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34화
“…….”
아셔는 입을 벌린 채 잠시 아무런 답도 하지 못했다.
리암이 독침에 찔렸을 때, 아셔는 자신도 모르게 ‘다프네 서튼은 범인이 아닐 겁니다.’라고 먼저 말해 버리고 말았으니까.
“난 두 사람의 관계가 꽤 나쁜 줄 알았거든.”
“물론 나쁩니다!”
“여성 불신이 뿌리 깊은 아셔 마플까지 서튼이 지닌 마성의 매력에 걸려들게 될 줄이야.”
“절대로 아닙니다!”
아셔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한쪽 손을 경건하게 들어 올렸다. 꼭 신에게 맹세라도 하는 듯한 자세였다.
“그저 전 저 무식한 여자에게는 독살이라는 고상한 방법을 생각해 낼 지능이 없다고 말한 겁니다! 그냥 칼을 들고 설쳐 댈 인간이라고요!”
“뭐…….”
리암은 칼을 들고 설치는 다프네를 상상하고는 조금 웃어 버렸다. 너무 귀여웠다.
‘아마 그 칼은 평생 누구도 찌르지 못할 테지.’
다프네 서튼은 너무나도 상냥하여, 자신의 몸에 칼을 꽂을지언정 남을 찌르는 일은 결코 하지 못하리라.
그렇다면 누구일까?
“이렇게 말하는 건 저도 괴롭습니다만, 공작님.”
한 걸음 더 가까워진 아셔는 괜히 주변을 살폈다. 그새 이성을 되찾았는지, 꽤 신중한 얼굴이었다.
“굳이…… 저택에서 범인을 고르자면 그분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네라면 그렇게 이야기할 것 같았어.”
“공작가에서 점점 영향력을 잃어 가는 것이 동기일지도 모릅니다.”
“음…….”
“앨러스테어 님이 차기 공작이 되신다면, 그분의 자리는 다시 공고해질 테니.”
아셔가 말하는 인물은 리디아 슬로언이었다. 최근 그녀의 행보를 떠올리면 이렇게 의심이 가는 것도 당연했다.
게다가 독살이라는 우회적인 방식 역시 그녀의 성격과 무척 잘 어울렸다.
하지만 리암은 간단히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나는…… 다른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데.”
“예……? 아, 저…… 혹시.”
아셔의 얼굴이 잠시 굳었다.
혹시 리암이 그의 아버지인 휴고 마플을 의심하는 것일까 걱정스러웠던 모양이다.
그의 아버지는 가신들 가운데에서도 이제 거의 마지막으로 남은 ‘리암 반대파’였으니까.
이제는 완전히 승계를 받은 상황인지라,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별다른 일은 없을 테지만 말이다.
“걱정하지 마, 나도 휴고 선생이 그런 일을 했으리라곤 생각 안 해. 그는 서부 엠버혼에 꼼짝 않고 있으니. 게다가 내가 죽는다고 해서 형님이 공작이 되는 건 아니잖아?”
“그, 그렇다면…… 그 다른 생각이란 무엇입니까?”
리암은 시선을 돌려 회중시계를 흘긋 돌아보았다.
“정말로…… 나를 죽이려고 했던 걸까?”
* * *
공작은 집사인 던컨을 통해서 다프네에게 하루 동안 근신에 가까운 생활을 하게 될 거라는 말을 전했다.
덕분에 다프네는 모처럼 열리는 저택의 연회 내내 방에만 있게 되었다.
섭섭하긴 했지만 한편으로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독을 운반한 거야.’
또 같은 짓이 반복된다면 저택에 무슨 소동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런데, 그 시계는 대체 누가 가져다 놓은 걸까?’
다프네는 작은 제 방 안을 빙글빙글 돌면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독에 대해 알게 된 이후, 사용인 몇 명에게 묻기도 했지만 딱히 수상한 사람을 보았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하지만 애초에 저택에 손님이 늘어 모두 바쁜 와중이니, 누군가를 수상하게 생각할 새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사건을 벌이기 위해 저택을 일부러 바쁘게 만든 거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리디아 슬로언이었다. 그녀는 이 모든 행사의 주최자였고, 하인들의 동선을 분 단위로 나누어 일을 시킬 정도니까.
‘그렇다면 독은?’
평범한 사람들은 그런 것을 어디에서 구할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다프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공작님은…….’
「어렸을 때는 간식처럼 먹고, 몸에 바르고 다니던 거야. 안 죽으니까 걱정하지 마.」
리암은 그 독이 익숙하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나. 마치…… 이 집에서는 간단히 그것을 구할 수 있다는 듯이.
“……!”
순간, 정원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잘 쓰면 약이 되는 꽃이기도 합니다. 매년 마법사들에게 의뢰하여 정제 마법으로 약을 만들죠. 사냥용 마취제로도 쓸 수 있어서 제 오두막에 늘 마련해 두고 있습니다.」
작은 양으로도 사람을 위협할 수 있도록 정제에 정제를 거친 독…….
그 정도로 순수한 독을 정제하기 위해서는 마법만큼 좋은 도구는 없었다.
이 사건, 어쩌면 마법사들의 개입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법…… 사.”
사건에 대한 생각은 그 명예로운 직업이 떠오른 순간에 잠시 멈추어 버리고 말았다.
그건 그녀를 지배했던 어느 한 남자가 마법사인 탓이었고, 다프네는 어쩔 수 없이 생각의 흐름에 이끌려 그를 떠올리고 말았다.
“……애슐리 슬로언.”
그는 한때 클롯모어의 미래라고 불리던 공작가의 아름다운 후계자였다.
또한, 지금은 사라진 시간 속에서는…….
다프네의 ‘남편’이기도 했다.
* * *
지금은 사라져 버린 시간에서 다프네는 페이지 부인과 함께 오린샤이어의 목장에서 살고 있었다.
노인 인구가 대부분인 시골에서, 다프네가 꼭 필요한 일꾼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클롯모어에서 이따금 도착하는 동생의 편지를 낙으로 삼으며 시골의 삶에 완전하게 푹 젖어 들었다.
물론 항상 그곳에서만 지낸 것은 아니었다.
다프네는 주기적으로 수도를 오가곤 했는데, 그건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수도 주택에 세입자를 두었기 때문이다.
세입자를 들여서 버는 돈이 적지 않았기에, 다프네는 금방 부자가 될 꿈을 꾸었지만, 현실은 전혀 녹록하지 않았다.
그녀보다 몇 살이나 더 많은 억척스러운 세입자는 툭하면 술을 먹고 멀쩡한 주택을 망가뜨리기 일쑤였다.
처음 몇 번은 다프네가 수리 비용을 모두 감당했으나, 나중에는 도무지 안 되겠다 싶어서 그를 집에서 내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수리 비용의 일부는 보증금에서 제하고 돌려주겠다는 통보도 잊지 않았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어린 아가씨가 사람을 상대로 사기를 치네?」
그러자 상대는 사람들이 가득한 찻집에서 버럭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사람을 내쫓는 것도 모자라서, 보증금을 꿀꺽한다니!」
그의 외침에 곧 다프네에게 날카로운 시선이 달려들었다. 그녀가 무고한 사람의 돈을 뜯어 가는 사람으로 보인 모양이다.
「그러니까.」
다프네는 동요하지 않고 차분하게 설명을 시작하려고 했다.
「아, 난 몰라! 내 돈 돌려줘!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고소할 줄 알아!」
그가 소리를 지르자, 근처에 앉아 노부인도 다프네에게 조심스레 이야기를 건넸다.
「그렇게 해요, 아니 수도에 집도 있는 아가씨가 세입자의 돈을 가져가다니. 적당히 해야지.」
「하지만 이분이 도끼로 계단을 부숴 놓고, 침구에 오물을…….」
다프네가 사정을 설명하려고 하자, 세입자는 더욱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질러 대기 시작했다.
「아 뭐야? 내 돈 안 내놔?」
자세한 내막이 알려지면 불리하게 될 것을 알았던 모양이다.
「전 못 드려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답했다.
「이 아가씨가 진짜 법대로 해 보자는 거야!」
그가 테이블을 탕탕 두드리며 위협적으로 물었다. 어떻게 보아도 ‘법’을 좋아하는 사람의 행동은 아니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어? 보상금까지 뜯어낼 수 있어!」
그가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시끄러워질 때.
「그런가요?」
옅은 금발의 남자가 부드럽게 다가와 그의 손을 가만히 눌렀다.
가볍게 손을 댄 것뿐인데도 그 거친 남자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너, 뭐 하는 새끼야?」
「법이라는 말씀을 듣고 왔습니다. 변호사도 영업직이라 고객님이 계신 곳이라면 어디든 이렇게 달려오죠.」
변호사라는 말에 그의 기세가 한결 누그러졌고, 금발의 남성은 이제야 다프네를 가만히 돌아보며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아가씨, 저를 고용하시겠어요?」
다프네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는데, 사실은 남자의 미모에 놀라 얼떨결에 그리된 것이다.
「좋네요, 그럼 계약 서류부터 검토…….」
「아 됐어! 됐다고!」
지금까지 큰 소리를 내던 남자는 손사래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가 보아도 꽁무니를 빼고 도망가는 모습이었다.
「아…… 가 버렸네요.」
변호사 남자가 아쉬운 듯 중얼거렸고, 다프네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도와주셔서 감사드려요, 전 다프네 서튼이라고 해요.」
「당신이 다프네 서튼…… 이라고요?」
남자는 무척 놀란 기색이었다.
「네…… 그런데요?」
「우연이네요. 아니, 운명일까요?」
게다가 알 수 없는 소리까지.
뒤늦은 경계심이 든 다프네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곧 그가 다시 간격을 좁히며 속삭였다.
「사실…… 저는 변호사가 아니랍니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걸까?
다프네가 빤히 올려다보고 있으니, 그가 한 번 더 불쑥 다가왔다.
그건 이름도 모르는 타인과 나누기에는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였기 때문에, 다프네는 자연스레 뒤로 더 물러서려고 했다.
하지만 뒤에 놓인 테이블 때문에 더는 움직일 수 없었다.
한층 더 가까워진 남자로부터 짙은 나무 향기가 흘렀다.
「……슬로언.」
그가 흐릿하게 속삭인 이름에 다프네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높이 들어 올렸다.
어느새 코끝이 닿을 만큼 얼굴이 가까워졌지만, 그를 밀어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애슐리 앨런코트 슬로언이라고 합니다. 다프네…… 서튼 양.」
슬로언과 서튼.
다프네는 단숨에 그가 말한 ‘운명’의 의미를 이해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