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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66)화 (66/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66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차분하게 두 번, 수도로 떠나는 마지막 새벽 기차로 향할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의미이리라.

리암은 손끝으로 그를 압박했다.

기꺼이 애슐리를 죽이겠노라는 각오까지 마친 후였다.

하지만 이도 잠시.

애슐리의 목덜미에서 시작된 뜨거운 열감이 그의 손을 덮쳤다.

“……!”

마법이었다. 리암을 떨어뜨리기 위한…….

리암은 타들어 갈 것 같은 순간에도 절대 그를 놓지 않았다.

어느새 애슐리의 얼굴도 흉측하도록 일그러져 있었다. 호흡이 부족하기 때문이리라. 리암은 그를 더 빠듯하게 조여 갔다.

조금만 더, 조금만!

손 같은 건 두 번 다시 사용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형님.”

하지만 바깥에서 들려온 아셔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순간 리암은 손아귀의 힘을 잃어버렸다.

“……후으.”

애슐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서 얼른 뒤로 물러났다. 그는 어깨를 들썩이며 쉼 없이 호흡을 빨아들이면서도 리암을 노려보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기차 시간이 아슬아슬한데, 괜찮으십니까?”

상황을 모르는 아셔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자, 애슐리는 힘겨운 와중에서도 끅끅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선하구나, 리암.”

“…….”

“아무리 착한 아이라도 그렇지, 아셔까지 사랑해 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리암은 점점 검붉은색으로 변하는 제 손을 등 뒤로 감추었다. 살갗이 타오르는 감각이 괴로웠지만 이를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아셔는 나를 숭배하지.”

리암이 침묵했고, 그는 손가락을 부딪쳐 딱 하는 소리를 내었다.

“아, 그래서였나? 아셔는 어릴 때의 너와 같은 모습으로 나를 사랑하니까.”

“…….”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애슐리는 알았다며 답하고는 얼른 문을 열었다.

“미안, 기다리게 했구나.”

그는 다정한 투로 이야기를 건네며, 아셔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아셔는 어린아이 취급을 받는 것이 부끄러운 듯 몇 번이나 안경을 고쳐 쓰고 있었지만, 기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가, 간절히 기다린 건 아닙니다.”

“그래?”

“기차를 놓친다면, 형님께서 하루 더…… 흠, 아닙니다.”

“그렇게 말해 주어서 기쁘구나, 아셔.”

싱긋 미소를 지은 애슐리는 아셔의 이마를 가리는 머리카락을 전부 쓸어 올렸다.

“……?”

그의 의도를 몰라 아셔가 물끄러미 올려다보자 애슐리는 턱을 들어 그의 이마에 입술을 맞추었다.

가느다랗게 뜬 눈을 리암에게 고정하고서.

“조금 이르지만…… 근사한 새해가 되기를 바란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고개를 든 애슐리는 평소의 다정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아.”

뜻밖의 새해 인사에 아셔는 무척 놀라며 얼굴을 붉혔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또래 사내끼리 주고받는 새해 인사로 적합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셔는 그를 진심으로 경애하고 있으니, 꽤 기쁘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혀, 형님께서도 평안한 한 해가 되시길 빕니다.”

“고맙구나.”

그는 아셔를 앞세워 저택 밖으로 나섰고, 리암은 형님을 마중하지 않았다.

잠시 후, 그가 탄 자동차가 정원을 가로지르는 소리가 들려왔고 금세 빠른 속도로 멀어져 갔다.

이제 눈은 더 내리지 않았다.

* * *

애슐리가 다녀가고, 전 공작의 일주기 행사는 아무런 문제 없이 치러졌다.

다프네도 사무엘과 함께 아버지를 기억하는 날을 차분하게 보낸 후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애슐리가 다녀간 하루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보통의 일상이 돌아왔다.

“오늘은 보따리 상인이 클롯모어 광장의 사용 허가를 받기 위해 찾아온다니, 이쪽의 화려한 커프스를 추천해 드립니다. 수도에서 유행이라더군요.”

다프네의 제안에 리암은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네, 그럼.”

다프네가 그의 소매로 손을 뻗자, 리암이 황급히 고개를 저어 이를 저지했다.

“아, 아니! 내가 하지.”

“하지만.”

“이만 물러가도 좋아, 수고했어.”

그의 단호한 명령에도 다프네는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직 조끼나 재킷을 입지도 않았는데, 그녀를 물러가게 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여겼을 터다.

“제 손이 필요하실 텐데요, 공작님.”

다프네는 하얀 붕대로 둘둘 감긴 그의 오른손을 조심스레 눈짓했다.

이는 애슐리의 목을 압박할 때 입은 화상 흉터로, 의사의 진단에 따라 당분간은 하얀 붕대를 칭칭 감은 채 지내야 했다.

“단추라든가, 불편하실 겁니다.”

다프네가 조심스레 건넨 말에도 그는 기어코 고개를 저었다. 단호하고 근엄한 모습으로.

“공작님께서 그렇게 명령하신다면, 알겠습니다.”

다프네는 여분으로 가져온 옷이나 상자를 챙겨서 그의 침실에서 물러났다.

리암은 창가에 굳은 듯 서서, 그녀가 이 방에서 완전히 멀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리하여 작은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는…….

“……돌겠네.”

한숨을 쉬면서 차가운 겨울 창에 한쪽 뺨을 기대었다. 뜨거운 입김이 맑은 창에 닿아 하얀 자국을 남겼다.

솔직히 말하면 다프네가 옳았다. 그는 도움이 필요했다.

펜을 쥘 수 없을 정도로 붕대를 감아 놓은 오른쪽 손으로 단추를 채우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옷을 바로 입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일이 있었다.

리암은 제 턱 근처를 매만졌다.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공작의 가면’이 씌워져 있어서, 그는 줄곧 이에 의지하여 자리를 지켜왔다.

지금껏 어떤 상황에서도 가면이 벗겨진 적은 없었다. 심지어 애슐리의 앞에서도 거뜬히 지켜 낼 수 있었다.

그런데, 단 한 번…….

「그대까지 잃어버린다고 생각했어.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반사적인 공포가 거기에 있어서…….」

그는 다프네 서튼 앞에서 나약한 어린아이 같은 자신을 드러내고 말았다.

‘공포’라는 말까지 내뱉으면서.

당시에는 그녀에 대한 죄책감과 두려움이 깊어 별다른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온 직후, 리암은 그 순간을 생각할 때마다 내내 불편한 감정에 휩싸이곤 했다.

그 탓인지 다프네를 가까이에서 볼 때마다 숨이 막힐 듯 심장이 갑갑해졌다.

아마 당시의 실수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리라.

‘스스로 가면을 벗어 버리다니…….’

그것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한 거지?’

그건 용서받지 못할 일이었다. 스스로 가면을 벗고서 나약함을 드러내다니.

‘같은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그건 이미 며칠째 반복한 결심이었다.

하지만 막상 다프네를 만나면 왠지 이상한 기분이 몰려오는 탓에, 리암은 자칫 다시 가면을 벗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래서 결국 이 모양이 되고 만 것이다.

그녀에게 맡겨야 할 일조차 제대로 시키지 못하고, 그가 혼자서 끙끙거리며 재킷을 껴입는 것 말이다.

‘뭐,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겠지.’

리암은 가능하면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 자신이 조금 못 미덥긴 했지만 말이다.

* * *

리암이 그다지 일을 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다프네는 뜻밖의 여유 시간을 많이 갖게 되었다.

덕분에 그녀는 다른 사용인의 일을 도울 수 있었고, 지금은 뒤뜰에서 장작을 작게 쪼개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작은 도끼로 내려쳐 나무에 틈을 만들어 손으로 벌리는 단순 반복 작업을 계속하며, 다프네는 리암에 대해 생각했다.

정확히는 그의 태도에 대해서.

애슐리가 다녀간 이후로, 리암은 다프네를 명백하게 피하고 있었다.

그것이 이전에 거친 말을 뱉을 때처럼 쌀쌀맞다면, 그의 모자에 접착제를 발라 줬겠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달랐다.

적어도 악의는 느껴지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혹시…… 내가 많이 수상해 보이나?’

시간을 거슬러 온 ‘미래인’으로 보인다든가 하는 것 말이다.

그런 사실이 밝혀지면 여러모로 곤란했다. 일단 다프네는 산채로 붙잡혀 마법사들의 연구 제물로 바쳐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해당 프로젝트의 담당자는 그 끔찍한 애슐리 슬로언이 될 테고.

‘무서워!’

다프네는 몸서리를 치면서 도끼를 휘둘렀고, 잘 마른 장작이 단번에 쩍 갈라져 버렸다.

“서, 서튼 양!”

순간 뒤에서 잔뜩 겁을 집어먹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셔였다.

다프네는 도끼를 든 채로 뒤를 돌아보았고, 도끼의 날카로운 부분을 흘긋거린 아셔는 양어깨를 움찔거렸다.

아무래도 그가 날카로운 도끼를 무서워하는 듯하여, 다프네는 삐딱하게 선 채로 도끼를 빙글 돌려 쥐었다.

“……힉.”

그는 숨을 삼키며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장난이에요, 무슨 일이에요?”

다프네는 여전히 도끼를 쥔 채로 그에게 다가섰다. 위협을 느꼈는지, 아셔는 두 손으로 눈앞을 막아섰다.

“고, 공작님의 의복이 흐트러졌다고……! 악! 휘두르지 말라고요!”

“안 휘둘렀어요. 그냥 가만히 들고만 있잖아요. 어쨌든, 공작님이 단정치 못하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힉! 다가오지 마세요!”

아셔는 죄 없는 도끼를 다시 흘끔거리고는 뒷문으로 부리나케 달려가, 고개만 빼꼼 내밀었다.

“당장 공작님께 가세요! 어서요! 더 늦장을 피우면 저도 화, 화낼 겁니다!”

그는 잔뜩 겁을 먹은 얼굴로 애써 협박을 하고는 안쪽으로 후다닥 달려가 버렸다.

다프네는 장작을 정리하고 곧바로 노란 벽 응접실로 향했다.

그녀가 도착했을 때는, 마침 손님을 먼저 돌려보낸 리암이 나오고 있었다.

“아.”

그가 꽤 놀란 얼굴로 잠시 멈칫거렸다.

다프네는 곧바로 그의 옷차림을 차례로 확인했다. 아셔가 지적한 대로 그는 흐트러져 있었다.

손이 불편한 탓에 셔츠에 겨우 재킷이나 걸친 모습이었으니까. 심지어는 단추조차 채우지 않은 채였다.

오늘의 손님이 광장 사용 허락을 받기 위해 찾아온 보따리 상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크게 문제 될 일은 없지만…….

“제가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시간을 내주시겠습니까?”

다프네는 공손하게 다가가 질문을 건넸다.

“……괜찮지 않나, 어떻게 입어도 잘생겼으니까.”

그가 떨떠름하게 건넨 답에 다프네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잘생겨도 단정치 못한 건, 단정치 못한 겁니다.”

이렇게 답하면 리암은 분명 ‘훗, 역시 내가 잘생겼다는 사실은 인정하는군.’이라고 답하며 잘난 척을 할 터다. 평소처럼.

다프네는 은근히 기대하는 눈빛으로, 그를 향해 사르르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

어째 그는 뭔가 위협이라도 받은 것처럼 황급히 뒷걸음질을 쳤다. 도끼를 발견한 아셔와 비슷한 표정이었다.

“……공작…… 님?”

조심스레 부르자 이제 그는 아예 고개까지 돌려 버렸다.

목뒤가 새빨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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