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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30)화 (130/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30화

다음 날 아침.

리암의 옷가지를 챙긴 다프네는 그의 방 앞에서 잠시 심호흡을 했다. 이대로 문을 열고 들어가면, 리암이 분명 호통을 칠 테니까.

‘주인을 앞에 두고 줄행랑을 쳐? 그런 서튼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도 없는데?!’

그의 성난 얼굴을 떠올리자 어째 저절로 두 다리가 뒤를 향해 움직이려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우물쭈물하느라 그의 아침 준비가 늦는다면, 곤란해지는 건 다프네였다. 또 다른 잔소리를 들어야 할 테니까.

다프네는 작게 노크하고 그의 방문을 열었다.

빼꼼히 고개만 먼저 내민 후에는 호랑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을 리암을 찾았다.

“왔나?”

“……!”

“안 들어와?”

의외로 그는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일단 다프네를 방으로 끌어들이려는 작전일지도 모르니, 다프네는 경계를 풀지 않고서 예의 바르게 사죄부터 건넸다.

“아, 안녕하십니까, 공작님. 어제는 제가 무례를 범했습니다.”

그의 눈썹이 살짝 움찔거렸다.

눌러 놓은 분노가 솟아오르려는 신호인 듯했으니, 다프네는 그의 옷을 끌어안은 채로 얼른 몸을 숙였다.

“음…… 아니, 신경 쓰지 않아. 그보다 오늘 일정은 전해 들었나?”

“예?”

다프네는 놀라서 고개를 들어 보았다.

가운을 입은 리암은 여전히 별 감흥 없는 얼굴로 다프네가 옷을 가져다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 네.”

다프네는 얼른 침대 위로 그의 옷가지를 내려놓았다.

“마을에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리암은 마을에 갈 때마다 유행을 타지 않는 정장을 고집했다. 영지 사람들에게 단정한 예를 갖춘다는 의미로.

그는 다프네가 가져온 옷가지를 훑어보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날씨가 더워서 가능하면 시원한 옷감으로 준비하긴 했습니다.”

“그런 것 같네.”

“오후에는 소나기가 올 가능성이 있어서, 차에 우산을 가져다 두었고요.”

“고마워.”

그는 가운을 벗고서 하얀 셔츠에 팔을 껴입었다. 다프네가 단추를 채워 주기 위해 다가섰지만, 그는 가볍게 손을 들어 이를 거절했다.

“내가 하지. 아 그리고, 마을로 갈 때는 나를 따라오지 않아도 좋아.”

“네?”

어디든 리암을 따르며 그의 편의를 돕는 것이 다프네의 일이었다.

‘설마 내가 아플까 봐 그러시는 걸까?’

“딱히 그대가 아파서 배려해 주려는 건 아니야. 그럴 이유도 없고.”

그는 꼭 다프네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이야기하며 팔을 들었다.

다프네는 그의 옷소매를 당겨 단추를 채우며, 이어지는 이야기를 기다렸다.

“마을 대표가 나를 점심 식사에 초대했는데, 일전에 나 혼자 가겠노라고 답을 해 놓았거든.”

“아…….”

“갑자기 두 사람이 찾아가면 그에게 폐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뿐이니,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거라도 하면서 지내.”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이후로 그가 옷을 입는 동안 이어진 대화는 없었다.

다프네는 무언가 먼저 이야기를 걸어야 하는지 고민했지만, 일자로 다물어진 그의 입을 보면 왠지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만두고 말았다.

리암이 마을로 나가자, 한가해진 다프네에게 브리가 찾아와 함께 마을 기록실로 가자고 권했다.

마침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다프네는 얼른 챙이 넓은 모자를 챙겨 쓰고서 뒤뜰로 나왔다.

그곳에는 외출복을 입은 브리와 표정을 잔뜩 구긴 아셔가 나란히 서 있었다.

“아셔, 웬일이에요?”

친근하게 다가서며 묻자, 그가 흥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그 몸으로 마을까지 걸어갈 생각입니까?”

“설마 아셔가 태워 주시려고요?”

이에 대한 답은 그의 곁에 서 있던 브리가 대신해 주었다.

“네, 다프네가 외출한다고는 소식을 듣더니, 마플 씨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아야, 왜 제 팔을 때리세요?”

“제, 제가 언제 바로 일어났습니까! 그냥 좀 여유가 있어서 운전 연습이나 하려는 것뿐입니다. 저, 저런 월급 도둑을 위해서 제가 운전을 할 것 같습니까!”

“실제로 하시겠다며 이렇게 나와 주셨잖아요?”

브리가 반박했지만, 그는 코웃음을 쳤다.

“웃기는 소리 마시길.”

그 후에는 다프네를 향해 험악한 얼굴로 허리를 기울였다.

“오늘은 특별히 태워 드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루빨리 쾌차해서 월급만큼은 일하시기 바랍니다. 아시겠습니까?”

“고마워요. 변함없이 다정하네요, 아셔.”

다프네가 방긋 웃으며 답했지만, 그는 어째 대답도 없이 획 차고로 가 버렸다.

* * *

아셔는 ‘차가 무거워서 안 나가네.’라며 시동을 세 번 정도 꺼트렸다.

그 정도면 꽤 짜증을 내면서 저택으로 돌아가 버릴 법도 한데, 도착한 후에는 마을 기록실까지 함께 들어와 주었다. 아마 돌아갈 때도 태워 주려는 모양이었다.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는데 괜찮아요? 바쁘잖아요.”

“저, 전 누구와는 달리 유능해서 괜찮습니다. 효율적으로 일하죠.”

그가 편히 시간을 보내라 했기에 다프네는 최근에 발행된 신문을 여럿 골라 책상으로 가져왔다.

사실은 시간 순서대로 신문을 볼까 싶었는데, 역시 애슐리의 처형 기사를 먼저 보고 싶었다.

여기에서 전부 읽을 계획은 아니었고, 적당히 제목만 훑어본 후 기록실에 양해를 구하여 저택으로 가져가 읽을 생각이었다.

공작가의 사용인 배지는 이런 곳에서도 신용을 보장해 주니 이런 고마운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다프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신문을 살랑살랑 넘기며 제목만을 눈에 담았다.

‘린든 남작은 아직 처분이 결정되지 않았네.’

극악무도한 짓을 서슴지 않은 애슐리와는 달리 그의 처분을 결정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듯했다.

‘수도에 사 놓은 집도 팔아 버린 모양이고…… 어라.’

다프네는 제목만 읽기로 했던 것도 잊고서, 저도 모르게 자세한 내용까지 살피게 되었다.

[슬로언 공작은 린든 남작이 경매에 내놓은 주택을 가장 높은 가격에 사들였다.]

‘이걸 슬로언 공작님이 매입했다고?’

굳이 애슐리와 연관된 사람의 집은 왜 산 걸까?

보아하니 그도 형에 대해서 그다지 좋은 감정을 품은 것 같지는 않았는데.

호기심에 고개를 갸웃거릴 때, 그녀가 들여다보는 지면 위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여기에 올 거라면 내게 부탁하지 그랬어.”

“아.”

다프네는 고개를 들었다. 놀랍게도 리암이 그녀의 앞에 있었다.

“몇 권 골라서 가져다주었을 텐데.”

“이왕이면 직접 고르고 싶어서요.”

“그야…… 그렇지만. 그런데 여기에는 어떻게 왔지? 설마 이 날씨에 걸어온 건 아니겠지.”

이 날씨에?

그의 이야기를 듣고서 창문으로 시선을 돌리니 어느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 아니에요. 저기…….”

다프네는 고개를 높이 들어 멀리 아셔와 브리가 서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브리가 호들갑을 떨면서 서가 사이로 쑥 몸을 숨기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그녀는 아셔까지 잡아당기며 어떻게든 몸을 숨기라며 종용하고 있었다.

‘……왜?’

설마 업무 시간에 저택에서 빠져나와서? 하지만 리암이 그 정도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 주인은 아닐 텐데.

“저기에 뭐가 있나?”

리암이 뒤늦게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는데, 이제 그쪽에는 신문과 책장만 있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그가 다프네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얼른 다시 고개만 불쑥 내민 브리가 한쪽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헤어지는 인사를 하듯이 말이다.

“대체…….”

어딜 가느냐고 물으려던 다프네는 그녀가 입술 위로 손가락을 대는 통에 얼른 입을 다물어야 했다.

“대체?”

여전히 의아해하는 리암은 다프네가 하다 만 이야기를 재촉했다.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프네는 하려던 말을 얼버무렸다. 어쩌면 브리나 아셔가 리암과 마주치지 않아야 할 상황이 있는 걸지도 모르니까.

“혼자 걸어왔습니다. 조금 전에는 비가 오지 않았거든요.”

“우산은?”

“기다리면 금방 그칠 테니까요. 어차피 신문을 다 고르지도 못했고요.”

“그래?”

짧게 답한 리암은 바로 몸을 돌려 서가 사이로 사라졌다. 아무래도 다프네에게 더 볼일은 없는 듯하여, 그녀는 괜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대체 뭘 그리 긴장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프네는 얼른 신문 몇 권을 더 가져와 저택으로 가져갈 것을 정했다.

사실 시기별로 조금씩 가져갈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꽤 많은 양을 고르게 되었다.

운반용 가죽 가방 두 개를 꽉 채울 정도였으니까.

다프네는 턱 아래까지 쌓아 올린 가방을 두 손으로 들어 올린 채로 기록실을 나섰다.

신문을 고르고 나면 어느 정도 비가 그칠 줄 알았는데, 현관으로 나와 보니 여전히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다.

“더 있다가 가야 하나…….”

곧 그녀의 머리 위로 커다란 우산 하나가 씌워졌다. 다프네는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공작님? 안 가셨어요?”

그는 어째 입술을 삐딱하게 한 채로 다프네를 노려보고 있었다.

“기록실은 공작가의 자산으로 운영되는 곳이니까.”

“……네?”

“날짜가 지난 신문은 귀해. 젖어 버리기라도 하면 다시 구할 수도 없어 다른 지역에 비싼 값을 주고 사 와야 하지. 그래서 기다렸어. 다른 이유는 하나도 없어.”

그는 꼭 몇 번이나 그 말을 연습한 사람처럼 기계적인 답을 숨도 쉬지 않으며 빠르게 건네고는 턱 끝으로 큰길을 가리켰다.

“근처에 차 대 놨어.”

그는 다프네의 손에 들린 가방을 빼앗듯이 가져간 후, 그녀의 손에 우산을 들려주었다.

“제가 들겠습니다. 가방은 무겁습니다.”

“하지만 주인인 내가 우산을 씌워 줄 수는 없지 않나.”

그건 듣고 보면 그렇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사용인의 가방을 들어 주는 주인도 없는 법이었다.

“서둘러.”

하지만 다프네가 무어라고 반박하기도 전에 리암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말았다.

결국, 다프네는 그에게 짐을 맡긴 채로 가벼운 우산만을 들고 그와 나란히 걷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다프네는 한쪽 팔을 높이 들어서 최대한 그에게 우산을 기울였다.

“제대로 들어야지.”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작님께서 저보다 키가 크셔서…….”

“아니, 나 말고 그대가 젖잖아.”

그리 말하며 다프네의 반대편 어깨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는 왠지 깊은 걱정이 담겨 있었다. 그건 신사로서의 기본적인 소양에서 나오는 것일까,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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