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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은 필요없어 (86)화 (86/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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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7. 나는 시방 지금 위험한 짐승이랑께

으득.

에덴은 자신의 다리에 부목을 대고 붕대를 감는 가이드를 노려보았다.

“내 몸에 손대지 마.”

“팔 치워라, 황에덴 생도.”

“가이딩도 변변찮은 D급 주제에 감히……. 최강 불러와! 당장!”

“야, 정 이병. SS급 팔 좀 잡아 드려라.”

“예. 박 상사님.”

우락부락하게 생긴 가이드가 와서 에덴의 양팔을 잡아 등 뒤로 돌렸다. 가이드 둘은 에덴의 말을 들은 체 만 체 묵묵하게 강이 시키는 대로 에덴을 돌봤다.

에덴은 씩씩거리며 강을 찾았다.

사람이 많이 몰려 있는 부상자 텐트 앞, 강은 불길이 치솟는 C11의 산등성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작전 종료가 떨어지자마자 수습 작업에 들어갔다. 몬스터 사체를 먹기 위해 다른 구역에서 또다시 몬스터가 몰려와 둥지를 치기 전에 몬스터들의 사체를 한 점도 남기지 않아야 했다.

강의 옆에 서서 그의 말을 듣고 있는 팀장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강이 눈을 돌려 텐트 가장자리에 누운 나리를 쳐다보았다.

나리는 기력이 완전히 방전된 채, 멍하니 희뿌연 연기로 가득한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산스러운 부상자 텐트 속에서 타닥타닥 마른 나무가 타는 정적인 소리가 듣기 좋았다.

“속은 어떻습니까?”

나리의 옆에 앉은 주환이 물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나리를 걱정했다.

“아까보단 괜찮습니다. 저 대신에 박 소령님 많이 드십시오.”

나리는 눈을 감았다.

자야지. 빨리 자고 일어나야 파장도 안정되고 기운이 생기지.

불빛이 하나 없는 위험 지역 깊숙이 오면 별들로 흐드러지게 예쁘던 밤하늘이었다. 별이라도 세면 잠이 올까 했는데, 오늘은 연기 때문인지 흐려서 그런 건지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눈을 둘 곳이 없었다.

나리는 떨리는 두 손을 쥐고 가슴 위에 올려서 자신의 심장 소리에만 집중하려고 했다. 하지만 덜그럭거리는 자신의 심장 소리보다 옆에서 잔잔하게 울리는 주환의 심장 소리에 온 신경이 쏠렸다.

“…….”

주환의 시선이 나리의 이마를 간지럽혔다. 나리가 마른 입 안을 다시며 살짝 고개를 돌리자 주환도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부상자나 사망자들 생각하지 말고.”

“넵.”

“걱정하지 마십시오.”

“넵.”

나리는 눈을 감은 채로 대답했다.

부대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 돌자, 작전 성공에 기분이 들떠 있던 분위기가 푹 가라앉았다.

지원을 가기 전에 상황을 살피러 간 해란과 대원들의 통신을 들으며, 모두들 기력을 다 소진한 나리의 파장이 회복하길 기다려야 했다.

멀리서 몬스터가 울부짖는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그 방향이 부대 쪽이라서 나리는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초조해지고 자꾸 뒤숭숭해져서 나리는 주환에게 안아 달라고 하고 싶었다.

그러나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입 안을 깨물며 말을 삼켰다.

파장 맞는 페어끼리 잘 사귀어 보라고 매칭해 주는 시스템이건만, 아무리 페어라고 해도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가이드를 이용하는 것만 같았다.

‘유일한 소령님…….’

부담 없이 맘 놓고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일한이 계속 걱정되었다.

부대에 돌아가면 노가리 굽고 캔 맥주 까면서 유 소령님께 대령님의 만행을 낱낱이 고하려고 했는데…….

흐어엉. 망했다.

세기말 소설에 빙의해 열심히 죽을 둥 말 둥 구르기만 하다가 멸망 엔딩 보게 생겼어!

“흐윽.”

빙의한 김에 회귀도 하면 안 되나?

나리는 속으로 흐느끼면서 입술을 꾹 말았다. 그리고 살짝 실눈을 떠서 주환을 흘끔거렸다.

주환도 생각이 많은지 얼굴이 굳어 있었다.

휘유.

누군가 지나가며 주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박 소령님, 파이팅입니다.”

작전 종료인데, 무슨 파이팅…….

주환이 멍하니 눈만 끔벅거리고 있자 그가 허리를 굽혀 주환에게 귓속말했다.

“저기 뒤에 자리 있습니다. 이 중사님 차단 어빌리티만 되면 연대장님도 모르실 겁니다.”

“아, 아…….”

그 말이 나리의 귀에도 쏙쏙 들어왔다.

그르지 마. 가마 이써.

나는 시방 지금 위험한 짐승이니께 건드리지 말라고!

“이 중사님, 안 주무시죠?”

능글거리는 엑스트라의 말소리에 나리는 눈을 반쯤 뜨고 그를 째려보았다.

“저기 뒤에 라면 끓이고 있습니다. 한술 드시겠습니까?”

“…….”

나리는 피곤한 기색을 역력하게 표현하며 날카롭게 그를 쏘아보았다.

에스퍼 코가 개 코보다 더 예민한데 어디서 상관에게 거짓말하는 건가.

나 지금 유 소령님이랑 최 대령님 때문에 입맛도 없고 기운도 없는 환자인데 양심까지 없는 놈 되라고……?

주환이 큼, 낮게 목을 가다듬으며 일어났다. 그러고는 기지개를 켜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라면……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박 소령님.

박주환 소령님?

나리는 멀어지는 주환의 발소리에 눈을 번쩍 뜨고 주환의 등을 쳐다보았다.

능글맞은 녀석이 주환을 뒤따라가면서 나리에게 엄지를 척, 보이며 씩 웃었다.

저 녀석, 나한테 점수 따려고 저러는 거 같은데.

“넌 죽었어.”

나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고는 씨근거리며 천막 기둥을 잡고 비척비척 그들의 뒤를 밟았다.

❖ ❖ ❖

일한은 부대에서 제일 높은 통제탑 위에서 크게 숨을 들이켰다. 바람처럼 느껴지는 파장을 한 가닥씩 살폈다.

낮에는 EMP 공격 후 전투기들이 몰려와 저공비행을 하며 위협했다. 그가 우려했던 정신계 에스퍼 요원들의 침투는 감지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황 대통령과 윗분들은 목격자인 기자들을 처리하려는 것보다 아예 부대의 기능을 죽이면서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시키는 것이 목적인 듯했다.

사람끼리 무의미한 소모전은 없으니 다행이었지만 해가 저물 때를 대비하여 몬스터에 대항하는 진형을 유지했다.

“몬스터가 부대 안으로 넘어오면 전투기들이 부대를 공격하지 않겠습니까?”

한 간부가 일한에게 물었다.

“음, 우리가 먼저 몬스터를 공격하면 알아서 도망가지 않을까요?”

일한은 오히려 다른 질문을 던지며 직접적인 대답을 피했다.

“파장에 휩쓸리고 싶지 않다면 말입니다.”

밤이 되어도 부대에 불이 켜지지 않자 낌새를 알아차린 작은 몬스터들이 철창을 넘어오기 시작했다.

환한 전등보다야 못하지만 들통에 불을 피워 칠흑같이 캄캄한 산을 밝혔다.

키이이?

철창을 넘은 몬스터가 들통으로 세운 경계선을 넘어오자마자 탕, 하고 총성이 울렸다.

풀벌레 울음이 멈췄다.

정적이 흐르고 번뜩이는 몬스터들의 눈동자가 몇십 쌍에서, 몇백 쌍, 그리고 빈틈없이 빽빽하게 번졌다.

에스퍼와 가이드, 그리고 그 외의 관리직에 있던 일반인들까지 숨을 죽이고 일한을 쳐다보았다. 저 많은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여 통신 장치도 없이 이 넓은 부대를 커버할 수 있을까 싶었다.

일한은 호루라기를 입에 물고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발화와 폭발을 다루는 에스퍼들이 한 발짝 앞으로 나왔다.

삑!

신호와 함께 한밤중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펑, 퍼엉, 펑!

캠프파이어 같던 불길이 화르륵 솟구쳤다. 그 불길은 기름을 뿌린 철창으로 옮겨 붙었다.

일한은 거센 불길이 건물에 옮겨붙지 않도록 가이딩했다. 기름을 뿌린 철창이 타오르며 달라붙었던 몬스터들을 태웠다. 3m가 넘는 대형 몬스터들도 선뜻 불이 붙은 펜스를 넘지 못했다.

강과 부대원들이 돌아올 때까지 이 상태를 유지하기만을 바랐다.

“유 소령님, 서쪽 경계선이!”

서쪽 철창 중 하나의 불길이 약했다. 벌써 몰려든 몬스터들로 철창이 넘어지고 병목 현상이 되었다.

콰광. 콰앙!

서쪽을 방어하던 에스퍼들의 공격이 이어졌다. 철창 하나가 쓰러지자 그 옆에 있는 철창 둘도 기울어지고 넘어졌다.

순식간에 몬스터들이 쏟아져 부대 안으로 뛰어들어 왔다. 일한이 파장을 일으켜 불길을 더 높게 올렸지만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서쪽! 서쪽 공격 지원해!”

건물 위에 있던 사격팀이 일제히 총을 쐈다.

장대신 소령은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재빨리 내달렸다.

“허억, 헉, 내가, 이, 장대신이가, 이렇게 당할 거 같아악!”

악에 받친 그의 목소리가 어두운 복도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나도, 젊었을 적에는……!”

전도유망한 장교였다. 수려한 외모와 큰 체격으로 동기들에게 부러움받고 상사들에게 기대감을 받던.

최강과 유일한보다, 어느 누구보다 성심껏 황현균을 도와 그를 대통령까지 올렸다.

“어디 있어, 그 자식들. 어디에 숨겼어.”

절대로 이렇게 내버려질 사람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현 대통령의 처남이었다. 가족. 피는 섞이지 않아도 가족 아닌가.

배신감이 차올랐다.

이렇게 된 이상, 장대신의 선택은 둘 중 하나였다.

주인에게 죽든가.

아니면 날 내친 주인을 죽이든가.

일단, 구금된 기자들을 손에 넣어서 황현균이 자신을 함부로 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 뒤에 에덴을 잘 구슬리면…….

“엿 먹어라, 이 새끼야. 내가 네놈이 기억 조작 에스퍼인 거 다 까발릴 거다. 이 개새끼야.”

그 생각뿐이었다.

“황에덴이 제 친딸도 아니면서 뭐? 혼외자에게 낳은 가여운 딸이라고? 미친 새끼. 그 미친 새끼 때문에 우리나라가 이 꼴이지! 유전자 조작으로 이능력자 만들어 낸 거 다 까발리면, 넌 온 세계에서 완전히 끝장이야. 끝장! 어? 재선? 나 없이 재선이 될 거 같아! 이, 미친 에스퍼 새끼야!”

하핫! 하하하!

장대신이 미친 듯이 웃으며 복도의 문을 벌컥벌컥 열어 댔다.

“어디 있어! 종군 기자님들! 내가, 이 장대신이가 특종을! 어? 죽기 전에 아아주 좋은 특종을 가지고 왔다, 이 말이야!”

“그 특종, 증거는 있어?”

“어……?”

장대신이 멈춰 서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컴컴한 복도에 커다란 가방을 들고 있는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가 생긋 웃으면서 되물었다.

“아저씨, 증거 있냐고요.”

검은 모자에 후드를 눌러쓴 여자가 껌을 씹으면서 껄렁껄렁한 걸음걸이로 장대신에게 다가왔다.

군인은 아니었다.

장대신은 싸한 기분이 들었다.

“넌 누구야.”

“미친년.”

“뭐?”

장대신이 헛바람을 차며 그녀에게 총을 겨누었다. 그러나 수상한 침입자는 별로 당황한 기색도 없이 장대신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나도 그 미친 개새끼라고.”

여자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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