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화
나는 거대한 산불이라도 난 것처럼 화르륵 타오르고 있는 브리넨 후작가의 우아한 고택을 지켜보다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였다.
‘아이들도 대피시켰고, 소년도 구했으니 이제 남은 건….’
브리넨 후작이 관리하고 있을 마정석 사업 관련 기밀문서를 찾는 일뿐이었다.
“마법 걸 수 이찌? 보호 마법.”
나는 내가 데리고 나온 소년을 왠지 모르게 뚱하게 노려보고 있는 루카스를 향해 턱을 들었다.
“위험할 텐데. 역시 내가 대신 가는 게-”
“아니. 루카쯔는 못 차즐 거야.”
벨루치의 외전은 ‘미래’를 포함하고 있었기에 지금의 벨루치 본인도 후작이 기밀문서를 어디에 숨겨 놨는지 몰랐다.
‘게다가 아이네스가 드나드는 개구멍이라면 나처럼 작은 아기만이 들어갈 수 있는 통로일 거야.’
나는 벨루치의 외전에 등장한 아이네스가 후작의 문서를 훔쳐내는 장면을 손끝으로 훑은 다음 호흡을 가다듬었다.
내 고집스러운 얼굴에 옅은 한숨을 내쉰 루카스가 결국 손을 들어 내 몸을 푸른 마나로 감싼다. 나는 내 어깨 근처를 맴돌며 반짝이는 파란 별빛 같은 마나에 속으로만 감탄했다.
‘속성이 없는 마법사인데도 이 정도로 섬세하게 겨울 계열 마나를 다루다니.’
괜히 대마법사라고 불렸던 게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아크레아의 마지막 왕이었던 소년과 루카스 중에 누가 더 마법을 잘 다룰지 궁금해하다 활활 타는 저택 안으로 발을 디뎠다.
‘아무리 루카스의 마법이어도 유효 기간이 있을 테니 빨리 찾고 나와야 해.’
활활 타오르는 불길 사이에서 몸을 보호하는 마법은 원거리에서 조율하기엔 꽤나 까다로운 마법이었으니까.
“지금 뭐 하는 거지!”
서둘러 몸을 움직이려던 나는 갑작스레 튀어나와 나를 저지하는 인영에 우뚝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죽고 싶어서 환장한 건가?!”
구휼원 연회에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트리스탄이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그의 등장에 놀라는 것도 잠시, 나는 내 어깨를 우악스레 붙잡는 소년을 바라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져기 위험해, 트리쯔딴.”
쿵 소리를 내며 무너지는 건물을 가리키며 나는 언젠가 트리스탄이 그리즐리에게 사용했던 언령 마법을 발동했다.
위험하니까 따라오지 마.
보유한 마나의 양으로 상대의 기를 눌러 말을 듣게 하는 마법이었으니 별다른 스킬이 필요하진 않았지만, 지금 내 몸으로는 꽤나 벅찬 마법이었다.
“흐유.”
괜히 마나를 낭비하게 한 트리스탄의 몸을 내가 툭 밀어내자, 언령으로 힘이 풀린 소년의 몸이 뒤로 나자빠진다.
“윽!”
나는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일으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트리스탄을 뒤로한 채 불길 속으로 몸을 감췄다.
* * *
“여기썬네.”
벨루치의 외전이 묘사하고 있는 후작의 금고는 지하실의 서재와 이어진 벽장에 위치해 있었다.
지상에 있는 후작저의 본관과 별채들은 화마에 휩싸여 전부 무너진 상태였는데도 후작가의 지하 구휼원은 건재했다.
‘보호 마법이라도 걸려 있는 걸까?’
이 정도로 결계가 굳건한 지하실이라면 내가 아지트로 써먹을 수도 있으리란 생각에 천천히 지하실을 살피던 나는 아이네스가 쏘옥 빠져나갔던 개구멍을 발견하고 몸을 숙였다.
“끙차.”
엉금엉금 기어 통로를 빠져나온 나는 어두컴컴한 벽장을 밝히는 샛노란 금괴더미에 뒷머리를 긁적였다.
‘결국 이 보물들도 아이네스가 발견할 것들이었는데 내가 새치기를 한 셈이네.’
“하지만~ 아이녜쯔도 내 마나를 노리구 있짜나?”
마나를 빼앗기면 생명이 사위어 드는 것을 모를 리 없는데도 말이다.
원작 여주이자 이 세계의 유일한 회귀자인 아이네스가 엑스트라에 불과한 내 목숨을 노리고 있었으니 이 정도는 정당방위였다.
후작의 기밀문서들을 주섬주섬 챙긴 나는 기다란 토끼귀가 달린 분홍 배낭을 열어젖혔다.
“금개두 몇 개 챙겨가야지~”
신난다.
흥이 난 어깨를 들썩이며 금괴를 하나둘 배낭에 챙겨 넣는데 구석에서 울려 퍼지는 희미한 울음소리가 귀에 박힌다.
“으앙, 으아앙-!”
우렁차다고 보기엔 너무 미약한 울음소리였다.
창문도 없는 벽을 가리고 있는 커튼을 들춘 나는 또 다른 형태의 마정석 추출기의 모습에 기함하며 입을 벌렸다.
‘…미친놈.’
브리넨 후작은 루카스가 단칼에 목숨을 거둔 게 아깝게 느껴질 정도로 나쁜 새끼였다.
나는 울다 지쳐 미약한 숨만 가쁘게 내쉬고 있는 아기를 안아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심장이 너무 약하게 뛰잖아.’
이렇게 어린 아기에게서 마나를 추출하게 되면 목숨이 위험해지는 게 당연했다.
추출기에서 아기를 완전히 떼어 내는 게 불가능한 탓에 나는 결국 배낭에서 금괴를 도로 빼내 짐을 가볍게 만들었다.
‘괜찮아, 살 수 있어.’
아기의 숨은 아직 붙어 있었다.
셀리아의 아기를 포함한 다른 갓난아기들도 마정석을 추출 당한 흔적이 있었지만 멀쩡했으니까.
“너도 갠차늘 거야, 응?”
나는 아기의 감긴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차갑다는 사실에 이를 악문 채 밖으로 뛰쳐 나갔다.
* * *
“아가씨~!!!”
잿빛 연기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레오노라를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셀리아였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발랄한 집시의 목소리에 언령에 몸이 묶여 꿈쩍도 못하던 트리스탄이 재빠르게 고개를 틀었다.
“레오노라!”
자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불구덩이 속에 뛰어든 레오노라는 무언가를 꼭 껴안은 채였다.
트리스탄은 레오노라를 알게 된 이후 처음으로 그녀의 눈빛이 낮게 가라앉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꺼져 가는 불씨처럼 연약해 보이는 그 눈빛에 제 마음이 송곳에 꿰뚫린 듯 아파 온다는 사실과 함께.
“…레오노라.”
트리스탄은 셀리아를 지나쳐 자신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레오노라를 마주보았다.
가까이 다가온 레오노라가 다친 곳은 없는지 구석구석 살피던 그는 그녀가 품에 안은 아기를 발견했다.
“이 아기를 구하기 위해 무너져 가는 저택으로 뛰어든 건가.”
“…이게 안 떼져. 이거 좀 떼 줘.”
트리스탄은 레오노라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허리를 숙였다.
차가운 아기와 연결된 호스는 그도 익히 아는 물건이었다.
“빤니. 웅?”
이미 아기가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트리스탄은 레오노라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손을 움직였다.
“자.”
“…뗀네. 떼져써.”
한결 몸이 가벼워진 아기를 꼬옥 끌어안은 레오노라는 우는 아기를 달래듯 부둥부둥 몸을 흔들었다.
“아기야, 이제 갠차나. 이제 다 끝나써.”
트리스탄은 마정석 추출의 부작용으로 식어 가는 아기를 노려보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아기를 위로하는 레오노라의 모습에 기가 막혔다.
구휼원이 브리넨 후작이 주장하는 투명하고 깨끗한 방식으로 운영되는 보육원이리라 믿는 고위 귀족은 단 한 명도 없었지만, 그들 중 누구도 더는 갈 곳 없는 아이들을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목소리를 높이는 이가 없었으니까.
‘저도 아이인 주제에.’
그런 주제에 누가 누굴 돕겠다고 제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달려드나.
“그만해.”
“…….”
“숨을 쉬지 않는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건가.”
트리스탄은 이미 죽은 아이를 위해 레오노라가 위험을 감내했다고 판단하여 인상을 찌푸렸다.
연약한 아기에 불과한 레오노라가 이런 일에 뛰어드는 건 위험을 떠나서 비효율적이었다.
“방금 네 행동은 무모하다 못해 낭비에 가까운 치기였다.”
행여나 레오노라가 잘못되기라도 했다면.
트리스탄은 제 가정에 쿵 내려앉는 심장을 눈치채지 못하고 차갑게 입을 열었다.
“다시는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웅, 트리쯔딴 말이 맞네.”
트리스탄의 말을 끊으며 작게 웅얼거린 레오노라가 아기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주거써.”
“……..”
“살리지 못해써.”
우욱. 욱.
트리스탄은 레오노라의 작은 주먹 위로 후두둑 떨어지는 눈물에 당황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어엉, 엉엉엉.
그는 결국 서럽게 울음을 터뜨리는 레오노라를 향해 억지로 팔을 뻗었다.
뒤늦게 언령에서 풀려난 몸이 나무토막처럼 삐꺽이며 움직인다.
“울지 마. 네 잘못이 아니다.”
“니니가 구할 수 있어쓸 텐데.”
레오노라는 보다 더 빨리 움직이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구휼원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 세상이 자신이 읽은 책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깨달은 그 순간부터 알고 있었다.
‘나와 같은 처지에 놓였던 아이들을, 책 속에 등장하는 엑스트라라고 치부해 버린 거야.’
그러나 전부 살아 숨쉬고 있었다.
소년의 셉터를 부수고 구휼원을 무너뜨리기 위해 마나를 전부 소진한 레오노라의 정신력이 이윽고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뒤따르는 눅진한 죄책감에 레오노라는 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면서도 자각조차 하지 못했다.
여린 등이 들썩이는 모습을 지켜보던 트리스탄은 보호 장비 하나 없이 불구덩이 속에 뛰어들던 레오노라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그렇게나 많은 아이들을 구해 놓고 구하지 못한 아이 한 명 때문에 눈물을 보이는 건가.’
아주 작지만, 제 몸통의 반의반도 되지 않는 작은 몸이었지만 그녀는 불길 앞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어떻게 너 같은 사람이 존재하는 거지.”
트리스탄은 발갛게 달아오른 레오노라의 눈가를 쓸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 선의와 신념, 기사의 이름으로 절대 잊지 않겠다.”
하나 어린아이가 되어 버린 레오노라는 트리스탄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