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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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선물

“예. 내년에도 100미터, 200미터에 출전할 생각입니다.”

“역시! 다음 올림픽도 금메달 두 개는 확보다! 마시자!”

“하하하. 그 전에 사법 시험도 보고….”

“뭐? 벌써?”

졸업하고 사법 시험에 올인하는 선배들도 많았다. 한국대 법학과라도 대학에 다니는 중에 사법 고시에 합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경험 삼아서요. 미리 한 번 경험해야 정신이 번쩍 들지 않을까요?”

“그렇긴 하지… 아주 제대로 병맛이야. 사법 시험.”

당연히 합격을 생각하고 있지만, 미리부터 재수 없는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운동만 하던 제가 감히 첫술에 합격을 바라겠습니까? 하하하. 대신 금메달은 꼭 따겠습니다.”

사법 시험 1차는 입학 전에 치르고 왔다. 지금은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배들의 배려와 동기들의 거리 두기 덕분에 수안의 대학 생활은 평온했다. 거기다 항상 곁에 붙어 있는 운전기사와 경호원의 존재가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고 있었다.

수안은 운전 면허를 취득하고 오랜만에 홀가분한 기분으로 외출했다.

깊이 눌러쓴 모자와 마스크는 수안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도록 했다.

“도련님. 위험한 곳엔 가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걱정 마. 내가 애야?”

“운전은 언제 배우셔서….”

최장호는 단번에 운전면허에 합격하고 능숙하게 지난번 구입한 BMW 325i를 운전하는 수안을 신기해했다.

“운전 면허 학원에서 잘 가르쳐 주더라고.”

전생에 폐차장에 있어도 무방할 수동 1톤 트럭을 몰고 다녔던 수안이다.

오토매틱 승용차는 운전하다 잠이 올 지경이다.

동기들과 만나기로 한 상가건물에 차를 주차하려고 건물을 빙글 도는데, 멀리 동기들이 보였다.

“여기….”

상가 앞 멈춰 선 차량 옆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동기들의 모습에 수안은 동기들을 부르다 말고 근처로 차를 몰았다.

‘뭐지?’

근처에 가서 확인하니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었다.

“타라니까. 오빠가 오늘 재미있게 해 줄게.”

“됐거든요.”

“에이. 빼지 말고. 응?”

말로만 듣던 오렌지족이 여기 있었다.

‘아직은 오렌지족으로 불리지도 않을 때인가?’

“뭐냐?”

수안이 가까이 가서 말을 걸자 동기들의 시선이 한눈에 모였다.

“수안아!”

“오. 외제 차다.”

차에서 내려 동기들에게 작업하던 차량 속 남자에게 말했다.

“오늘 이 친구들은 나랑 선약이 있으니 그쪽은 딴 데 가서 찾아봐요.”

“너 내가 누군지 몰라서 그러는 모양인데….”

그랜저에서 차 문을 열고 나오는 인물은 수안도 안면이 있었다.

“신라 일보 자제였던가?”

“어? …나 알아?”

“당신도 나 알지 않을까 싶은데요….”

수안이 모자를 벗고 마스크를 내리자 흠칫하는 녀석이다.

“아. 오랜만에 뵙습니다….”

예전에 아버지를 따라 몇 번 재계의 인사들과 인사한 기억이 있었고, 신라일보 장남도 그 자리에서 스치듯 본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이 아니라도 올림픽 스타 강수안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강수안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간첩도 강수안의 얼굴 정도는 알고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통하는 요즘이다.

“그러게. 오랜만이네요.”

“어휴. 제가 괜히 끼어들어서… 즐겁게 노십쇼.”

“여기 물 좋으니까 발품 더 팔아 봐요.”

“예.”

신라일보 장남이 그랜저를 몰아 사라지고 수안은 친구들에게 말했다.

“타. 같이 드라이브 가자.”

“오! 좋았으!”

남자애 하나에 여자애가 셋이다.

“도련님.”

최장호가 내려야 모두 탈 수 있었다.

“금방 돌아올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목적지라도 알려 주십시오.”

“…그러던가.”

다른 차를 불러 따라올 모양이다.

“목적지 춘천. 가서 닭갈비 먹고 오게.”

“…거기까지 가신다고요?”

“술 먹을까 봐 걱정해? 술은 돌아와서 먹으면 되지 뭐.”

“술은 드셔도 음주 운전은 절대로 안 됩니다. 아셨죠?”

“이제 막 시작한 인생 여기서 말아먹을 생각은 없어.”

어떻게 새로 시작한 인생인데, 음주 운전으로 날려 버릴 생각은 없었다.

“가즈아!”

“가자!!”

이렇게라도 대학 생활을 즐겨야 할 것이 아닌가.

동기들 덕분에 수안은 경호원까지 따돌리고 홀가분하게 춘천으로 향했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없었다.

“오늘 돈 걱정하지 말고 놀자.”

“그래도….”

“주원아. 내가 누구지?”

“올림픽 육상 금메달리스트에 강운가 맏아들이지.”

“매월 나오는 연금이 아니라도 나 먹고살 만하거든? 거기다 강운가 맏아들인 내가 가난한 법학과 새내기들 등쳐먹었다는 얘기가 나오면 되겠냐. 안 되겠냐?”

“안 되지.”

“그럼 쏴리 질러!!”

“오예!!”

“꺄아악! 달려!”

부아아앙!

수안의 BMW가 도로를 질주했다.

대학 생활에 작은 추억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었다. 앞으로 사법 시험 2차와 올림픽까지 병행해야 했고, 여기에 강운 그룹 사장단과 진행하는 일까지 더하면 이런 시간을 낼 짬이 없었다.

* * *

수안은 1991년 제33회 사법 시험 1차 합격자 발표 결과를 보고 있었다.

“누가 있으려나.”

자신이 합격할 것은 기정사실이었기에 볼 필요도 없었다.

같은 기수에 누가 있는지가 궁금한 수안이다.

“오. 대단한 분들이 많았네. 우아… 라인업이 아주 화려해.”

훗날 장관이 되는 인물도 있었고, 미래의 검찰 고검장이나 차장검사들이 수두룩하게 1차 합격자 명단에 들어 있었다.

“다들 한가락 할 놈들이네. 사법 시험이니 당연한 일이지.”

작년, 올해, 내년 가리지 않고 대한민국에서 날고 기는 놈들이 가득했다.

수안의 합격 소식은 아버지 강운모 회장에게도 전해졌다.

“…수석?”

“예. 도련님이 제33회 사법 시험 1차에 수석으로 합격하셨습니다.”

“이놈은 매번 적당히 못 하고… 푸흐….”

내용은 타박이지만, 올라가는 입꼬리는 막을 수 없다.

“2차 시험과 올림픽 준비도 병행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수안 도련님을 봐 왔지만, 항상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십니다. 경제인연합회 회원들로부터 축하 인사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강 회장은 터지려는 웃음을 참아가며 물었다.

“거참…. 큼. 정리 안 된 차명 계좌 남아 있지?”

“예. 말씀하신 대로 절반은 남겨 뒀습니다.”

“백억 정도 되는 계좌로 하나 가져와.”

사법 시험 합격 선물이라면 이 정도는 줘야 했다.

“예. 회장님.”

* * *

“후아….”

수안은 아버지 서재에서 받아 온 통장을 들고, 오히려 한숨이다.

“이건 또 어떻게 쓰라고….”

고민하던 수안은 주식과 부동산을 머리에서 지워 버리고 기업을 떠올렸다.

“…슬슬 국내에서도 시작해 볼까?”

성장이 확실한 회사들, 그 회사들에 엔젤 투자자가 될 수 있다면 향후 거대한 회사로 성장할 기업을 선점할 수 있었다. 해외는 이미 배영성 실장을 통해 미국과 일본에서 실행 중이이니 상관없었다. 거액이 생겼으니 국내로 눈을 돌릴 수 있었다.

다음 날 수안은 배 실장과 차를 타고 가며 말했다.

“배 실장. 국내 기업 투자도 시작하자.”

“벌써 회사를 공개하시려고요? 아직 말씀하신 시기는 많이 남았습니다만.”

최소 7년은 지나야 해외 자금을 국내로 돌리겠다고 했던 수안의 말을 상기시키는 배 실장이다.

“그게 아니라… 내 자금이 자꾸 늘어서 놀리기만 할 수는 없게 됐어. 국내는 해외와 완전히 분리해서 진행할 예정이야.”

“음…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겠군요.”

“일전에 강남 건물과 신도시 땅 매입한 사람이 맡아도 되지 않아?”

“이미 강운 비서실에서 파악한 알려진 사람이죠.”

“그러니까. 앞으로 내가 시키는 일만 할 사람이기도 하고, 능력이 없는 사람도 아닌 것 같던데? 나름 이력이 화려하더라?”

“능력이야 출중합니다. 재기할 기회가 없었을 뿐입니다.”

국내 대기업에서 일하던 사람이었지만, 윗선에 줄을 잘못 서는 바람에 퉁겨져 나왔다고 했다.

증권사에도 몇 년 있었고, 해외 유학도 다녀온 실력파였다. 스스로 투자에 관심이 많아 부동산과 주식에 많은 공부를 했고, 배영성과의 작은 인연으로 수안에게 추천되었던 사람이다.

이미 일전에 27억의 돈을 투자하며 깔끔한 업무 처리를 보여 준 바 있었다.

“그 친구에게 내 이름으로 회사 하나 세우라고 해. 비상장 기업, 스타트업 기업을 위주로 발굴하고 엔젤 투자자가 될 투자사야. 겸사겸사 부동산 투자와 국내 주식에도 투자하면서 몸집을 불려 나갈 생각이야. 지금까지 투자한 자산과 이번에 추가할 돈으로 자본금을 삼으면 되겠네. 10억 미만 자본금으로 시작해서 후일 자본금 추가 납입하는 식으로.”

“어렵지 않을 겁니다.”

“정권 바뀌기 전에 얼른 시작하자. 그래야 나중에 제대로 해 먹을 수 있으니까.”

“예. 법인 설립 시작하겠습니다.”

“회장님 허락은 내가 맡아 볼게. 배 실장은 진행만 해.”

* * *

수안은 강 회장에게 이번에 받은 돈으로 사업을 일으키겠다고 말했다.

“…사법 시험은 어쩌려고?”

“제가 판사가 될 것도 아니고, 검사가 될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시험은 그냥 명목상 치르는 겁니다.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회사를 경험해 보고 경영자로 일하면 더 좋지 않을까 합니다. 이렇게 내 손으로 기업을 일으켜 본 경험은 밑바닥부터 기업을 경험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 네가 누굴 닮아서 이러는지….”

“저야… 아버지를 제일 많이 닮았죠. 흐흐. 돈이 돈을 벌어올 텐데 묵히긴 아깝습니다.”

돈, 돈 하는 것을 보니 자기 아들이 분명했다.

“허허. 흠. 고작 투자 회사나 차린다면서 잘도 경험되겠다. 회사를 경험하려면 제조업을 해 봐야지.”

“제조업은 기존 회사를 인수하면 됩니다.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다는 나은 일입니다.”

“네가 실패한다면 내가 널 다시 평가하는 결과만 얻게 될 게야.”

강 회장 나름의 경고였다.

“제가 작은 회사도 제대로 경영하지 못하는 경영자라면 일찌감치 알아보시는 것도 아버지께 좋은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강운 그룹의 경영자가 되려면 능력을 검증해야죠. 그게 저라도 기준은 바뀌지 않습니다.”

“자신감이 넘치는구나.”

“시작도 전에 주눅들 필요는 없으니까요.”

“좋아. 이왕 하는 것 제대로 하길 바라마. 하지만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게다. 네가 다른 일로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하하하. 일은 능력 있는 사람들을 끌어오는 데서 시작하지 않습니까. 제가 없어도 일을 진행할 수 있는 능력자들을 끌어오면 됩니다. 그런 사람을 끌어오는 것도 경영자의 능력 아니겠습니까?”

“끄응. 하여간 말은 잘하는구나.”

“배 실장을 통해서 진행하겠습니다. 배 실장도 이제 운전기사 졸업할 때가 됐거든요.”

“겨우 운전이나 하던 놈을 데리고? 안 봐도 뻔하군.”

“그래도 의대를 진학해 의사 고시도 패스한 사람입니다. 영어도 되고 일어도 가능하죠. 이런 사람을 중히 쓰면 중한 사람이 됩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기본이 되는 사람에게만 통하는 말이죠. 배 실장은 그 부류에 속합니다. 게다가 충성심도 이미 아시지 않습니까?”

“좋다. 이왕 허락하는 것 시원하게 허락하지.”

“이번에도 실망하게 해 드리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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