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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6)화 (16/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6화

앨러스테어 슬로언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죄송합니다.”

그는 일단 자신을 기다려 준 리암에게 고개를 숙여 사죄했다.

언뜻 바라본 어머니의 얼굴이 당혹으로 붉어져 있었다. 그 이유는 명확했다. 공작이 대놓고 그녀의 ‘권리’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성년이 되지 않은 아이를 대신해서 주요 업무를 맡는 것은 부모의 권리가 분명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의장 자리를 이어받은 앨러스테어는 자신을 대신하여 멋지게 일을 해내는 어머니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언젠가 어머니처럼 훌륭하게 슬로언 가문을 이끌어 가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하지만 리디아 슬로언의 입김은 해가 갈수록 세지고 있었다.

앨러스테어가 점차 제 의견을 품게 되었는데도, 이를 ‘아이의 얕은 생각’이라며 제대로 들어 주지 않았다.

예전의 그는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었다. 어머니는 그릇된 판단을 내리시는 분이 아니며, 가문을 이끄는 일을 무척 좋아하는 듯 보였으니.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어머니를 조용히 따르는 게 조금 괴로웠다.

「말도 안 돼. 서튼의 후계자 자리에 여성이 오다니…….」

어머니는 공작이 앨러스테어에게 보내온 편지를 멋대로 열어 읽은 것도 모자라, 아예 가문 긴급회의까지 마음대로 소집해 버렸다.

앨러스테어의 의사는 조금도 묻지 않은 채.

다소 지나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어머니의 말씀이 옳기는 했다.

공작과 이를 모실 서튼을 동성으로 하는 것은 오랫동안 유지된 사항이었다.

그건, 초대 슬로언과 서튼이 누구보다도 서로를 위하는 친구였다는 점을 이어 가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성별이 같은 만큼, 서로를 이해하는 폭이 더 넓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그러니 앨러스테어는 이를 반대하는 어머니를 딱히 말릴 수가 없었다.

리암이 보내온 편지를 뒤늦게 확인하기 전까지는.

그의 편지에는 다프네 서튼이 무척 필요한 존재라고 적혀 있었다. 공작 위를 무사히 계승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조언이 필요하다고까지 적혀 있었다.

이쯤 되니 앨러스테어는 어머니께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튼을 정하는 데 있어서, 성별은 사실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라 외로운 슬로언 공작에게 영원한 친구로서, 올바른 길을 함께 찾아 줄 동지인지 구별해 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앨러스테어는 즉시 클롯모어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어머니보다 한발 먼저 그 ‘다프네 서튼’을 만나 보고 직접 그녀를 판단하고 싶었다.

슬로언 가문 회의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그럼 다프네 서튼의 적합성에 대한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앨러스테어는 맞은편에 앉은 은발의 여성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전 다프네 서튼이 싫습니다.”

그가 던진 서두에, 그렇지 않아도 오그라든 그녀의 어깨가 더욱 움츠러들었다.

“저뿐만이 아닙니다.”

앨러스테어는 챙겨 온 작은 수첩을 집어 들었다.

“공작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아셔 마플이 말하길, 그녀는 쇠줄 같은 고집쟁이에 부끄러움도 모르는 파렴치한이라고 했습니다.”

“……!”

그의 발표에 다프네는 놀라서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셔의 말을 전부 받아 적어 두었을 줄이야. 그러게 그 얄미운 인간은 왜 쓸데없는 말을 해서……!

다프네는 이 회의가 끝나면 아셔의 엉덩이를 걷어차겠다고 결심했다.

앨러스테어의 발표는 계속되었다.

“하녀 A는 그녀가 손톱으로 귀를 후비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공작님께서 보시는 앞에서요.”

다프네는 이번에도 억울해졌다.

아니, 그야! 보나 마나 리암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을 때였을 것이다.

썩은 무도 하지 않은 소리를 하는데 어떻게 귀를 후비지 않고 버틴단 말인가?

다프네는 이름이 발표되지 않은 하녀 A를 향해 적개심을 불태웠다.

“하인 B는 그녀가 공작님에게 도착한 사적인 편지를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뻔뻔한 모습을 보았다고 증언했습니다.”

이제 다프네는 오열하고 싶었다.

그건 그에게 사무엘의 답장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누나로서 동생이 이런 위험 분자와 연락을 주고받는데 걱정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게다가 치사하기 짝이 없는 리암은 편지의 서두만 조금 읽어 주고, 그다음은 절대로 알려 주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녀는 주방장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초콜릿 마시멜로 쿠키를 훔쳐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이용했습니다.”

“아니, 그건!”

더는 참을 수 없었던 다프네는 자신도 모르게 ‘너님께 드리려고 한 거잖아요!’라고 외칠 뻔했다.

다행히 얼른 현실을 깨닫고, 입을 꾹 다물었지만 말이다.

“이 증언을 토대로 다시 결론을 내리자면, 저는 역시 다프네 서튼이 싫습니다.”

“…….”

“하지만, 서튼은 인기 투표로 정해지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리 말하는 앨러스테어를 바라보며 다프네는 조금 놀라고 말았다.

그는 지금껏 인상을 쓰거나 불쾌해하는 표정뿐이었는데, 지금은 꼭 그 나이대의 아이처럼 순수하게 웃고 있었으니까.

“이 거룩한 맹약의 시작에는, 슬로언과 서튼이 서로에게 마음을 기대는 진정한 우정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서튼은 언제나 슬로언 공작의 곁을 지키는 수행원으로서 충성을 다하는 한편, 공작의 친구로서 가장 깊은 속내까지 공유할 의무를 집니다.”

앨러스테어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서, 리디아를 의식하듯 시선을 주었다.

“세월이 흘러 서튼을 단순한 시종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생긴 것도 사실입니다만……. 적어도 우리는 이 가문의 전통을 지키는 자들로서 핵심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는 다시 제 목소리에 조금 더 힘을 실었다.

“맹약은 진실한 우정의 약속이라는 것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여러분은 다프네 서튼이 굉장한 적합성을 지녔다는 사실을 목격했을 겁니다.”

……네? 언제요?

“여러분이 보신 행동은 자칫 건방진 시종의 행태로 보이나, 가만 생각해 보면 무척이나 친밀한 사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그 어떤 미친 자가 상관에게 부지깽이를 들이댄단 말입니까.”

다프네는 당황하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놀랍게도 장로들은 어린 소년의 의견에 모두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다프네 서튼은 공작님을 ‘신분’이 아니라 ‘리암 슬로언’ 그 자체로 대하며, 신분에 종속되지 않은 건강한 우정 관계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맹세컨대 다프네는 그런 것은 추구하지 않았다. 어느 미친 사람이 상관과 우정을 나누겠다며 나댄단 말인가.

“그렇지요? 다프네 서튼.”

그의 질문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반박했다.

“예, 그렇습니다. 슬로언 공작님은 제게 깊이 존경하는 상관이기도 하지만, 누구보다도 친밀한 우정을 나누는 동료이기도 합니다.”

아니, 고개를 끄덕였다. 기특하다는 듯한 시선을 보내는 수많은 원로를 속이는 것 같아서 양심이 찔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리암을 돌아보았다.

이제 저 근사한 남자가 나서서 ‘다프네 서튼은 나의 친구다.’라고 간절히 말해 준다면 이 회의의 결론이 날 것이다.

“음…… 의장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말이야.”

하지만 그는 간절하기는커녕, 한 손으로 귀를 후비적거리며 건들거리고 있었다.

어떻게 봐도 다프네를 간절하게 필요로 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도망가 버린 동생을 추적하는 데 시간을 쓸 수는 없을 겁니다. 슬슬 한계가 아닙니까?”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게다가 맹약에서 도망친 녀석이 진정한 서튼이 될까요.”

사무엘을 모욕하는 듯한 말에 다프네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내……!”

내 동생을 모욕하지 마!

사무엘은 지난 생에서 완벽하게 네 수행원 역할을 해냈단 말이다! 공작의 바쁜 일정에 빠짐없이 맞추느라 다프네와는 거의 만나지도 못할 정도로.

하지만 그런 말을 건넬 수는 없으니 입을 꾹 다물 수밖에.

“……내?”

곧 리암이 그녀가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 물었다.

다프네는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다가, 굴욕을 삼키는 얼굴로 이렇게 답해야 했다.

“……내, 내면에 쌓아 두기만 했던 모든 우정을 당신께 바칩니다. 이제 홀로 외로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다프네 서튼, 공작님의 충실한 종이자 영혼의 단짝으로서 영원히 공작님과 함께할 것은 굳게 다짐합니다.”

제기랄.

다프네가 이 오그라드는 대사를 외치며 괴로워하는 사이, 양쪽에 선 장로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다프네는 이 빌어먹을 슬로언 가문이 왜 그렇게 친구를 소중히 여기는지 알 것 같았다.

그들의 우두머리인 리암 슬로언을 비롯하여 제정신인 인물이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누가 이런 인간들과 친구를 하겠어!’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리디아 슬로언으로, 그녀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회의실을 나가 버렸다.

* * *

리디아 슬로언은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돌아보니 그녀의 아들과 그 얄미운 서튼이 함께 서 있었다.

다 큰 어른처럼 회의를 이끌던 아이는 어느새 다시 평범한 열다섯 살 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어머니.”

작은 소리로 건넨 사죄에 리디아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닙니다.”

그녀는 다시 길을 돌아가 제 아들에게 가볍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제가 감히 의장님의 권리를 넘보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건 비꼬거나 놀리는 말이 아니라, 무척 진심 어린 사죄의 말이었다.

“지금까지 아드님을 어리다고만 생각해서 미안합니다.”

“……어머니.”

그리고 그녀는 이제 다프네를 바라보았다.

“다프네 서튼.”

“네, 리디아 님!”

우리 이제 잘 지내 보아요, 라는 악수라도 하게 되지 않을까.

다프네는 부끄럽지 않도록 미리 옷자락에 손바닥의 땀을 벅벅 문질러 닦았다.

“단언하죠.”

“……네?”

“당신의 존재는 공작님에게 굉장한 폐가 될 겁니다.”

하지만 그녀가 건넨 말은 다프네가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어…… 그건 그렇지.”

심지어 앨러스테어까지 이에 동의했다.

“조, 조금 전까지는 제가 훌륭한 서튼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서요?”

다프네가 반박하자, 앨러스테어는 삐죽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가능성은 원래 누구에게나 있는 거야.”

“너, 너무하십니다. 전 그것도 모르고 감동해 버렸는데…….”

“뭐, 어쨌든 앞으로 증명하면 그만 아니겠어. 열심히 해. 작위 계승 문제가 쉽지는 않겠지만.”

“네……?”

다프네는 리암이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공작이긴 해. 다만 왕께서 승계 인가를 내려 주지 않으셨기 때문에, 여러모로 힘이 부족할 뿐이지.」

“하, 하지만…… 그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 잖아요.”

리디아가 굳은 얼굴로 답했다.

“다프네 당신은 서튼의 후계자로서 공작님께서 무사히 전하의 인가를 받으시도록 도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제가요?”

앨러스테어를 설득하는 일이야, 이렇게 만날 수라도 있으니 해낼 수 있었지만, 왕은 다르다.

다프네가 어떻게 한 나라의 국왕을, 그것도 젊고 잘생겼다는 왕을 독대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단 말인가.

그와 무슨 인연이 있다고.

애초에 그의 얼굴조차 모르는데.

“제가 그런 걸 어떻게 해요?”

다프네가 따져 물었지만, 얄미운 모자는 서로 마주 볼뿐, 아무런 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다프네는 다시 복도에 털썩 주저앉았다.

서튼으로서 항시 공작을 보좌하며 친구로 지내야 하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작위 계승까지 어떻게든 해 보라고?

역시 이 일자리는 뭔가 대단히 잘못된 것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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