고 따르는 것도 결국 내 탓이지 싶었다.”

수안을 낳기 직전에 부회장이 되었고, 회사를 물려받기 위해 밤낮으로 일에 매달렸다.

회사에서 야근으로 늦는 일도 잦았고, 국내외 출장도 자주 있는 일이었다.

자식을 낳기는 했지만, 어떻게 자라는지는 신경도 쓰지 못했다.

강운 그룹은 지금 국내 재계 서열에서 범접하기 어려운 1위를 수성하고 있다. 그렇다고 회사가 매너리즘에 빠져 있거나 정체 중인 것도 아니다. 강 회장이 따로 채찍질하지 않아도 사장단에 의해서 그룹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발전해 나간다.

강운모 회장에게 여유가 생긴 것이다. 여유 중에 손주 정원이가 태어났다. 여유 시간이 정원이에게 쓰이기 시작하자 과거 자식들과의 추억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과거를 돌아보게 된 것이다. 손주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얼마나 큰 행복으로 다가오는지 느낄수록, 자식들에게도 자신의 빈자리가 느껴졌으리라는 후회가 마음을 채운 것이다.

동생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수안은 그런 아버지에게 아무런 불만도 없다.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믿음직하고 든든한 아버지셨어요. 아버지는 자부심 느끼셔도 됩니다.”

진심이다. 살아계시고 건강하신 부모님의 존재만으로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었다.

부모님이 없이 살았던 과거와 비교해 현재의 삶은 꿈에서 그리던 천국이다.

“네가 나를 탓하지 않을 놈이라는 것도 잘 알아.”

“…….”

“기화 자동차 인수도 좋고, 전기 자동차 개발도 좋다. 하지만 가족에게서 눈을 떼지는 마. 알았지?”

“예. 아버지. 명심하겠습니다.”

아버지의 인생 경험으로 해 주시는 충고였다. 결코 허투루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다.

“넌 이것조차 잘 지킬 것 같아.”

“물론입니다. 아버지께서 일러주시는 가르침을 귓등으로 들으면 아버지 인생 경험을 낭비한 게 됩니다. 아버지 인생 경험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꼭 지켜나가겠습니다.”

“풋. 거창하기는…. 오늘은 정원이랑 놀아 줘. 잠에서 깨면 바로 아빠 얼굴 보이게 하고, 나머지는 내일 김대준 후보 만나고 와서 얘기 나누자. 어차피 입찰 시작하려면 멀었어. 2차까지 유찰시킨다면 더 멀었고.”

“예. 아버지. 항상 감사합니다.”

수안은 아버지에게 깊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서재를 나왔다.

“후우….”

울컥한 감정을 숨기느라 너무 힘들었다. 살아계셔 주시는 것만으로 감사한 아버지가 자상하지 못해서 사과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화내는 아버지도 깐깐한 아버지도 좋았다. 늦게 술을 드시고 들어오시는 아버지도 대단해 보였고, 며칠씩 출장 갔다가 돌아오신 아버지도 그렇게 멋있었다.

그리고 이제 아버지는 너무나 멋진 할아버지가 되셨다.

아빠인 자신이 아버지처럼 멋진 할아버지가 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을 정도였다.

‘아버지. 어머니….’

아이를 낳고 부모의 마음을 알아갈수록 부모님을 향하는 마음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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