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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210화 (209/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10화

210. 위즈니랜드의 마법사(5)

상혁의 얼굴에는 노골적인 조롱기가 떠올라 있었다. 그가 유영을 황녀마마라 부른 것 역시 조롱이었다.

황녀.

주석의 딸인 유영은 현대의 황녀라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영은 열여덟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언니를 어떻게 한 거예요?”

“마법이지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고 풀어 주세요.”

“어이쿠. 그건 안 될 말씀입죠. 저 손에 든 무시무시한 총이 보이십니까?”

상혁이 손가락으로 상웨이의 손에 들린 권총을 쿡쿡 찔렀다.

“풀어 드렸다가 저 총이 제 머리통에 구멍을 낼 수도 있습죠.”

“이보세요.”

“황녀 마마께서는 배우시지 못한 모양이시군요. 이런 상황에서는 명령이 아니라.”

상혁이 상웨이의 손에 들린 권총을 툭 하고 뺏어 든 뒤 그 총구를 건들거리며 유영에게 향하게 하고서는 말했다.

“부탁해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죽일 마음이 들어도 살릴 수 있겠죠.”

털썩.

“언니를 살려 주세요.”

“오?”

상혁의 두 눈이 재밌다는 듯 반월을 그렸다. 상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유영이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다. 의외로 자존심 따위 생각하지 않고 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무릎부터 꿇고 보는 유영에게서 상혁은 신선함을 느꼈다.

‘자식 농사를 잘 지었네.’

중국 주석이 의외로 자식 농사를 잘 지었다. 주석의 딸이라고 하길래 오냐오냐 키운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뭐, 그러죠.”

“정말인가요?”

“마법사는 거짓을 말하는 순간 하늘에서 천벌을 받지요.”

상혁이 하늘을 가리켰다. 그거야 마나를 걸고 언령으로 맹세를 했을 때 일어나는 일이지만 상혁은 아무 말이나 지어냈다.

“그리고 그쪽도 안심하세요. 나야 뭐 이 사람에게 관심이 있어서 온 거고, 그쪽에는 별 관심이 없으니까.”

“상혁아…….”

“꼴이 그게 뭡니까, 형님.”

백도현이 상혁을 보고는 눈두덩이를 파르르 떨었다. 상혁은 서울역 노숙자들이 형님, 할 기세인 백도현의 몰골을 보고는 혀를 쯧하고 찼다.

“미안하다.”

“뭐, 미안해하실 만하죠. 나 같은 고급 인력이 형님을 위해 움직였으니까.”

마지막 만남은 서로 간에 좋지 않았다. 백도현은 상혁으로 인해 마지막 키인 박상원을 잃었다. 그리고 상혁은 백도현에게 암시를 걸어 저주를 내리며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다.

그 이후에 만난 백도현이지만 상혁은 백도현의 눈에 서린 독기가 거의 빠졌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챘다.

‘설마, 회개라도 한 건가? 드문 일이긴 한데.’

상혁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백도현을 쳐다봤다. 원래라면 백도현이 상혁을 보자마자 저주를 퍼부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상혁이 백도현의 머릿속에 심어 놓은 암시는 지금까지 끊임없이 백도현을 괴롭혔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도 때도 없이 머릿속에서 속죄하라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사람을 미치게 한다. 상혁은 백도현을 회개하게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그를 괴롭히기 위해 암시를 걸었기 때문에 더욱 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백도현은 득도한 고승의 그것과 같은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 아버지를 막지 못해서, 그리고 나까지도 권력의 노예가 돼 버려서 미안하다는 뜻이야.”

“오.”

“아버지가 막내 삼촌, 그러니까 네 아버지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건 알고 있겠지?”

백도현의 말에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떻게 하다 보니까요.”

“거짓말. 그걸 위해 SG에 들어온 것을 모를 줄 알고?”

“그게 중요합니까?”

상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백도현이 어색했다. 저런 깨끗한 눈의 백도현이라니. 자신의 암시가 설마 백도현을 회개시켰을 줄은 꿈에도 꾸지 못했다.

“일단 이야기는 나중에 합시다. 여기부터 빠져나가고요.”

“그래. 그러자꾸나.”

“그 우스꽝스러운 인형 탈도 벗으시고.”

백도현이 머쓱한 표정으로 인형 탈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다. 그동안 상혁은 고개를 돌려 유영을 쳐다봤다.

“풀어 주신다고 하셨잖아요.”

“참. 그랬지.”

따악-!

상혁이 튕긴 검지와 엄지로 마나가 뿜어져 나오며 마비 마법을 해제했다. 그러자 상웨이가 휘청거리다가 균형을 되찾고서는 유영 앞을 가로막았다.

“영아, 괜찮아?”

“언니.”

상혁은 마비에서 풀린 상웨이가 자신을 잔뜩 경계하는 눈으로 쳐다보는 것을 느끼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 이건 못 줍니다. 너무 위험하니까. 스트렝스. 스톤스킨. 버닝핸드.”

빠가각!!

꽈직!

퍼버벙!

상혁의 손부터 팔꿈치까지가 돌로 변했다. 그러더니 손아귀에 들린 권총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시뻘건 열기와 함께 약실 안의 탄환이 펑펑 소리를 내며 터졌다.

후두둑

“어후, 위험해라.”

상혁은 너스레를 떨면서 손바닥에 붙은 권총의 잔해를 후두둑 털었다. 그걸 본 상웨이와 유영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마법.

상혁이 마법사라고 했을 때만 해도 믿지 않았지만 눈앞에서 권총을 가루로 만드는 것을 보니 그게 거짓이 아님이 뒤늦게 느껴진 것이다.

“아, 황녀라도 이런 건 많이 못 보셨나? 확실히 내 재주가 특출나긴 하죠. 아닌가요?”

상웨이가 섣불리 덤벼들지 못하게 무력시위를 완벽하게 끝낸 상혁이 이죽거리며 웃었다. 그러자 유영이 이를 악물면서 소리쳤다.

“황녀라고 부르지 마세요.”

“황녀시던데. 황녀라고만 부르지 않을 뿐이지. 주석의 딸이면 그렇지 않습니까?”

“영아, 말려들지 마.”

“후우.”

유영은 슬슬 올라오던 열불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상혁이 너무나도 얄미워 그와 말을 섞을수록 점점 자신도 모르게 말려들었기 때문이다.

끄아아악!

아악!

사, 살려 줘!

내가 아니야! 내가 아니야!

그때 선악의 저울에 당하고 있는 전투 요원들의 비명이 유영의 고막을 때렸다. 유영이 상혁에게 말했다.

“저 사람들은 저대로 둘 건가요?”

“자신이 저질러 온 죗값을 치르고 있는 것뿐이죠.”

“죗값?”

“무고한 자를 죽인 자. 죄 없는 자를 죽인 자. 남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하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감을 준 자.”

파앗-!

상혁의 손 위로 마나로 이뤄진 저울이 피어올랐다. 유영의 눈이 커졌다.

“그걸 저울질해서 죄업과 악업을 심판하는 마법이죠. 그리고 안타깝게도 저들은.”

상혁이 손가락을 까닥하자 사방에서 털썩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그들에게 원한을 푼 원혼들이 하늘로 승천하는 것이 마나안을 통해 보였다.

반짝-!

상혁의 손아귀 위로 마나석 하나가 생겨났다. 죄업과 악업을 청산하면서 나온 부산물이다. 상혁은 마나석을 꼭 쥐면서 말했다.

“그리 착한 사람들은 아닌 모양이네요.”

주변이 조용해졌다. 유영과 상웨이는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지자 오히려 더욱 긴장했다. 상혁이 그들을 건드릴 생각은 없다고 했지만 진짜 그런지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형님, 다 준비되셨습니까?”

“그래, 욱.”

백도현이 허리를 움켜쥐고는 상체를 꺾었다. 상혁은 그의 허리춤에서 일어나고 있는 출혈을 보고서는 혀를 쯧 하고 찼다.

“이거, 돌아가자마자 실력 있는 병원을 찾아야겠네요.”

“정연이 친구 중에 병원을 운영하던 친구가 있었지?”

“누님께는 알리시게요?”

“우리 형제들 중에는 정연이가 제일 나으니까.”

백도현의 눈에는 어떠한 욕망이나 욕심도 없었다. 그의 눈빛은 마치 구도를 위해 험한 일을 마지않던 가나안의 사제들과 비슷한 빛을 가지고 있었다.

‘거참, 껄끄럽게.’

상혁은 그런 백도현에게 거북함을 느꼈다. 간극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다. 무슨 심경의 변화가 일어난 것인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의 암시가 그리 만들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그냥 콱 죽일 걸 그랬나.’

그렇게 생각한 상혁이 피식 웃었다. 그때 유영이 상혁에게 말했다.

“당신, 백상혁이죠? SG그룹의.”

“오, 날 아네요? 중국에도 내 얼굴이 유명합니까?”

“사만다 허드.”

상웨이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설마 어디선가 봤다 싶은 얼굴이었는데 설마 한국의 재벌일 줄이야.

‘그럼 저자도?’

상웨이가 백도현을 쳐다봤다. SG전자의 사장인 백도현은 상혁보다는 미디어 노출이 적었지만 그래도 재계 쪽으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사다.

상웨이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상혁이 혼란스러운 상웨이의 표정을 슥 보고는 씩 웃었다. 그때 유영이 상혁의 시선을 끌었다. 그녀는 제법 단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무언가를 결심한 사람처럼 보였다.

“이대로 가도 후환이 두렵지 않으세요?”

“후환이요?”

상웨이가 유영의 손목을 잡았다. 지금 유영은 상혁을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영은 그런 상웨이의 손을 뿌리쳤다.

“내가 당신을 봤어요, 당신 말대로 내 아버지는 주석이시죠. 당신에 대해서 내가 잘못 말한다면, SG나 한국에 좋을 일이 없잖아요.”

“아, 보복이요?”

“…… “

유영은 한국이나 서양에서 중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인터넷을 조금만 할 줄 안다면 그에 대해 보는 건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 아무리 주석이 딸바보라고 해도 어린 딸의 말과 공적인 일은 구분하겠죠.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상혁이 잔혹한 미소를 슬쩍 지었다.

“주석을 내가 직접 찾아가겠지만요.”

“……!”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황녀마마의 역할이 큽니다. 아주 커요.”

상혁의 입가에 서렸던 살기는 금세 사라졌다. 하지만 찰나의 순간의 강렬함이 유영의 머릿속에 깊숙이 각인됐다.

“뭐, 난 열린 사람입니다. 주석이라면 나에 대해 조금 더 많이 알고 있겠죠. 그러니 이런 만남도 좋은 인연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선만 지킨다면요.”

“선이요?”

“뭐, 나를 정치적으로 흔들려고 한다든가, 중국의 국력을 내세워 한국을 압박한다든가, 그런 식으로요.”

“우리 아버지는 그런 분이 아니세요.”

유영이 표정이 굳힌 채 상혁에게 항변했다. 하지만 상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 어떠한 독재자나 폭군도 자신의 자식 앞에서는 세상 따뜻한 아버지가 되는 법입니다. 거기 황녀 마마께서 금한령에 대해 알고 계시는 것처럼.”

유영의 말문이 턱하고 막혔다. 그게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상혁의 말에 반박할 만한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협박하는 건가요?”

“네. 협박이죠. 난 내가 마법사고, 백상혁이란 것까지 전부 깠으니까요.”

상혁이 상웨이와 유영을 차례대로 가리키고는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잘 기억하란 소립니다. 그리고 집안 단속도 잘하시고. 국가안전부가 왜 대한민국 국민을 납치한 겁니까? 누구의 사주를 받고?”

백도현을 힐끗 바라보면서 상혁이 말했다. 그러자 상웨이의 표정이 굳었다. 설마 했는데, 그게 진짜였기 때문이다.

“그럼 갑니다. 뒤처리는 좀 부탁합시다. 황녀 마마시니까 그 정도는 가능하시잖아요?”

상혁이 히죽 웃은 뒤 백도현을 부축했다. 그러고는 번쩍하는 빛과 함께 상혁과 백도현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꺼진 것처럼 사라졌다.

“아.”

“사라졌어.”

유영과 상웨이는 하늘로 솟은 것처럼 갑자기 사라진 상혁의 모습에 입을 떡 벌렸다. 그 순간 저 멀리서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묵직한 동체가 하늘 위에 모습을 드러내더니 그곳에서 완전 무장한 특수요원들이 레펠을 통해 강하하고는 상웨이와 유영 주변에 착지했다.

“상웨이 소교!”

유영을 경호하는 경호부대가 나타났다. 언제나 그렇듯 모든 상황이 끝난 다음에야 나타난 그들을 보며 상웨이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영아.”

“언니. 아버지한테 말해야겠어요.”

“그 사람의 경고는?”

상웨이가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유영은 확신했다.

“백상혁이라고 했죠? 그가 왜 우리 앞에서 마법사란 걸 숨기지 않았는지 생각해 봐야 해요. 난 그가 우리 아버지한테 자신이 마법사란 것을 밝히고 싶다는 것처럼 들었거든요.”

“어째서?”

“원하는 것이, 거래할 만한 것이 있다는 뜻이겠죠. 그러니까 언니.”

유영의 두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아버지를 보러 가요. 위즈니랜드에서 진짜 마법사를 만났다고 말을 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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