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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 (145)화 (380/486)

제145화

“…시끄러우니 다 나가 줬으면 좋겠는데.”

터억.

내 어깨를 짚은 자카리가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이며 내뱉는 말에 실비와 에녹이 와그작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에녹, 실비. 둘 다 나가.”

나는 가족들끼리 싸움이라도 할까 봐 흠칫하며 실비와 에녹의 등을 떠밀었다.

“…알았어. 근데 지가 뭔데 네 어깨를 막 잡아?”

“나가긴 하겠지만 불쾌하군.”

“응응, 이따 연무장에서 보자~!”

나는 떨떠름해하는 실비와 에녹의 코앞에서 문을 재빨리 닫고 뒤를 돌았다.

“너….”

시큰둥하게 나를 응시하던 자카리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인다.

“리니는 나가지 말라고요?”

나는 나를 노려보는 자카리를 올려다보며 방긋 웃었다.

“리니는 다 알아. 자카리 오라버니는 사실 나를 좋아해.”

모른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라는데 친하지도 않은 오라비 마음을 어찌 아누.

하지만 나는 세뇌라도 하듯 자카리의 손을 꼬옥 붙든 채 속삭였다.

“우리는 가족이니까요.”

“……어이.”

‘어이없다는 말이겠지?’

“어이가 없어졌다구요?”

“…….”

“아이코, 큰일이네! 리니가 어이 찾아 줄게요~!”

내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창가로 돌아간 자카리가 두눈을 감아 버렸지만, 나는 그를 종종걸음으로 뒤따르며 연신 목소리를 높였다.

“어이야~! 우리 어이 어디 갔어~?! 앗!”

내가 시끄럽다는 듯 나를 제 품으로 끌어당긴 자카리가 내 입을 막아 버리며 인상을 쓴다.

나는 영 호의가 보이지 않는 자카리의 무표정한 얼굴에 멋쩍게 턱을 긁었다.

‘실비나 에녹이나 처음부터 날 너무 귀여워해서 자카리는 어떻게 친해져야 할지 모르겠네.’

아무래도 오빠 꼬시는 재주는 없는 모양이었다.

‘뭐, 어차피 여주 편될 놈이니까 상관없나.’

* * *

레오노라가 태어날 무렵 자카리는 이미 전장에서 구르고 있었다.

해서 난생 처음 보는 막냇동생은 가족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아니, 아예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레오노라의 뽀얀 얼굴을 노려보던 그는 길쭉한 손가락을 들어 아이의 찹쌀떡처럼 말랑해 보이는 뺨을 꾸욱 누르며 고개를 기울였다.

‘이런 게 귀엽다는 건가.’

아이의 투실투실한 볼살 위로 하늘하늘한 머리카락이 흘러내린다.

가닥가닥 빛이 나는 실버블론드의 머리는 그에게 꼭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색만 같지, 이건 고양이가 가지고 놀 만한 실뭉치 같군.’

제 손바닥의 반도 채우지 못할 것만 같은 작은 주먹이 잠결에 뽀시락뽀시락 움직이는 게 신기했지만, 그와 동시에 기묘한 그리움이 찾아든다.

‘어머니와 닮은 건가.’

하지만 그 감정은 자카리를 슬프게 했다. 자카리는 노엘을 지키지 못했으니까.

그건 가스파르도 마찬가지였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죽음을 파헤치지 않으셨다.’

자카리가 그의 아버지를 절대로 용서하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였다.

어린 그를 전장에 보낸 것도, 흑랑을 떠맡긴 것도 원망할 이유는 되지 못했으니까.

“…….”

서재 구석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고개를 슬쩍 돌린 자카리는 씩씩한 뒤통수 하나와 차분한 뒤통수 하나를 발견하고 미간을 좁혔다.

“무슨, 용건….”

서서히 졸음이 몰려와 제대로 사고하는 게 힘들어졌지만, 자카리는 애써 동생들을 돌아보며 입술을 움직였다.

“형님 보러 온 거 아닙니다.”

“리니 자는 거 구경하려고 온 거예요.”

‘이따위 것을 구경해서 뭐 한다고.’

에녹의 대답에 자카리는 제 품에 안긴 레오노라를 힐끗했다.

“…근데 팔 불편하지 않아요?”

“불편하시다면 제가 안고 돌아가겠습니다.”

‘갑자기 심하게 졸음이 몰려오는 것 같군.’

자카리는 실비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두눈을 감아 버렸다.

레오노라를 꼭 끌어안은 팔의 힘은 풀지 않은 채.

* * *

별관에 마련된 내 전용 집무실에 자르파라를 불러들인 나는 상단 운영 보고서와 함께 루카스의 행방을 넌지시 물어봤다가 의외의 대답에 눈살을 찌푸렸다.

“루카스의 행방이 묘연하다고?”

“네, 빛이시여.”

내 물음에 살짝 고개를 끄덕인 자르파라가 곤란하다는 듯 입술을 달싹인다.

“안 그래도 빛께서 궁금해하실 것 같아 개인적으로 알아본 참입니다. 신전에서 의식을 되찾은 것을 목격한 신관이 있다고는 하는데, 행방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그레고르가 해코지를 할까 봐 몸을 숨긴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한테까지 행방을 숨길 필요는 없지 않은가.

‘뭐야. 설마 이제 필요 없어졌다고 이러는 거야?’

나는 나날이 불어 가는 자르파라 상단의 자금을 흐뭇하게 살피면서 그녀를 힐끔했다.

“…혹시 뭐 나한테 따로 온 연락 같은 건 없어? 은밀한 전보나 뭐 그런 거.”

내 물음에 초롱초롱 눈을 빛낸 자르파라가 제 주머니를 뒤적여 편지 한 묶음을 꺼내 든다.

“상단주 앞으로 파티 초대장이라면 이렇게나 많이 왔습니다, 나의 태양이시여. 귀찮으실까 봐 전달하지 않았습니다만.”

“그런 거 말고….”

“네?”

“아냐, 됐어.”

‘진짜 별로 안 섭섭해. 어차피 나도 별로 안 보고 싶어.’

조금.

아주 조금 서운할 뿐이거든?

‘흥이다.’

입술을 삐죽인 나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은 다음 집무실을 나섰다.

이제 슬슬 자르파라의 상단이 함선 사업에도 손을 뻗어야 하기 때문에 아빠와 상의할 일이 여럿 있었으니까.

“이, 이러지 마세요, 도련님.”

“가만히 있어. 너 내가 누군지나 알아?”

중정을 건너 본관에 들어서는데 어디선가 실랑이를 벌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음? 누구 대사인진 몰라도 엄청 고전적이네.’

싶어 우뚝 멈춰 서자, 싫다는 여자를 귀찮게 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뒤따른다.

“무려 이아론 후작님의 조카 손주라고! 이아론 후작님은 손주가 없어서 내가 다음 대 후계자나 마찬가지인데 영광으로 알 것이지!”

‘세르주군.’

뺀질뺀질하니 사고 치고 다닐 관상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남의 집에서 사고를 치고 다닐 줄이야.

나는 기가 막혀 한숨을 푹 내쉬곤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예상했던 대로 겁에 질려 벌벌 떠는 하녀를 벽 끝에 몰아세운 세르주가 혀를 쯧 차며 그녀의 턱을 잡고 우악스레 돌리고 있었다.

“뭐 딱히 별 볼 일도 없는 계집이 깐깐하게 굴기는.”

‘엔젤라잖아.’

엔젤라는 룰루랄라의 먼 친척으로, 공작성 하녀 중에는 막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어렸다.

“야.”

바닥에서 짱돌을 주워 든 내가 세르주를 부르자 엔젤라와 그가 동시에 나를 돌아본다.

“우리 집 하녀 건드리지 마!”

나는 씩씩하게 말하며 손에 쥔 짱돌을 집어던졌다.

휘리릭-!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돌이 세르주의 이마를 정확히 가격한 후 떨어진다.

“어억!”

‘역시 내 실력, 녹슬지 않았어.’

괴로워하는 세르주를 향해 의기양양하게 웃어 보인 나는 겁먹은 엔젤라에게 손짓했다.

“엔젤라, 이리 와.”

“아가씨…!”

여덟 살 응애인 나보다 겨우 몇 살 많을 뿐인 엔젤라가 울먹이며 내게 뛰어온다.

“가, 감히 날 때렸어?”

붉게 달아오른 이마를 쓱쓱 문지르며 벌떡 일어난 세르주의 말을 한 귀로 흘린 나는 엔젤라를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엔젤라, 아까 룰루가 찾더라. 가 봐!”

“네!”

내 말에 엔젤라가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세르주가 이를 부득 갈며 그녀를 노려본다.

“이름이 엔젤라라고? 움직이기만 해.”

세르주의 말에 흠칫 놀란 엔젤라가 걸음을 멈추자 그는 의기양양하게 말을 덧붙였다.

“이아론 후작가의 모래사막단 솜씨를 보고 싶지 않으면 내 말 듣는 게 좋을걸.”

‘후작이 일개 방계 아이에게 암살부를 움직일 만한 권한을 줬다고?’

나는 세르주의 말이 믿기지 않아 미간을 모은 채 겁먹은 엔젤라를 돌아봤다.

“엔젤라, 공녀의 명을 듣지 않을 셈이야?”

“히윽, 아가씨이….”

“이아론 후작가의 모래사막단 따위, 흑랑(黑狼)과 백랑(白狼)의 힘 앞에선 재 한 줌 가치도 없는 법이지.”

나는 울먹이는 엔젤라 대신 세르주를 응시하며 느릿느릿 말을 이었다.

“게다가 세르주에게 모래사막단을 움직일 권한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내 말에 고개를 꾸벅 숙인 엔젤라가 종종걸음으로 복도를 벗어난다.

“하녀의 안위 따위 귀족이 신경 쓸 필요도 없을 텐데 왜 방해하는 거지?”

엔젤라가 코너를 돌자마자 세르주가 험악하게 인상을 구긴 채 내게 다가온다.

“네가 아끼는 아이라도 되는 건가? 그럼 팔아. 몸값이라면 두 배 쳐 주지.”

“유감이지만 우리 집 고용인들 중에 노예는 없어, 세르주.”

“고용인이나 노예가 뭐가 다르다고!”

“멍청하면 모를 수도 있지.”

세르주의 말에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빤히 바라보던 소년이 피식 웃으며 제 앞머리를 쓸어 올린다.

“아아, 알겠다.”

“……?”

“너, 질투하는 거구나.”

나는 갑작스러운 세르주의 말에 기가 막혀 입술을 깨물었다.

‘질투? 갑자기 무슨 질투?’

“이 몸이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가지는 걸 투기하다니. 너도 결국 평범한 계집일 뿐이었나.”

“…….”

“하긴, 난 너무 잘생겨서 매사 오해를 사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고 어머니가 주의를 하시긴 했다.”

“미친놈이었네.”

미친놈에게는 매가 답이었기에 나는 다른 짱돌을 찾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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