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6. 제가 가면 최강 대령님은요?
[괜찮습니까? 코피 흘렸는데…….]
나리는 무거운 눈꺼풀을 내리고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상태는 주환이 더 잘 느끼고 있을 테지만 차마 좋지 않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괜찮을 겁니다. 이보다 더 힘든 전투에서도 일주일을 버텨 봤는데 괜찮았었고, 시뮬레이션 때에도 무사히 넘기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박 소령님이 계시니까 괜찮을 겁니다.]
주환은 자신의 손을 잡은 나리의 손을 내려다보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하아, 안아 줘야 하는데…….
이렇게 손끝만 잡고서는 벙커 밖으로 빠져나가도 쉴드를 제대로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 손으로만 총 잡는 건 뭐야?”
저쪽까지 간 강이 되돌아오면서 주환의 앞에 있던 페어를 툭 걷어찼다. 깜박거리는 전등불이 강의 살벌한 표정을 더욱 부각했다.
“지금 전장이다. 죽고 싶어?”
“아, 아닙니다!”
“가이딩 좀 덜 받는다고 해서 안 죽지만, 총을 제대로 안 잡으면 죽는다. 딴짓하지 말고 제대로 총 잡아!”
흠칫!
강의 으름장에 앓는 소리를 내던 군인들이 모두 기를 세웠다. 나리도 사르르 감기던 눈에 바짝 힘을 주고 대답했다.
“네!”
주환과 페어가 되고 첫 전투였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해도 성공 확률이 반반이었고, 어떻게든 승리해야만 하는 전투였다.
하지만 차가운 머리와 다르게 나리의 심장은 저 혼자 뛰기가 너무나 버겁다며 주환의 다디단 가이딩을 달라 아우성이었다.
나리는 권총의 손잡이 끝으로 허벅지를 툭툭 내려치며 천장을 쏘아보았다. 정확하게는 꺼졌다가 켜졌다가 점멸하는 전등 옆, 아까부터 계속 신경 쓰였던 까만 빗금이 쳐진 환풍구를 말이다.
환풍구 주변의 편평해야 할 회색 콘크리트가 거뭇거뭇했다.
저게 그림자일까.
아니면, 무슨 자국일까.
나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시야를 좁히는 순간, 덜덜거리던 발전기가 덜컹거리더니 사위가 칠흑처럼 캄캄해졌다.
“젠장.”
주환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나리의 손을 놓고 손전등을 켜서 소총 옆에 붙였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놀라 온몸이 뻣뻣해지고 말았다.
“……!”
좀 전에 깍지 끼고 손을 맞잡았다고 강에게 걷어차인 페어가 그 몇 초 사이에 진하게 입을 맞추고 있는 게 아닌가. 주환이 두 눈을 홉뜨고 쳐다보자 대담하고도 참을성 없는 에스퍼가 주환을 향해 픽 웃었다.
자신은 불 꺼지길 기다렸으니 그 플래시 라이트는 눈치껏 꺼 달라는 듯이.
그러나 주환은 남의 불꽃 튀는 키스 타임에 놀란 게 아니었다.
아무것도 없던 회색 천장이 우글거리는 까만 것들로 빠르게 번져 가고 있었다.
“씨, 씨발…… 저건……!”
누군가 욕을 내뱉으며 그것을 손전등의 불빛으로 가리켰다.
암전과 동시에 여기저기에서 쏘아진 하얀 빛줄기가 이리저리 거미줄처럼 얽히며 어둠을 타고 번지는 녀석들을 비췄다.
“불 꺼!”
강이 버럭 소리쳤다. 이곳저곳 불꽃이 번쩍이며 탕탕탕탕 총성이 울렸다.
나리도 권총을 잡고 있던 왼팔을 쭉 뻗어 그대로 쏘았다.
역시나 그 환풍구. 그 까만 빗금 사이로 뭔가가 있었다.
나리의 총에 맞은 까만 몬스터들은 환풍구 안으로 쏙 들어갔다가 다시 어둠을 타고 모습을 드러냈다.
앙상한 뼈대에 얇고 검은 피막을 가진 날개, 날카로운 갈퀴가 있는 앞발과 뒷발을 가진 몬스터가 빠르게 천장을 타고 벽으로 내려왔다.
키이이이 끼이이익! 끽끼!
박쥐 형상을 한 몬스터였다. 대형견 크기의 박쥐에서부터 손바닥만 한 작은 것들까지 크기와 형태가 제각각이었다. 그것들은 칠판 위에 손톱을 긁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로 재잘거렸다.
“아악!”
에스퍼들이 귀를 감싸 쥐고 몸을 웅크렸다. 나리도 뇌를 긁어 대는 하이피치(high pitch)에 휘청거렸다. 에스퍼가 공격을 멈추자 가이드들이 총을 쏘았다.
강은 깨질 듯한 머리를 쥐고 박쥐들을 노려보았다.
저 몬스터는 빛과 어둠만 인지했다. 눈이 부시면 숨고, 주위가 어두우면 나와서 사냥감을 찾았다. 눈이 아프게 빛이 일렁거리면 짜증이 나는지 빛을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세우고 공격했다. 그리고 공격을 막아 보겠다고 총을 쏘아 대면…….
“공격 멈춰! 라이트 끄라고!”
강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쩌렁쩌렁 울렸다. 그 외침이 벙커 안에 울리면서 박쥐들이 더 크게 요동쳤다.
강의 말귀를 알아들은 몇몇은 손전등을 끄고 적외선 화면으로 박쥐의 공격을 피하기 시작했다.
나리도 몸을 낮추고 적외선 화면을 켰다. 한 치 앞을 가리기 힘든 어둠 속에서 옅은 윤곽이 덧입혀졌다.
소리에 민감한 박쥐들은 날개를 펄럭거리며 총소리를 향해 미친 듯이 덤벼들었다. 그러나 나리의 쉴드에 막혀 큰 피해를 주지는 못했다.
누군가 무섭게 달려드는 박쥐에 놀라 계속 총을 쏘아 댔다.
키이익!
끔찍한 비명을 내며 박쥐의 몸통이 터졌다. 그러자 피가 아닌 진액이 튀었고, 진액이 닿은 살갗이 보글보글 끓으며 고약한 냄새와 함께 연기가 났다.
“아아아아악!”
가까이 있다가 박쥐의 진액에 맞은 군인 하나가 바닥에 쓰러져 뒹굴었다. 그는 목을 긁어 대며 괴로워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지가 축 늘어졌다.
- 알파03 C-32, 바이털 반응 없음.
쓰러진 군인의 상태를 체크한 뒤.
콜록콜록, 큽!
사람들이 코와 입을 막고 본능적으로 박쥐의 사체에서 떨어졌다. 사체가 뿜어내는 맹독성 가스에 눈물이 줄줄 흐르고 목구멍이 매웠다.
총소리가 끊기고 한 줄기 남았던 손전등 빛이 꺼졌다.
다시 암전.
불빛이 벙커 안을 쏘다닐 때와는 다르게 박쥐들이 조용해졌다.
나리는 박쥐들이 쏟아져 나온 환풍구 주위를 올려다보았다. 사람들을 향해 달려들던 박쥐가 어느새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사람들을 가만히 주시하고 있었다.
[저 녀석들 소리에 민감하다.]
[총으로 상대하면 안 돼.]
뒤늦게 확인한 강의 메시지는 절망적이었다. 군인이 총으로 몬스터를 죽일 수가 없다니.
그렇다고 이 폐쇄적인 공간에서 발화 어빌리티를 쓸 수는 없었다. 맹독성 가스와 좋은 조합이 아닐 터였다.
[손전등으로는 안 돼. 발전기를 고치는 수밖에 없어.]
키기기긱. 박쥐는 머리를 360도로 괴기하게 돌려 가며 사냥감들의 신경을 긁어 대는 소리를 냈다.
나리는 숨소리를 죽이고 좌우를 살폈다. 그리고 주환의 팔을 끌어안았다.
“하아, 하, 하악, 바, 박 소령님, 저……. 잠시만…….”
이미 한계까지 다다른 나리의 파장은 난리였다. 차갑고 뜨거웠다. 폭주하기 직전이나 다름없는 와중에도 전투가 힘든 부상자들과 에스퍼들 위로 쉴드를 친 결과였다.
주환은 덜덜 떠는 나리를 안아 들었다.
“괜찮아. 괜찮아.”
주환이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나리의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주환의 가이딩이 해일처럼 나리를 덮쳤다. 나리는 입술을 깨물며 주환의 목을 끌어안았다.
괜찮을 거라며 나지막이 울리는 주환의 말대로 단번에 터질 것 같던 떨림이 진정되고 흐릿해지던 시야가 맑아졌다.
괜찮지 않았다.
물밀듯이 오는 가이딩에 휩쓸리면 안 되는데…….
홧홧한 열감이 퍼져 나가며 뻣뻣하게 굳어 가던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나리는 이대로 살짝만 삐끗하면 뭐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주환을 붙잡고 허겁지겁 삼켜 버릴 것 같았다.
그것이 손끝이든 귓불이든 입술이든 뭐든…….
나리는 어떻게든 싸움에 집중하려고 했다. 몬스터를 노려보고, 신음을 흘리는 부상자를 안전한 곳으로 밀어내면서.
고전하는 나리의 마음을 모르는지 주환의 손끝은 나리의 상의를 들춰 맨허리를 파고들었다.
“흣……!”
따뜻한 손에서 짜릿하리만큼 화한 가이딩이 넘어와 척추를 타고 온몸을 뒤흔들었다. 부드러운 입술과 더운 숨이 목에 닿고 둥글려질 때, 하마터면 입에서 억누르고 있던 욕망이 튀어나올 뻔했다.
“박주환…… 소령님, 이런 가이딩……은 안 돼……요…….”
겨우 쥐어짠 목소리가 어찌어찌 문장을 만들었다. 주환은 곧 괜찮아질 거라며 나리를 다독였다.
“괜찮아질 겁니다.”
아, 안 괜찮다고요!
몬스터들이 뭐라고 하는지 들리지 않고, 저쪽에 떨어진 팀장님이 제게 뭐라고 지시하는 건지 모르겠다.
[부상자는 알파 1팀이 있는 통신 제어실로 이동한다. 자세를 낮춰서 최대한 조용히 가.]
벙커의 구조도와 함께 강의 지시가 눈앞에 선명하게 빛났다. 이동하라는 팀장의 수신호가 보였지만 주환은 나리를 안은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마지막에 가도 되니까. 조금만 더.
[빨리빨리 이동!]
한쪽 구석으로 피한 인원이 박쥐의 사체를 피해 벽을 따라 일렬로 빠져나갔다. 해란의 은신 어빌리티를 입어 소리조차 없었다.
남아서 발전기를 고치기로 한 강은 빠져나가는 인원을 확인하며 나리를 찾았다. 움직이는 사람들 쪽에는 없었다. 이쪽저쪽 주위를 둘러보던 강은 한쪽 구석에서 웅크린 커다란 등을 발견했다.
괜찮을 거라며 달래 주는 낮은 속삭임이 강의 귀에도 들렸다. 씨발, 하고 욕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순간, 주환의 어깨를 움켜쥐고 힘겹게 끙끙대는 나리와 눈이 마주쳤다.
‘최강 대령님.’
강은 눈살을 찌푸렸다. 나리는 아무 말도 없이 입만 작게 벙긋거렸을 뿐인데, 마치 자신을 부른 것 같았다.
“이나리. 쉴드 꺼.”
나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팀원들이 모두 이곳을 빠져나갈 때까지 쉴드를 끌 수 없다면서 정 팀장과 해란 쪽을 가리켰다. 반 정도 빠져나가고 아직 반이 남아 있었다.
“박주환, 넌 빨리 이나리 데리고 여기서 빠져.”
강의 명령에 주환이 굽혔던 무릎을 세워 일어났다. 나리가 버둥거리며 세차게 저항했다.
“아, 안 됩니다…….”
나리는 괜찮다는 듯이 완강하게 팔다리를 휘저으며 주환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제가 가면, 최 대령님은요?”
나리가 물었다.
“…….”
강은 대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