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102화 (102/486)

제102화

침대에 누워 아이네스가 ‘레오노라를 xxx 해버리겠어!’라며 악당처럼 중얼거리는 장면 이후로 더는 업데이트되지 않는 원작을 뒤적이던 나는 ‘모드 이아론’의 흔적을 겨우 찾아낼 수 있었다.

‘그래, 분명 어디에서 들어 본 이름인 것 같긴 했어.’

내 사촌이라 가계도를 외울 때 초상화와 이름을 봤다고만 생각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모드 이아론은 <아.황.장>에 잠시 등장했던 조연이었다.

‘아이네스를 질투해서 돌아 버리는 엑스트라 악역이었지.’

물론 <아.황.장>에 등장했던 모드는 성인이었지만, 나는 시기심 넘치는 그녀의 성격이 성인이 된 이후 형성된 것은 아니리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지금도 저렇게 나를 노려보고 있는걸….’

나는 들끓는 질투심을 숨기지 못하고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는 모드를 흘깃하며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였다.

‘무슨 생각 하고 있는지 다 알 수 있어서 편하긴 하다만.’

“오늘 대신전에 간다고 했었나?”

나는 반지 낀 손을 모드의 눈앞에 보란 듯이 펼치며 생긋 웃었다. 반지에는 도청기 기능을 새겨 넣은 마정석이 커팅된 사파이어처럼 박혀 있었다.

“재밌겠다! 부러워.”

내 부럽다는 말에 눈을 부릅뜬 모드가 내 손을 가리키며 관심 없는 척 애써 태연하게 입을 연다.

“응. 성하께서 나를 찾으셔서. 그런데 그 반지는 뭐야?”

“아빠가 사 주셨어. 리니는 불편해서 이런 거 필요 없다고 했는데, 차암.”

모드의 물음에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대답한 나는 침대 옆 협탁 위에 보란 듯이 반지를 빼서 올려놓았다.

“그럼 잘 다녀와, 모드! 난 오빠들이랑 놀고 있을게.”

에녹과 실비와 어울리고 싶어서 안달을 내는 모드를 약 올리기 위해 굳이 얄미운 말을 덧붙인 나는 총총 가벼운 걸음걸이로 게스트룸을 나섰다.

* * *

이어지는 모드의 행동은 내 예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정말로 반지 들고 튀어 버렸네.’

물론 완전히 충동적으로 저지른 짓은 아닐 것이다.

‘게스트룸은 드나드는 사람이 많은 곳이니 어린 아이인데다 귀족인 자신이 의심받을 일은 없으리란 계산하에 움직였겠지.’

나는 도청기 아티팩트와 연결된 수정구에서 들려오는 경쾌한 발걸음 소리에 집중하며 턱을 괴었다.

‘마차 멈추는 소리 들리고, 으음, 이제 막 대신전에 도착한 모양이네.’

모드가 카라에게 인사를 올리는 것까지 확인한 나는 그들의 대화를 적기 위해 노트를 펼쳐 들었다.

“오랜만이구나, 모드. 공작가에서 지내는 게 불편하진 않고?”

“말도 마세요, 예하. 레오노라가 저를 얼마나 괴롭히는데요.”

“어머. 공녀님이 모드를 괴롭힌다고? 모드 너처럼 사랑스럽고 예쁜 소녀를 미워할 구석이 어디 있다고…. 아.”

“왜요, 예하?”

“공녀님이 모드 너를 질투하시는 모양이네. 모드 네게 공작 각하와 공자님들의 관심을 빼앗길까 봐 말이야.”

“앗, 맞아요! 예하 말씀을 들어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이런, 우리 착한 모드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을 텐데 괜히 미움을 받았겠구나.”

“네! 레오노라가 저를 미워하기 때문인지 공작 각하와 친해지기도 힘들었어요.”

“…그래? 딱히 뭐 특이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없었고?”

“엄청 잘생기셨어요.”

“그딴 멍청, 아, 아니 단순한 느낀 점 말고 말이야. 예를 들어 모드 네가 기억하는 공작 각하와 다르다든지.”

나는 느릿하게 이어지는 카라의 말에 턱을 쓸었다.

‘루카스와 발레리에게 저주를 건 사람은 역시 카라였구나.’

게다가 루카스의 영혼이 가스파르의 몸에 들어갔다는 것까지 짐작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눈치챈 거지? 저주를 건 당사자라서 알 수 있는 건가?’

“공작 각하에게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가는 게 좋겠어, 모드. 그런 못된 공녀님을 딸로 둔 분이시니 얼마나 외로우시겠어.”

“정말 그러는 게 좋을까요, 예하?”

“응. 사랑스러운 모드가 위로가 되어 주면 공작 각하께서도 고마워하실 거야.”

나는 칭찬하는 척 순진한-멍청한 것 같기도 하지만- 아이에게 정말로 공작가에 입양될 수 있으리란 희망을 자꾸만 주입시키는 카라의 행동이 기가 막혀 헛웃음을 지었다.

‘멜리사를 교묘하게 움직이려고 들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당장에라도 대신전에 쳐들어가 카라의 멱살을 틀어잡고 싶었지만, 그녀가 루카스에게 저주를 건 흑주술사라면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교황이나 대마법사인 루카스도 풀지 못했을 만큼 강력한 저주야. 카라 본인이 스스로 저주를 포기하게 만들어야 할 텐데….’

카라와 모드의 대화를 적어 내린 노트를 손가락 끝으로 툭툭 두드리던 나는 씨익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적의 발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묶어 버린 다음 원하는 것을 토해 내게 하는 건 ‘미친개’였던 내 전문이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

‘우선 카라가 움직일 수 있는 장기말을 하나씩 없애 버리는 것부터 시작해 볼까.’

넌 이제 끝이다, 카라!

‘고신을 해서라도 우리 아빠를 꼭 되찾고 말 거야.’

드디어 범인까지 색출했으니 가스파르를 다시 만나는 일이 정말 코앞으로 다가왔다.

“움후후. 움화화화!”

나는 카라를 코너로 몰 계획을 떠올리며 노트를 끌어안고 사악한 웃음을 터뜨렸다.

“어머, 아가씨.”

그사이 침실 문을 빼꼼 열고 들어온 오데트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나를 쳐다본다.

‘아앗. 너무 악당처럼 웃는 모습을 보여 버렸잖아.’

수도 저택의 고용인들은 아직 내 음흉한 성격을 잘 몰라서 놀랄 수도 있는데.

“코제트가 아가씨는 개구지게 웃을 때 가장 사랑스럽다고 하더니 정말이네요.”

그러나 동그랗게 입을 벌린 오데트는 양손을 맞잡은 채 초롱초롱 눈을 빛낼 뿐이었다.

“제국에서 제일 귀여운 악동을 뽑는 대회 같은 게 있다면 아가씨가 1등이실 거예요! 아니, 대륙 전체! 세계 제일 악동 대회라도!!”

“……으응. 고마워.”

내가 하차니아 공작가 사용인들의 콩깍지 두께를 무시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오데트의 호들갑에 민망한 뺨을 긁적이며 노트를 덮었다.

* * *

“저, 쁘띠 플뢰르 선발전에 나가려고요.”

이튿날 교황청으로 달려가 발레리를 재워준 나는 그녀가 일어나자마자 냉큼 입을 열었다.

“으음? 사교계는 영 관심이 없어 보이더니?”

“상금이 있대요!”

발레리의 의문에 대충 핑계를 대는 내가 귀엽다는 듯 그녀가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그래, 상금이 있기는 하지. 평범한 귀부인의 1년 치 내탕금 정도는 될 금액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나 나갈 수 없다고 들었어요. 사교계에서 명망 높은 귀부인이나 월계수 잎이 여섯 개가 넘는 신관의 추천을 받아야 한대요….”

흐려지는 내 말끝에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발레리는 내 포슬포슬한 머리를 쓰다듬으며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교황인 이 몸이 추천서를 써준다면 확실히 유리하긴 하겠구나. 주목을 받을 테니 말이야. 써 주랴?”

“정말 절 위해 정말로 추천서를 써 주실 수 있나요?”

“이 몸이 아기 공녀를 위해 해 주지 못할 게 뭐가 있을까. 루엘라의 종인 이 몸이 이제 공녀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리고 말았는데.”

‘누가 들으면 연인의 대화라고 생각하겠네….’

나만 꼭 끌어안으면 단잠을 잘 수 있게 된 발레리는 마치 마약을 앞에 둔 중독자처럼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 오늘 공녀가 온다고 해서 이 몸이 몸소 준비한 선물이 있는데 쁘띠 플뢰르 선발전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구나.”

“서, 선물이요? 그런 거 주시면….”

발레리의 말에 부끄럽다는 듯 몸을 배배 꼰 나는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완전 좋아요! 저 선물 엄청 좋아해요, 성하!”

명색이 교황인데 쓸모없는 선물을 주지는 않겠지.

‘이왕이면 성력이 담긴 아티팩트였으면 좋겠다.’

나는 교황의 부름에 달려온 신관이 품에 안은 상자를 바라보며 반짝반짝 눈을 빛냈다.

“이 몸은 공녀가 솔직한 아이라서 좋아. 이리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보물 창고를 직접 뒤진 보람이 있구나.”

나는 흐뭇하게 웃는 발레리를 힐끔하며 붉은 벨벳 리본으로 감싸인 상자를 끌어안았다.

“지금 열어 봐도 되나요?”

선물을 준 당사자 앞에서 바로 개봉하는 건 조금 실례일 수 있었지만, 상자 안에서 미미하게 흘러나오는 마나를 눈치챈 나는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다.

이거 분명 아티팩트다.

아티팩트 공방 운영 5년 차에 다다른 내가 장담하는데, 상자에 담긴 물건은 절대 평범한 선물은 아니었다.

“많이 궁금한 모양이로구나. 열어 보거라.”

교황의 허락에 붉은 리본을 덥석 붙잡은 나는 허둥지둥 포장을 풀어 내렸다.

달칵.

향긋한 나무 냄새가 폴폴 풍기는 상자 뚜껑을 열자 교황의 선물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응?’

비로드에 곱게 감싸인 아티팩트를 확인한 나는 당황해 입술만 달싹였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것처럼 생겼는데.’

이 물건이 왜 교황의 보물 창고에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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