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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은 필요없어 (15)화 (15/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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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 페어 시스템 역사 이래 손만 잡은 적은 없습니다

“……!”

나리는 화들짝 놀라 목을 가렸다. 해란은 능글맞게 눈꼬리를 휘면서 나리에게 따졌다.

“이나리 중사의 새하얀 목에 누가 찜한 듯 찍은 이 잇자국을 ‘초봄에 모기가 돌아다녔다.’ 그런 알량한 거짓말로 상관에게 둘러대지 않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아, 안 중위님…….”

“예예. 우리 이나리 중사. 어땠습니까?”

평소의 나리 같으면 엄지를 추켜들고, 양 뺨을 붉게 물들이며 ‘넵. 아주 좋았습니다!’ 상쾌하게 한마디 할 텐데. 뭐가 그리 곤란한지 흔들리는 눈빛으로 입술을 말았다.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해란은 짓궂은 얼굴을 싹 지우고 나리 가까이 의자를 끌어당겼다.

“이나리 중사, 앞으로의 내용은 상담 기록으로도 남기지 않겠습니다.”

“저, 정말요?”

나리는 한참 동안 주위를 돌아보더니 아주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게, 유일한 소령님께서…… 절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

……이 무슨 소리인가.

해란은 뚱하게 미간을 찌푸리더니 나리의 귓가에 속삭였다.

“유일한 소령이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 싸가지 최 대령님까지 보듬어 안는 보살님인데.”

그건 그렇지만 누굴 껴안거나, 키스하려고 한다거나, 목덜미를 물지 않을 텐데.

나리는 애써 웃으면서 해란에게 말했다.

“그렇죠? 안 중위님께서 들으셔도 참, 그시기하죠? 제 착각이 맞는 거겠죠?”

“예. 아주, 크게 착각하는 거 맞습니다. 이 중사. 그게 도끼병이라고, 심각한 병입니다. 상담 카드에 적을까요?”

“아닙니다. 상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쌀쌀한 초봄에 모기가 있다는 게 차암,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러게요.”

아하하하…….

오호호호…….

평화롭게 상담을 끝낸 나리는 조금이나마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란은 다리를 꼬고 펜대를 까닥였다.

“하지만 이 중사. 에스퍼와 가이드가 발현하고, 페어 시스템이 세워진 77년 역사 중에서 페어끼리 손만 잡은 적은 없습니다?”

“안 중위님은…….”

“나? 하하핫. 나야 울 남편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습니다. 남편뿐이었겠습니까? 가만히 있어도 꼬이는 가이드가 몇이었는데……. 그땐 내 매력이 좀 심각했었습니다.”

해란은 웃으면서 자신의 얼굴과 몸매를 자신 있게 내세웠다. 그리고 나리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면서 힘내라는 말을 덧붙였다.

“늦었지만 축하합니다. 이나리 중사. 오랫동안 함께할 전우가 있다는 건, 정말 제게도 큰 힘이 돼요.”

나리도 해란을 향해 생긋 웃었다.

“그, 그렇죠오? 그래도 퇴직서와 보직 변경 신청서는 고이 품고 있을 겁니다.”

“뭐? 이게, 내가 너랑 같이 눈물 콧물을 빼면서 몇 년을 상담했는데! 응? 어딜 가려고? 엉?”

해란이 벌떡 일어나 나리에게 헤드록을 걸더니 코를 붙잡고 흔들었다.

“아아! 아! 아픕니다! 안 중위님!”

똑똑.

누군가 해란의 책상을 노크했다. 해란이 고개를 돌려보니 행정병이 큼, 헛기침했다.

“이나리 중사님, 왜 호출 안 받으십니까?”

“아, 죄송합니다.”

나리는 깜박했다는 듯이 자신의 워치를 확인했다. 행정병의 말마따나 호출이 3분 간격으로 다섯 차례나 와 있었다.

해란은 허리에 손을 올리고 흘러내리는 머리를 쓸어 올리며 행정병에게 따졌다.

“아놔, 보면 모르십니까? 임무 후 트라우마 상담 시간입니다?”

“해군 김성권 중령님께서 이나리 중사님을 호출하셨습니다.”

“응. 마침, 딱, 상담 끝났습니다! 이나리 중사. 얼른 가 보세요.”

해란이 생긋 웃으며 나리의 등을 떠밀었다. 나리는 얼떨떨한 호출에 어깨를 펴고 복장을 가다듬었다.

앞서가는 행정병을 따라가면서 누가 볼세라 괜히 군복 단추를 끝까지 잠갔다.

안내를 받고 도착한 곳은 회의 1실이었다. 김 중령 외에도 이능력자 연구원 두 명, 그리고 김 중령을 보좌하는 해군 장교 한 명이 있었다.

“육군 81알파 특공연대 소속, 이나리 중사입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나리가 경례하고 차렷 자세로 김 중령의 앞에 섰다. 김 중령은 자신의 맞은편에 있는 빈자리를 가리켰다.

“앉아요. 이나리 중사.”

이야기가 긴가 보다.

예, 나리는 짧게 대답하며 자리에 앉았다. 김 중령은 깍지 낀 손 위에 턱을 대고 나리를 자세히 쳐다보았다.

“해군 소속 박주환 소령의 부상에 관해서 조사 중입니다. 그 자리에 있었던, 그리고 당사자인 이나리 중사의 의견서가 필요해서 말입니다.”

나리는 자신이 아는 선에서 당시의 일을 차근차근 보고했다. 그러나 김 중령의 옆에 있던 연구원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태블릿을 뒤적였다.

“브레이크가 안 되었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럴 리가. 가이드는 에스퍼 주위에 있는 파장만 끌어다 쓸 수 있는 게 이론입니다. 최대 접촉 가이딩을 해도 피부의 진피에 있는 신경 조직까지만 조정할 수 있지. 에스퍼의 청각, 시신경, 심장 부근의 파장까지 움직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랬는걸요.

나리는 무릎에 올린 손가락 끝을 움켜쥐었다.

“혹시, 매칭률 88.9% 이게 잘못된 것은 아닐까요?”

“음?”

“최고 매칭률 97% 기록했던 러시아 페어의 사례에…….”

“하지만 그건 일란성 쌍둥이 페어이고…….”

연구원들의 논의가 이리저리 오가는 동안, 김 중령과 해군 장교는 나리를 쳐다보며 서로 속닥거렸다.

“흠, 일단 사건 조사는 이쯤으로 하고. 이나리 중사.”

“예.”

“박주환 소령 따라서 해군으로 보직 이동할 생각은 없습니까? 들어 보니까, 그동안 보직 변경 신청서를 냈었다고 들었습니다. 직급도 두 단계 위로, 전투직이 아닌 해군 사령탑 사무직으로, 물론 임금과 혜택도 육군과 비교할 수 없이 올려 줄 수 있습니다.”

김 중령의 보좌관이 상세 내용을 적은 파일을 나리의 시야로 옮겨 주었다.

나리는 허공 위에 빽빽하게 채워진 글자들을 보면서 멍한 얼굴이었다.

“그…….”

“물론 생각할 시간은 충분히 주겠습니다. 아직 페어 훈련 과정도 다 이수하지 않은 비공식 매칭 파트너니까.”

매칭 테스트에서 페어 등록까지 걸리는 시간이 최소 일주일에서 1달. 그 전후로 받는 페어 훈련까지는…….

나리는 고개를 숙이고 제 손끝을 바라보았다.

왤까, 주환에게 물렸던 검지 끝이 자꾸 신경 쓰였다.

❖ ❖ ❖

띵.

[부함장아.]

주환은 한 단어만 전송된 태형의 메시지를 보고 옆으로 치웠다. 마저 물을 마시고 어깨에 건 수건으로 입과 관자놀이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띵.

[어쭈. 함장님 메시지를 무시하나?]

“하아…….”

잔소리를 시각화하다니, 여간 불편한 기능이 아닐 수 없다. 차라리 단말기로만 메시지를 받고 싶었다.

[최 대령 때문에 김 중령이 곤란한 모양이야. 너랑 페어인 에스퍼 훈련 영상과 자료는 공유하기로 했는데, 최 대령이 싹 입 닦고 복구 비용만 내라고 하네?]

한 손으로 팔 굽혀 펴기를 하고 있던 주환은 잠시 멈춰서 통화 연결을 했다.

“훈련 영상 자료 말입니까? 그때 충격파가 커서 카메라가 부서졌을지도 모릅니다.”

- 그건 나도 들었지만. 솔직히 부대 내에 카메라가 몇 대인데…… 너 숨소리가 거칠다? 미안, 내가 괜히 좋은 시간 방해했네.

염장 지르는 건가?

주환은 이마에 핏대를 세우고 침착하게 숨을 골랐다.

“아닙니다. 몸 좀 풀고 있었습니다. 다음 훈련 자료는 제가 직접 보내 드리겠습니다.”

- 그래. 수고.

“예.”

- 기왕이면 다음엔 둘이 하는 운동으로 해.

빠직.

주환은 아예 눈을 감고 통신 기능을 차단했다. 그래 봤자 오후 1시는 근무 시간으로 설정되어 있어서 태형의 메시지는 계속 카운팅되었다.

띵띵띵띵.

“함장님. 그만 좀…….”

주환이 머리를 짚고 한숨을 내쉬자 메시지가 멈췄다. 어디까지 숫자를 셌더라? 태형 때문에 페이스를 놓친 주환은 의무실 바닥에 털썩 앉아 젖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다음 훈련이라…….”

공식 훈련 일정은 일주일 뒤로 미뤄졌다. 그 전까지는 페어 훈련 참관, 페어 기본 수칙, 몬스터 경계 지역 방문 등 움직임이 적은 일과만 나열되어 있었다.

말초 신경과 피부 조직도 본래대로 재생시키는 마당에 부러진 뼈쯤이야 이미 붙었을 테지만. 항상 군의관들은 일주일은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주환은 아직도 부목으로 고정된 오른쪽 손목을 흔들었다. 삐걱대는 둔한 통증만 가시면 될 거 같았다.

“박 소령님도 인간 맞습니까?”

주환이 고개를 돌렸다. 가벼운 전투복이 아닌 동복을 입은 나리가 태블릿을 들고 서 있었다.

“혹시, 안드로이드 아닙니까?”

“피 나는 것 보셨잖습니까?”

“예. 근데 빨간 피 나는 안드로이드도 있을 거 같아서 말입니다.”

주환은 실없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래를 향하던 나리의 시선도 그를 따라 올라갔다가 큼, 목을 가다듬으며 낮아졌다.

“곧 페어 훈련 시간인데, 박 소령님과 같이 갈까 해서 들렀습니다.”

참관만 하기로 했지만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운동하는 걸 보니 직접 훈련에 들어가도 될 법했다.

주환은 젖은 옷을 훌렁 벗으며 말했다.

“이 중사가 저 데리러 안 왔으면 크게 섭섭했을 겁니다.”

“그걸 제가 딱 알고 점심을 후루릅 흡입해서 30분 전에 왔지 말입니다. 시간 충분하니까 샤워하고 오셔도 됩니다. 기다리겠습니다.”

나리는 미소 지으며 가져온 태블릿을 켰다. 심장에 해롭다던 주환의 벗은 몸을 안 보겠다는 매너였지만.

“다음엔.”

주환이 가까이 다가와 태블릿에 손을 올리는 바람에 헛수고가 되었다.

“같이 밥 먹죠.”

나리는 흠칫 어깨를 움츠리다가 뺨을 붉히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속눈썹이 길고 눈매도 크고 동그래서 그런가, 꼭 겁 많은 강아지 같았다. 그래서 하마터면 말도 없이 그녀의 귀여운 눈꼬리에 입을 맞출 뻔했다.

불쑥 나리의 뺨까지 다가온 주환이 멈칫, 제동을 걸고는 몸을 일으켰다.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다가 샤워실 쪽으로 성큼성큼 가는 주환의 목덜미도 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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