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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27)화 (27/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27화

물론 그런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어서 리암은 살살 고개를 저었다.

「사실 바보는 어디에든 공평하게 태어난단다. 그건 위대한 슬로언 공작가도 마찬가지지.」

애슐리는 동생의 양쪽 뺨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마치 그게 너야.’라고 이야기하는 듯했다.

「하지만 우리 공작가는 그런 수치를 감당할 수 없으니, 결국에는…….」

리암의 뺨을 쥔 그의 손에 조금씩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 아파요…….」

리암은 몸을 비틀어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그를 옥죄는 힘은 점점 더 강해질 뿐이었다.

「흑, 흑…….」

어린 리암은 결국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형님을 간절한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없애 버릴 수밖에.」

「……!」

「알겠니, 사랑하는 리암?」

그는 다정한 말투로 제 동생을 불렀다. 잔혹한 말과 달리 그의 눈빛은 무척 따듯하기만 했다.

「이건 널 살리기 위해서 하는 이야기야. 아버지께 네가 바보라는 사실을 들키면 안 돼.」

「아…….」

「아버지는 가문을 위해서라도 널 죽일 수밖에 없거든. 아버지께 그런 괴로운 일을 시키지 않을 거지?」

「주, 죽기 싫어요. 무서워요, 전…….」

「이기적인 아이구나, 네 상황만 걱정하다니. 아마 다른 사람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나쁜 탓이겠지…… 어쩐담.」

애슐리가 걱정스레 한숨을 쉬며 리암의 얼굴을 놓았다.

그건 꼭 형님이 그를 포기한다는 뜻으로 들리기도 하여, 리암은 얼른 다시 그의 손을 붙잡아 제 얼굴로 가져갔다.

「저, 절 버리지 마세요…… 형님. 제가 열심히 할게요.」

「그래.」

애슐리는 동생의 뺨을 쓸어 주다가, 이내 가볍게 톡 때리는 시늉을 하며 웃었다.

「앞으로는 너를 대하는 방식이 조금 거칠어질지도 모르겠구나. 머리가 부족한 만큼 몸으로 익혀야 할 테니. 알겠니?」

* * *

다프네가 몸을 비틀기 시작하여, 리암은 오랜 기억에서 깨어났다.

오랫동안 떠올린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제는 거의 잊었다고 생각했었는데…….

너무나도 생생한 기억 속에는 뺨에 닿았던 손의 감촉까지 그대로 새겨져 있었다.

불쾌한 것이 달라붙은 것 같은 기분에 그는 제 뺨을 툭 건드렸다.

“……왜.”

그러자 바로 밑에서 다프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때립니까?”

그는 한쪽 입술을 삐딱하게 끌어올린 채로 제 무릎 위를 내려다보았다.

“겨우 깨어나서 할 말이 그건가?”

“……때리시기에.”

“안 때렸어. 내 잘생긴 얼굴을 어루만진 것뿐이지. 그보다 몸은?”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래. 근데 대체 언제까지…….”

리암은 언제까지 이렇게 누워 있을 작정이냐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아픈 사람에게 그런 것을 따져 묻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아서.

“아…….”

하지만 다프네는 이미 그의 핀잔을 이해해 버린 모양이다.

헝클어진 은발이 잠시 그의 눈앞에서 흔들렸고, 벌떡 일어난 다프네는 어지러운지 잠시 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천천히 일어나야지.”

그는 다프네의 머리를 당겨 잠시 제 어깨에 이마를 기대도록 했다.

“갑자기 일어나면 어떻게 해, 환자가.”

“환자가 아닙니다.”

“가만히 있어, 서튼.”

그는 다프네의 등을 천천히 토닥거렸다. 명령조로 이야기한 덕인지, 그녀는 리암에게 이마를 기댄 채로 천천히 호흡하기 시작했다.

그러길 한참.

“……제가 어떻게 된 겁니까.”

그의 품에서 고요한 질문이 돌아왔다. 리암은 고민하다가 단순한 말로 답했다.

“두려워하다가 쓰러졌어.”

“그랬…… 군요.”

다프네는 ‘두려워했다’라는 말에 딱히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수긍했다.

“……다프네.”

리암은 혹시 그녀에게 자신과 같이 어떤 끔찍한 과거가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괴롭힘을 받았다든가 하는 식으로.

애슐리가 리암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대체 무슨 일일까? 리암은 묻고 싶었지만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숨기고 싶은 비밀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거북한지……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으므로.

“아무래도 충격이…… 남은 모양입니다, 저.”

하지만 그가 묻기도 전에 다프네가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무척 진지한 목소리였다.

리암은 토닥이는 손길을 멈추고 잠시 그녀를 꼭 안아 주었다.

그 순간에는 어쩐지 어린 시절의 자신을 안아 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 *

리암에게 기대어 안정을 찾아가던 다프네는 불현듯 혼자 간직한 과거를 그에게 이야기하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엄밀히 말하면 과거가 아니잖아.’

여기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시간의 이야기일 뿐.

그런 허상과도 같은 일을 말해 봤자 돌아오는 것은 불신뿐일 것이다.

미친 사람 취급을 받게 되면, 기껏 차지한 수행원 자리도 내놓아야 할지 모른다.

‘아무것도…… 말하면 안 돼. 절대.’

그의 품이 아무리 안락하다고 해도, 마지막 경계까지 풀어서는 안 된다.

그의 친절은 서튼과 슬로언의 가까운 관계에서 기인한 것뿐이니까.

“저…….”

“응.”

그답지 않게 다정하게 돌아온 답에는 왠지 심장 어딘가가 아파졌다. 다프네는 잠시 제 입술을 깨물었다가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보고…… 싶었나 봅니다.”

“…….”

“마지막 로미오.”

순간 그가 멈칫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야 그렇겠지. 겨우 공연이 보고 싶다면서 승강장에서 쓰러지는 사람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 배우가 보고 싶어서 쓰러졌다?”

“아뇨, 정확히는.”

다프네는 여전히 그에게 얼굴을 기댄 채로 답했다. 얼굴을 마주 본다면 왠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킬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로미오를 연기하는 그를 보고 싶은 겁니다.”

“그 말을 내가…… 아니, 뭐. 됐고. 지금은 어떻지?”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는 다프네의 사정을 더 캐묻지 않았다.

‘거짓말…… 인 걸 알았을까?’

그래서 모른 척 넘어가 준 것은 아닐까.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다프네는 이를 부정했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저 남자가 이런 복잡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는 슬픔이나 공포라는 말을 그저 사전적 의미로만 이해하며 성장해 왔을 테니까.

“……괜찮습니다.”

다프네는 몸을 일으켜 그의 품에서 떨어졌다. 리암은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정말로?”

“네.”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돌아가면 의사부터 만나.”

“괜찮다니까요.”

“그래도 만나. 그렇게 해, 서튼.”

“……알겠습니다.”

왠지 그가 진심으로 걱정을 하는 것 같은 모습이라 다프네는 조금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저…… 그리고, 감사…… 합니다.”

“뭐가?”

“승강장에서 여기까지 저를 운반해 주셔서요.”

“버리고 갈 순 없잖아. 내 건데.”

사람을 두고 소유권을 주장하는 건 그의 몹쓸 버릇이지만, 다프네는 굳이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일등석의 복도 측 유리 창문 너머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진 것은.

혹시 간식 판매원이라도 지나가는 걸까?

다프네는 그런 생각에 뒤를 돌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리암에게 팔을 붙잡혀, 그의 어깨 위로 다시 얼굴을 기대게 되었다.

“보지 마.”

그가 왠지 신경질적으로 건넨 이야기에 다프네는 의아함이 들었다.

대체 뒤로 무엇이 지나갔길래.

‘……설마.’

플랫폼에서 보았던 그 ‘마법사’일까.

그 새하얀 로브를 떠올리자 다프네는 다시 몸이 굳어 버리는 것 같았다. 학습된 공포감으로.

“무거워 죽는 줄 알았으니까. 간식은 좀 줄이는 편이 나을 거야.”

“……네?”

다프네는 당황하여 고개를 빼꼼 들었다. 그러자 미간을 찌푸린 리암과 곧바로 시선이 마주쳤다.

“간식 판매원에게 조르르 달려가지 말라는 뜻이야.”

“겨, 겨우 그것 때문에 이렇게 하셨다고요?”

“그 외에 내가 달리 그대의 시선을 붙잡아 두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없겠죠! 그야 없는데……!”

“그렇지? 잘 참았어. 이제 곧 도착하니까 조금만 참아.”

“하지만 전 입이 심심하단 말입니다.”

“정 그러면 유리창에 뽀뽀라도 해. 병균이 잔뜩 묻어 있어서 금방 배가 아파질 테고, 그러면 입이 심심하단 소리는 못 하겠지.”

“정말……!”

다프네는 리암의 양어깨를 확 밀어내고는 그와 최대한 멀리 떨어져 앉았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정말로 클롯모어까지는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밤 구운 거…… 먹고 싶었는데.”

다프네는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간식 판매원이 이제 막 지나갔으니, 다시 여기로 돌아오려면 한참의 시간이 걸릴…….

“어라?”

아니었다.

곧 덜컹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반가운 간식 판매원 아저씨가 그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드러냈다.

다프네는 당장 달려 나가 공작가의 배지를 보이고, 구운 밤과 음료수를 사서 돌아왔다.

“결국, 먹는군.”

“안 나눠 드릴 겁니다. 절대로.”

“다섯 개만 이리 내놔, 서튼.”

“공작님은 악마입니다!”

다프네는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다섯 개의 밤을 양보해야 했다.

그래도 남은 밤이 훨씬 더 많아서,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맛있게 먹어 치웠다.

‘……그런데.’

그러다 문득 어떤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조금 전에 공작님…… 간식 판매원이 지나간다면서 날 붙잡았는데?’

간식 판매원이 그렇게 금방 돌아오지는 않았을 테니, 아마 그가 다프네를 붙잡았을 때는 다른 사람이 지나가고 있었을 것이다.

‘설마…….’

정말로 마법사였을까?

다프네는 제 옆에서 턱을 괸 채로 창문만 바라보는 리암을 곁눈질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지.’

리암은 아무것도 모른다.

다프네가 겪어 온 시간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그녀의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도.’

어렴풋한 의식에 남아 있는 그의 목소리는 꼭 그녀를 전부 아는 것처럼 느껴져서…….

「널 괴롭히는 건 어디에도 없어, 다프네.」

추락하던 유일한 밧줄이 되어 준 목소리를 떠올릴 때, 마침 그가 흘긋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마주쳤다.

“……!”

고작 그것뿐이었는데, 다프네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얼른 획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

……마지막 로미오를 만나지 못하게 한 원한이 너무 깊기 때문이리라.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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