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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 (120)화 (355/486)

제120화

쁘띠 플뢰르의 마경은 눈앞에서 언덕이 통째로 날아가 넋이 나간 모드와 스텔라,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바주카포를 어깨에 얹은 채 씨익 웃고 있는 레오노라를 번갈아 비춰주었다.

“…세상에!”

폭발적인 힘을 지닌 마력으로 이루어진 구(球)는 오러구와 비슷해 보였지만, 제국 최고의 소울나이츠들로 이루어진 적랑이나 백랑의 기사들조차 저만한 파괴력을 지닌 오러구를 생성해 내진 못할 것이다.

사람들의 경악 어린 탄성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저게 도대체 뭐죠? 거대한 총인 건가요?”

“마법사들의 아티팩트처럼 보이진 않는데….”

마탄의 위력이 어찌나 대단했는지, 쁘띠 플뢰르의 본선이 벌어지고 있는 돔과 꽤 거리가 있는 수도 광장에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의 뺨에 마력의 진동이 닿을 정도였다.

“방금 공녀님께서 보여주신 마력, 도대체 뭡니까!”

쁘띠 플뢰르를 그저 사교계 귀부인들의 유흥거리로 치부하며 감흥 없는 시선으로 마경을 지켜보던 장-피에르 로네, 황궁 직속 제 1기사단의 단장이 잔뜩 흥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울마스터라도 되는 겁니까?”

그는 광장에 모인 사람들 중 유일하게 하차니아 공작가에 속한 헨리 마사드를 닦달하듯 몰아붙였다.

“그, 글쎄요. 지금보다 더 어릴 때 그러실 수도 있겠다, 싶은 순간이 있기는 했지만….”

헨리는 세 살 무렵의 레오노라가 정례 회의 때 선보였던 능력을 떠올리며 멋쩍은 뺨을 긁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마력이 소실된 것처럼 아무런 이능을 발현하지 못하셨었는데.’

“지금 제 가문에서 소울마스터가 배출되었는지 아닌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겁니까, 헨리 마사드!”

헨리의 대답이 영 탐탁지 않았는지 선이 굵은 장-피에르의 얼굴이 와그락 일그러진다.

“저 나이에 저만 한 오러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천재는 역사에 존재한 적이 없을 겁니다! 그런데도 알아보지 못했다니, 그게 말이나 됩니까!”

“저희 공녀님께서 워낙 공사가 다망하신데다 다방면으로 뛰어난 영재시다 보니, 모시는 저조차 공녀님의 능력을 전부 파악하지는 못했습니다.”

헨리의 뒤늦은 변명에 장-피에르는 턱을 바닥에 떨구기라도 할 것처럼 크게 벌리며 경악했다.

“저, 저만한 위력의 오러구를 생성해 낼 수 있는 마력이 공녀의 능력 전부가 아니라는 말입니까?”

“예에…. 우리 공녀님이 워낙 출중하시다 보니 보좌하는 저희가 지금처럼 민망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또 무슨 능력이 있기에?”

“뭐, 예를 들어 지금 손에 들고 계신 무기도 직접 제작하신 겁니다.”

물론 헨리는 레오노라가 어깨에 얹고 있는 바주카포가 아크레아의 유물인 셉터를 이용해 개조한 무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아가씨가 적국이었던 아크레아의 성물을 사용하고 계신다는 게 알려지면 호사가들이 가만히 있질 않겠지.’

레오노라가 제랄드 아티팩트 공방을 진두지휘하는 숨은 1인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헨리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관찰하는 바주카포를 대강 그녀의 천재성으로 포장했다.

“세상에, 아직 여덟 살밖에 안 되시지 않았나요?”

“이 수준이면 단순한 영재 정도가 아니잖아요!”

‘젠장!’

카라는 소스라치게 놀라는 사람들 속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입술을 깨물었다.

‘내 청사진이 전부 어그러졌잖아! 저 망할 계집애 때문에!’

카라는 레오노라가 발칙한 아이라는 걸 진즉 알아봤었다.

‘내가 저 어린 계집애의 함정에 걸려든 거야.’

레오노라는 성인 남성들과 대치하는 모습을 연출해 불쌍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더니, 이목이 집중된 순간 숨겨 뒀던 힘을 내보였다.

마치 미리 계획이라도 한 것처럼.

까드득, 이빨 갈리는 소리가 울릴 정도로 입을 악다문 카라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무너진 언덕 아래에 주저앉아 있는 모드에게 통신을 시도했다.

[일어나, 모드 이아론!]

[…….]

[지금 가만히 주저앉아 뭐하고 있는 거야! 흙더미 속에 뒹구는 한이 있더라도 깃발을 손에 넣어야지…!]

골목에 숨어든 채 카랑카랑하게 목소리를 높여 봤지만, 모드와 연결된 통신석은 묵묵부답이었다.

‘이 멍청한 계집!’

카라는 마경이 비추는 모드의 망연자실한 모습에 제 머리채를 쥐어뜯으며 아악, 패악 같은 비명을 내질렀다.

“예하, 어디 편찮으신 건가요?”

갑자기 사라진 카라를 찾아 나선 귀부인 몇몇이 담벼락을 마구 걷어차고 있는 카라를 발견하고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다가온다.

“괜찮으세요?”

모두 추기경인 그녀를 존경해 호감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예. 괜찮고말고요.”

카라는 자신의 흐트러진 모습을 어쩌다 목격하게 된 귀부인들을 향해 생긋 웃으며 손을 뻗었다.

“하지만 방금 목격하신 제 모습은 잊으셔야겠어요.”

“네? 아악!”

카라는 어리둥절한 귀부인들의 이마에 아주 오래전부터 금기시되었던 기억조작의 인을 그려 넣었다.

‘부작용으로 기억 능력 감소나 언어 장애가 생길 수 있어서 금지된 술법이지만, 내 알 바 아니잖아?’

그러게 누가 눈치 없이 광장을 빠져나오는 자신을 찾아오랬던가.

“게다가 시베트 네년은 아까 대회가 끝나면 감히 비밀 심사 위원인 나를 추궁하겠다고 함부로 입을 놀렸었지?”

귀부인들은 초점을 잃고 담벼락에 인형처럼 멍하니 기대섰다. 카라는 그 여인들 중 한 명의 목을 꺾을 것처럼 억세게 붙들었다.

“고작해야 한미한 자작가의 안주인 주제에 추기경인 내게 항의를 하겠다고?”

“죄… 죄송, 으윽!”

시베트 자작 부인은 멜리사 왕녀의 오랜 친구이긴 했지만, 교황위를 목전에 둔 카라는 더는 왕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이 골목에서 겪은 일은 전부 잊도록 해. 감히 쁘띠 플뢰르의 선발 기준에 의구심을 품을 생각도 하지 말고.”

성력을 이용한 언령(言令)으로 시베트 자작 부인과 무리를 세뇌한 카라는 쁘띠 플뢰르의 비밀 심사 위원의 가면을 쓴 채 유유히 골목을 빠져나갔다.

* * *

“…기, 깃발이 전부 공녀의 오러구에 녹아 버린 것 같습니다!”

무너진 언덕을 파헤쳐 상황을 파악한 운영 위원은 반가면 아래로도 크게 당황했다는 게 느껴질 만큼 덜덜 떨려 오는 목소리를 높였다.

“운영 위원들이 판정을 내릴 때까지 참가자 전원은 대기실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그의 쁘띠 플뢰르의 본선은 잠시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쁘띠 플뢰르는 심사위원을 제외하면 운영 위원이 좀처럼 바뀌지 않는 전통 있는 대회라고 듣긴 했지만, 아무리 노련한 운영 위원이라도 이런 상황은 처음이겠지.’

대기실에 다소곳하게 앉아 마경이 비추는 운영 위원들의 당황한 모습을 힐긋한 나는 고개를 비스듬히 꺾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본선 주제부터 말이 되질 않았으니까.’

아이네스와 카라의 고집에 쁘띠 플뢰르를 사랑할 운영 위원들만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그들의 골치를 가장 아프게 하고 있을 사람은 나였지만, 나는 이 모든 것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 양 혀까지 끌끌 차며 운영 위원들의 모습을 마경으로 구경했다.

“너, 너, 너-!”

운영 위원들에게 부축을 받아 끌려오다시피 대기실에 들어온 모드가 손가락질을 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응?”

그녀의 부름에 생긋 웃으며 대답해주자 새하얗게 질린 모드가 바싹 얼어붙은 채 몸을 벽에 붙인다.

‘이제 내가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네.’

나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입술을 꾹 깨문 모드를 힐긋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불렀으면 말을 해, 모드.”

“너, 정체가 뭐야? 악마라도 되는 거야?”

“악마라니, 사촌 동생에게 말이 너무 심하잖아.”

그녀의 험한 말에 상처라도 받았다는 양 슬픈 목소리를 쥐어짜면서도 무심한 시선으로 손톱을 내려다보는 내 모습에 약이 올랐는지 모드가 붉으락푸르락 열을 올리며 주먹을 움켜쥔다.

“후작님의 직속 기사들도 그런 오러구를 만들어 내는 건 보지 못했어!”

“이아론 후작가도 사정이 참 딱하네.”

“뭐? 그게 무슨 뜻이야?”

‘내 마력과 바주카포가 만들어 낸 마탄의 위력이 대단하긴 하지만….’

히스나 실베스테르, 그리고 트리스탄 정도면 못 만들어 낼 수준은 아닐 텐데.

“기사들 실력이 그 정도로 형편없단 말이잖아.”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벽에 붙은 모드를 한심하다는 듯 힐끔했다.

“그래서 모드가 지금 고양이 만난 쥐처럼 겁을 먹는 거구나? 나만한 실력자는 본 적도 없어서.”

“거, 겁을 먹긴 누가! 네가 쓴 무기가 아티팩트라도 되나 본데, 그거 반칙이야!”

“슈발리에는 목검만 사용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긴 했지만, 참가자는 아니었어.”

꽥 목청을 높이는 모드의 말을 차분히 반박한 사람은 내가 아닌 스텔라였다. 모드와 함께 대기실에 돌아온 소녀가 트리스탄을 닮은 새빨간 눈을 빛내며 나를 돌아본다.

“레오노라 영애는 슈발리에인 동시에 참가자였으니까, 무기를 사용해도 된다고 볼 수 있지.”

“아냐! 그럴 리 없어! 그런 판정은 절대 나오지 않을 거야!”

‘그래, 그래 보이네.’

아티팩트를 이용해 몰래 운영 위원회 측의 소리를 도청하고 있던 나는 오리처럼 꽥꽥거리는 모드와 마찬가지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한 사람의 말에 후비적 귀를 팠다.

“애초에 나이트를 구해 오지 못한 것부터 쁘띠 플뢰르로서는 실격인 거예요, 레오노라 공녀는! 지켜 줄 기사조차 없는 사교계의 꽃이 말이 되나요?!”

이제 슬슬 내 또 다른 패를 꺼내들 때가 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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