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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무래기 공작가의 깡패 아기님-43화 (43/486)

제43화

후작의 집무실에서 집어든 바주카포는 내장된 마정석의 종류에 따라 뿜어내는 포환이 달라지는 아티팩트였다.

‘이 정도면 꽤 쓸모가 있네.’

나는 마나를 한계까지 사용해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꾹 누른 채 빙그르르 몸을 돌렸다.

콰쾅-! 쾅!

열기로 이뤄진 붉은 오러석을 장착한 바주카포를 마구잡이로 쏴 대자 전나무로 만들어진 후작저가 불쏘시개라도 된 듯 타오르기 시작한다.

“꺄아- 본관이 무너지고 있어요!”

벨루치를 도와 구휼원의 아이들을 대피시킨 셀리아는 포대기에 아기를 업은 채 바닥에서 폴짝폴짝 뛰어 댔다.

“너무 속 시원해요, 아가씨!”

음악과 춤을 사랑하는 집시가 건물 부수는 걸 이렇게까지 좋아하다니.

‘별종을 주워 버렸어.’

가늘게 뜬 눈으로 그녀를 흘깃한 나는 마지막 남은 후작저의 건물 앞에 우뚝 섰다.

‘여기 있었네.’

은은하게 진동하는 셉터가 소년의 위치를 내게 알려 주고 있었다.

“여기서 기다료.”

나는 자연스레 나를 따라오려는 루카스와 셀리아를 저지하며 침을 꼴깍 삼켰다.

소년이 몸을 숨긴 건물은 아이들을 감금하는 용도로 쓰인 듯한 낡은 첨탑이었다.

거미줄이 잔뜩 쳐 있는 원형의 계단을 따라 몸을 움직이자, 달빛 아래 희붐하게 빛이 나던 셉터의 진동이 조금씩 거세진다.

결국 탑 꼭대기에 다다른 나는 달을 등지고선 소년의 모습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부유하는 먼지가 가라앉은 듯한 회색 머리칼이 희게 빛난다.

‘그림 같네.’

그는 꼭 동화에 나오는 요정처럼 아름다운 소년이었다. 너무 예뻐서 사람인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로 섬세한 선으로 이루어진.

몸과 마음의 성장이 멈춰버렸기 때문일까.

소년은 사람의 모습으로 정물에 가까운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저렇게 어리고 약한 몸으로 수백 년이 넘는 세월을 혼자 견뎌 냈다고.’

믿고 싶지 않을 만큼 잔인한 사실이었다.

‘어른에 가까웠던 나도 끔찍하게 괴로웠는데.’

죽는 순간까지도 괴로웠다.

양부의 말 잘 듣는 개로 죽었던 그 순간까지도, 나는 비참할 정도로 외로웠다.

‘그러니 넌 얼마나 외로웠을까.’

나는 내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마정석 추출기를 만지작거리는 소년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한숨을 삼켰다.

왜소한 체구와 여자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가는 턱선은 퍽 잘 어울렸지만, 죽어 가는 소년의 상태를 아는 나로서는 썩 달갑지 않은 모습이었다.

“!!!”

조잡한 마정석 추출기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던 소년이 결국 제 팔뚝에 추출기를 꽂아 넣는다.

제 몸에 남은 생명력을 마지막까지 쥐어짜기 위해서인 듯싶었다.

‘…그렇게까지 죽고 싶나.’

나는 고문 기구에 가까운 마정석 추출기를 스스로 팔뚝에 꽂은 소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술을 움직였다.

“…숨는 데는 재주가 업네, 너.”

역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아크레아의 소년왕은 매우 뛰어난 마법사였다.

‘그런 사람이 기척도 못 숨기고.’

목숨이 꺼져 가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고요하게 죽어 가는 소년을 향해 천천히 다가섰다.

“…뭡니까.”

“그만해.”

추출기를 붙들고 있는 자신의 손을 우악스레 움켜쥔 나를 향해 소년이 날카롭게 눈초리를 세운다.

“이 손 놓으세요.”

“시러.”

나는 아직까지 미약하게 울고 있는 셉터를 쥔 채 짤막하게 명령했다.

“너가 놔.”

셉터를 거부할 힘이 남아있지 않은 모양인지 소년의 팔이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나를 사용할 생각입니까.”

내가 셉터를 쥐고 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는지 소년이 힘없는 미소를 짓는다.

“늦었습니다. 난 쓸모를 다했으니까요.”

나는 깨진 유리 조각처럼 날카로운 그의 비웃음에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내가 자신을 때리기라도 할 줄 알았는지, 소년이 크게 몸을 움찔한다.

“나랑 여기서 나가자.”

나는 질끈 눈을 감은 소년을 향해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 * *

왕국을 지키기 위해 태어난 소년은 더는 지킬 것이 없었다.

멸망한 나라의 마지막 왕.

그는 결국 왕국을 지키지 못했고, 왕국을 위해 희생당한 타인의 목숨으로 삶을 연명했다.

‘태어나서 한 일이라곤 다른 인간들을 고통 속에 밀어 넣은 것밖에는 없군.’

소년은 초대 브리넨 후작이 자신의 힘을 이용해 아이들에게 끔찍한 짓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왜 찾는 겁니까. 나는 이제 쓸모를 다했습니다.”

더는 이용당하고 싶지 않다.

끝없는 바다와 같았던 그의 방대한 마나는 바닥에 치달았으니 그의 영혼은 이제 겨우 끝에 맞닿은 셈이었다.

“셉터를 사용해도 나를 이용해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을 겁니다.”

소년의 말에 속을 알 수 없는 눈으로 그를 빤히 바라보던 레오노라가 손을 움직인다.

“…사용할 생각 업써, 이거.”

느릿느릿, 그러나 정확하게 제 의사를 전달한 그녀는 소년의 앞에서 셉터를 부숴 버렸다.

두 동강이 난 셉터가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모습을 확인한 소년은 편안해진 숨에 한 손으로 제 가슴을 쓸었다.

“조굼 낫지?”

“…….”

“마니 힘드렀지.”

대답하지 못하는 소년 앞에 쪼그려 앉은 레오노라가 자그마한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얼마나 힘드러써. 너무 힘드렀지.”

푸석푸석한 잿빛 머리칼사이로 오동통한 손가락이 움직였다.

생전 처음 느껴 보는 감각에 뒷목이 쭈뼛 섰지만, 소년은 레오노라의 작은 손을 뿌리치지 못한 채 입술을 달싹였다.

“힘들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고통을 몰랐다.

인간에서 병기가 되던 그 순간에, 그의 아버지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앗아 갔으니까.

“저는 아픔을 느끼지 못합니다.”

“안 아푸다고 안 힘든 고 아냐. 외로운 것도 힘드러.”

“외롭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자신이 안타깝다는 듯 자꾸만 제 거친 뺨을 쓰다듬는 레오노라를 직시하며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그는 외롭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았다. 그 때문에 고통스러웠을 수많은 사람들만이 존재했을 뿐.

그러니 자신은 죽어 마땅했다.

“…그건 니가 지굼 외로워서 그런 고야.”

소년의 말에 나지막한 한숨을 내쉰 레오노라가 차분하게 말을 잇는다.

“외로운 게 힘들다는 건, 네가 외롭지 않게 되는 순간에 깨달을 수 있는 고고든.”

소년은 레오노라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했다.

겨울밤처럼 시린 청안을 빤히 주시하던 레오노라는 바들바들 떨리는 입꼬리를 애써 잡아 올렸다.

“너, 어른 되어 본 적 업지.”

소년의 시간은 왕국이 무너지던 무렵에 머물러 움직이지 않았다.

“…되고 싶지 않습니다.”

“…….”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그냥 죽고 싶습니다, 공녀.”

언젠가 자신이 성인이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던 적도 있었지만, 소년은 더는 제 미래가 궁금하지 않았다.

“사랑은.”

“…….”

“사랑은 받아 본 적 이써?”

소년은 제 속내를 들여다보는 듯이 반짝이는 연보랏빛 눈동자에 입을 꾹 다물었다.

“받아 보구 싶지 아나?”

제비꽃을 엮어 만든 듯 여린 눈에서 왜 자신이 감내할 수 없을 정도의 강인함이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필요, 없습니다.”

소년은 조곤조곤 속삭이는 레오노라의 목소리를 피하고 싶어 귀를 막았다.

“나를 내버려 두세요. 부탁입니다.”

제 결심이 흔들릴 것만 같았다.

“내가 널 사랑할게.”

이기적이게도, 살고 싶어질 것만 같았으니까.

잘게 떨리는 레오노라의 목소리는 기묘하게도 맹세처럼 굳건하게 들렸다. 마치 다짐이라도 하듯 끝없이 되뇌인다.

“…사랑할게.”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그 어떤 것들보다 너를 가장 아끼고 사랑해서, 혼자 잠드는 밤조차 없도록 너를 사랑해 줄게.

“그러니까, 죽지 말자.”

“…….”

“조금만 더 살아 보자, 웅?”

제 몸의 반도 오지 않는 어린아이의 입에서 나온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정한 말이었다.

소년은 레오노라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하고 뒤로 주춤 물러났다.

“어디 가?”

“나를 찾지 마세요.”

좁은 탑에서 더는 물러날 구석도 없는데도 레오노라를 피해 뒷걸음질을 치던 그는 결국 낡은 옷장 속에 기어 들어갔다.

시야 밖으로 레오노라가 사라지자 그제야 쿵쿵 날뛰던 심장이 가라앉는다.

‘여기서 죽자.’

그러나 그러기가 무섭게 소년이 애써 닫아놨던 옷장 문이 덜컥 소리를 내며 열려 버린다.

희붐한 달빛 아래 그보다 더 밝은 은발이 빛무더기처럼 쏟아졌다.

“그만 숨으라니까?”

“…….”

소년은 영겁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 영혼이 지쳐 닳을 만큼 긴 세월이기에 죽음을 애원했다.

해서 제 쓸모가 다했다고 느꼈을 때 그는 분명 안도했었다.

‘이제는 나를 아무도 찾지 않겠지.’

그 감각은 소년에게 분명 안식에 가까웠다.

‘힘을 다한 병기를 찾는 인간은 없을 테니까.’

그러니 소년이 브리넨 후작이 죽는 순간 탑에 몸을 숨긴 데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 누구도 그를 찾아 주지 않을 터였고 소년은 그 사실이 만족스러웠다.

‘…그랬는데. 분명 그랬을 텐데.’

“너, 숨는 데는 재주가 업따구.”

자꾸 자신을 찾으려고 애를 쓰는 이 작은 손길에 왜 눈물이 날 것만 같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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