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유산
수안과 배영성, 최장호가 벌인 일련의 일들로 건국 이래 최대의 사기꾼 조동팔과 조동팔에 이은 역대 2위 규모의 사기꾼 주수동이 마약 중독으로 죽었다.
덕분에 4조 원의 피해 금액과 4만 명의 피해자를 양산하는 사기꾼 조동팔이 역사에서 사라졌고, 2조 원의 피해 금액과 2만 명의 피해자를 양산하는 사기꾼 주수동도 지워졌다. 이제 이 두 사람이 일으킬 거대한 사기 사건이 발생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리고 조동팔의 다단계 사기꾼 일당은 함께 마약을 나눠 먹다가 경찰에 일괄 체포되어 구치소로 들어갔고, 주수동이 먹던 마약을 나눠 먹던 두 내연녀는 오랜 재판 끝에 형 집행을 유예한다는 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두 여성은 초범이라 정상 참작이 가능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독지가의 도움으로 인해 좋은 변호사를 얻은 것도 집행유예 판결의 원인이다.
법원의 집행유예 판결을 끝으로 구치소 생활을 끝낸 두 여성이 푸석한 얼굴로 법원을 나섰다.
동일 사건으로 분류되어 함께 재판을 받은 둘은 서로 법원 앞에서 갈라져 출발했지만, 결국 같은 집 앞에서 다시 만났다.
“야. 넌 왜 이리로 오는데?”
“그럼 넌?”
“여기 이제 내 집이거든?”
주수동과 마지막까지 함께한 내연녀 1번이다.
“하! 너보다 내가 여기 더 오래 살았어! 이거 왜 이래?”
그녀 역시 주수동과 관계를 이어 가던 내연녀 2번이다.
“…법원에서 내가 아내로 인정받았거든? 전 여친은 빠지지?”
“그이가 너 만날 때 나도 만났다고! 그리고 그이는 날 더 좋아했어! 그이가 그렇게 된 걸 늦게 알아서 그렇지, 내가 법원으로 갔으면 내가 아내로 인정받았을 거거든? 집 내놔!”
그런 둘의 말다툼은 건장한 남성들의 등장으로 멈춰야 했다.
“다들… 닥치고. 둘 다 이리로.”
도망칠 공간도 없이 주변은 이미 포위되어 있었다.
“…….”
“…….”
“차에 타라. 할 말이 있다.”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법원에서 말한 것이 전부라고요.”
“맞아요. 저도 처음이었어요.”
둘은 마약과 관련된 사람이 찾아온 것은 아닌지 싶어 잔뜩 몸을 움츠렸다.
“도착하면 자세히 설명해 주지.”
남자의 눈짓에 건장한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와 두 여자의 팔을 잡았다.
“이거 놔요!!.”
“살려 주세요.”
둘은 빠져나가려고 발버둥 쳤지만, 건장한 남성의 손에서 벗어나긴 힘들었다.
“안 죽인다. 몇 가지 물어보기만 할 거야.”
“읍!”
“으으읍!”
큰 손바닥에 입이 막힌 둘은 결국 두 대의 차량에 나눠 타고 모처로 향했다.
* * *
두 여성이 차에서 내린 곳은 당장이라도 경기를 일으킬 만한 장소였다.
을씨년스러운 폐공장.
폐공장 주변은 산 속에 위치했고, 소리를 질러도 도우러 올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아, 안 죽인다면서요….”
“쓰읍! 닥치고 들어가라.”
“살려….”
내연녀 1번이 막 소리를 지르려는데 남자의 말이 귀에 꽂힌다.
“소리 지르면 진짜 죽는다.”
“…끄읍.”
“시끄러운 건 질색이라.”
입을 손으로 막은 두 여성이 안으로 들어갔고, 차 안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이 있었다.
“저들인가?”
“예. 회장님.”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됐는지….”
“죄송합니다. 저도 일 처리가 여기까지 늦어질 줄은….”
어두운 차 안에서 회장에게 보고하는 남성은 자신의 잘못인 양 죄스러운 표정이다.
“허어… 그 돈이 그놈에게 흘러가서 일이 이렇게 꼬인 게지. 자네 탓이겠나.”
“주수동의 손을 거쳐서 다른 이에게 전해지기로 되었던 일이라고 들었는데….”
본래 누군가에게 돌려받기로 되어 있던 돈이다. 자금을 추적할 수 없도록 흐름을 끊어야 했기에 여러 차례 다른 이의 명의와 손을 거쳐 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자금 세탁 중간에 공백이 생기며 돈이 사라지고 말았다. 바로 주수동의 죽음으로 인해 발생한 공백이다.
“지금은 일이 왜 잘못되었는지 따지지 말고 그 계좌와 장부를 찾는 데만 신경 써. 요즘 회사 사정이 말이 아니잖나.”
“예. 회장님. 꼭 찾아내겠습니다.”
* * *
차에서 오가는 대화와 상관없이 폐공장 안에서는 무의미한 질문과 무책임한 답변이 이어지고 있었다.
“주수동하고 가장 가깝게 지낸 사람이 누구야.”
“쟤요!”
“쟤요!”
두 여성은 상대방을 가리켰다. 아까는 자신이 더 가깝다고 우겼지만 지금은 상황이 180도로 변했다.
“네가 마누라라며? 그래서 집도 가졌다며? 그러니까 네가 제일 가깝게 지냈지!”
“네가 더 오래 살았다며? 오래 산 사람이 마누라지 내가 왜 마누라야?”
“오늘 너희가 집행 유예로 풀려날 수 있게 해 준 사람이 바로 나다. 그러니까…. 협조 부탁한다. 알아들었어?”
“진짜 우리 안 죽어요? 도와줘 놓고 죽이진 않겠죠?”
“제대로 답하면 바로 죽일 거 아니죠?”
“나… 대현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함부로 사람 죽이고 다니는 사람 아냐.”
남자는 자신의 명함을 꺼내 둘에게 보여 줬다. 죽이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기 위함이다.
“대에혀언?!”
“대현 자동차의 그 대현?”
“그래. 하지만 너희가 협조를 안 하면 나도 생각이 달라질 거야. 일 귀찮게 진행하는 거 질색이라… 너희도 그렇지 않아?”
두 여자는 무섭게 분위기를 잡고 하는 말보다 저렇게 가벼운 말투로 하는 말이 더 무서울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눈앞의 남자는 사람 목숨을 하찮게 생각하고 있었다.
‘…진짜 죽일 수도 있는 사람….’
“…….”
“…….”
“협조할 거지?”
“알았어요. 핵심만 질문해요. 아는 거 다 말할게요. 답하면 나 집에 데려다줘요.”
“좋아. 이제야 말이 통하네. 주수동이 관리하던 서류나 귀중품이 있을 만한 곳, 자주 방문했던 곳에 대해서 아는 대로 얘기해. 이것만 말하면 바로 집에 데려다주지.”
“…….”
“…….”
여성 둘은 서로의 얼굴을 보고 난감한 표정으로 소리 없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넌 알아?’
‘나라고 알겠어? 대답 못 하면 이대로 죽는 거 아냐?’
예상과 달리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둘이었다.
* * *
정지훈과 윤혜린의 결혼식이 내일로 다가왔다.
수안은 평소와 다름없이 더블 스타 홀딩스로 출근해 업무를 보고, 김현성 사장과 차를 마시며 금주에 진행된 주요 업무 상황을 보고 받고 있었다. 수안 옆에 배영성은 역시나 함께였다.
“오전에 계좌 확인 끝났습니다. 강운 증권에 부사장님 자금도 집행 완료되었습니다. 내일부터 우리 직원들이 붙어서 운용을 시작하겠습니다.”
“자금이 한쪽으로 몰리지 않게 나눠서 투자해. 괜히 몰리면 나중에 골치 아프잖아.”
동생들에게 크게 증식해 돌려줄 주식 계좌에 대한 보고였다. 가족 계좌가 한 곳으로 매집이 집중되면 괜한 의심을 불러올 수도 있었다. 일 인당 10억. 이제 불려 나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현성 사장에겐 동생들의 계좌가 그리 중요치 않은 일이다. 모든 일의 중심은 오로지 수안을 중심으로 생각했다.
“잘 나눠 담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오후에 저와 건물 확인차 방문하기로 하셨습니다.”
“아. 그랬지. 배 이사. 점심 먹고 김 사장이랑 다녀올게.”
“예. 전 두 분이 안 계신 회사를 지키겠습니다.”
“회사는 경비실에서 지키겠지. 일하자 일.”
“넵.”
* * *
수안은 최근 경매로 낙찰받은 건물을 김현성 사장과 돌아보고 있었다.
김현성 사장이 평소 주력으로 삼는 부분이 바로 건물과 토지 매매에 있었다.
김현성 사장의 감각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김 사장의 감각은 수안도 인정하는 바였다.
몇 해 전. 수안이 판교에 투자해야 한다는 생각이 번뜩 떠올랐을 때였다.
판교. 1기 신도시인 분당 바로 옆에 건설된 도시 판교는 ‘남단 녹지’라는 이름의 개발 제한 구역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90년 초까지 소규모 공장들과 논밭, 화훼 단지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던 땅이다. 이후 1997년에 분당에 신도시 입주가 완료되고 난 뒤에 1998년 2기 신도시 로드맵이 소문나기 시작하면 땅값이 널뛰기를 시작한다.
이 소문의 정점은 바로 2003년.
판교가 2003년 2기 신도시 개발 지역으로 확정되면서부터다. 수안이 알아보라고 했던 당시는 1993년. 당시 땅값은 고작 10만 원에서 20만 원 사이에서 형성되어 있었다.
이 판교 땅이 내년 96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끝나고 난 뒤인 1997년에 70만 원에 이르고, 2000년엔 350만 원대까지 솟구친다.
이를 떠올린 수안이 김현성 사장에게 급하게 판교 땅을 알아 오라고 지시했는데, 김현성 사장의 말이 가관이었다.
“…저번에 샀습니다만….”
“벌써 샀어?”
“거기 목장이 하나 있었고, 마침 농장주가 팔고 싶어 했습니다. 미리 사 두면 좋을 땅으로 보여서 주변까지 넉넉하게 샀습니다.”
“얼마나 넉넉하게?”
그때의 일로 수안은 김현성 사장의 손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10만 평 정도….”
“…….”
“너무 많이 샀나요? 평당 5만 원 이하라 싸다고 생각해서… 지금이라도 되팔까요?”
평당 5만 원에 10만 평이면 무려 50억이다. 당시 더블 스타 진행한 주식 투자 성공으로 여유 자금을 만들어 두었기에 무리 없이 살 수 있었단다. 새천년 평당 350만 원에 달하는 땅값을 생각하면 70배가 넘는 장사였다.
“우리 김 사장이 나랑 생각이 비슷하네. 그래도 약간 모자란 것 같으니 지금이라도 더 사. 넉넉하게! 김 사장 마음대로! 하하하.”
“옙!”
당시의 일 이후 수안은 김현성 사장의 부동산 투자를 검토하는 수준으로만 보고 있었고, 지금도 건물과 땅에 관해서는 김현성 사장을 신뢰한다. 그래도 당시와 같은 일이 없어야 했기에, 지금은 땅이든 건물이든 구입 후에 한 번씩 직접 와서 살펴보고 있었다.
“여긴 얼마에 샀다고?”
“38억입니다.”
“정말 싸게 샀네? 역시 김 사장!”
“하하. 여기서 학원을 운영하던 사업체가 망해 버리면서 매물로 나왔습니다. 2차 유찰된 물건을 잡았으니 싸게 잡았죠.”
“세입자는 있고?”
“일부 세입자가 있었지만, 학원 망하고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면서 나갔습니다. 학원에서 공부할 학생들이 없으니 음식 장사도 힘들었죠. 경매를 거친 물건이라 법적 정리도 끝났습니다.”
건물 대부분을 학원에서 사용했기에 지저분하게 처리하지 않아도 되는 오랜만에 깨끗한 물건이다. 수안은 건물 상부로 올라가 여기저기 살피며 건물을 어떻게 개조할지 고민했다.
문 하나를 열고 들어가자 풀썩 먼지가 일었다.
“푸후. 먼지하고는.”
서류 상에만 문제없이 깨끗하지 건물의 청소 상태는 상당히 불량했다. 사업이 망하고 몇 개월 방치되었을 뿐인데, 어찌 알고 먼지들이 자리 잡았다.
“빌딩 관리 시작하겠습니다. 관리 사무실에 우리 직원들 파견 보내놨습니다.”
“내·외부 싹 리뉴얼하고 임대받아야겠다.”
“예. 부사장님.”
안쪽 문을 하나 더 열어보고 돌아 나가려던 수안은 깜짝 놀라서 다시 돌아와 문을 열었다.
“어, 어? 저, 저, 저….”
뭘 봤는지 수안이 손가락으로 안쪽 사무실 벽면을 가리키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저, 저 사람이 여기 왜 있어??!”
비명 같은 물음이었다.
벽면에는 주수동의 얼굴이 박힌 액자가 큼지막하게 걸려있었다.
김현성 사장이 급하게 주변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물어 왔다. 학원이 망한 자리엔 많은 물건이 남아 있어 정보를 얻기 어렵지 않았다.
“여기 학원을 설립했던 창립자이자 사장인 사람이 쓰던 사무실이랍니다. 저 사진은 바로 그 창립자 사진입니다. 이름이 주수동이라고….”
수안은 귀신을 본 것처럼 놀랐지만, 김현성의 답에 크게 한숨을 쉬며 마음을 놨다.
“하아.”
경매로 나와 김현성 사장이 매입한 건물은 주수동이 대차게 말아먹은 학원 건물이었다.
“…이건 또 무슨 인연이야?”
“잘 아는 분입니까?”
“잘 알진 못하고….”
주수동과 조동팔의 일은 김현성 사장이 모르는 일이다. 배영성과 최장호만 관여했고, 일부 전략실 직원들이 곁다리로 정보를 파악했던 일이다. 김현성 사장에게까지 보고가 올라갈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김현성 사장이 모를 사람은 아니다.
“그냥 얼굴만 좀 알지. 이 사람 정치권에서 놀았잖아. 그러다가 한참 전에 마약 사건으로 죽었다고 뉴스에 나왔을걸? 기억 안 나?”
“아… 예전 마약 관련 뉴스에 나온 사람입니까? 그러고 보니… 아! 맞네요. 주수동.”
김현성 사장도 사진 속 얼굴을 기억해 냈다.
“나도 뉴스에서 봤지.”
“빨리 리뉴얼 시작해서 정리해야겠습니다. 이런 흔적은 빨리 지워야죠.”
수안은 번뜩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김 사장. 건물 리뉴얼은 조금 미루자.”
“예?”
“이번엔 좀 새로운 시도를 할까 싶어서. 구상해 보고 다시 알려 줄게.”
“얼마든지 고민하셔도 됩니다. 이제 우리 회사 건물입니다.”
주수동이 내연녀 두 명에만 약을 넘겼다는 확신이 없었다. 이곳이 주수동의 보물 창고와 같은 개념이라면 약을 따로 보관할 수도 있었다. 수안은 그걸 찾아 없앨 생각이었다.
* * *
수안은 건물에서 나와 김현성 사장과 더블 스타로 향했고, 배영성과 최장호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들였다.
“앉아 봐.”
“예. 부사장님.”
“예.”
수안은 방금 다녀온 건물에 대해서 둘에게 설명했다.
“주수동의 학원이 있던 건물이요?”
“그래.”
“부사장님은 거기 뭔가 남았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신 거군요?”
“척하면 척이네. 맞아. 그래서 김현성 사장에게 건물 리뉴얼 미루라고 했어. 건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고민 좀 해 보겠다고.”
“가시죠. 남은 약이 한 알이라도 있다면 저희 셋이서 찾아야 합니다.”
또 다른 사람의 손을 타지 않게 하려면 직접 처리해야 했다.
“그 얘길 하려고 부른 거야. 내가 할 얘길 다 하면 난 무슨 얘길 해?”
“흰소리 그만하고 가시죠. 부사장님.”
“그러게요. 바쁩니다. 빨리 증거 회수해야죠.”
“젠장, 이제 농담도 안 받아 주냐? 가자. 가.”
수안과 배영성, 최장호가 새로 산 학원 건물로 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