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착광공은 필요없어 (65)화 (65/148)

16642610202633.jpg

066. 저격수

달아오르던 분위기가 싸해졌다.

“꺼, 꺼! 뭐 해! 카메라 켜지 못하게 하라고!”

장 소령은 식은땀을 흘리며 실시간으로 방송 중이던 카메라를 끄라며 소리를 질러 대고 팔을 가로저었다. 검문소에 있던 헌병은 장 소령과 강 사이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며 기자들을 뒤로 물렸다.

생중계 중이던 카메라가 뒤로 밀리며 화면이 크게 흔들렸다.

주위는 먹구름이 몰려든 것처럼 어두워졌다.

먹구름처럼 그윽하게 가라앉은 강의 시선이 에덴을 응시했다. 등을 돌린 취재진 너머, 에덴은 입술을 말고 눈꼬리를 추켜올린 채 노려보고 있었다.

“최강 대령님! 방금 하신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SS급 가이드인 황에덴 생도와 페어를 거부하신다는 뜻입니까?”

“최 대령님! 내일 있을 임무에 황에덴 생도와 함께 가신다고 들었는데, 퇴교라니 어떻게 된 일입니까!”

“국방부의 SS급 페어 공식 발표에 대해서, 좀 더 명확하게……!”

앞으로 미는 사람들과 뒤로 밀리는 사람들이 충돌하며 넘어지고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일한이 팔을 들어 주위를 진정시켰다.

“아아, 조용히 하세요! 받은 질문 중 저희가 답할 수 있는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추가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소란스러움이 썰물처럼 사그라들자 강이 팔짱을 끼고 몰려든 기자들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그리고 흥분한 취재진과 자신을 노려보는 에덴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C12 진원을 일으킨 당사자로서 오늘 아침 발표된 C12 구역 지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C12의 몬스터는 전멸했는가.”

강은 아침에 특종으로 발표한 군의 눈부신 선전부터 짚었다.

“아닙니다. 몇 마리는 살아남았겠지요. 사건 후 일주일이 지났으니 다른 구역의 몬스터가 사체로 배를 채우기 위해 C12로 이동했을 겁니다.

그러면 두 번째 질문, 내가 SS급 꼬맹이 가이드를 페어로 계약할 건가, 의 답은. 미쳤습니까? 열여섯 살짜리랑 페어 계약을 맺고 전쟁터에 데려가라는 말,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닙니까?

그렇게 빨리, 위험 지역을 수복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부터 질문해야지. 30여 년간 쭉 이 상태였었잖아?

SS급 에스퍼와 S급 가이드가 있는데도 10년 내내 균열 하나 막을 의지도 없이 현 상태만 유지하던 국방부가 왜 하루아침에 국토 수복하겠다고 장황하게 욕심을 부리는 건지……. 그걸 물어봤어야지 않아?”

강은 취재진을 향해 피식 조소하며 이를 세웠다.

“왜 그러시는지, 속이 너무 뻔하잖습니까? 황현균 대통령 각하.”

툭.

장 소령은 덜덜 떨다 못해 다리 힘이 풀려 휘청거렸다. 기자들도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몇몇은 “미쳤어. 미쳤어.” 하고 강을 향해 고개를 저었고, 누군가는 혀를 차며 강을 욕했으며, 어떤 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 번째 질문, 앞으로 내가 황에덴 생도와 훈련할 계획이 있는가. 답은, 황에덴 생도가 다른 생도들처럼 학교 졸업하고 임관해서 특수 연대를 지원해 시험에 통과하면, 같이 훈련할 의향이 있습니다. SS급 가이드라고 해서, 황현균 대통령의 막내딸이라고 해서 프리패스 시킬 수 없습니다.

네 번째 질문, C11 구역 수색 및 몬스터 박멸 작전에 황에덴 생도가 출전하는가. 출전 안 합니다. 방금 황 생도가 명령 불복종으로 사고를 일으킬 뻔했기 때문에 퇴교 조치를 내렸습니다. 곧 처리될 테니 이대로 사관 학교로 복귀할 겁니다.

그리고 제 가이드 유일한 소령이 C12 지진 사태로 근신 처분을 받았기 때문에, 저는 작전 지휘만 할 겁니다.”

강은 옆에 선 나리를 쳐다보았다. 부동자세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던 나리는 그 부담스러운 시선을 받으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제 파장도 막을 수 있는 A급 쉴드 에스퍼, 이나리 중사를 중심으로 3개의 소대가 C11 구역에서 C12 구역 경계까지 침투하여 C12에 잔존한 몬스터까지 처리하는 작전입니다. SS급의 능력이 없어도 C11과 C12 구역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찰칵, 찰칵.

두어 번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따가운 시선에 나리는 그쪽으로 눈을 돌렸다가 다시 정자세를 잡고 흠, 목을 가다듬었다.

“SS급의 무기 하나 쓰는 작전은 효율적이겠지만, 저 혼자 나라 전체의 위험 구역을 감당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 군은 강합니다. S급, A급, B급, C급 가릴 것 없이 모두 강인하고 자랑스러운 군인입니다. 각자 맡은 곳에서 자신이 가진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작전과 작전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지휘관만 있으면 됩니다.”

강은 저 렌즈 너머에서 자신을 어떻게 죽일까, 이를 갈고 있을 현균을 향해 턱을 추켜들었다.

“이상입니다.”

“최 대령님! 황현균 대통령과 국방부의 압력이 있었다는 말입니까? 군부 내의 부당 조치를 고발하신 거라고 여겨도 되겠습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최 대령님! 황에덴 가이드가 황현균 대통령의 막내딸이라고 하신 부분과 프리패스라고 지적하신 부분이 사실입니까?”

질문을 안 받겠다고 했지만 여기저기에서 지푸라기의 부연 설명이라도 듣겠다는 듯이 손을 흔들고 밀어붙였다. 에덴에게 물었던 톤보다도 더 크고 공격적이었다.

“최 대령님도 생도 시절부터 군의 작전에 투입되었지 않습니까? 이능력자는 국가를 위한 공공자원으로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의 세금으로 엄청난 연금과 봉급, 수당까지 가져가지 않습니까!”

“최 대령님! 잠시만요! SS급 페어로 한국이 전 세계의 군사력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기회 아닙니까. 최 대령님이 국방부의 의견에 반발하여 SS급 페어 작전을 거부하시는 거라면……!”

강은 무표정하게 침을 튀기고 이를 세우며 달려드는 입들을 보며 생각했다.

저들도 역시 현균이 부리는 수족에 불과하구나.

“이 중사.”

“넵. 중사, 이나리.”

나리는 냉큼 대답했다.

“내 발 앞에서부터 저 목소리들 하나도 들리지 않을 쉴드를 쳐서 저기 검문소 밖 30m까지 밀어내 버려.”

“네. 알겠습니다.”

나리는 두 팔을 뻗어 커다랗고 희뿌연 장벽을 만들었다. 10m 가까이 되는 높은 쉴드가 강의 발끝부터 스르르 밀려나면서 사람들에게 다가오자 장 소령을 비롯한 기자들은 당황해 쉴드를 힘껏 내리치며 입을 크게 뻐끔댔다.

그렇게 서서히 30m 밖으로 밀려나고 나서야 나리는 쉴드를 걷어 내었다.

핑!

희뿌연 장막이 걷히자마자 예리한 열감이 나리의 손바닥을 관통했다. 붉은 피와 살점이 넓게 산개했다. 손바닥을 뚫고 나온 총알이 회전하며 나리의 뺨을 스치는 것까지, 0.01초 프레임 단위로 망막에 박혔다.

“나리 중사!”

그에 반해 소리는 귀에서 멀기만 했다. 그리고 또 한 발이 쏘아져 어깨를 꿰뚫었다.

일한이 나리에게로 달려오려다 몸이 사라지려는 강을 붙잡았다.

“강아, 안 돼.”

일한이 강을 붙잡고, 주환이 비틀거리는 나리를 낚아챘다. 주환이 일으킨 파장 교란으로 세 번째 총알이 아스팔트 바닥에 박히고 튀어 올랐다.

“저격수…….”

부대 밖 산속 어딘가에 저격수가 숨어 있었다.

“이 중사! 뒤로 물러서!”

주환이 나리를 잡아 자신의 뒤로 물렸다. 나리는 총알이 날아온 방향을 쏘아보며 자신의 모든 파장을 한껏 끌어 올렸다. D급 부유 어빌리티까지 발동되자 나리의 머리카락과 옷깃이 붕 떠올랐다. 주환은 나리의 파장에 끌려 발끝이 미끄러졌다.

“꺄아악!”

한데 엉겨 있던 취재진들과 취재 차량 위로도 총알이 빗발쳤다. 나리는 50m의 커다란 쉴드를 쳤다. 돔형의 쉴드에 부딪혀서 힘없이 떨어지는 탄환이 비처럼 내렸다.

저기 앞서 달려가는 강의 뒷모습이 사라졌다가 총에 맞아 쓰러진 남자를 부축하여 부대 안 병동으로 이동시켰다. 그가 사라지면 일한이 나타나 다친 사람들을 도왔다.

나리는 그 난리 속에서 가만히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에덴을 발견했다.

에덴의 비틀린 입술이 벌어지며 작게 웅얼거렸다.

‘죽어 버려. 이나리.’

아이의 손이 허리춤으로 향했다. 나리는 주먹을 쥐어 땅을 내려쳤다. 흙먼지와 돌멩이가 가슴께까지 자욱하게 떠올랐다. 사람들 주위에 둘러진 투명한 쉴드가 또렷하게 나타났다.

“황에덴 생도, 이미 쉴드로 다 막혔어. 총에서 손 떼.”

에덴은 손을 들어 자신 앞에 두껍게 쳐진 쉴드 막을 두드렸다. 철사가 꽁꽁 둘러진 듯이 단단한 쉴드를 초를 세듯이 똑똑 두드리자 파장이 녹아내린 것처럼 움푹 패었다.

다시 똑똑, 쉴드를 두드릴 때마다 주환의 가이딩에 따라 안정적으로 흐르던 파장이 똑똑 끊어졌다.

“쉴드 건드리지 말고, 손 머리 위로 올려!”

나리가 버럭 소리쳤다. 에덴은 나리의 말을 못 들은 척, 쉴드를 쉽게 깨뜨리고 나리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공중에 뜬 흙먼지와 돌멩이 때문에 짙은 황사가 낀 것처럼 눈앞이 흐릿했다.

“이나리 중사님, 많이 다치셨네요. 어쩌면 좋아.”

감정이 하나도 실리지 않은 건조한 목소리였다. 에덴이 한 발, 한 발 옮길 때마다 공중에 부유한 흙먼지와 자갈들이 톡톡 떨어지고 유령처럼 흩날렸다.

아직도 쉴드 밖에서는 총을 쏘아 댔다.

“이래서 내일 작전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어요?”

나리의 어깨와 허리를 감싸 안고 가이딩하고 있던 주환의 미간이 구겨졌다. 파장을 먼지 조각처럼 만드는 이 섬뜩한 기운을 가이딩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어떻게든 저 아이가 나리에게 다가가는 걸 막아야 했다.

머리 위에 둘러진 쉴드까지 파훼하면, 몸을 피한 취재진을 비롯해서 검문소 주변이 모두 총격으로 큰 피해를 입을 게 뻔했다. 주환은 쉴드를 펴서 에덴을 뒤로 밀어냈다.

에덴은 활짝 웃으며 양팔을 뻗었다.

“이리 와요, 이나리 중사님. 내일은 제게 맡기고 편히 쉬세요.”

나리의 파장은 에덴에게 닿기만 해도 설탕 유리처럼 무너져 내렸다.

“황에덴 생도, 멈춰. 더 가까이 오면 힘으로 제압할 거다.”

주환이 경고했다. 파장으로 만든 어떤 어빌리티도 통하지 않는 것을 본 주환은 에덴을 힘으로 제압하기로 했다. 주환이 나리를 잡은 팔을 풀고 그녀 앞에 서자 나리가 주환을 붙잡았다.

“박 소령님…….”

“이 중사, 조금만 더 버티십쇼. 제가.”

“아니요. 제가 어떻게든 쉴드를 잡고 있을 테니까, 소령님께서 검문소 안에 있는 총으로 3시 방향, 730m 밖에 있는 저격수를 향해 위협 사격을 하십시오.”

나리는 다친 어깨를 잡고 말했다.

솜씨 좋은 저격수는 한 명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과 민간인을 노리고 있었다.

바로 옆에 있던 주환과 강이 아닌, C11 작전에 가장 중심이 되는 쉴드 어빌리티를, 그리고 강의 작전을 알고 있는 30명의 목격자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