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 (172)화 (407/486)

제172화

제국에 존재하는 고아원은 크게 나라에서 운영하는 국립고아원과 개인이 보조금을 받아 운영하는 사립고아원으로 나뉜다.

레이첼과 노엘이 머물렀던 희망의 집은 이아론 후작가와 알레테이아 교단이 명목상 후원하는 사립고아원이었다.

사립고아원은 대개 가난했고 원장이 후원금이라도 중간에서 꿀꺽하는 경우에는 먹을 것이 부족해 아이들이 굶어 죽는 경우도 빈번한 곳이었다.

그런 희망의 집 근처 바닷가에서 노엘을 주운 건 보육원장인 마담 폰디도, 보육원의 가장 큰 후원자였던 레이디 뮤리엘도 아닌 레이첼이었다.

“원장님, 원장님! 바닷가에 사람이 쓰러져 있어요!”

“바다신의 노여움을 산 모양이지. 네게 배급될 빵이라도 나눠 줄 게 아니라면 내버려 두거라.”

원장인 마담 폰디는 보육원에서 맡은 아이들의 머릿수를 헤아릴 때 아이 입에 들어가는 빵이나 수프 값 따위를 읊을 만큼 수전노였다.

“레이디 뮤리엘, 저렇게 내버려 두면 저 사람은 죽고 말 거예요.”

“저 아이의 생과 사는 에티모스 님이 돌아오시는 날, 그분이 결정하실 거란다.”

‘하지만 에티모스 님이 언제 돌아오실 줄 알고? 그전에 죽겠다!’

레이첼은 제 말에 건성으로 대꾸하는 뮤리엘의 말에 숨이 턱 막혔던 순간을 떠올렸다.

결국 아무도 바닷가에 쓰러진 소녀를 구조하려고 들지 않아 레이첼은 작은 몸을 이끌고 혼자 노엘을 모래사장에서 건져 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 노엘은 내가 구했어.’

노엘을 구한 것은 늘 누군가의 동정으로 먹고살았던 레이첼이 처음 베푼 선행이자 가장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그런 노엘을 내가 해치려고 할 리가 없잖아.’

레이첼은 또다시 울컥 치밀어오르는 눈물을 애써 참아 내며 제 손등을 꾹 즈려밟는 간수를 노려보았다.

“감히 제국의 공녀를 해하려 한 네 죄가 크다!”

여태 자신에게는 관심도 없었으면서, 옆에 선 어린 공녀의 눈치를 보는 건지 남자는 엄한 얼굴로 레이첼을 겁박하기 시작했다.

그런 간수에게 지지 않고 눈을 부라리는 레이첼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레오노라는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다가 입술을 벌렸다.

“잠깐 둘이 있게 해 줘요.”

“위험합니다.”

“…이름이 버트라고 했나요, 경? 안내해 주느라 고생했어요.”

“조심하시고 10분 뒤에 모시러 오겠습니다!”

고사리손으로 간수에게 뭘 쥐여 줬는지, 레이첼에게는 사납기만 하던 그가 헤벌쭉 웃으며 감옥을 벗어난다.

‘날 추궁할 셈이겠지.’

레이첼은 자신에게 천천히 다가오는 레오노라를 피해 뒤로 물러나다 등에 벽이 닿는 것을 느끼고 와락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나는 노엘을 해치지 않았는데! 아니, 그 누구도 해친 적이 없는데!’

레이첼은 억울했다.

억울해서 눈물이 펑펑 날 지경이었지만, 고아인데다 노엘처럼 뛰어난 이능도 없는 레이첼의 말에 귀를 기울여 줄 사람은 없었다.

“몸은 좀 괜찮아?”

레오노라의 물음에 자리에서 발딱 일어난 레이첼은 씩씩거리며 벌게진 눈가를 문질렀다.

“난 너한테 독 먹인 적 없어! 내가 범인이라면 노엘까지 쓰러질 리 없잖아! 내가 왜 노엘에게 독을 먹이겠느냐고!”

“알아.”

레이첼은 무심한 아이의 대답에 화들짝 놀라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뭐?”

“네가 안 그랬다는 거 안다고.”

상대가 놀라든 말든 여상한 태도로 대꾸한 레오노라가 터덜터덜 다가와 레이첼의 어깨를 붙잡는다.

“그냥 네게 죄를 뒤집어씌우기 적당한 상황이라 뒤집어씌운 것뿐이지, 상대도 별 악감정은 없을걸.”

“그게 무슨….”

“레이디 뮤리엘이나 교단이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네게 호의를 베풀어줄 때도 의심했어야지.”

레오노라의 무덤덤한 말에 내내 울먹이던 레이첼은 한 대 얻어맞기라도 한 듯 작은 주먹을 꾹 쥐었다.

“그건 노엘, 노엘이 대단하니까…. 끄읍, 레이디 뮤리엘이 친절했던 건, 노엘 덕분에…!”

레이첼은 자신이 순진했기 때문에 노엘이 위험에 빠졌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억울함, 교단에 대한 원망이 눈앞에 서 있는 어린 공녀를 향한 미움으로 탈바꿈하는 순간,

“킁해. 킁.”

레오노라가 레이첼에게 손을 뻗었다.

“어서.”

팔랑이는 흰 손수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레이첼은 공녀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코를 풀었다.

“크… 크응!”

“아효.”

코찔찔이 레이첼을 향해 귀엽게 눈을 흘긴 레오노라가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연다.

“그래, 네가 뭘 알았겠어. 열 살도 안 된 어린애인데.”

고아들이 대개 그러하듯 레이첼은 아이 취급을 받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같은 어린아이에게선 더더욱.

당황해 멍하니 입만 벙긋하는 레이첼을 흘긋한 레오노라가 아이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으며 말을 잇는다.

“나는 널 도망가게 해 줄 거야. 물론 노엘이랑 함께.”

“어, 어째서?”

“네가 범인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날 믿어 주는 거야?”

레이첼이 말까지 더듬으며 묻는 말에 레오노라가 둥근 눈을 느릿느릿 꿈뻑이며 대답한다.

“응. 그러니까 그만 울어.”

“…….”

“억울해서 서러운 건 알겠는데, 계속 그렇게 울면 진 빠져서 도망도 못 갈걸.”

“흐어엉-!”

그 말에 더 서러운 울음을 터뜨리는 레이첼을 레오노라는 별수 없다는 얼굴로 안아 주었다.

* * *

“노엘, 정신이 들어요?”

“…….”

“반쯤 잠에 든 거나 마찬가지인 상태라 정신 차리기 힘들겠지만, 기운을 쥐어짜 내서라도 내 말 들어봐요.”

힐다가 약을 먹여 재운 노엘의 몸에 아직 약효가 남아 있었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강행군을 시켜야만 했다.

‘내가 쓰러진 줄로만 알고 황실과 공작가가 허둥지둥하는 지금이 아니면 둘 다 들키지 않고 외국으로 도피시키는 건 불가능해.’

특히 황성 의료원에서 빼내 온 노엘의 경우, 그녀가 없어졌다는 게 발각되면 이번 일을 레이첼에게 덮어씌우려는 아이네스가 어떻게 나올지 몰랐다.

“레이첼을 데리고 지금 당장 도망가야 해요. 수도항에 여객선이 들어와 있는데 두 사람 몫으로 티켓을 사 놨어요.”

나는 내 말귀를 알아들었는지 아닌지, 도통 확인이 불가능한 얼굴로 눈을 반쯤 감은 노엘의 턱을 들었다.

“동이 트면 내가 준비한 마차를 타고 수도를 빠져나가야 해요.”

“…….”

“내 말, 알아듣고 있는 거죠?”

“내가 노엘을 잘 챙길게! 걱정하지 마.”

대답하지 못하는 노엘을 대신해 레이첼이 야물딱지게 대답했지만 휘청휘청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노엘의 상태에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갓 태어난 아기 사슴도 아니고….’

나는 앞으로 고꾸라지려는 노엘을 덥석 받아 든 채 마부 옆에 앉은 히스를 돌아보았다.

“히스, 최대한 비밀리에 움직여야 해서 따로 공작가의 호위를 붙이진 못했어. 네가 항구까지 잘 데려다줄 수 있지?”

“네.”

걱정하는 나를 안심시키듯 바로 고개를 끄덕인 히스가 노엘을 직접 에스코트해 마차에 태운다.

“조심해서 가요. 남부에 도착하면 바로 연락하고.”

나는 레이첼과 노엘을 하차니아에서 가장 먼 제국의 끝, 아르델에 숨기기로 했다.

하차니아와 아르델은 가문 자체만 보면 데면데면한 사이여서 아이네스가 의심하지 않을 테니까.

‘다행히 로렐라인이 도와주겠다고 나섰어.’

이래서 친구는 많이 사귀면 사귈수록 도움이 되는 법이다.

나는 이제 코앞에 다가온 겨울을 담은 듯 시린 새벽 냄새에 코를 찡긋하며 마차에 자리 잡은 노엘과 레이첼을 올려다봤다.

“고마워.”

마차 밖으로 얼굴을 쏙 내민 레이첼이 내게 손을 뻗으며 작게 속삭인다. 나는 아이의 뒤로 언뜻 보이는 노엘의 옆모습을 훔쳐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우리를 도와주는지 물어봐도 돼?”

교단과 레이디 뮤리엘이 자신을 주저 없이 버리는 모습에 깨달은 바가 없지는 않은지, 레이첼은 내게 고맙다고 말하면서도 끝까지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이걸 기특하다고 해야 할지, 괘씸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나는 눈을 가늘인 채 나를 바라보는 레이첼의 모습에 헛웃음을 지으며 주머니를 뒤졌다.

삐익- 삐이익-

노엘과 조우할 때마다 품 안에서 요동쳤던 친자 판별기였다.

‘가스파르에게도 같은 물건을 쥐여 줬지만, 노엘을 마주쳤을 때 아무런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했어.’

그럼 가스파르와 노엘은 결국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런데도 내 아티팩트만 이렇게 울린다는 건….’

“이게 뭔데?”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둥근 눈을 크게 뜨는 레이첼에게 웅웅 울고 있는 아티팩트를 건네주었다.

“곧 다시 만나게 될 거야. 그때 설명해 줄게.”

“…알겠어.”

“그때까지 노엘을 잘 부탁해.”

우리 가족이 아주 오랫동안 그리워한 사람일지도 모르니까.

나는 언덕 너머로 점점이 사라지는 마차를 지켜보다 앙당그레 주먹을 쥐었다.

‘만약 노엘이 정말 우리 엄마라면, 교단이 눈치채기 전에 아이네스를 반드시 끌어내려야 해.’

한 번 잃은 가족을 또다시 잃고 싶지는 않았다.

루카스도.

나는 입술을 꾹 깨문 채 동이 트는 하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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