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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33)화 (133/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33화

활짝 열린 창문에서 여름밤의 바람이 불어왔다. 비가 온 터라 어느덧 가을의 향기를 미약하게 품고 있었다.

그 새로운 감각에 리암은 드디어 제정신이 돌아왔다.

‘……내가, 지금 뭐라고 했지?’

그는 허공에 잔상처럼 남은 열렬한 외침을 다시 떠올렸다.

“맙소사.”

그는 손안에 잠시 얼굴을 묻은 채로 좌절했다.

이 빌어먹을 몸뚱이가 드디어 사고를 친 것이다. 아니, 머릿속도 한통속이 틀림없었다. 다프네가 오두막에서 보여 주었던 것과 똑같은 표정을 짓는 순간에 살며시 이성적 사고를 끊어 두었던 모양이니.

어떻게 하지?

걱정하던 그의 머릿속에 의사의 충고가 떠올랐다.

「감정은 말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감정을 강요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서튼 양의 혼란이 깊어질 뿐이니까요. 더 힘들어할 겁니다.」

「마음이 힘들면 신체의 고통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두통이라든가.」

“……!”

이를 깨닫는 순간에 리암은 서둘러 계단을 내려가 다프네의 앞으로 다가간 뒤, 당황한 듯한 손길로 그녀의 이마부터 짚었다.

“어지럽지는 않은가? 달리 통증이 느껴지는 부분은 없고? 아니 이럴 때가 아니라.”

그는 다프네가 든 빨래를 대신 당겨 안았다.

“이건 이리 줘, 당장 의사부터 만나러 가자. 맙소사, 내가 잘못했어.”

그가 먼저 계단을 내려가려고 할 때, 뒤에서 그의 옷이 죽 당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다프네가 쥔 것이다. 돌아보니, 그녀는 여전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세상에,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놀란 건가?”

그렇다면 안아 올려서? 아니, 업는 편이 나을까? 리암은 어찌해야 할지 몰라 빨래를 걸쳐 둔 팔을 내밀고 거두기만 반복했다.

“아뇨, 걸을 수는 있습니다.”

“아아, 다행이야. 그렇다면 어서 의사에게 가 보자.”

그가 다시 계단을 내려가려고 할 때, 이번에도 다프네는 그의 옷을 당겼다.

“어, 어? 왜 그래, 내가 뭘 더 도와주면 돼?”

“제 질문에 대답하시면 됩니다.”

“어? 어, 그래. 뭐든 말해.”

리암은 문답만 빨리 끝내고 당장 다프네를 둘러메고 의사에게 달려갈 기세였다.

“제가 왜 의사를 보러 가는 거죠?”

하지만 막상 돌아온 그녀의 질문에는 재빠르게 대응할 수가 없었다.

왜냐니 그야.

그야 리암이 제 감정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그건 다프네에게 큰 혼란을 주고, 이것이 심화되면 자칫 몸의 통증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혹시 지금 제가 뭔가…… 이상했습니까?”

“응?”

“하긴, 저도 좀 뜬금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듣고 싶은 이야기가 멋대로 들리는 부작용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어……?”

그는 잠시 멍해졌다. 조금 전에 분명히 다프네가 ‘듣고 싶은’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그러니까 그건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는……?’

하지만 리암의 생각이 채 정리되기 전에 다프네는 제 두 귀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멋대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제가 이제 환청까지 듣는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조금 전에 리암이 했던 이야기를 환청으로 취급하는 듯했다.

그건 어떤 점에서 보면 참 다행이기도 했는데.

“……잘 들은 거 맞아.”

리암은 다프네에게 병을 뒤집어씌워서 없던 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예?”

귀를 문지르고 있던 터라 그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했는지, 다프네가 손을 내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계단으로 인해 평소보다도 훨씬 가까운 곳에서.

“나는…… 그대가 좋아.”

그리고 리암은 쓸쓸하게 미소 지었다.

“그래서 의사에게 가야 한다는 거야.”

“전 이해가 안 됩니다. 대체 왜요?”

“그야, 내가 그대에게 감정을 강요하고 있으니까.”

“……?”

그의 설명에도 다프네는 그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기억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내 감정을 전하는 건, 감정을 강요하여 그대를 혼란스럽게 한다고 하더군.”

“아.”

“그래서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 있었는데, 분명히 그대도 혼란스럽겠지.”

“드러내지…… 않으셨다고요?”

다프네가 그 부분을 굳이 반복하자, 그는 괴로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능한 한 그대에게 쌀쌀맞게 대하려고 했어. 혹시 나의 그런 태도가 상처로 남았다면 정말 미안해.”

“…….”

다프네는 어째 대답이 없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데 꾹 누르는 듯 보이기도 하여, 리암은 더욱 미안한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

“사실 약혼녀 기사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했던 거였어.”

“아 그…… 힐링엄 백작가의?”

“기사, 읽은 모양이네.”

다프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대해서는 사과문이 게재될 예정이야.”

“하지만, 말씀하셨습니다. 그 주택을 구매한 건 소중한 추억이 있기 때문이라고.”

“사실이야.”

바로 건넨 답에 다프네가 잠시 두 입술을 깨물었다. 꼭 상처라도 받은 것처럼. 그는 얼른 변명을 건넸다.

“그 주택을 살 때는 힐링엄 가문에 대해서는 떠올리지도 못했어, 그저 난…… 그대와 그곳에서.”

리암은 얼른 입을 다물었다.

이 이상 다프네가 진실을 안다면 정말로 당황할 것이 분명했으므로.

“거기에서 저랑 뭘 하셨습니까?”

재촉하듯 돌아온 말에, 그는 그날 밤의 키스를 떠올리곤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살그머니 돌렸다.

“일…… 했지.”

“아, 잠입이라도 한 모양이네요.”

명석한 다프네는 금방 상황을 파악해 주었다.

“린든 남작은 애슐리 슬로언의 지원을 받았으니까요.”

“어…… 그렇지. 함께 잠입했던 추억이 소중해서.”

“그게 값비싼 집을 살 정도였다고요?”

“으, 응.”

리암은 자신이 이렇게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렇게 말을 더듬어서야 다프네가 그를 의심할 것이 아닌가.

“일단은…… 알겠습니다.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프지는 않은가?”

리암은 그것이 가장 걱정이었으므로, 재차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예, 진찰은 받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상황이 변하면 언제라도 말해, 새벽이라도 좋으니까.”

그가 안달복달하는 모습이 이상했는지, 다프네는 그를 낯설게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기울이며 질문을 건넸다.

“혹시, 이전에 우리 관계는……?”

“걱정하지 마.”

다행히 리암은 이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너그러운 다프네는 그에게 안겨 있기도 하고, 키스도 허락해 주었지만 정작 리암을 ‘좋아한다’라고 결론을 내려 준 적은 없었다.

그녀가 남겨 둔 메모에도 리암을 ‘보고 싶다’라고 적혀 있었을 뿐, 다른 감정을 표현하지는 않았다.

“거의 나 혼자 안달 냈으니까.”

“…….”

“그러니까 기억이 돌아온 후에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아. 알았지? 정 싫으면 언제든 거절해도…….”

거절해도 된다니. 매달려도 모자랄 판에 왜 저런 쓸데없는 소리가 나온 걸까. 제 실수에 절망한 리암은 얼른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어…… 피곤하지? 걸을 수 있겠어? 방까지 같이…….”

“아뇨!”

단호하게 고개를 저은 다프네는 얼른 허리를 꾸벅이고는 그를 지나 계단을 빠르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리암은 여전히 제 빨래를 끌어안은 채로 다프네의 발소리가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계단에 홀로 남게 되었을 때, 그는 멍한 얼굴을 하고서 다시 2층 복도로 향했다.

다프네와의 대화를 하나씩 복기하면서.

“하…… 망했네.”

떠올릴수록 한심한 제 대답들을 어찌하면 좋을까.

그는 이제야 ‘이건 그렇게, 저건 이렇게…….’라며 제 대답을 이래저래 바꾸어 보았다.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2층에 도착하여 문을 열었다.

“…….”

그는 잠시 멈칫거렸는데, 그건 문 앞에 상상하지도 못한 인물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제게 주시겠습니까?”

바로 조용히 저택을 관리하는 집사, 던컨이었다. 그는 리암이 소중히 끌어안은 빨래를 눈짓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아…….”

리암은 자신이 여태 이걸 안고 있던 것을 몰랐기 때문에, 조금 당황하면서도 어떤 오해가 있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다.

“이, 이건 다프네가 일을 내게 미룬 것이 아니라.”

“압니다.”

던컨은 그의 손에서 빨래를 가져가며 빙긋 웃었다.

“공작님께서 일방적으로 빼앗으시는 걸 봤습니다.”

“……봤!”

“아시다시피 사용인 계단은 지하부터 지붕까지 쭉 연결되어 있고, 소리가 아주 잘 울리는 편입니다.”

“제발 아니라고 해 줘.”

리암은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애원했지만, 던컨은 충실한 집사로서 저택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들을 정확하게 보고할 의무가 있었다.

“사용인 홀에 공작님이 고백하시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리암은 가까운 벽에 머리를 기대었다. 이래서야 진짜 다프네에게 폐가 될 것이 아닌가.

“한 가지 위로의 말씀을 드리자면.”

“……이 상황에 위로가 될 말은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데.”

“아뇨, 분명 될 겁니다.”

던컨은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다들 알고 있었습니다.”

“뭐?”

리암이 놀라서 시선만을 돌려 던컨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사용인들이 모두 알고 있었단 말인가? 그와 다프네 사이가 가까워진 것은 최근의 일로, 모두 클롯모어 바깥에서 이루어졌다.

그 이후에는 애슐리를 처단하는 일로 정신이 없었고.

“최근의 공작님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 겁니다.”

“어떻게 알지? 분명히 난 완벽하게…….”

“서튼 양을 계속 바라보지 않으셨습니까. 남들 모르게 보신다면서 가자미처럼 눈동자를 돌려서요.”

“아닌데.”

“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집사는 지난 며칠간 리암의 부끄러운 행적을 기꺼이 읊어 주었다.

다프네가 식사를 남기지 않고 잘했는지 몰래 알아보던 것.

일을 마치고 무사히 방으로 돌아갔는지 사용인들에게 조심스레 물어보았던 것.

혹시 그녀가 진찰을 빼먹을까, 모두에게 그녀의 진찰 시간을 공지해 버린 것.

그렇게 알뜰살뜰 챙기다가도 막상 다프네가 그의 앞을 지나갈 때는 황급히 서류를 보는 척하는 모습까지.

리암은 애써 한 가지를 정정해 보려고 했지만, 그다지 소용은 없었다.

“어쨌든.”

집사는 한 걸음 물러서며 그의 젊은 주인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일단은 제 선에서 침묵해 달라 부탁했습니다. 공작님께서 이들의 무거운 입을 칭찬해 주신다면 더욱 기쁘게 협조할 겁니다.”

“……그러지.”

“일단 모두 공작님을 응원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건 참 고마운 일이었기 때문에, 리암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 하지. 그대가 나의 집사라서 다행이군.”

“아닙니다. 어쨌든 저도 공작님이 자랑스럽습니다. 첫눈에 반한 이후로 드디어 제대로 말씀하셨으니.”

또 한 번 들려온 놀라운 이야기에 리암의 눈이 또 휘둥그레졌다.

첫눈에 반했다고?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었다.

그는 그냥…… 기차에서 난생처음 보는 귀여운 아가씨가 떨어지는 짐에 이마를 찧을 것 같아서 얼른 도와준 것뿐이었다.

그 깜찍한 이마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라도 난다면 인류의 손실일 테니까.

그건 공익을 위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리암은 절대로 다프네에게 첫눈에…….

“……반했었구나.”

집사가 ‘역시 그렇죠?’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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