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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들이 동물센터로 쳐들어왔다 (39)화 (39/90)

#39화.

황후가 나엘을 보았다.

“……황태자.”

“사일러스하고 외출을 하려는데 마침 황후 폐하께서도 신전으로 외출을 하셨다고 하지 뭡니까. 그래서 부랴부랴 쫓아왔는데… 생각지도 못한 손님들이 계셨군요.”

“내가 예상하지 못한 손님은 황자와 황태자입니다.”

순간 딱 타이밍 좋게 사일러스가 끼어들었다. 사일러스 황자가 황후의 곁에 쪼르르 가서 앉은 것이다.

“제가 와서 싫으신 건가요?”

“……그럴 리가요. 그런데 사일러스 황자, 오늘 일정이 있었을 텐데요.”

“그렇지만…….”

“일어나세요, 황자.”

파들파들 떨리는 입꼬리로 애써 미소 지은 황후가 황자의 어깨를 토닥였다.

“형님과 숙부님과 함께라 들뜬 마음은 알지만 오늘 약속도 중요합니다. 이 어미가 뭐라고 했지요?”

똥강아지의 귀가 축 처졌다.

“……약속은 신의의 상징이니 함부로 어겨서는 안 된다고요.”

“그렇습니다. 자, 그러면 일어나야겠지요?”

“네에.”

황후의 재촉에 사일러스가 비척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든든한 지원군을 잃은 체이스도 마찬가지였다.

황후가 황자와 함께 떠나면 더 이상 나를 압박할 명분이 없는 것이다.

“공작, 다음에도 볼 수 있으면 좋겠군요. 체이스, 이만 가는 게 좋겠습니다.”

황후가 싸늘하게 내게 말했다.

체이스가 나를 몇 번이고 돌아보았지만 황후의 뜻을 거스를 순 없었다. 체이스가 내 손등에 빠르게 키스했다.

“다음에 이 이야기를 마무리하시지요, 아가사 공작.”

“이게 미쳤……. 합.”

황후가 있었지.

체이스가 느물거리며 웃고는 황후를 쫓아갔다. 한숨을 푹 내쉬곤 손을 치마에 벅벅 닦고 있는데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사일러스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를 왜……?

“……우리 형님을 가졌다고 생각하지 마.”

“웨?”

뭐라는 거야, 이 똥강아지는?

“우리 형님을 함부로 넘봤다가는 내가 가만히 두지 않겠어!”

파르르 떨며 쏘아붙이던 사일러스가 벌떡 일어났다. 마치 아들을 낳은 첩을 노려보는 중전의 눈빛으로 나를 한 번 더 노려보고는 뛰어나갔다.

“……허.”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였다. 정말 폭풍 같은 시간이었다.

늘어진 내 옆에 나엘이 앉았다. 나엘이 피식 웃으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나를 많이 기다렸나 봐.”

“안 오시는 줄 알았어요.”

“오겠다고 했잖아.”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나엘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덧붙였다.

“내가 뭐라고 했어, 아가사.”

“네, 네. 황태자 전하의 말이 다 맞아요.”

나는 속으로 백기를 흔들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황후가 저렇게 나온 것을 보아 쉽게 포기할 것 같지 않았다. 황후가 먼저 의사를 내비쳤는데 아무 다른 남자를 데려올 수도 없었다.

결국 내게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정말… 저는 정말 싫거든요.”

“그런데?”

“저는 정말 싫은데 어쩔 수가 없어서요.”

나엘이 나를 힐끗 보았다.

“힘들어 보이는데.”

“……너무 긴장했나 봐요.”

“기대도 돼.”

“네?”

나엘이 제 어깨를 툭툭 쳤다.

“기대도 된다고.”

그 말에 왜 안심이 됐는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떨어뜨려 나엘의 단단한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그 순간 눈물이 톡 떨어졌다. 그러곤 서러운 목소리가 툭 하고 튀어나왔다.

“정말 무서웠거든요.”

“…….”

“내 인생은 내 건데……. 내가 왜…….”

“…….”

짜증이 치솟았다.

나도 나만의 힘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운명과 시간은 나를 기다려 주질 않았다.

무력했다.

진짜 다이아몬드 수저면 뭘 해.

차라리 아가사의 선택이 옳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성이라곤 하나도 없는 망아지처럼 굴었는데, 그 사실이 아가사를 지켰으니까.

“정말 싫거든…….”

코를 훌쩍였다.

“알아.”

나엘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계약일 뿐이야. 서로에게 변수가 생기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는 계약. 서로에게 필요한 것만 얻으면 그만이지.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머리가 터질 것 같다.

거지 같은 상황에서 나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런데 나엘은 남자 주인공이고.

여자 주인공인 루시아는 나엘이 싫다고 그랬고.

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싶었다.

나, ‘아가사 유나 슈타디온’을.

“……우리 약혼해요.”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 순간 커다란 손이 내 머리 위로 툭 하고 떨어졌다.

기이할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 손이었다.

* * *

마차에 탄 나엘은 고개를 기댄 채 두 손을 맞잡아 다리 사이로 떨어뜨렸다.

‘아가사가 울었다.’

독하디 독한 여자애였다. 그간 한 번도 눈물을 보인 적 없었다. 표독스럽게 나엘을 노려보는 눈빛, 집착적으로 그를 붙들던 손길.

그런 건 기억하고 있어도 눈물은 모른다.

나엘이 눈살을 찌푸렸다.

소리 없이 떨어지던 눈물이 무슨 변화를 일으킨 것인지.

나엘은 계획에 없었던 말을 또 내뱉었다.

‘변수가 생기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계약.’

아가사가 결국 약혼이라는 말을 내뱉었을 때 나엘은 조금 안도했다.

결국 아가사는 나엘의 손을 잡은 것이다. 다른 그 누구의 손이 아니라, 그의 손.

나엘이 아가사가 기댔던 어깨를 손으로 덮었다.

아가사의 눈물이 스민 어깨가 불에 타는 것처럼 뜨거웠다. 이미 말랐지만, 그 열기는 화인처럼 남아 있었다.

‘울 정도로 내가 싫어?’

그 눈물이 자꾸 생각난다.

나엘이 이를 악물었다. 기어이 잊혀지지 않을 낙인이 그에게 남았다.

“아가사.”

복잡한 마음을 채 추스르지 못했을 때 마차가 멈췄다.

“황태자 전하, 도착했습니다.”

나엘이 한숨을 삼키곤 마차에서 내렸다. 이 ‘계약 약혼’ 문제를 빠르게 처리할 생각이었다.

황제의 앞에 가서 이 일을 고하고 허가를 받아야 했다. 황후보다 더 빨리.

그런 생각으로 걸음을 서둘러 집무실의 문을 연 순간.

팔랑.

나엘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종이를 손에 쥐었다.

멍하니 방안을 보았다.

난장판이었다.

서류가 죄다 찢긴 건 물론, 허공에 마구 날리고 있었다. 책상 위에서 서류를 파헤치고 있던 강아지 한 마리가 고개를 들었다.

“으르르르르르…….”

히샤……?

“대체 뭐가 문제야.”

하.

* * *

코를 비볐다.

볼을 탁탁 쳤다.

“어때. 이 정도면 괜찮아?”

“네, 공작님.”

루시아가 안쓰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다시 한번 얼굴 확인을 하고 나서야 마차에서 내렸다.

아니, 안 그래도 황태자 안티 클럽 회장직을 맡고 있는 엠마가 이 일을 알면 뒤로 넘어갈 것 같은데.

거기에 울기까지 한 걸 들키면…….

아휴.

내가 마차에서 내리니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아기들이 달려왔다.

“왈왈!”

“멍멍멍!”

“냐이아옹!”

“크엉컹!”

그래, 나도 보고 싶었다.

여기가 바로 나의 힐링 파라다이스!

행복해진 기분으로 그들을 향해 팔을 벌렸다. 그런데 방해물이 끼어 있었다.

“큼!”

이브라임?

여기도 재난이로구나.

“표정이 안 좋은데?”

“나? 완전 괜찮은데?”

“부었잖아.”

“에, 아니야! 자다 깨서 그런가 봐. 마차에서 졸았더니…….”

“그럴 리 없는데.”

“이럴 땐 모르는 척해 주기도 하는 거야.”

이브라임이 피식 웃었다.

이브라임이 젤리를 안아 들고는 내게 다가왔다.

“무슨 일 있었어? 예배를 다녀온다더니.”

“……별거 아니야.”

“내가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이브라임이 웬일인지 나한테 귀찮게 추근거렸다. 필요한 게 있나. 왜 저래.

“나한테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대마법사나, 대신관이나, 황제나, 황태자뿐이야.”

이브라임이 눈살을 찌푸렸다.

“권력이 필요한 거야?”

“비슷해.”

“……대마법사라.”

이브라임이 턱을 쓸었다.

“그건 귀찮은데.”

“뭐?”

“아니야.”

이브라임이 어깨를 으쓱했다.

“가서 얼음찜질이라도 해. 얼굴을 얼려 줄까?”

“됐거든.”

왜 이렇게 귀찮게 굴까. 뒤를 졸졸 쫓아오는 이브라임과 루시아를 간신히 떨쳐 냈다.

오늘 내 주인공에 대한 면역력은 여기까지야……. 나 좀 내버려 둬…….

* * *

나엘이 황제의 앞에 고개를 조아렸다.

“황제 폐하.”

“오, 나엘.”

황제가 나엘을 기쁘게 맞이했다. 욕심이 가득한 눈두덩이가 부드럽게 휘었다.

황제의 눈동자에는 호의가 가득했다. 그것이 아들에 대한 사랑이었느냐?

그럴 리가. 황제는 오로지 자신만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황제가 나엘을 반겨 맞이하는 이유는 단 하나.

나엘이 ‘빼앗긴 땅’을 되찾아 줄 유일한 사람이라고 여기기 때문이었다.

나엘이 태어날 때 능력이 없기는 해도 신수가 태어났다. 신수는 승리의 상징이다. 그리고 황제의 아들은 그 신분에 맞게 영광을 가져올 것이다.

“아버지께 청이 있습니다.”

나엘이 ‘아버지’란 호칭과 함께 부드럽게 웃었다.

나엘은 자신을 향한 황제의 호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바라는 것도.

“청? 그게 무엇이지.”

“본디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황족은 결혼을 하는 것이 관례 아닙니까.”

“그렇지.”

“하지만 저는 지금 약혼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전쟁을 앞두고 있는데도 그렇습니다.”

황제의 눈이 가늘어졌다. 나엘이 무엇을 바라는 거지?

“그래서?”

“약혼을 하고자 합니다. 허하여 주십시오.”

“마음에 둔 가문이 있느냐?”

“슈타디온의 아가사와의 약혼을 허락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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