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08화
208. 위즈니랜드의 마법사(3)
유영은 현대 중국에서 가장 고귀한 혈통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단 한 번도 자신의 혈통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거나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18살.
하고 싶은 것도, 꿈꾸고 싶은 것도 많을 나이인 유영은 중국 주석의 금지옥엽이었다. 그녀의 아버지인 주석은 해외에서는 강력한 황제이자 독재자로, 동시에 경쟁자를 망설임 없이 암살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인물로 묘사하지만 유영에게 아버지는 그저 아버지일 뿐이다.
조금 엄하기는 하지만 여느 중국 가정의 아버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아버지.
유영 스스로가 본인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건 어린 나이부터 그녀가 봐 온 주변의 풍파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의 관료로 산다는 건 언제 어디서 갑자기 모가지가 날아갈지도 모르는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엘리트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공산당에는 어차피 다들 비슷한 엘리트이기 때문에 그것이 특별할 순 없다.
물론 일반인들에게 공산당의 고위 관료는 대단하고 무서운 사람이겠으나 사실은 공산당 내부도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365일 내내 살벌하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주석은 언제나 자신도 목이 달아날지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로 인해 자신이 끔찍하게 사랑해 마지않는 금지옥엽인 유영을 최대한 평범하게 키웠다.
공산당 고위 관료의 자제가 누릴 수 있는 혜택은 다른 민주주의 국가의 그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다르다.
옛 중국 황실에서 이름만 공산당으로 바꿔 달았다뿐이지 중국 공산당은 그저 옛 황실보다 역성혁명이 자주 일어나는 또 다른 황조의 이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그 황실의 고위 관료는 옛 중국의 고관대작이다. 그 고관대작의 자식들이 얻을 수 있는 혜택이 작을 리 없다.
그러나 주석은 일부러 자신의 딸을 그런 혜택들로부터 분리했다. 그는 자신도 그가 수도 없이 보아 온 이들처럼 개인의 능력과 상관없이 정쟁에 휘말려 손짓 한 번에 날아갈 수 있는 개미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고, 자신 때문에 딸이 불행해지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영은 다른 고위 관료의 자제들처럼 귀족 학교가 아니라 일반 공립학교를 다녔고 보디가드와 운전사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다행히 주석은 그 시절부터 충분히 유능했기에 자신을 제외한 유영과 아내의 신상의 유출을 철저히 막아 내었기에 가능했다.
그 노력 덕분일까.
유영의 아버지는 그 이름도 찬란한 중국 공산당의 일인자가 되었다. 그리고 주석이 된 후 강력한 철권 통치로 자신의 장기집권 토대를 마련하여 정말 황제와 같은 권력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유영의 일상도 변화했다.
아버지가 주석이, 그것도 옛 황제의 그것에 버금가는 권력을 손아귀에 쥔 황제가 된 순간 그녀와 가족도 더 이상 평범한 삶을 영위하는 것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졸지에 평범한 일반인에서 황녀가 된 유영은 정든 친구를 떠나 귀족 학교로 옮겼다. 그리고 그녀가 집 앞 슈퍼에도 나갈라치면 경호원이 따라왔고 어딘가를 간다고 하면 비싼 세단과 운전사가 그녀를 기다렸다.
귀족 학교에서도 그녀는 친구를 한 명도 사귀지 못했다.
귀족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유영은 황녀이지, 동등한 친구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영은 현명했고 자신이 감내해야 될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머리로는.
아직 유영은 고작 18살에 불과한, 감정 기복이 한창 심할 때의 나이였고 그 때문에 불쑥불쑥 치솟아 오르는 반항심을 억누를 수 없었다.
물론 현명한 만큼 금세 이성을 되찾고는 하지만 지금처럼 한 번씩 큰 사고를 칠 때가 있었다.
“상 언니, 사진 찍어 줘요.”
유영이 다니는 귀족 학교는 미래의 중국을 책임진다는 기치 아래 고위 관료의 자제들이 다니는 곳이다. 그렇기에 그런 곳에서 위즈니랜드로 현장학습을 나가는 경우는 지극히 적었다. 그래서 유영은 그냥 일탈을 감행했다.
“영아, 학교 가야지. 응?”
상 언니라 불린 여자는 상웨이라는 이름을 가진 유영의 경호원이다. 본래 중 육군 중 최고라 불리는 동부전구 71집단군 벼락부대 소속이었지만 유영 앞에서는 온순한 양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무려 주석의 금지옥엽이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오늘은 학교를 빼고 위즈니랜드에 가겠다고 한 걸 막을 수 없었다. 물론 상웨이는 재빠르게 상부에 이 사실을 알린 상태였다.
‘나 혼자서는 무리. 어서 누군가라도 왔으면 좋겠는데.’
갑자기 유영이 정해진 루트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아직 지원부대가 도착하지 않았다. 반면 유영을 보호할 수 있는 건 상웨이 혼자였기에 주변을 경계하느라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놀 거예요. 그러니까 사진 찍어요. 안 찍어 주면 나, 확 도망가 버릴 거예요?”
유영은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위즈니 캐릭터인 레옹의 팔을 꼭 붙잡은 채 으름장을 늘어놓았다. 그녀의 으름장에 상웨이는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힛, 고마워요.”
유영이 레옹을 끌어안고는 온갖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어차피 어디 SNS 같은 곳에도 올리지 못할 사진이지만 그래도 유영은 틈날 때마다 사진을 찍었다.
그런 유영과 상웨이를 보며 탈을 뒤집어쓰고 있던 백도현은 눈을 빛냈다.
‘범상치 않은 신분 같은데?’
백도현은 한눈에 유영과 상웨이의 관계를 눈치챘다. 언니라며 부르고 있었지만 상웨이는 유영을 어려워했다. 무엇보다 상웨이는 인이어를 끼고 있었다.
‘어디 귀한 집 아가씨와 경호원인가?’
설마 유영이 주석의 딸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백도현이다. 그는 유영과 사진을 찍은 뒤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일단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는 게 우선이다.’
유영에게 잠시 흥미가 생겼지만 거기까지다. 백도현은 지금 다른 곳에 흥미를 기울일 정도가 되지 못했다.
뜨끔.
백도현은 몰래 탈출하다가 난 상처가 벌어지는 것을 느끼며 식은땀을 흘렸다. 창문으로 몰래 기어 나오다가 유리에 베인 상처다. 백도현은 자신의 상태가 엉망인 것을 느끼며 쓰게 웃었다.
‘내가 살길은 결국 상혁이뿐인가?’
백도현은 백방으로 자신이 살길을 찾았다. 하지만 꽤 인맥 관리를 열심히 하면서 살아왔다 자부했지만 이럴 때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형인 백이현은 가장 강력한 경쟁자다. 아마 백도현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접해도 그가 돌아오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백정연도 그를 반기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남는 건 하나.
백상혁뿐이다.
‘도움을 줄지 안 줄지는 모르지만 그나마 중립에 가까운 것이 그 녀석이니까.’
상혁은 백도현에게 암시를 걸고 박상원을 구출해 갔다. 어떻게 보자면 상혁이 백도현의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속죄란 말에 새롭게 마음을 고쳐먹은 백도현이 그나마 기대해 볼 수 있는 건 상혁이 전부다. 상혁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건 간에 자신을 죽이려는 아비와 형보다는 나았다.
‘안 도와준다고 해도 거기까지인 것이고.’
어떻게든 살아남아 속죄를 위해 산다고 했지만 만약 여기서 죽는다면 그게 자신의 운명이다. 백도현은 유영이 팔을 놓자 얼른 몸을 돌려 반대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후욱, 후욱.
거친 숨을 몰아쉬며 레옹의 탈을 뒤집어쓴 백도현이 멀어졌다. 그때 유영은 레옹이 멀어지는 것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영아. 이제 가자. 응?”
“언니. 저 레옹, 좀 이상하지 않아요?”
상웨이가 간절하게 이제 학교도 돌아가자고 했지만 유영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상웨이는 유영이 화제를 돌리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이럴 거니?”
“아니, 진지하게요. 언니. 저 레옹 좀 이상해요.”
“뭐가 이상하다는 거니?”
상웨이는 유영이 화제를 돌리는 게 학교로 가기 싫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영은 멀어지는 레옹의 뒤를 가리켰다.
“저기요. 저기 레옹의 뒤에 얼룩이요. 원래 레옹에게 저런 붉은 반점 같은 게 있었나? 저기. 봐봐요 언니!”
유영의 성화에 상웨이는 레옹을 쳐다보는 시늉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마저도 하지 않으면 유영이 삐져서 더 엇나갈 수도 있는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자, 봤어. 뭐가?”
“저기요. 허리 쪽에. 저거 핏자국 아니에요?”
“응?”
상웨이의 눈이 가늘어졌다. 유영이 가리킨 곳을 바라보니 정말 붉은 핏자국 같은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금방 인파 속으로 사라져 버려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상웨이는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피?’
스윽.
특수부대 출신으로 여러 실전을 겪어 본 상웨이는 단박에 깨달았다. 그리고 그녀는 몸에 입력된 대로 유영의 앞을 가로막았다.
‘위즈니랜드에 핏자국을 묻힌 인형탈이 돌아다닌다고?’
무슨 도시 괴담도 아니고, 그게 말이 된단 말인가. 상웨이는 이 안에 자신이 모르는 또 다른 무언가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주석께 보고가 올라갈까 봐 알아서 처리하려는 건가.’
상웨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주석의 딸을 호위하는 근접 경호원이다. 그런데 위즈니랜드에서 또 다른 작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누군가 그 보고를 누락시켰다는 소리다.
아마 주석의 딸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그것을 우려하여 아예 보고를 누락한 것이리라.
황제적인 권력을 가진 중국 공산당의 실태는 이렇듯 그 권력을 두려워한 관료들의 보고 누락을 야기했다. 그로 인해 다른 사람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건 보신과 자리보전에만 급급한 관료들의 머릿속에는 없었다.
“언니, 어때?”
“음…….”
상웨이가 방금 레옹이 서 있던 곳을 훑었다. 그러자 그곳에 작은 핏방울이 떨어져 있는 것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레옹.
조금 전 유영이 사진을 찍은 레옹은 위즈니랜드의 직원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상웨이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만약 유영을 노린 괴한이었다면 유영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따라가 보자.”
“뭐? 안 돼!”
“역시. 뭐가 있는 거지 언니?”
“아, 아니야.”
상웨이는 유영의 손목을 붙잡았다. 지금은 위험한 상황이다. 경호원으로서 경호 대상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상웨이로써는 유영이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언니. 나 주석의 딸이야.”
“보호를 받아야 할 대상이고.”
“저렇게 놓치면? 그래서 저자가 테러리스트나 뭐 이런 거라면?”
“공안이나 국가안전부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야.”
“난 아니야.”
유영이 상웨이에게 배운 호신술로 상웨이의 손을 뿌리쳤다. 그러고는 재빨리 달려가기 시작했다. 레옹이 사라진 방향이었다.
“영아!!”
“언니! 빨리 따라와!!”
위즈니랜드에 바글거리는 인파로 인해 도망간 유영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한 상웨이가 이를 악물고 유영을 놓치지 않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 * *
번쩍! 번쩍!
블링크를 통해 이리저리 이동하며 감지 마법으로 위즈니랜드를 훑어가고 있던 상혁은 별반 다른 성과를 얻진 못했다.
위즈니랜드가 더럽게 크고, 사람이 더럽게 많다는 정도?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중국이 마법을 사용하기에 정말 적합한 환경이라는 것 정도.”
상혁은 코를 통해 상하이의 공기를 들이마시고, 그것을 몸속에서 마나로 정화한 뒤 오염물을 손가락 끝으로 내보낸 뒤 태웠다.
“감지 마법 정도는 무한으로 사용이 가능하겠는데?”
미세 먼지니, 황사니. 서해를 넘어 중국발 먼지가 한국 상공으로 유입되는 것 때문에 양국의 정부가 목소리를 높였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중국 땅에 딱 도착하니 이곳의 대기 오염은 상혁의 예상치를 훨씬 웃돌았다.
“마나 분포도가 희박한 곳이라고 생각해도 될 정돈데.”
얼마나 대기 오염이 심한지, 상혁은 마치 가나안에서도 마나 분포도가 희박한 지역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감지 마법 정도는 무한으로 사용해도 될 정도로 대기 오염이 심했기 때문이다.
부아아아앙-!
그렇게 중얼거리던 상혁의 머리 위로 무언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지나갔다. 상혁이 소음에 위를 슬쩍 쳐다보자 드론이 머리 위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상혁이 고개를 갸웃하고는 다시 고개를 들어 올려 하늘을 쳐다봤다.
부우우웅.
부아아앙.
“드론이 좀…… 많네?”
하늘을 부유하는 드론은 한두 대가 아니었다. 언뜻 봐도 상혁이 있는 지역 주변으로 드론이 거의 열 대가 넘게 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무언가를 떠올린 상혁이 마법을 영창했다.
“마나 디텍트.”
그 순간 상혁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