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외전 2화
집으로 돌아오니, 야간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사무엘이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올해로 21살의 청년이 된 그는 치안대에서 제법 공을 세우고 승진도 하여, 그야말로 성공의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이토록 성과를 내면 그 주변에 시기하거나, 경계하는 무리가 생길 법도 한데 신기하게도 사무엘은 그런 것 없이 치안대의 선후배들과 무척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사무엘은 그것이 ‘훌륭한 누이의 덕’이라고 말했지만, 다프네는 생각이 달랐다.
“내 동생은 잘생겼고, 귀여우니까 누구라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거야.”
“누나?”
느닷없는 칭찬에 사무엘이 국자를 든 채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게다가 상냥하지, 요리와 청소도 능숙하지!”
“왜, 왜 갑자기 날 칭찬하는 거야?”
“칭찬이 아니야, 사실을 말하는 거지. 내 동생의 단점이란, 단점이 없다는 것뿐이야.”
다프네는 사무엘의 옆에서 샐러드용 토마토를 작게 잘라 냈다.
“으…… 너무 그러지 마, 누나.”
사무엘은 하얀 뺨을 붉혔다. 늘 바깥에서 보초를 서고 훈련을 하는데도 사무엘의 피부는 여전히 눈처럼 하얗기만 했다. 그 흔한 잡티 하나 없이.
“나도 단점 정도는 있어.”
“그런 게 있다면 그게 뭔지 듣고 싶네.”
다프네는 이제 오이를 가져와 얇게 저몄다.
“그게…….”
사무엘은 커다란 몸을 잠시 침울하게 내려다보았다. 두툼한 겨울옷도 그의 단단한 근육질을 완전히 가려내지는 못했다.
다프네는 그의 이런 모습에 반한 마을 아가씨가 한둘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은근히 사무엘 앞으로 도착하는 선물이 많았으므로.
“옷값을…… 올려 받을 거라고 했어.”
“응?”
“그러니까, 얼마 전에 내가 리암 형이랑 누나 결혼식에 입을 옷을 새로 맞췄잖아.”
“그랬지.”
다프네는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리암은 ‘우리 잘생긴 사무엘에게 예쁜 때때옷을 입혀야지.’라며 수도의 재단사를 클롯모어까지 초대했다.
“그때 재단사가 내 몸을 보고는, 원단이 많이 드니까 옷값을 올려 받아야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어. 그래서 난…… 리암 형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웠어.”
아무래도 사무엘은 그에게 큰돈을 쓰게 한 것이 정말로 창피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생각해 봐, 사무엘.”
칼질을 마친 다프네는 샐러드 그릇에 오이와 토마토를 예쁘게 담았다.
“만약 10코퍼짜리 꽃다발과 15코퍼짜리 꽃다발이 있다면 내게 뭘 사 주고 싶어?”
이에 사무엘은 오래 생각하지도 않고 곧바로 답을 들려주었다.
“15코퍼 꽃다발.”
“왜?”
“누나한테 쓰는 돈이 크면 클수록 내가 행복해지니까.”
“그렇지?”
다프네는 수건에 얼른 두 손을 싹싹 문질러 씻고는 사무엘의 커다란 등을 톡톡 두드렸다.
“공작님도 사무엘에게 쓰는 돈이 커져서 더 행복해졌을 거야.”
“……그런가?”
“그렇다니까.”
“그렇구나.”
그들은 각자 음식을 옮겨 남은 접시와 식기를 챙겨서 바로 옆에 있는 다이닝 공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먼저 도착한 사무엘이 다프네의 의자를 빼 주었다.
“그럼, 있잖아.”
빙글 돌아 맞은편에 앉은 사무엘이 생글거리며 한 가지 제안했다.
“누나가 오린샤이어로 가는 차표를 일등석으로 바꾸어도 괜찮아? 나, 누나를 위해서 돈을 쓰면 행복해질 것 같은데.”
“응, 안 돼.”
다프네는 결혼식을 앞두고 오린샤이어에 다녀올 계획을 세웠다.
물론 그녀를 키워 준 페이지 부인을 결혼식에 초대하기 위함이었다. 부인은 ‘초대장을 보내 주는 것만으로도 황송해요.’라며 만류했지만, 다프네는 생각이 달랐다.
부모님을 대신해서, 아니 그야말로 부모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사무엘과 다프네를 키워 준 부인이 아니라면 누구에게 정중하게 초대장을 내밀겠는가.
다프네는 결혼식을 닷새 앞두고 잠시 오린샤이어에 다녀오기로 했다.
사실 이보다 훨씬 일찍 가고 싶었으나, 예식에 필요한 물품을 고르고 공작에게 속한 신하들과 모두 인사를 나누느라 이제야 겨우 떠나게 되었다.
사실은 리암도 함께 가고 싶어 했으나, 그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이런 그를 대신하여 다프네의 수행을 자처한 인물이 바로 리디아 슬로언이었고, 이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다프네는 얼른 삼등석 기차표를 두 장 구매했다.
“누나, 삼등석 의자는 딱딱하고 오린샤이어로 가는 길은 멀단 말이야.”
“일등석 의자는 푹신한 대신에 너무 지루해. 게다가 리디아 님이 좋은 말동무가 아닌 것만큼은 확실하잖아?”
“그래도…… 훨씬 안전한데.”
“기차는 늘 안전해. 어느 좌석이든.”
“겨울에는 눈이 와서 기차가 멈춰 버리는 일도 많이 있단 말이야. 삼등석에서 그 불편한 일을 겪으면 어떻게 해?”
“별걱정을 다 한다니까. 얼른 식사하고 푹 쉬어.”
사무엘은 이후로도 기차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위험에 관하여 이야기했지만, 다프네는 절대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 * *
다음 날 오후가 되어, 다프네가 웨딩드레스를 입어 보기 위해 집 밖으로 나와 보니 저택에서 마중을 나온 차가 앞에 서 있었다.
그것만으로 놀라운데, 운전석에서 내린 인물을 확인하는 순간에는 더욱 놀라고 말았다.
“애, 앨러스테어 님?!”
올해로 열아홉이 되어 다프네의 키를 훌쩍 넘어선 그에게 이제 더는 ‘소년’과도 같은 인상은 없었다.
날카로운 인상의 귀족 청년은 이제 슬로언 가문의 ‘의장’이라는 자리에 정말로 잘 어울려 보였다.
“운전을 배우셨어요?”
“배우기는 무슨, 이런 건 설명서만 조금 읽으면 금방 익숙해지는 거야.”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는 그의 뒤로, 보조석에 앉은 피오나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것이 보였다. 여기로 오는 동안 목숨을 건 사투가 있었음이 분명했다.
“타, 저택까지 데려다주지.”
“아뇨.”
다프네는 곧바로 거절했다. 피오나의 모습으로 보아하니 목숨 다섯 개쯤은 마련해 놓고서 그가 운전하는 차에 탑승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전 자전거를…….”
“중요한 할 말이 있어서 그래. 방금 수도에서 시종이 다녀갔거든.”
“시종…… 이요? 왕실에서 사람이 왔단 말이세요?”
다프네가 되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친절하게도 뒷문을 열어 주었다.
목숨을 건 드라이빙에 동행해야 답을 알려 주겠다는 뜻인 듯했다.
마침 보조석에 앉은 피오나가 겨우 정신을 차려, 다프네를 향해 연신 고개를 젓기 시작했다. 피해자를 줄이고자 하는 정의로운 움직임이었으나, 다프네는 굳은 의지와 함께 차 위에 올랐다.
왕실에서 사람이 왔다는데, 공작의 약혼녀로서 그 뒷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앨러스테어가 문을 닫고서 운전석으로 돌아가는 사이, 다프네는 고개를 앞으로 내밀어 피오나에게 조용히 질문을 건넸다.
“그렇게 끔찍했어요?”
이에 피오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한 손에 얼굴을 묻었다.
“……다시는 안 탈 거예요.”
두 사람은 모두 열여덟이 되는 해에 결혼식까지 치렀고, 현재는 앨러스테어가 수도의 마법사 거주 구역으로 이주하여 함께 살고 있었다.
그는 공작가에 일이 있을 때면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식으로 슬로언 가문에 대한 의무를 행하고 있었고.
“그래도 오랜만에 만나니 좋네요. 앨러스테어 님과 함께 지내는 생활은 어때요?”
혹시 두 사람이 저택에서처럼 싸우지는 않는가 싶어서 건넨 질문이었는데, 어째 그 질문을 들은 피오나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되레 물어본 사람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말이다.
대체 어떤 신혼 생활을 하길래…….
다프네는 조금 더 캐묻고 싶었지만, 앨러스테어가 운전석으로 돌아온 탓에 얼른 입을 다물어야 했다.
“출발한다.”
“자, 잠시만요! 저 벨트 좀요……!”
다프네가 황급히 벨트를 당기는 사이에도 앨러스테어는 기다려 주지 않았다.
그는 시작하자마자 액셀러레이터를 꾹 눌러 단숨에 속도를 높여 거침없이 나아가기 시작했다. 얼마 나아가지도 않았는데, 엔진이 살려 달라며 쿠아아 울어 대기 시작했다.
“시종이 왔다고 이야기했었지?”
반면 앨러스테어의 목소리는 느긋하게 짝이 없었다. 다프네는 이제야 피오나가 왜 새파랗게 질려서 왔는지 확실하게 이해했다.
“자, 잠깐만요, 앨러스테어! 마을에서 저속!”
다프네가 소리를 지르자, 그가 급격히 핸들을 꺾었다. 동시에 피오나와 다프네의 뺨이 차가운 유리창에 착 달라붙었다.
“네게 좋은 기회가 온 거야, 서튼. 내 말을 듣고 너무 놀라지 마.”
“이미 놀랐거든요?!”
커브 길을 빠져나온 그가 다시 속력을 높이기 시작하여 다프네는 빽 소리를 질렀다.
“대왕비 전하께서 결혼식에 참석하실 거야. 예식 사흘 전에는 오셔서 서튼의 후예를 직접 보고 싶다고 하셨거든.”
뭔가 굉장히 좋은 기회라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것 같기는 했는데, 다프네는 피오나와 한목소리로 살려 달라는 비명을 지르느라고 그의 이야기를 하나도 듣지 못했다.
“대왕비 전하의 눈에 들어서 사교계에서 불릴 호칭을 하나라도 받으면, 단숨에 모두의 추앙과 부러움을 받게 되는 거라고.”
“그보다 앞! 앞을 봐요!”
“보고 있어, 대체 뭐가 그렇게 무서워?”
여유로운 그의 답 이후에는 끼익하는 급브레이크의 날카로운 소리가 귀청을 찢을 듯이 들려왔다.
앞으로 쏟아지는 듯한 감각을 느끼며 차가 멈추었을 때, 다프네는 앞자리에 장렬하게 머리를 쿵 박기까지 했다.
잠시 후 앨러스테어는 콧노래까지 부르며 다시 차를 출발시켰는데, 언덕을 다 오를 때는 차체가 함께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느낌마저 들었다.
다프네는 의자 위로 몸을 완전히 늘어뜨린 채 하늘로 어서 오라는 조상님의 손길을 느꼈다.
“지금도 남들 몰래 이 결혼에 불만을 품은 할아범들에게 멋지게 한 방 먹일 기회라고!”
끼이익.
어느덧 저택 앞에 차를 세운 앨러스테어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뒤를 돌아보며 엄지를 척 내밀었다.
“이런 행운이라니, 심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기쁘지?”
“……네, 확실히 튀어나왔네요.”
다프네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함께 심장이 튀어나온 피오나가 작은 목소리로 ‘미안해요, 서튼.’이라며 사과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