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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38)화 (38/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38화

“힐링엄 백작가에 사람을 보내서 조사했지.”

“처음부터 아가씨를 이상하게 생각하셨습니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만…… 애초에 귀족 아가씨께서 연락도 없이 다른 사람의 집에, 그것도 약혼자의 집에 찾아오는 일은 없는 법이니까.”

“그건 그렇군요.”

리암은 그녀를 다정하게 대접하는 한편, 백작가에 사람을 보내어 사정을 알아보게 했던 모양이다.

“결혼에 해가 될까 백작이 쉬쉬하고 있지만, 벌써 집을 나온 지 꽤 시간이 지난 모양이야.”

“가출이었단 말입니까?!”

“그래. 약혼에 대한 견해 차이로 다툰 후, 편지만 남긴 채 사라졌다고 하는데…… 음.”

리암은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어째 이야기를 얼버무렸다.

아무래도 애슐리에 대해 그다지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어쨌든.”

그는 다프네의 곁에 마주 앉았다.

가까운 곳에서 시선이 닿자, 그는 살짝 눈살을 찌푸린 채로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내가 늦어서 미안해.”

“어…… 아주 늦지는 않으셨습니다. 보시다시피 제 오장육부가 확실하게 제 기능을 하고 있으니까요.”

“…….”

“물론, 아픈 손으로 총을 쏘는 건 쉽지 않았던 탓에 다소 아슬아슬한 측면이…….”

그건 리암의 등장에 대한 다프네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여기에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덧붙이면 더욱 좋겠지만, 왠지 그런 말은 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다프네가 먼저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이 뻔뻔한 남자는 ‘그대는 고맙다는 말을 배우지 못한 건가?!’라며 따져 물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

“……?”

“내가 잘못했어.”

‘어라?’

예측과는 다르게 돌아온 진솔한 사과의 말에 다프네는 조금 놀라고 말았다.

고분고분하게 사과를 건네는 리암 슬로언이라니. 다프네는 그 끔찍한 광경에서 시선을 돌렸다.

“…….”

마침 캐슬린의 손이 시야에 들어왔다. 약간의 화상을 입었는지 피부가 검붉게 변해 있었다.

“의사를 불러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그녀는 이제야 근처로 떨어진 단검을 떠올렸다.

멋대로 움직여 캐슬린을 끌고 다닐 정도의 물건이니, 아마 강력한 마법 같은 것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다프네는 검을 향해 한쪽 손을 쭉 뻗었다.

하지만 곧 손등을 붙잡혀 저지당하고 말았다.

“아니.”

낮은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들어 보니, 짙은 보라색 눈동자가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내가 할게.”

“어…… 이거 위험한데요…….”

“알아, 그러니까.”

그는 다프네의 손을 가만히 밀어내었다.

“그대는 함부로 만지지 말라고 하는 거야.”

검날에 새겨진 마법의 문양을 유심히 살펴보던 그는 검을 제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일어설 수 있나?”

“전 괜찮아요.”

“별로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 그 여자 이리 내. 잘못 업었다가는 내 서튼이 납작해질 것 같으니까.”

리암이 턱 끝으로 캐슬린을 가리키며 ‘그 여자’라고 말할 때, 다프네는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좋아하시는 줄 알았는데.”

“하.”

작게 중얼거린 이야기를 들었는지, 그가 바로 표정을 구겼다. 이제야 평소의 리암 슬로언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누가? 내가? 이 여자를?”

“아니, 그게 그렇지 않습니까!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했을걸요!”

“어느 미친놈이…… 형의 약혼녀를 좋아하나.”

그는 ‘형’이라는 단어는 거의 흘리듯 말했다.

어쨌든 다프네는 그가 그녀에게 그리도 친절했던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에게 있어 캐슬린 힐링엄은 ‘형의 약혼녀’였던 것이다. 비록 그가 그 약혼을 이어받은 이후라고 하더라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었으리라.

“이제는 별다른 잡음 없이 파혼할 수 있겠지. 이런 일까지 일어났으니.”

“힐링엄 아가씨는 어떻게 됩니까?”

“둘 중에 하나겠지. 가출에 성공해서 자유롭게 되거나, 실패해서 가문에 이용을 당하거나.”

“아가씨를 도울 방법은 없을까요?”

간곡함을 섞어 건넨 질문에, 리암은 크게 한숨을 푹 쉬었다.

“그것도 힐링엄 양이 바랄 때의 이야기야.”

“방법만 있다면 제가 설득할게요! 저와 힐링엄 아가씨는 친구이니, 분명히 제 이야기를 들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제 캐슬린도 애슐리의 무서움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무시무시한 단검을 건네주는 남자가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미 깨달았을지도 모르고.

다프네는 두 눈을 감은 채로, 축 늘어진 아가씨를 힘주어 끌어안았다.

“어쨌든…… 지금이라도 멈출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정말로.”

안도하며 속삭일 때, 순간 뜨거운 것이 다프네의 얼굴을 확 덮쳤다.

“……!”

놀라며 두 눈을 떴을 때, 캐슬린은 다프네의 품에서 멀어져 뒤로 나동그라진 후였다.

리암이 그녀의 덜미를 잡아 밀어낸 것이다.

“대체……!”

그 거친 태도에 다프네가 소리를 지를 때.

“악!”

곧장 캐슬린의 비명이 들려왔다.

“……!”

그녀를 돌아본 다프네는 순간 놀라서 온몸이 굳어 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불타고 있었다.

“하, 아악! 악!”

다프네는 바닥을 구르며 괴로워하는 그녀에게 달려가려고 했다.

구해야 한다. 하지만 이내 리암이 뒤에서 그녀를 붙잡았다.

“놔요! 당장 사람을 불러서!”

하지만 그는 다프네를 놓아주기는커녕, 그녀의 턱을 붙잡아 타들어 가는 캐슬린의 얼굴로 시선을 고정했다.

“제대로 봐, 저건……!”

“……!”

타들어 가는 그녀의 이마 위로 본 적 있는 붉은 마법의 문양이 있었다.

“몸에 심어 놓은 저주 마법이야.”

“……!”

“평범한 사람은 끌 수…… 없어. 게다가 섣불리 다가갔다간 그대까지 휘말린다고.”

리암이 괴로운 듯 건넨 이야기에도 다프네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그녀는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몸을 비틀었지만, 그는 간단히 놓아주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 제발. 서튼!”

순간 다프네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

당장이라도 캐슬린을 향해 나아가고 싶은 생각과는 달리, 그녀의 몸은 굳은 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설마 이것이 마법사 서튼이 맹약으로 남겨 놓은 ‘명령의 강제성’일까.

아니, 그럴 리 없다.

다프네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의 눈앞에는 주먹만 한 불씨가 하나 남아 있을 뿐이었다.

잔혹한 마법의 불은 캐슬린 힐링엄의 몸은 물론 그 남은 재까지도 삼켜 버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프네는 비로소 리암의 팔에서 빠져나왔다.

느린 걸음으로 도달한 곳에는 약간의 열기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거짓말.”

다프네는 천천히 바닥에 주저앉았다.

* * *

「미안해, 누나.」

사무엘은 우편배달부를 가장하여 다프네를 찾아와 말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맹약의 기간이 끝나. 알고 있지? 그날 자정에…… 우리, 멀리 떠나자.」

그 달콤한 말이 기쁘지 않을 리 없었다.

하지만 다프네는 고개를 저었다. 어디로 가든 애슐리는 그녀를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나, 난 결혼했어, 사무엘.」

「아니, 난 그 새끼 인정 안 해.」

고운 동생의 입술에서 못된 말이 나와 다프네는 괴로웠다. 그녀의 잘못된 선택이 아이에게 거친 감정을 가르치고 만 것 같아서…….

「누나는 내 가족이야, 그렇지?」

「……사무엘.」

「누나는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그랬잖아. 늘 그렇게 말했잖아.」

그녀의 뺨을 감싸 쥐고 건넨 이야기는 다프네가 어릴 때부터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물론 그건 한 치의 거짓 없는 진심이었다. 그녀의 삶이 진창에 떨어진 지금에서도.

「그러니까 누나, 나랑 떠나.」

「…….」

「외국으로만 가면 돼. 그 남자는 마법사니까 국경을 그리 간단히 넘을 수 없어.」

「구, 국경을 넘어?」

「응. 그렇게 하자, 누나. 공작님도 나를 도와주신다고 하셨어.」

슬로언 공작이 돕는다고?

다프네는 그를 잘 알지 못한다. 애슐리는 다프네를 공작의 본가로는 절대 데려가지 않았으니까.

다만 그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최고의 귀족임은 알고 있었다. 어쩌면 애슐리도 함부로 그를 어떻게 하지 못할 정도로.

「날 신용할 수 없다면, 그분을 믿어 줘. 내게는 정말 형 같은 사람이야.」

「……나, 난…….」

그녀가 더듬거리며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하는 사이, 주변을 살핀 사무엘은 황급히 가방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그녀의 손에 쥐여 주었다.

「클롯모어로 오는 기차표와 여비야.」

「사무엘.」

「꼭 와야 해, 누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마…… 난…… 미쳐서 저 남자의 목을 비틀어 버릴지도 몰라.」

그건 안 돼!

다프네는 동생을 만류하려고 했다. 애슐리는 평범한 폭력에 굴할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그를 굴복시키기란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채 떨어지기 전에, 근처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잠시 우편을 받는다며 빠져나온 다프네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애슐리가 따라 나온 게 분명했다.

사무엘은 마지막으로 다프네의 손을 강하게 쥐고, 황급히 몸을 돌렸다.

「……무슨 일이지?」

다가온 애슐리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게…….」

다프네는 고개를 저으며, 얼른 그럴듯한 변명을 지어냈다.

「편지가 섞였던 모양이에요.」

애슐리에게 거짓을 말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말끝이 살짝 떨려왔다.

「그래?」

하지만 다행히도 그는 깊이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곤란했겠네.」

그리 중얼거리며, 그는 다프네의 머리카락 사이로 입을 맞추었다. 소름이 돋는 행위에 그녀는 딱딱하게 굳어 있기만 했다.

그가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보통 하나밖에 없었다. 남의 눈을 신경 쓰는 것이다.

「아 진짜! 애정 행각 좀 작작하세요! 언제까지 신혼입니까?」

그녀의 예상은 틀리지 않아서, 지나가던 마법사가 곧바로 농담 삼아 항의했다.

애슐리는 곤란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살짝 손을 흔들었다.

「미안, 하지만 내 부인이 오늘도 너무 예쁘잖아.」

거짓말.

다프네가 고개를 떨구자, 곧 어깨를 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섬뜩하게 속삭이는 목소리와 함께.

「예쁘게 웃어야지, 서튼?」

다프네는 황급히 고개를 들어 그의 주문대로 방긋 미소 지으며 생각했다.

아, 정말로 도망가고 싶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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