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09화
[나는 오늘 아침에 보석상에 다녀왔다.]
“어…… 정말요?”
다프네가 묻자, 그는 종이를 든 채로 씩 웃었다.
“그래.”
“보석상이 오후나 되어야 문을 여는 건 아시죠?”
“산책 중에 우연히 보석상을 만났지. 가게 청소를 하러 간다기에 따라갔어.”
“왜요?”
“뭔가 살까 해서.”
대답을 마친 그는 종이를 책상 아래로 내려놓았다.
“이렇게 질문 세 개를 끝내면, 이제 그대가 맞출 차례야. 종이에 적힌 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예? 하, 하지만 저는 두 개밖에…….”
그리 이야기하던 다프네는 처음에 말했던 ‘정말요?’도 질문에 포함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단 대답은 사실대로 하신 거죠?”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지.”
“그런데 어떻게 맞춥니까!”
“표정이나 말투를 면밀하게 관찰하면 알 수 있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어떻게든 표가 나기 마련이니까.”
“순 거짓말쟁이 게임이네요! 게임 이름에 이용만 당한 ‘진실’에 당장 사과해야 할 겁니다.”
“그래서.”
리암은 의자를 바짝 당겨 앉으며, 턱을 괴었다.
“진실일까?”
“당연히 거짓이죠. 산책 중에 보석상을 만나서 충동구매를 하다뇨. 그런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렇게 오답을 말하면 별칙을 받는 거야. 지독하게 떫은 홍차를 마시거나 독한 술을 마시게 되지.”
“네? 제가 틀렸다고요?”
“그래, 그러니까 눈 감아. 벌 줄 테니까.”
“아…… 으.”
다프네는 리암이 다프네를 괴롭히기 위해 억지를 부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일단은 두 눈을 감았다.
그러자 곧 이마 위로 차가운 것이 톡톡 닿는 느낌이 들었다.
“……?”
눈을 떠 보니, 그녀의 눈앞에는 광명이 비치고 있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말이다.
다프네는 조금 전까지 제 이마를 두드리던 물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금괴가 왜 여기에 있습니까?”
“그대가 좋아하잖아, 금괴.”
리암은 그녀의 손 위로 납작한 금괴를 톡 놓아주었다.
“큰 건 시간이 좀 걸릴 거야. 주문은 했어.”
“예?”
“급한 대로 일단 작은 거라도 사야 할 것 같아서.”
“어, 어…….”
다프네는 그가 금괴를 건네는 행위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서 이를 든 채로 머뭇거리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와 맹약을 맺고 나올 때, ‘금괴를 선물하는 남자의 마음’은 어느 소설에도 나온 적이 없다며 불평했었으니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이건 그냥 순수한 구애 행위야.”
“아…….”
그런 뻔뻔한 말에는 대체 뭐라고 답하면 좋을까. 다프네는 금괴를 만지작거리며 잠시 고민했다.
“그…… 저, 비싸지 않나요.”
비록 형편없는 답만 나왔지만 말이다. 그런데도 리암은 재미있다는 듯 턱을 괴며 웃었다.
“다행이지 뭐야. 내가 반한 아가씨는 정말로 돈을 좋아하고, 다행히도 나는 그것이 넌덜머리 나도록 있지.”
돈이 넌덜머리 나도록 있다니……!
달콤한 이야기에 다프네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이를 알아차린 리암이 야살스럽게 웃었다.
“알기 쉬운 아가씨 같으니.”
“…….”
“그보다 얼른 주머니에 넣어 둬, 누가 이걸 보기라도 하면 설명할 길이 없으니까.”
“가, 감사…… 합니다.”
다프네는 뭔가 더 좋은 말을 해야 할 것 같았지만, 지금은 왠지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별말씀을, 그럼 다시 일할까?”
“네.”
다프네는 얼른 붓을 들고서 종이에 발랐다. 방문한 손님마다 종이를 세 장씩은 드릴 계획이라고 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작업해야 할 양은 많았다.
‘진실…… 게임이라.’
다프네는 흘끔 고개를 들어 종이꽃을 붙이는 리암을 바라보았다. 그는 일에 열중하느라 다프네의 시선을 깨닫지 못했다.
“저기, 있잖아요.”
“그렇게 해.”
그는 다프네가 별다른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허락하는 말을 해 주었다.
“네?”
“문제를 내고 싶다는 거잖아.”
“어, 어떻게 아셨어요?”
그는 다프네의 앞에 장식된 종이와 펜을 놓아주었다.
“그러게, 어떻게 아는 걸까? 어쨌든 여기에 써 봐, 맞춰 줄 테니까.”
“어…… 감사합니다.”
다프네는 일단 펜을 집어 들고서 빈 종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에게 사실을 이야기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음에도, 막상 이렇게 행동으로 옮기자니 머뭇거리게 되었다.
‘괜찮아.’
다프네는 펜을 쥔 손에 힘을 주고서 어젯밤의 일을 떠올렸다.
그는 진심으로 다프네를 바란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리암의 진실한 감정을 믿어야 할 때였다.
한 글자씩 꾹꾹 눌러서 겨우 문장을 완성한 후, 다프네는 이를 얼른 뒤집어 가슴 근처로 끌어안았다.
종이꽃을 붙이는 데 열중하던 리암이 드디어 시선을 들었다.
다프네는 속으로 셋을 세었다.
그 후에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조금 전에 적은 문장을 그에게 내어 보였다.
[저는 사라진 시간에서 결혼했었습니다.]
잠시 놀라울 만큼의 적막이 이어졌다. 다프네는 두 눈을 감은 채로 부디 리암이 무엇이라도 좋으니 빨리 반응을 보이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꽤 긴 시간이 지나도 그에게서는 어떤 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불안이 밀려왔다.
혹시 실수한 걸까?
역시 게임 따위의 형식을 빌릴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야 했던 걸까?
다프네는 꼭 감았던 눈을 슬그머니 떴다. 조금 흐릿한 시야 너머로 리암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다프네가 내민 종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깊은 상처를 입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다프네는 이제야 자신이 굉장히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그녀는 황급히 종이를 구겨 손안에 쥐었다.
“장난이 지나쳤습니다. 잊어 주세요.”
다프네는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나다가 그만 테이블 다리를 걷어차 버렸는데, 그 때문에 얇은 종이꽃이 가득 든 바구니가 옆으로 떨어져 엎어지고 말았다.
“……!”
하늘하늘 분홍색 종이가 팔랑이며 떨어지는 사이로, 리암의 손이 다가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다프네.”
“죄송합니다.”
다프네는 그를 뿌리치며 사과를 건넸지만, 그는 기어코 다시 다가와 양어깨를 붙잡아 세웠다.
“잠시만.”
“죄송해요, 그게.”
그를 차마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한 채로, 변명의 말을 건네려던 때.
“그 자식이야?!”
거친 물음이 돌아왔고, 다프네는 대답 대신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바보야.’
이런 일을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괜찮을 거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었을까.
“정말…… 그 자식이었어?”
재차 묻는 리암의 손에서 조금씩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다프네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서 몸을 비틀어 빠져나왔다. 몹쓸 과거를 이야기하여 그를 상처 입혔는데, 어떻게 여기에 더 머물겠는가.
“……갈게요.”
그녀는 도망치듯 걸음을 서둘렀다.
그런데, 때마침 다프네의 앞에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연 것은 아니었다.
“……아.”
열린 문 사이로 나타난 것은 남작가에서 손님으로 머무는 앨러스테어였다. 그는 난장판이 된 실내를 가만히 쭉 둘러보다가, 리암을 향해 바로 섰다.
“말씀드릴 일이 있습니다.”
엉망이 된 방과 이상한 분위기를 보고도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꽤 중요한 일인 듯했다.
“잠시만 밖에서 기다려 줘, 앨러스테어.”
“죄송하지만.”
앨러스테어는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제게는 눈에 띄지 않게 이 복도에 머물 방법이 없습니다.”
“……하.”
이제야 그 사실을 깨달은 듯 리암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는 이제 더 다프네를 돌아보지 않은 채로, 앨러스테어와 함께 복도 너머로 사라졌다.
다프네는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준비실로 들어와 바닥에 쪼그려 앉아 떨어진 종이꽃을 주웠다.
그중 일부는 먼지에 더럽혀지고 구겨져 있었다. 다프네는 못쓰게 된 것을 골라내어 작은 주머니에 모아 담았다.
한때 꽃을 닮아 예뻤던 것인데, 이제는 그냥 쓰레기가 되고 말았다.
* * *
리암은 앨러스테어를 따라 아주 주택 바깥으로 나왔다.
넓은 길을 지나 좁은 골목에 도착하자, 앨러스테어는 비로소 리암을 찾은 용건을 이야기했다.
“조금 전에 마플과 피오나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뭐라고 하지?”
한숨을 쉰 앨러스테어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조금 더 목소리를 낮추었다.
“일단 마플은 아직 아동 시설 원장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혹시 전하께 인력 요청을 드릴 수 있는지 여쭙더군요.”
“그렇지 않아도 이미 부탁해 두었어. 곧 아셔에게 연락이 갈 거야.”
“전달하겠습니다, 그리고 피오나가 전하길…….”
앨러스테어는 잠시 뜸을 들였다.
“왕실에서 애슐리 님을 대마법사로 세우자는 요청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아직 정식으로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결국, 받아들인 건가.”
리암은 잠시 제 턱을 만지작거렸다.
아마 엘리엇이 애슐리의 집을 수색했던 일에서 끝까지 자유롭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아무쪼록 마법사들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두는 것은 왕실에게 무척 중요한 일이니.
“예, 그리고 특별 혼인 허가증을 받아 갔다고 합니다.”
리암이 얼굴을 구겼다.
공작가에 속한 가신들이 혼인 시 리암의 허가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법사들도 왕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물론 형식적인 절차로, 실제로 왕이 이를 거부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혼인 상대는?”
리암은 왠지 조바심을 내며 질문을 건넸다. 아마 조금 전에 다프네가 말해 준 ‘진실’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