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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97)화 (97/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97화

쿵.

그의 몸은 카펫 바깥의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프네는 아슬아슬한 순간에 그의 어깨 위로 바닥을 짚어, 감히 그를 깔아뭉개는 참사는 면할 수 있었다.

“……어.”

참사를 면한 건 좋았는데…….

순간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녀는 바닥에 닿은 손끝을 살살 움직여 보았다.

‘……왜 여기만 반들반들하지?’

이 낡은 오두막의 마루는 어디든 거칠고, 때로는 작은 나무 가시들이 보일 정도로 관리가 소홀했다.

그런데 지금 다프네의 손이 닿은 곳은 달랐다.

마치…… 여러 사람의 손이 닿은 ‘손잡이’처럼.

‘손잡이……?’

그녀는 여전히 리암의 위를 차지한 채로, 살짝 주먹을 쥐어 바닥을 톡톡 두드려 보았다.

‘조금 다른가? 아니…… 모르겠어.’

아무래도 카펫을 치우고 제대로 관찰해야 답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반들반들한 바닥과 딱 붙어 있는 리암도 방해되는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다프네는 이제야 그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정중하게 부탁했다.

“공작님, 잠시만 비켜 주시겠습니까?”

“…….”

다프네의 정중한 부탁에도 그는 어째 뺨을 붉힌 채로 다소곳하게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묘하게 호흡이 가빠 보였다.

“……왜 그러시죠.”

그리 묻던 다프네는 이제야 자신이 지엄하신 공작님의 몸 위에 풀썩 앉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무거우셨군요. 죄송합니다.”

다프네는 슬그머니 그에게서 내려오며, 곁에 떨어진 담요를 둘렀다.

자리에서 일어난 리암은 잠시 바닥에 납작 엎드렸는데, 어째 뭔가 굉장히 좌절하는 것 같았다.

“……난 조만간 분명히 말라 죽겠지. 그럴 거야.”

“걱정하지 마시길, 그때는 마른 체형도 보완할 수 있는 완벽한 의상을 준비하겠습니다.”

그 믿음직스러운 선언을 들은 리암이 잠시 고개를 들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거의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리암이 자리를 비켜 주었기 때문에, 다프네는 살며시 카펫을 미루고서 바닥을 살폈다.

아무래도 그녀가 ‘손잡이’라고 생각한 것은 옳았던 모양이다.

바닥에는 사람 하나 지나갈 정도의 작은 문이 달려 있었다.

딱히 비밀로 해 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카펫을 거두니 경첩이 바깥에 드러나 있을 정도였으니까.

“……창고일까요?”

“그럴 용도로 만들었을 거야.”

리암은 조부님의 서류에서 보았던 대피소의 구조를 떠올렸다.

혹시 지상층이 파괴되었을 경우나, 필요한 물건을 넉넉히 보관해 둘 용도로 작은 창고를 지하마다 만들어 두었다고 본 기억이 있었다.

“열어 볼까?”

리암이 먼저 제안했고, 다프네는 잠시 주저했다. 하지만 불현듯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선대 공작님과 아버지의 사고가 일어난 절벽이 이곳에서 멀지 않다는 것 말이다.

‘혹시…….’

여기에 관련된 어떤 것이 있지 않을까.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지나친 비약이었다.

‘하지만, 혹시 모르잖아.’

다프네는 굳게 결심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열어 보죠.”

다프네가 발견한 지점 근처에는 손가락 끝을 넣을 좁은 공간이 있었다.

리암이 손을 밀어 넣어 당기자 곧 무리 없이 문이 열렸다.

“……윽.”

안에서 올라오는 시큼한 냄새에 두 사람은 동시에 인상을 찌푸렸다.

다프네는 입으로 가까스로 호흡하며, 어두운 지하로 고개를 쑥 들이밀었다.

아직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왠지, 어딘가.

익숙한 냄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불쾌한 것인데도 꼭 어딘가에서…….

그것도 지난 생의 어느 한순간에 맡은 기억이 있었다.

확신할 수 있었다.

“여기…… 내려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공작님.”

* * *

리암이 사다리를 먼저 내려갔다. 다프네는 그사이 서랍장에서 꺼내어 온 짧은 초에 불을 붙여 지하로 팔을 뻗었다.

아스라한 빛 덕분에 어둠에 가려져 있던 지하의 모습이 어렴풋이 윤곽을 드러냈다.

다프네는 곧 리암을 따라 사다리를 내려갔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시큼한 냄새가 점점 심해져, 입으로만 호흡하는데도 자꾸만 구역질이 치밀어 오를 것 같았다.

“힘들면 내려오지 않아도 돼.”

반면 리암은 이런 역한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표정이나 목소리에 딱히 변함이 없는 것을 보면.

“아뇨.”

다프네는 겨우 입을 열어 답하며, 사다리 아래로 내려왔다.

움직이기 편하도록 단출한 슈미즈 차림뿐이었지만, 어둠이 깊은 곳이라 그런지 그다지 부끄럽지는 않았다.

“괜찮습니다.”

그는 잠시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기는 했지만, 곧 주변을 향해 촛불을 들어 올렸다.

미약한 불빛으로 어둠 전체를 환히 비출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는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천천히 불을 움직였다.

일단 낮은 천장 아래로 켜켜이 쌓인 나무 상자가 보였다. 리암이 가장 위에 있는 상자를 살살 두드려 보았는데, 내부가 텅 비어 울리는 소리뿐이었다.

촛불을 옮기자, 작은 나무 스툴이 하나 보였다. 그 옆으로 거대한 천이 시야를 가로막고 있었다. 벽면에 천을 붙여 놓은 것 같기도 했다.

또 촛불을 옮겼다. 이제 빈 상자의 맞은편을 볼 차례였다.

“이건…….”

그곳에는 나무로 짜 맞춘 장이 있었다.

칸마다 라벨이 붙어 있지 않은 다양한 유리병과 빈 종이, 그리고 쓰다만 노트 따위가 산발적으로 꽂혀 있었다.

도무지 정리라고는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다.

“여기에는 뭐가 들어 있는 거지?”

리암은 서로 다른 크기를 지닌 병을 하나씩 살펴보다가, 가장 오른편에 놓인 것을 향해 손을 뻗었다.

“……!”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다프네가 그의 팔을 잡아당긴 탓에 리암은 병을 놓치고 말았다.

차가운 돌바닥에 떨어진 유리가 산산이 깨어져 흩어지며 내부에 들어 있던 끈적이는 액체가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다프네?”

리암이 놀라며 돌아보았다. 대체 왜 갑자기 이렇게 팔을 붙잡았는지 의아해하는 것이리라.

빨리 설명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어째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약장을 보는 순간, 불현듯이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똑…… 같아.’

정리라고는 전혀 하지 않은 듯 보였지만, 사실 이 약장은 주로 사용하는 사람의 기준에 따라서 엄격하게 정해진 자리가 있었다.

그리고 다프네는 마침 이런 형식으로 약장을 관리하는 남자를 알고 있었다.

헷갈릴 수도 없었다. 청소 중에 조금이라도 틀리게 놓으면, 그의 엄벌이 떨어졌으니까. 이를 확신하는 순간에는 목덜미가 콱 조여지는 것 같았다.

순간 잠시 신경 쓰지 않고 있던 지하의 끔찍한 향기가 재차 그녀의 기억을 일깨웠다.

‘아…….’

이제야 뒤늦은 깨달음이 찾아왔다.

이 지독한 냄새를 맡은 것은 지난 생의 일이었다.

출장을 다녀온 애슐리가 건넨 가방을 열면, 이따금 꼭 이런 지독한 냄새를 풍길 때가 있었다. 그가 입었던 옷은 물론이고 여분의 로브에 이르기까지.

새해를 맞이하던 순간에 빨고 있었던 빨래에서도 이런 냄새가 났었고.

대체 어디에서 이런 지독한 것이 묻었을까?

다프네는 남편에게 그리 묻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실제로 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다.

혹여 꼬치꼬치 캐묻는다고 기분 상해할까 봐…….

“여기…… 였어.”

다프네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습기를 머금은 종이를 내려놓았다.

‘왜 하필이면 여기에?’

그는 깔끔하게 정리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끔찍한 냄새를 참아 줄 만큼 인내심이 있는 남자도 아니었다.

애초에 공작이 되어야 했던 남자가 아닌가.

그는 마법사가 된 이후로도 체면 같은 것을 몹시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런 남자가, 이런 냄새를 참아 낸다는 건.’

한 가지 경우밖에 없었다.

필요한 것이다.

이 냄새의 근원이 그에게는 꽤 필요한 것이라 그 우아한 몸에 불쾌함이 달라붙는 것을 감당한 것이리라.

그 미친 남자가 원하는 것.

명예.

마법사들의 정점에 서는 것.

이를 위해 그는 여러 사람의 병을 치료하거나, 정복되지 않은 까다로운 질병을 끊임없이 연구해 왔다.

그 목적이 무엇이든, 다프네는 적어도 그가 사람들을 구하는 일에 누구보다도 진심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제법 존경을 받을 법하다고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의 잔혹성이 숨겨져 있었다.

「몇 명의 인간만 실험용으로 보내 주면 금방 해결될 일인데.」

살아 있는 인간을…… 사육장의 쥐나 다름없이 생각한다는 것 말이다.

그의 이런 잔혹성이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왕이 법률로 인체 실험을 금지하고 있었고, 마법사는 이를 몰래 시행할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경과를 살펴야 하는 약의 경우에는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사는 곳과 이동을 제한당하는 마법사에게 그런 자리가 허락될 것 같나요? 어림도 없죠.」

다프네는 약장 옆을 돌아보았다.

애슐리의 방에서는 마침 이쪽에 실험 쥐의 사육장이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거대한 벨벳 천이 드리워진 벽면이 있을 뿐이었다.

다프네는 그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씩 가까워질 때마다 코를 찌르는 악취는 심해졌다.

그녀의 걸음 뒤로 리암이 빛을 비추어 주어, 시야는 점점 선명해져 갔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저곳은 사육장이었다.

다프네는 입술을 꾹 다문 채로 도톰한 천을 쥐고 이를 단숨에 젖혔다.

‘차악’ 하고 천이 휘날리며 어설프게 감춰 둔 광경이 단번에 드러났다.

작고 낡은 침대, 더러운 매트와 넝마나 다름없는 담요 그리고 비쩍 말라서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작디작은…… 남자아이.

소년의 곁에는 낡은 리본이 달린 외눈박이 토끼 인형이 곱게 놓여 있었다.

“……아.”

다프네는 입을 틀어막은 채 고개를 들었다.

「토마스는 외눈박이 토끼 인형이 없으면 잠을 못 잘 정도로 겁쟁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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