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33화
범인? 동기?
낯선 단어의 등장에 다프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고, 아셔는 그녀의 얼굴에 손가락질하며 탐정처럼 외쳤다.
“이 살인 미수 사건은 다프네 서튼의 단독 범행이 틀림없습니다!”
“……네?”
“당신이 외모만큼이나 어여쁜 마음을 지녔을 거라고 잠시나마 망상했던 제가 한심할 정도입니다!”
“무, 물론 전 고운 심성을 지녔습니다. 어디에 꺼내 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라고요!”
“하.”
아셔는 대놓고 비웃는 소리를 내더니 날카로운 눈으로 그녀를 삐죽 노려보았다.
“그런 마음을 지닌 사람이 살인 따위를 저지릅니까?”
“전 그냥 공작님을 진심으로 싫어했을 뿐입니다. 단지 그것뿐이란 말입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훌륭한 동기죠. 당신이 외친 범행 성명은 모두가 잘 들었습니다.”
아셔는 창밖을 가리켰다.
다프네의 외침에 마구간 지기와 정원사가 놀라서 이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셔가 그들에게 손을 흔들자, 그들은 머리 위로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건 조금 전에 다프네가 외친 ‘범행 성명’를 전부 들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무슨 오해인지 모르겠지만, 그건 신실한 고해성사와 같은 거였습니다. 범행 동기라니! 그런 끔찍한 단어와 함께 놓일 수는 없다고요! 게다가 공작님을 보세요.”
다프네는 리암을 향해 두 팔을 쫙 펼쳐 냈다.
“그야말로 싱싱…… 건강한 모습이지 않습니까!”
다프네의 말대로 리암은 확실히 건강해 보였다. 다소 표정에 알 수 없는 아쉬움이 깃들어 있기는 했지만.
“말 돌리지 마십시오.”
아셔는 다프네의 이야기는 가볍게 무시하고 계속 추궁했다.
“당신이 여기에서 공작님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고백한 이유가 대체 뭡니까?”
“그건…….”
……캐슬린 힐링엄이 이상한 오해를 했고, 다프네는 그 억측이 가슴에 맺혀 때때로 떠오르는 탓에 업무를 방해받기 때문이다.
리암을 좋아하다니.
다시 생각해도 억울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 사람을 좋아하다니, 그런 한심하고 멍청한 짓을 두 번 할까 보냐.
“음…… 여기까지 할까?”
다프네가 아무런 답도 하지 못하는 것이 가여워 보였는지, 리암이 손뼉을 치며 그들의 사이로 끼어들었다.
“이제 충분히 울분이 풀렸겠지, 아셔 마플?”
그는 아셔의 가슴을 툭 치며 뒤로 물러서도록 했다.
“전 아직 부족합니다.”
“아셔를 대신해서 내가 사과하지, 다프네 서튼. 놀랐나?”
“……아니, 그게.”
“아셔가 자네에게 맺힌 게 좀 많아. 건수 잡고 신난 모양인데 좀 예쁘게 봐줘. 어쨌든 확인 절차는 필요하긴 했고…….”
예쁘게 봐 달라니?
다프네는 최선을 다해 현 상황을 파악해 보았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은 아셔 마플이 다프네에게 맺힌 원한을 풀기 위함이었다고? 이게 간단히 봐줄 일인가?
“제 마음에 가늘고 고운 선이 하나 있는데요, 공작님.”
다프네는 손을 들어서 가느다란 줄을 하나 그었다.
“조금 전에 아셔 마플이 이걸 짓밟고 넘어왔습니다.”
“음…… 역시 그런가?”
“당연하지 않습니까! 공작님은 매일 넘어오시지만 말입니다!”
“그대도 아침에 내 선을 훌쩍 넘어왔으니 서로 용서하면 어떨까?”
“네?”
“아니, 어쨌든 다프네.”
“살인이라니! 그런 소설 같은 일이 평범한 일상에 일어날 리 없지 않습니까?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이 성에 탐정의 손녀가 초대된 것이 아닌지 조사해 봐야 한다고요. 그자야말로 조부님의 명예를 걸고서 없던 살인범도 불러오는 마법의 소설 장치니까요!”
“그렇군. 그럼 일단 그것부터 조사해 봐야 하나?”
“……네?”
다프네는 조금 놀라며 다시 리암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그의 얼굴에 장난기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 * *
리암은 다프네를 방으로 데려가 회중시계를 내밀었다.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다프네가 조심스레 질문을 건넸다.
“이건, 힐링엄 아가씨께서 공작님께 선물한 시계가 아닙니까?”
“……그녀가 네게 직접 건넨 건가?”
리암이 두 눈을 찌푸린 채로 질문을 건넸고, 다프네는 그제야 자신이 굉장한 오해를 했음을 깨달았다.
“아, 아뇨. 전.”
그녀는 두 손을 공손하게 모은 채로 고개를 푹 숙였다.
“공작님께서 소중히 다루시고 또…… 답례를 고민하시기에 으레…….”
다프네의 목소리가 점점 잦아들더니 이내 완전히 사그라지고 말았다.
“……후.”
리암은 한숨을 쉬며 시계를 테이블 한편에 내려놓았다.
다프네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확인도 하지 않은 물건을 공작님께…….”
“로켓 버튼에 작은 침이 있었어. 맨눈엔 보이지 않지만, 얇은 여름용 장갑을 뚫고 피부 속에 독을 퍼트리기에는 충분하지.”
“설마!”
화급히 고개를 든 다프네의 시선이 그의 오른쪽 손가락 끝을 향했다.
“……아.”
그녀가 작게 신음했다. 리암의 손가락 끝부터 손등까지 퉁퉁 부어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리암은 얼른 제 손을 등 뒤로 숨겼다.
“괜찮아, 익숙한 독이니까.”
“익숙…… 하시다고요?”
“어렸을 때는 간식처럼 먹고, 몸에 바르고 다니던 거야. 안 죽으니까 걱정하지 마.”
“마, 말도 안 됩니다. 그런 것을 어떻게……!”
따져 물으려던 다프네는 이내 제 처지를 깨닫고는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조심성 없이 주인에게 독을 가져다 바친 것은 그녀였다. 리암의 이야기에 반박할 자격은 없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변명의 여지가 조금도 없습니다. 제 잘못입니다.”
그녀는 몸을 더욱 깊이 숙였다.
“어떤 벌…… 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물론 그렇게 할 거야.”
리암은 다프네의 양쪽 어깨를 쥐어, 몸을 일으키도록 했다.
“하지만 연회와 사냥 대회가 끝날 때까지는 벌을 내리지 않을 거야.”
“네, 네……? 행사를 그대로 진행하신다고요?”
“그래.”
“하지만 저들 중에 공작님께 몹쓸 짓을 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래서야.”
그는 어째 씩 미소를 지었다.
저택의 누군가가 그를 죽일 계획을 짜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말이다.
“용의자를 굳이 저택 밖으로 자유롭게 보내 줄 이유는 없지.”
다프네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다지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치안대에 신고하고, 정식으로 수사를 받으셔야 합니다. 이건 범인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는 행위입니다!”
“다프네 서튼.”
“애초에 독에 당하셨는데, 의사는요? 치료는 확실하게 받으셨습니까? 익숙하다고 하셨는데, 생각하신 독이 아닐 가능성도…….”
리암은 그녀의 이마에 손가락 끝을 톡 가져다 대었다.
“…….”
자신이 몹시 흥분했음을 깨달은 다프네는 그제야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그대는 내게 자기주장을 펼칠 자격이 없어. 그렇지?”
“…….”
“나는 모든 일정을 그대로 진행할 예정이고, 내가 그대에게 당장 명령하고 싶은 건, 두 가지.”
“말씀…… 하십시오.”
“주변을 충분히 경계하고, 함부로 조사에 뛰어들지 말 것. 그리고.”
그는 허리를 낮추어 다프네와 시선을 마주했다.
“오늘 밤에는 내 침대에서 자.”
“……네?”
다프네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그러니까 지금…… 한 침대를 쓰자는 이야기인가?
그야 물론 리암과 다프네는 이미 한 침대에서 잠을 청했던 적이 있었다.
무엇보다 세기의 우정을 자랑하는 슬로언과 서튼이 침대 좀 함께 쓴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그렇기는 한데…….
“그대는 서튼이잖아. 암살자로부터 날 지켜 줘야지. 다른 목적은 없어.”
“아아, 무, 물론 알고 있었습니다!”
다프네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외에 다른 목적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해 본 적도 없습니다. 절대로요!”
“그렇지?”
“그럼요. 아…… 이걸 잊고 있었습니다.”
다소 당황한 다프네는 이제야 들고 있던 꽃을 그에게 내밀었다.
“저녁에 쓰시라고 만들었습니다…… 아.”
다프네는 무언가를 깨닫고는 얼른 꽃을 등 뒤로 감추었다.
조금 전에 그에게 독을 건네고서, 또 물건을 건네려고 하다니. 지나치게 무신경한 행동이 아닌가.
“……죄송합니다.”
그는 허리를 숙이며 다프네의 뒤로 팔을 뻗어 슬그머니 장미를 가져갔다.
“고마워.”
비스듬하게 얼굴이 스칠 때, 그는 꼭 위로를 건네는 듯한 목소리로 그리 속삭였다.
“나머지 한 송이는 내가 원하는 사람에게 주면 되는 건가?”
“네, 일단 그런 용도로 만들기는 했습니다만…….”
“잘됐군, 내가 전해 주지. 만나러 갈 구실로 삼기에 꽤 로맨틱한 것 같으니까.”
그건 리암이 직접 캐슬린 아가씨에게 꽃을 전해 준다는 이야기인 듯했다.
그에 다프네는 안도했다.
이런 사건을 일으킨 후라, 함부로 다른 이에게 물건을 건네는 일이 두려웠으니까.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렇게 해.”
리암이 무관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다프네는 꼭 도망치듯 그의 방을 빠져나왔다.
* * *
“저도 서튼 양의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다프네가 떠나고, 아셔가 리암의 곁으로 다가왔다.
“치안대에 신고해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도록 해야 합니다.”
“신고는 안 돼.”
리암은 다프네가 건네고 간 꽃에 코끝을 댄 채로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저택이 더욱 혼잡해질 테니까.”
“서튼을 통해 공작님께 독이 배달된 시점에서 이미 충분히 혼잡합니다!”
“하지만 그건 어떻게 봐도 내가 죽을 정도의 독은 아니었지. 독이 정제된 정도가 평소보다 더 거친 것을 보아…… 다른 사람이라면 결과가 달랐겠지만.”
즉 시계를 열어 본 사람이 다프네였다면 제법 위험했을 것이다.
리암은 장미 두 송이를 근처의 화병에 곱게 꽂아 두었다.
“그보다…… 재미있네.”
“뭐가 말입니까? 전 하나도 재미없습니다!”
아셔는 동동거리며 달려와 버럭 소리를 질렀고, 리암은 그를 향해 싱긋 미소 지었다.
“그대가 다프네 서튼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