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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86)화 (86/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86화

서리병을 앓는 동생을 간호하는 브리. 그녀에게 애슐리는 정말 간절한 희망이었다.

게다가 다프네는 언젠가의 미래에 애슐리가 그 불치병을 완전하게 정복해 낼 것이라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

아마 그 시간에서 브리의 동생은 멀쩡히 살아남았으리라.

‘하지만, 그 시간에서 사무엘은…… 죽었어.’

브리가 제 동생이 살아남기를 바라는 만큼, 다프네의 마음도 같았다.

하지만 무거운 죄책감에 짓눌린 마음은 자꾸만 브리와의 일을 떠올렸다.

「손 부르튼 거 봐. 나중에 약 좀 가져다줄게요.」

「이건, 씩씩한 다프네가 좋아서 드리는 조언인데요.」

「글쎄요, 하지만 확실한 건 이제부터 다프네가 그 사실을 알아낼 거라는 사실이죠.」

「알죠? 제가 다프네를 좋아하는 거.」

클롯모어에 처음 도착한 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항상 다프네의 편에 서 준 고마운 친구였다.

곤란한 일이 있을 때면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아픈 날에는 가장 먼저 약을 가져다주거나, 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런 소중한 사람의 희망이…….

‘왜…… 저 남자의 손에 달린 걸까.’

다프네는 고개를 들어 애슐리를 마주했다.

그는 이제 충분히 식힌 수프를 조심스레 뜨고 있었다.

아주 약간의 섭취만으로도 치명적인 작용을 하는 독이니까, 애슐리의 목숨은 간단하게 끝나게 될 것이다.

그의 입술과 수프가 가까워졌다.

조금만 더, 조금만…….

탕!

조용했던 만찬실에 테이블을 내려치는 소리가 울렸다.

“…….”

다프네 자신이 저지른 일이었다. 그것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면서.

깜짝 놀란 애슐리가 다시 식기를 내려놓았다. 그는 수프를 조금도 먹지 않았다. 다프네는 그 사실에 안도하는 자신이 너무나도 실망스러웠다.

“서튼…… 양?”

그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부를 때, 다프네는 테이블을 돌아 그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앞에 놓았던 수프 접시를 그의 앞에서 옆으로 밀쳤다. 거칠게 밀려난 접시가 휘청이며 뜨거운 수프가 테이블 위로 질척하게 흘러내렸다.

‘……끝났어.’

그녀는 테이블을 짚은 두 손에 무게를 맡긴 채로 고개를 깊이 숙였다.

도무지 죽일 수가 없었다.

이 남자는 브리를 미소 짓게 하는 유일한 희망이다. 그것을 차마 다프네의 손으로 빼앗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와 사무엘을 살해한 애슐리 슬로언과 똑같은 종류의 인간이…… 도무지 될 수는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갑자기 테이블을 내리치고, 수프까지 내 버렸으니 ‘수상한 짓’을 했다고 선언하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어쩌면 애슐리는 다프네를 이미 의심하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서튼 양.”

하지만 그녀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어째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저 약간의 걱정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게…….”

다프네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를 마주하며, 어떤 변명을 건넬지 고민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렸네요.”

그는 무척 염려하는 듯한 얼굴로 다프네의 얼굴을 살폈다.

“……아, 아뇨.”

다프네는 얼른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죄송합니다. 수프는 다시 떠 올 테니…….”

“아뇨.”

애슐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프네의 앞으로 다가섰다.

“쉬는 편이 좋겠어요. 정말로 아파 보여요, 서튼 양.”

“그, 그럼 숙소를 잡았으니. 전 이만…….”

그곳으로 가겠다는 말에도 그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렇게 덜덜 떨면서 어떻게 시내까지 혼자서 가겠다는 거예요?”

“…….”

“여기에 있어요.”

그는 생긋 미소를 지으며 한 걸음 더 간격을 좁혔다.

그의 가슴께가 바로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 어색하여, 다프네는 슬그머니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가 또 한 걸음 다가왔다.

다프네는 곧바로 물러섰다. 이번에는 걸음에 다급함이 섞여 들었다. 아마 애슐리도 그 사실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한 걸음씩 다가와 기어코 그녀의 앞에 마주 섰다.

다프네는 떨리는 걸음으로 다시 물러서려고 했다. 하지만 곧 단단한 벽에 가로막혀 더는 자리를 옮길 수 없었다.

“…….”

다프네는 가까스로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애슐리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서 묘한 안도를 느낄 때.

그가 말했다.

“기껏 날 살려 놓았잖아요.”

“……!”

그 말은…… 꼭 애슐리가 다프네의 계획을 알고 있었다는 뜻인 것 같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애슐리가 ‘독’에 대해 직접 언급하고 내용물을 자세히 가르쳐 준 것은 지난 생의 일이었다.

다프네는 평소와 다르지 않게 행동했다. 독약도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같은 색의 액체로 채워 두었고.

무엇보다 그는 귀가 후 곧바로 만찬실로 왔으니, 독약을 확인할 새는 없었을 것이다.

“이상한 아가씨.”

그는 언젠가 홀로 중얼거렸던 말을 반복하며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쥐었다.

“내가…… 그렇게 좋아요? 그렇게 죽이고 싶다가도 새파래진 얼굴로 달려와 말릴 만큼.”

입술 끝으로 속삭여 건넨 말에 다프네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나, 난……!”

당신이 싫어, 너무나도 끔찍해.

솔직한 본심이 입술 끝에만 맴돌았다. 하지만 여전히 과거의 공포를 기억하는 몸은 차마 이를 소리 내어 말하지 못했다.

그녀는 사선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날 봐야죠.”

그러자 애슐리가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려 다시 그를 바라보게 했다.

“이대로 답해 줘요, 서튼 양.”

그는 여전히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것이 다프네를 더욱 두렵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에 대해 어디에서 배웠어요?”

“……!”

“그야 처음에는 나도 그저 이상한 아가씨라고 생각했답니다. 지난번 만남에서 말이에요.”

그의 손이 다프네의 턱선을 스치며 올라가, 동그란 귓가를 조물조물 문질렀다.

“혹은 처음 보는 인물의 취향도 단번에 맞춰내는 유능한 수행원이라고 여겼죠. 하지만.”

그는 다프네의 귓바퀴를 쥔 손에 조금 힘을 쥐어 당겼다.

“윽!”

다프네의 고개가 그의 손을 따라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완벽하잖아, 당신.”

“아파…… 흑, 아파요.”

“봐, 찡그리는 얼굴도 완벽하게 예쁘지.”

그는 허리를 깊이 숙여 그녀의 눈가에 가만히 입술을 기대었다. 어렴풋이 흐른 눈물 몇 방울이 그의 입술을 적셨다.

“당신은 나를 알아, 그렇지?”

“그런 일은…… 흡.”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하려던 입술은 그의 커다란 손에 가로막혔다.

“이미 알고 있을 텐데, 서튼 양.”

그는 다시 고개를 들어 올려 시선을 마주했다.

“나는 의미 없는 말을…….”

그는 의도적으로 말을 맺지 않으며, 다프네의 입술을 놓아주었다. 그녀의 입으로 듣겠다는 뜻이었다.

학습된 공포는 다프네의 입술을 움직이게 하여, 그가 생략해 버린 말을 읊어 버리고 말았다.

“질색…… 한다.”

“옳지.”

그는 쪽 소리가 나도록 다프네의 이마에 키스했다. 칭찬이라도 건네는 듯이.

“그럼 이제 말해 줄래요? 이걸 묻기 위해서 우리가 다시 만난 거니까.”

다프네는 조심스러운 시선으로 그를 다시 올려다보았다.

그 의기양양한 얼굴은 그녀가 기억하던 애슐리 슬로언 그 자체였다. 아마 지금도 다프네를 완전히 정복했다고 생각하고 있으리라.

‘……안 돼.’

다프네는 자꾸만 겁을 먹고 달아나려고 하는 제 마음을 억지로 다잡았다.

‘사실을 말하면, 그가 알게 되면…….’

모든 것이 끝이다.

그는 다프네의 잠재의식 속에 남은 공포를 전부 꺼내어 아낌없이 활용할 것이다.

그녀가 말을 듣지 않는다면, 이전과 마찬가지로 사무엘의 목숨을 노릴 테고.

그 지옥을…… 다시 겪고 싶지는 않았다.

“……나, 난.”

다프네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 힘이 가득 들어간 손안이 축축했다.

“분명히 당신을 알아요.”

그는 무척 흥미로워하는 얼굴로, 다프네를 계속 바라보았다.

“……살인자.”

작은 소리로 그리 읊조린 후, 다프네는 튕기듯 두 팔을 뻗어 내어 그의 멱살을 쥐었다.

“당신은 살인자야, 애슐리 슬로언!”

바짝 고개를 들고 소리를 지르며, 두 팔에 힘을 주었다. 그는 저항하지 않았다.

“내 아버지를……! 선대 공작님을 당신이 죽였어!”

“그래요.”

어쩌면 아니라고 발뺌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제가 한 짓을 인정했다. 마치 그것 따위는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듯이.

“내가 죽였죠.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잖아요?”

그는 제 멱살을 쥔 다프네의 손을 붙잡아 거칠게 떼어 냈다. 그녀에게 마지막까지 잡혀 있던 작은 단추가 뜯겨 나갔다.

쿵.

그는 다프네의 두 손을 높이 들어 벽으로 완전히 밀착시켰다.

“윽!”

“내가 원하는 답을 어서 말해 봐요. 궁금해 미치려고 하잖아요, 서튼 양.”

그의 손에 점점 더 강한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다프네는 몸을 비틀어 벗어나려고 했지만, 오히려 짓누르는 손목의 통증만 강해질 뿐이었다.

“나를 잘 알죠?”

“……싫어, 놔요!”

“그것도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서.”

“이 악마, 당장……!”

“완벽하게 길들었어, 그렇죠?”

“놓으라고요!”

“그렇다면 ‘그 시간’은 어디에 갔지?”

그 물음은 묘하게도 핵심을 짚고 있었다. 다프네가 움찔하는 것을 알아차린 그는 씩 미소를 지었다.

“존경하는 마법사 서튼.”

“…….”

그는 이제야 다프네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대신 그녀의 왼쪽 손만을 붙잡아 그의 얼굴께로 끌고 갔다.

그 손에는 칼에 베인 상처가 있었다. 조금 전의 발버둥으로 상처가 다시 벌어져 새로이 흘러나온 붉은 핏물이 방울져 있었다.

“죽은 지 50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마법이 효력을 발휘하는 유일한 사람. 그리고…….”

애슐리는 제 손을 깨물었다. 그 끝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하자, 그녀의 손과 가만히 맞대었다.

그들의 피가 섞일 때, 애슐리가 의도한 어떤 마력 반응으로 미약한 빛이 흘러나왔다.

다프네는 서둘러 손을 거두려고 했지만, 그가 놓아주지 않았다.

“시간마저 뒤틀어 버릴 수 있다는 유일한 인물…… 그게 단순한 비유는 아니었던 모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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