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80화
다프네는 그녀에게 몸을 기댄 채로 고개만 들어 가까스로 질문을 건넸다.
부인의 얼굴을 바라보는 다프네의 얼굴에는 불안과 초조가 가득했다.
혹시 사무엘이 너무나도 많이 아프다거나, 최악의 경우 가망이 없다는 끔찍한 이야기를 듣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걱정하지 말아요.’
부인이 한쪽 손으로 건넨 말에 다프네는 두 눈을 커다랗게 뜬 채로, 그녀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정말…… 정말요?”
페이지 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 나을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뿐이죠. 나는 알아요.’
“……다행이다.”
다프네는 두 손을 제 심장 위에 얹었다.
예전부터 페이지 부인에게는 신기한 면이 있어서, 남매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알아맞혔다.
그러니까 사무엘이 얼마나 많이 아프든 그녀가 나을 거라고 말해 준다면,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괜찮아요. 도련님은 건강하게 일어나서 우리 아기씨를 꼭 안아 줄 거예요.’
안심한 다프네는 복도에 내버려 둔 가방을 얼른 들고 와서 이제야 겨우 미소를 지었다.
“저 휴가를 받았어요. 사무엘이 다 나을 때까지는 제가 곁을 지킬게요.”
‘도련님이 기뻐하시겠네요. 빨리 가서 손을 잡아 주세요.’
페이지 부인은 주름이 깊게 팬 얼굴로 다정하게 미소를 지으며 다프네를 한 병실 앞으로 이끌었다.
문에는 ‘치안대원 사무엘 서튼’이라는 문구가 홀로 적혀 있었다. 아마 특별히 1인실을 허락받은 모양이었다.
다프네는 한결 차분해진 마음으로 문고리를 밀어 열었다.
병실은 어디나 그렇듯, 하얗고 차분했다.
약품 냄새가 다소 진하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들고 사무엘의 침대가 있는 창가를 바라보았다.
침대에 누운 두 다리가 보였다.
그리고 곁에 서 있는, 하얀색 가운을 입은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긴 금발을 아무렇게나 묶어 올린 그의 뒷모습이…….
그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다프네의 동공이 바짝 조여들었다.
그…… 였다.
다프네의 지옥, 애슐리 슬로언.
그가 사무엘과 함께 있었다. 이 병실에서 단둘이.
그녀의 뇌리에 사무엘의 마지막이 다시 떠올랐다. 애슐리가 남긴 붉은 마법 문양이 떠오르자, 사무엘은 불길에 타올랐었다.
그건 과거 어느 순간에 애슐리가 사무엘에게 접촉한 적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두 사람의 접촉.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고 있는 다프네는 곧바로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가방을 떨어뜨린 그녀는 당장 그에게 달려갔다.
애슐리가 조금 놀란 듯이 다프네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과 마주칠 때는 저절로 손끝이 움찔거렸지만, 사무엘이 걸린 일에 겁을 먹고 물러설 수는 없었다.
“내 동생에게 무슨 짓을!”
다프네는 그의 멱살을 쥐어 당겼다.
늘 커다랗게만 느껴졌던 남자는 놀라울 정도로 간단히 그녀의 손에 붙잡혔다.
“서, 서튼 양?!”
“다시는 사무엘에게 손대지 마! 저 아이의 손끝이라도 다치는 날에는……!”
다프네는 그를 쥔 손을 연신 흔들어 댔고, 이에 따라 기다란 남자의 몸이 앞뒤로 헐렁헐렁 흔들렸다.
“내가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니까!”
“아, 저기 저…….”
연신 흔들리던 그의 손에서 약병 하나가 툭 떨어졌다. 안에 들어 있던 초록색 액체가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독약일까? 설마 벌써…….
다프네가 사무엘을 걱정하여 침대로 시선을 옮기는 사이, 깜짝 놀라서 달려온 페이지 부인이 다프네의 손을 애슐리에서 떨어뜨렸다.
“부인!”
다프네가 불만스럽게 소리쳤지만, 페이지 부인은 어째 몹시 화가 난 얼굴로 다프네를 매섭게 바라볼 뿐이었다.
“……아, 으.”
그건 부인이 다프네가 진짜로 큰 실수를 저질렀을 때만 짓는 표정이었다.
다프네는 저절로 어깨가 오그라들었다.
생각해 보면 갑자기 다른 사람의 멱살을 잡은 꼴이 아닌가.
“그게…… 전.”
변명하려고 했지만, 도무지 ‘저 남자가 과거에 내 남편이었고, 사무엘을 죽였다.’라고 말할 수가 없어서 입술만 깨물었다.
다프네가 다소 진정한 것을 알았는지, 페이지 부인이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사무엘을 구해 주신 분이에요.’
“네……?”
다프네가 되묻자, 페이지 부인은 똑같이 이야기할 뿐이었다.
사무엘의 은인이라고.
“마, 말도 안 돼요. 그게 어떻게…….”
다프네가 애슐리를 돌아보자, 그는 덤덤하게 바닥에 떨어진 약병을 줍고 있었다.
페이지 부인이 얼른 그에게 다가가 허리를 깊이 숙여 다프네를 대신해 사과를 건넸다.
애슐리는 두 손을 저으며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괜찮습니다. 다만 약은 다시 만들어야겠네요. 여분이 없어서…… 죄송합니다.”
다프네는 그 남자에게 ‘당신이 만든 약 따위는 필요 없어!’라고 이야기하려고 했다.
그게 그렇지 않은가. 또 사무엘에게 무슨 끔찍한 짓을 할 줄 알고!
하지만 엄격한 페이지 부인은 다프네에게 어서 사과할 것을 종용했다.
‘잘못했다고 하세요.’
‘저 남자에게 사죄하라고?’
다프네는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는 것을 택할 것이다. 물론 아직은 죽을 수 없지만!
다프네가 미동도 하지 않기 때문인지, 페이지 부인이 설명을 덧붙였다.
‘마법사님이 정제해 주신 약으로 사무엘과 다른 치안대원들을 치료하고 있어요. 아기씨는 그 중요한 약을 깨 버린 거고요.’
“…….”
하지만 다프네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았다. 설령 이 자리에서 저 남자의 심장을 꿰뚫어 죽여 버린다고 하더라도, 조금도 미안하지 않을 테니까.
사무엘의 목숨을 앗아 간 사람에게 누가 사과 따위를 한단 말인가!
……비록 이쪽 시간에서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
“전 괜찮습니다, 부인. 오늘 밤에 다시 만들 수 있어요.”
페이지 부인과 다프네의 묘한 대치 사이로 애슐리가 조심스레 이야기를 걸어왔다.
“그럼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괜찮으리라 생각하지만, 상태가 급변하면 언제든지 병원 쪽에 이야기해서 저를 부르세요.”
‘마법사 선생님.’
페이지 부인이 얼른 그를 뒤따랐다. 가만히 보니 애슐리는 부인의 수어를 무리 없이 이해하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모르는 것이 없는 남자이니, 수어를 완벽히 익혔다고 해서 놀라울 것은 없지만 말이다.
페이지 부인이 애슐리를 배웅하기 위해 병실을 떠난 사이, 다프네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사무엘의 앞으로 다가섰다.
“사무엘.”
그의 상체는 하얀 붕대로 빈틈없이 감겨 있었다. 그 아래의 연약한 피부가 얼마나 뜨거운 불을 감당해야 했을지 상상하자, 곧 심장이 미어졌다.
“이렇게 많이 다쳐서…….”
곧 다프네의 뒤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페이지 부인이 배웅을 마치고 돌아온 것이다.
그녀는 다프네를 나무라기 전에 우선 바닥에 떨어진 약을 깔끔하게 닦아 내었다.
다프네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페이지 부인은 예전부터 다프네와 사무엘을 엄격하게 길러 왔고, 특히 기본적인 예절을 무척 중요하게 가르쳐 왔다.
누군가의 멱살을 쥐고, 그것을 사과조차 하지 않는 다프네의 행동은 명백히 부인의 가르침에서 벗어나는 행동이었다.
‘혼…… 나겠지.’
어렸을 때처럼 말이다.
다프네는 두 손을 모은 채로 고개를 푹 숙였다.
곧 정리를 마친 부인이 깨끗하게 손을 씻고 다프네의 앞으로 다가왔다.
다프네는 더욱 고개를 숙였다.
“…….”
곧 다프네의 어깨 위로 부인의 두 손이 얹어졌다. 고개를 들어 보라는 의미였다.
“……죄송해요, 부인.”
다프네는 작은 목소리로 사죄를 건네며 가까스로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엄격한 표정으로 다프네를 나무랄 줄 알았던 페이지 부인은 어째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절…… 혼내지 않으세요?”
조금 더듬거리며 건넨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그만두었어요. 아기씨도 뭔가 이유가 있겠죠.’
그녀는 차분하게 다프네의 마음을 헤아려 주었다.
“아…….”
다프네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사실 한 가지를 떠올렸다.
다프네와 사무엘이 엄격한 페이지 부인을 사랑했던 진짜 이유 말이다.
그녀는 미리 나서서 변명하지 않아도, 먼저 마음을 헤아려 주는 사람이었다.
‘아기씨는 마음이 참 선한 사람이에요. 나는 그걸 믿어요.’
“그래도…… 저 때문에 곤란하셨던 것 같아서.”
‘그건 그래요.’
부인은 샐쭉 웃으며 다프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꼭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괜찮아요, 나는 언제까지나 아기씨의 보호자니까. 얼마든지 대신 사과할 수 있지요.’
“아, 부인, 정말…….”
다프네는 다시 그녀를 푹 끌어안았다.
“부인이 있어서 정말로 다행이에요.”
페이지 부인은 한참이나 다프네를 토닥여 주다가 곧 천천히 몸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신문 한 장을 내밀었다.
오늘 아침에 발행된 새해 첫 호로, 사무엘이 휘말렸다던 화재 사고가 자세히 기술되어 있었다.
빠르게 읽어 보니 마부가 이야기했던 내용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불타는 건물 안에 아이들만 남아 있다는 이야기에, 근처를 지나가던 치안대원들이 별다른 방화복도 없이 뛰어들었다고…….
황급히 달려 나온 마법사들이 이들을 돕지 않았다면, 치안대원들의 목숨도 위태로웠을 거라는 내용도 있었다.
“그 마법사가…….”
하필이면 애슐리 슬로언이라니.
지난 생에는 사무엘을 죽였던 남자가, 이번 생에는 사무엘을 구한 일을 대체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지…….
다프네는 쉽사리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사무엘은 정말로 괜찮은 건가요?”
다프네는 신문을 내려놓고서 페이지 부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정신을 잃은 것뿐이랍니다. 마법사님 덕분에 화상도 심하지 않죠.’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다프네는 곱게 두 눈을 감은 동생의 얼굴을 살살 쓸어내렸다. 힘든 일을 당한 탓인지 피부가 까끌까끌한 것 같았다.
“미안해…… 사무엘.”
안쓰러운 마음에 괜한 사과를 건넬 때, 시간을 확인한 페이지 부인이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