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67)화 (67/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67화

아무래도 리암이 단단히 화가 난 듯하여, 다프네는 조심스럽게 질문을 건넸다.

“혹시…… 제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알려 주시겠습니까?”

“아니.”

그의 재빠른 부정에도 다프네는 그의 시선이 닿는 곳으로 고개를 내밀어 재차 질문을 건넸다.

“정말입니까?”

“……!”

시선이 마주치자 어째서인지 그는 바로 튕기듯 뒤로 물러났다.

“…….”

이에 다프네가 울상을 지었고, 그는 곧바로 두 손을 휘저었다.

“그, 그대가 나쁜 게 아니야!”

“물론 저도 압니다. 전 성실한 일꾼입니다.”

다프네는 그의 재킷 단추를 채우면서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래서 지금도 공작님이 무슨 심술로 제 업무를 이렇게나 방해하시는지 조사하고 있고요.”

“음, 그대는 아무런 잘못이 없어. 언제나처럼 서튼다운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

“압니다! 하지만 공작님이 이런 모습으로 돌아다니시면, 다들 저를 욕할 겁니다.”

다프네가 빼꼼 올려다보며 건넨 이야기에도 그는 어째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꼭…… 생각하지 못한 무언가를 발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예쁘…….”

그는 무심결에 무어라고 답하려다 금세 얼버무렸다.

“뭐라고요?”

하지만 다프네는 놓치지 않고 이를 추궁했다. 예로부터 무심결에 나오는 말에는 진심이 깃든다고 했으니까.

“예, 예정대로 일주일 후에 보따리장수들이 광장에서 장사하기로 했다는 이야기였다.”

“……저는 제 얼굴에 뭐가 묻었는지 여쭈어봤는데요.”

재차 건넨 질문에도 리암은 어째 보따리장수의 이야기만 계속할 뿐이었다.

“아, 음…… 그러니까, 그건 클롯모어에 사는 모두가 고대하는 날이거든. 작년에는 아버지의 일을 들었는지 그들이 찾아오지 않았지만…….”

“왜 자꾸 보따리장수 이야기를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그대가 보따리 상인이 오는 즐거움을 몰라서는 안 되기 때문이야. 꼭 다녀오도록 해, 물건을 사지 않아도 즐거우니까.”

보따리 상인은 1년에 한 번은 클롯모어 광장을 찾아오는데, 그때마다 마을은 꼭 축제 분위기가 되곤 했다.

대륙 끝에서 생산된 실이나 머리빗 그리고 공예품을 모아와 판매하는 것은 물론, 냉철한 미남으로 유명한 타국 북부 공작의 초상화, 미모가 너무 뛰어나 두문불출한다는 모 백작의 초상화와 같이 흥미를 끄는 그림도 구경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이 진짜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지만 말이다.

거기에 볼링이나 인형 맞추기 등의 간단한 게임은 물론, 서커스나 인형극을 즐길 수도 있어서 누구라도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저도 참가할 생각이긴 했습니다. 공작님께서 그렇게까지 권하지 않으셔도 말이죠.”

다프네는 보따리 상인이 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줄곧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사무엘의 방한용품을 사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사실 그보다는 호기심이 더 컸다.

이전 생과 지금을 통틀어 축제 같은 것은 전혀 즐겨 본 적이 없었으니까.

페이지 부인과 함께 살 때는 어린아이가 그런 곳에 가면 안 된다고 했었다.

성인이 된 후에 살게 된 오린샤이어는 너무 시골이라 보따리장수들이 올 만한 곳이 아니었고.

그리고 결혼한 이후로는…….

정말로 한심한 이야기지만 남편(나쁜 새끼)이 외출을 허락하지 않았다.

‘애초에 허락의 문제가 아니었는데.’

다프네는 억울한 과거를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신나게 놀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제 출중한 볼링 실력으로 클롯모어를 제패할 기회를 놓칠 수는 없죠.”

“그렇게만 된다면, 내 서튼이 자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겠지.”

“전 이미 자랑스럽지만요. 어쨌든 공작님도 함께 가실래요?”

다프네는 두 손을 모은 채로 그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그녀의 간절함을 보여 주는 행위였다. 물론 여기에는 시커먼 속내가 있었다.

평소와 다른 장소에서 대화하면, 알쏭달쏭한 그의 속내를 좀 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 말이다.

조금은 신경…… 쓰이는 것도 있었고.

“제가 책임지고 환상적인 시간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다프네는 달콤한 말로 그를 유혹해 보았다.

“…….”

하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리암의 표정은 점점 딱딱하게 굳을 뿐이었다. 어떻게 보아도 유혹에 빠져드는 기색은 없었다.

“흠, 연말이라 밀린 서류 처리가 많아서…….”

“아.”

다프네는 무안한 마음에 잠시 제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그렇다면…… 뭐 어쩔 수 없죠. 노동은 신성하니까.”

“다녀와서 어땠는지 내게 자랑해 줘. 활약을 기대할 테니.”

“네, 알겠습니다.”

“좋아.”

리암은 씩 미소를 짓고는 다프네의 곁을 지나갔다.

“……아, 맞다.”

그녀는 조금 뒤늦게 그의 의복을 정돈해 주러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돌아보니 리암은 이미 계단으로 사라진 후였다.

* * *

우아한 걸음으로 그녀의 곁을 빠져나와 계단 앞에 다다랐을 때, 리암은 태도를 바꾸어 황급히 계단을 뛰어올랐다.

‘무슨 일이지?’

그는 자신에게 그리 질문했다.

그러니까, 조금 전의 일에 대해 이성적인 설명이 필요했다.

일단 갑자기 다프네와 마주친 상황까지는 잘 대처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잘못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까지 잘 알려 주었으니까.

하지만 그를 오롯하게 올려다보는 다프네와 시선이 마주쳤을 때, 그는 올해 들어 가장 바보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왜…… 예쁘지?’

그야 다프네 서튼은 예쁘긴 했다. 본인이 그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까지 포함하면 제법 귀여운 면도 있었다.

그건 객관적인 사실로서 무척 잘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그렇다고 시선을 떼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분명 그랬다.

그는 새삼스러울 정도로 그녀의 긴 속눈썹이나 맑은 눈동자 따위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도톰하게 모인 붉은 입술도.

모두 다른 날과 똑같으면서, 확연하게 달랐다.

그 탓이었다.

얼굴에 뭐가 붙었냐는 말에, ‘예쁨이 붙었네.’ 따위의 형편 없는 말을 꺼낼 뻔한 것은.

‘몹쓸 병이야, 혹은 마법의 부작용이거나.’

그래, 마법의 부작용이 틀림없었다. 망할 애슐리 슬로언이 그에게 못된 마법을 건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날 밤에 다프네 서튼의 헐벗은 어깨를 좀 봤다고 해서 이렇게 눈이 돌아갈 리가 있나. 열다섯짜리 애송이 남자애도 아니고. 아니 근데 좀 예쁘긴 했지. 진짜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리암은 제 방문에 이마를 쿵 처박았다.

그의 뇌리에서 종알종알 뛰어다니는 꼬마 다프네들을 쫓아내기 위해서라도. 아 귀여워.

“제기랄.”

리암은 제 머리를 조금 더 뒤로 쭉 빼 들었다. 고통은 고통으로 잊는다는 진리를 실현하기 위해서.

탁.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손바닥이 리암의 매끈한 이마와 단단한 문 사이를 재빠르게 가로막았다.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보니, 집사 던컨이 손을 거두며 여느 때와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니까.”

리암은 그에게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하는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어떤 사연도 ‘문에 머리를 쿵 박는’ 행위의 정당성을 부여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다행히 눈치가 좋은 던컨은 리암을 추궁하지 않고서, 평범하게 용건을 알려왔다.

“……그렇군.”

리암은 그가 내민 편지를 받았다.

왕실의 문양이 찍힌 것으로 발신인은 적혀 있지 않았다.

“엘리엇인가?”

리암은 작게 중얼거리며 봉투를 앞뒤로 살폈다.

‘먼저 연락을 하는 일은 거의 없는데…….’

마침 잘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애슐리가 했던 말을 확인해 보기 위해서 엘리엇에게 연락하려던 차였다.

지난번 방문에서 애슐리는 한 나라의 공작이자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암시를 건넸다.

리암은 그것이 단순한 허세인지, 아니면 지독한 진실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시간을 내어 엠버혼 마차 사고의 기록을 다시 읽어 보기도 했지만, 특별히 마법이 끼어든 정황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만약 모종의 작용이 있어서, 그리고 그 일이 서류에서 삭제되어야 했다면…….’

왕은 마법사가 저지른 죄를 덮어 주는 일을 거리끼지 않는다. 하지만 그 상대가 자신을 비호하는 오른팔, 슬로언 공작이라도 그렇게 할까?

아무리 마법사들의 권위를 세우는 일을 중히 여기더라도 그것이 기존 귀족들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되었다.

가난한 귀족인 캐슬린과 달리 슬로언은 귀족을 대표하는 존재였다. 충성과 명예의 결정체라 불릴 정도로.

그런 슬로언 공작을 살해한 자를 ‘마법사 면책’으로 처리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이것이 발각되었을 때의 파장을 생각해 보면…….

‘수도로 만나러 오라는 편지라면 좋겠군.’

리암 쪽에서 먼저 알현을 청하면, 엘리엇은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면서 다프네와 리암을 수도에 잡아 두려고 할 테니까.

‘그러고 보니.’

리암은 다프네와 엘리엇의 깊은 인연을 새삼 떠올렸다.

‘그 두 사람, 여전히 연락하고 있을까?’

하겠지, 친구니까. 그것도 아카데미에서 몇 년을 함께 지낸…….

부스럭.

편지가 잔뜩 구겨지는 소리에 리암은 깜짝 놀라서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고귀한 왕실의 문양이 흉하게 찌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건 왼손을 사용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절대로 다프네의 교우 관계에 분노하여 귀한 왕실의 편지를 구겨 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공작님.”

편지를 전해 준 던컨이 다시 말을 건넸다. 구겨진 봉투에 대해서 굳이 언급하지 않는 것은 그가 훌륭한 집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정에는 없었습니다만, 손님께서 오셨습니다.”

“누구지?”

“친구분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거짓은 아닌 것 같아 일단 모셨습니다.”

친구라니.

이 세상에는 리암의 친구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열 명 중 아홉은 사기꾼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