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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10)화 (110/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10화

“아직 밝히지 않았습니다. 보고드릴 내용은 이상입니다.”

“고마워. 도움이 되었어.”

리암은 앨러스테어를 향해 씩 미소를 지었다.

“아, 음. 내가 먼저 돌아가도 되나? 지금 좀…… 상황이 급하거든.”

“저는 상관없지만, 혹시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아…… 뭐.”

리암은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표정 관리에 실패했지.”

“드문 일이군요.”

“나도 정말로 놀라운 일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야.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던 일인데도…….”

리암은 앨러스테어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곤 황급히 몸을 돌렸다.

처음에는 걷는가 싶었던 다리가 정신없이 달리기까지는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제기랄.’

그는 자신을 향해 욕설을 지껄이며, 입술을 깨물었다.

다프네가 지난 생에서 결혼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이미 하고 있었다. 이미 그녀가 몇 번인가 했던 말실수를 통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 상대가 누구인지는 쉽게 짐작하지 못했는데…… 조금 전에 종이를 들어 올릴 때의 표정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애슐리 슬로언이 틀림없었다.

‘얼른 괜찮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이제 후회해야 늦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을 질책하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리암은 애슐리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아마 다프네도 그의 어린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시간을 감당해 왔으리라.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로, 혼자 눈물과 괴로움을 끌어안으며…….

당연하지만,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 리암은 사라진 시간의 다프네를 안아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애달픈 감정에만 깊이 빠져들어 정말로 중요한 것을 잊고 말았다.

‘조금 더…… 태연하게 굴어야 했는데.’

괜찮다고, 사라진 시간에 속박당하지 말라는 말을 먼저 전했어야 했다.

그녀의 지옥을 상상하며 아파하기보다는 눈앞의 다프네 서튼을, 그를 믿고 모든 것을 말해 준 유일한 상대를 안심시켜 주어야 했다.

어느새 남작의 저택에 도착하여, 그는 정신없이 준비실로 향했다.

“다프네!”

하지만 안에 남은 건 완벽하게 완성된 하얀 종이 더미뿐, 다프네는 없었다.

어째서일까.

리암은 심장 한구석이 서늘해지며, 조금 전에 앨러스테어가 전해 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혼인 허가증을 받아 갔다고 합니다.」

* * *

다프네는 린든 남작가의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리암과 함께 서류를 찾던 서재에도, 그녀가 사용하던 방에도, 그토록 열렬한 순간을 보낸 다락방에도.

리암은 잠시나마 ‘혹시 클롯모어로 먼저 돌아간 건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금세 고개를 저었다.

다프네 서튼은 중간에 일을 내팽개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비록 남작 가문과는 다프네 페이지라는 익명으로 계약을 맺었으나, 이를 완수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리암 슬로언이 여기에 있는 한, 다프네는 결코 이곳을 떠나지 않는다.

그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저택을 내달리며 그녀를 찾아 헤매다가 다시 준비실로 돌아왔다.

“……다프네.”

흐릿하게 이름을 부르며 어질러진 실내를 돌아볼 때, 그는 바닥에 떨어진 종이 뭉치를 하나 발견했다.

리암은 이를 펼쳐 들었다.

[저는 사라진 시간에서 결혼했었습니다.]

“…….”

그는 한동안 미동도 하지 못했다.

* * *

한편, 다프네 서튼은 깊은 그늘 안에서 두 눈을 떴다.

그녀는 곧바로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잔뜩 열이 올랐는지, 손바닥이 제법 차갑게 느껴졌다.

‘어지러워.’

이 어지럼증은 고열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병이라도 걸린 걸까.

다프네는 자세가 불편하다고 느끼곤 돌아누웠다.

그러자 세상이 그녀를 두고 빙글 돌아가는 듯한 감각이 덮쳤다.

“흐…….”

저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아무래도 몸을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될 것 같았다. 머리를 조금만 움직여도 세상이 핑핑 도는 듯 느껴지니…….

“감사함니다, 주인님.”

문득 멀지 않은 곳에서 기묘한 외국 억양이 들려왔다.

“그럼, 물러가겠슴니다.”

외국 억양의 남자가 누군가에게 인사를 건넸다.

대체 누구와 누구의 대화일까?

다프네는 의문이 떠올랐지만 잠시뿐이었다. 무심결에 머리를 움직인 탓에 어지러움이 다시 몰려온 것이다.

이번에는 증세가 더 심했다. 손과 발이 저릿저릿해지며, 토기가 몰려올 정도로.

이런 상황에서도 다프네는 ‘여기에서 토하면 빨래가 늘어날 텐데.’라며 아픈 몸을 버둥거렸다.

그녀는 가까스로 상체를 일으켰다. 침대 밖으로 고개를 쭉 기울였다. 운 좋게도 거기엔 텅 빈 양철통이 있었다. 다프네는 상체를 아래로 늘어뜨린 상태에서 이를 붙잡고 토악질을 해 대었다.

“욱…….”

심장을 막은 듯 답답했던 것을 전부 쏟아 내고 나서야 다프네는 겨우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여기는.”

조금 흐릿했던 시야는 그녀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점점 선명해졌다. 곧 익숙한 모양의 창문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

심장이 바닥으로 치닫는 감각을 느끼며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여기는 다프네의 지옥이었다.

애슐리 슬로언의 집 말이다.

‘어떻게 된 거지.’

다프네는 떨리는 손으로 침대를 짚어 가까스로 자신을 지탱한 채로 제게 일어난 일을 떠올렸다.

‘공작님과 일을…… 일을 하고 있었는데…….’

곧 지끈거리는 머릿속에 당시의 정황이 떠올랐다.

종이꽃을 정리하던 중 정리실의 문이 열렸다. 당연히 리암이 돌아온 줄 알았지만, 돌아본 곳에는 애슐리 슬로언이 있었다.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다프네는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의식을 잃고 말았다.

“욱…….”

다시 토기가 밀려오는 듯하여, 다프네는 침대 아래 있는 양동이를 붙잡았다.

비릿한 것이 역류해 올라오기를 한참, 겨우 몸을 일으킨 다프네의 눈에 띈 것이 있었다.

“……이건.”

빈 유리병이었다.

“……!”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 병에 대한 기억이 곧바로 떠올랐다.

리암과 함께 지하에서 토마스를 발견했을 때, 그 옆에 이와 같은 병이 뒹구는 것을 몇 개나 발견했었다.

“말도 안 돼.”

다프네는 떨리는 손으로 유리병을 집어 들었다.

병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 * *

다프네 서튼이 사라진 지 사흘의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은 리암이 품었던 어떤 희망적인 가정에 가위표를 그리게 되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어디에도 없었다.

정말로 사라진 것이다.

“공작님, 쉬셔야 합니다. 잠시라도요.”

빈속에 벌써 몇 잔째의 쓴 홍차를 들이붓는 그를 걱정한 사용인이 조심스레 이야기를 건넸지만, 리암은 굳게 고개를 저으며 충혈된 눈으로 응시하던 보고서를 내려놓았다.

“여기에도 없다고. 비슷한 사람마저 없었다고…….”

“공작님.”

“하.”

자리에서 일어난 리암은 설탕통을 들어 뜨거운 홍차에 죄다 쏟아부었다. 가운데에 하얀 산이 솟아오른 끔찍한 홍차를 그는 단숨에 들이켰다.

“수도, 클롯모어, 오린샤이어, 엠버혼……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지. 각 국경은 물론이고.”

리암은 자신의 영향력이 닿는 모든 곳에 기사를 보내서 다프네를 추적했으나, 오늘까지 그럴듯한 수확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서튼 양은 휴가 기간이 끝나면 분명히 돌아올 겁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말입니다.”

하인이 조심스레 의견을 밝혔지만, 리암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다프네 서튼이 아무리 철저하게 변장을 했다고 하더라도 기사들의 추적을 따돌릴 위인은 되지 못한다.

리암은 가장 유력하게 세워 두었던 가정을 떠올렸다.

지금까지 그것이 아니기만을 바라며 다양한 가능성도 함께 확인했던 것이나, 이제는 더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빈 찻잔을 쥔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애슐리 슬로언.”

그를 부르는 말에는 분노와 함께 공포가 뒤섞였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느꼈던 감정과는 달랐다.

그가 지금 애슐리를 두려워하는 것은 얼마 전에 목격했던 그의 끔찍한 실험 내용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강제로 기억이 지워지는 끔찍한 일을 겪은 아이입니다.」

리암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 다시 하인을 돌아보았다.

“왕실에 다시 알현 요청을 넣어. 이젠 정말로 더 미룰 수…… 아니.”

그는 찻잔을 내려놓고서, 옆에 걸어 둔 모자를 챙겨 들었다.

“바로 가겠다.”

애슐리가 만든 약은 단번에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꾸준히 이를 섭취하면 토마스와 마찬가지로 몇 년의 기억쯤은 간단히 사라졌다.

그러니 다프네를 찾는 일에 쓸데없는 절차 따위를 논하느라 시간을 쏟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마법사 거주 구역에 들어가서 다프네를 찾아오는 것이 우선이었다.

마법사들의 땅을 침범한 대가를 요구한다면, 리암 역시 신성한 맹약을 침범받은 대가를 요구하리라.

어쨌든 다프네가 무사히 돌아오기만 한다면…….

그가 현관 앞으로 나섰을 때였다.

“실례합니다.”

리암의 집 문 앞에는 어째서인지 치안대원들이 늘어서 있었다.

가장 앞에 서 있던 치안대장이 리암의 앞에서 가볍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외출하시는 중에 죄송합니다.”

“무슨 일이지?”

리암은 그들을 한 사람씩 바라보며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저희와 함께 가 주셔야겠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식 서류가 없다면 나중에 내가 찾아가도록 하지. 지금은…….”

리암의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치안대장은 품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왕의 도장이 들어간 것으로, 당장 리암 슬로언을 궁으로 데려오라는 명령서였다.

“무슨 일이지?”

엘리엇이 리암을 이런 식으로 부른다는 것은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뜻이리라.

치안대장은 리암의 앞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휴고 마플과 협력한 아동 시설의 원장을 찾았습니다. 아니, 제 발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가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고?

공작가의 기사들과 왕이 보낸 치안대원이 힘을 합쳐도 잡히지 않았는데, 하필이면 다프네가 사라진 이 시점에서?

리암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슬로언 공작님의 명령으로 휴고 마플과 오랜 협력 관계를 구축해 왔음을 인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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