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95화
195. 참고로 난 욕심쟁이(5)
제피렐리 가문이 하루 만에 무너졌다.
원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로스차일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반인들은 저 멀리 자신들의 머리 꼭대기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하루하루 먹고살기가 바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과는 달리 그런 뉴스에 민감한 사람들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재계와 정계.
미국의 시총 100순위 안에 드는 대기업 중 절반 이상이 원탁, 아니면 프리메이슨에 속해 있었고 미국의 상원과 하원 의원 중 절반 이상이 그 두 세력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아 정치인이 된 이들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지각변동이 일어난다는데 그 지각 위에 발을 딛고 사는 이들이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수많은 이들이 로스차일드 가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그 어떤 누구도 속 시원한 답을 듣지는 못했다. 헤르츨 로스차일드, 그가 함구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달 후 미국 시총 순위에서 진입 즉시 10위 안에 진입한 기업이 나타나자 재계와 정계가 발칵 뒤집혔다.
더 위자드 코퍼레이션.
자본금만 무려 4,500억 달러.
밑에 딸린 그룹은 아무것도 없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회사 하나가 무려 4,500억 달러의 자본금으로 미국 기업 시총 순위 10위에 진입한 것이다.
한화로 따지면 무려 588조.
대한민국에서 부동의 1위를 수십 년째 차지하고 있는 SG전자가 366조였는데 거의 SG전자의 1.5배에 달하는 회사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나타난 것이다.
알려진 것은 그 회사가 투자를 위주로 하는 금융회사라는 것. 사무실은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비싼 건물이자 맨해튼에서도 가장 비싼 건물 중 하나인 소로스 빌딩 124층 전체를 매입한 바로 그 회사라는 사실이 밝혀진 순간 발칵 뒤집혔던 재계와 정계는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소로스 빌딩은 원탁의 가문 중 하나인 노리치 가문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탁이 흔들린다는 소리가 들리더니 원탁의 가문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노리치 가문의 상징이 더 위자드 코퍼레이션이란 회사의 손에 넘어갔다?
재계와 정계는 입을 놀릴 때와 놀리지 말아야 할 때를 귀신처럼 알아채는 이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다물고 신경을 껐다.
자세히 알아서 좋을 것이 없었으니까.
“어떻습니까 친구.”
헤르츨이 124층짜리 소로스 빌딩, 그 가치만 해도 3억 5천만 달러인 소로스 빌딩은 상징적인 빌딩이었다.
“결국 노리치 가문의 심장에 깃발을 꽂았군요.”
“물론입니다. 후환을 두지 않는 것이 전쟁의 기본이니까요.”
헤르츨이 이를 드러내며 하얗게 웃었다. 지금이야 저렇게 티 없는 웃음을 짓지만 그는 냉혹하기 짝이 없는 포식자로 사정없이 제피렐리 가문이 무너지고 상혁 때문에 사분오열된 원탁의 가문들을 찢어발기고 집어삼켰다.
제피렐리 가문 산하에 있던 로키드마틴은 프리메이슨의 록펠러를 비롯한 다른 방산업체가 잘게 쪼개 집어삼켰다.
물론 잘게 쪼갰다고 해도 워낙 로키드마틴의 덩치가 컸기 때문에 압도적인 1위가 된 록펠러를 제외하고도 대형 방산업체가 순식간에 십여 개가 탄생할 정도였다.
그런 식으로 로스차일드를 필두로 프리메이슨은 원탁을 분열시키고 그들을 쪼개 잡아먹었다. 상혁에게 보호를 요청했던 그들은 뒤늦게 백기 투항하겠다며 상혁을 찾았지만 상혁이 그 귀찮은 일을 할 이유가 없었다.
로스차일드는 알아서 그들을 집어삼키고, 그들의 가치에 해당하는 것만큼의 대가를 내놓겠다고 했기 때문에 상혁은 그저 지켜보기만 하면 됐기 때문이다.
이 소로스 빌딩은 1940년대 노리치 가문이 부동산 가문으로 급부상하며 자신들의 상징처럼 지어 올린 초고층 빌딩이었다. 노리치 가문의 전전대 가주인 소로스 노리치의 이름을 따 소로스 빌딩이라 불렀는데 노리치 가문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마저 로스차일드 손에 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로스차일드는 상혁에게 명의 이전을 한 것이었고 말이다.
헤르츨은 철저히 상혁에게 모든 포커스를 맞췄다.
상혁이 번거로운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아챈 그는 상혁에게 원탁의 사업체 대신 아예 새롭게 잘 꾸린 기업 하나를 선물해 주어 상혁이 신경 써야 할 부분을 최소화하게끔 했다.
그러면서 상혁의 자산을 관리하는 용도로 더 위자드 코퍼레이션을 설립했고, 고먼 가문 산하에 있던 투자회사를 하나로 묶어 알짜배기 인력들을 더 위자드 산하로 몰아넣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오직 하나.
상혁을 위해 상혁의 자산을 관리하는 것. 상혁이 보유한 588조의 현금 자산을 대신 관리하여 상혁을 귀찮게 하지 않는 것이 그들이 할 일의 전부였다.
엉겁결에 회사를 옮기게 된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불만이 없었다. 어차피 어디로 옮기든 그들은 월급만 제대로 받으면 되는 월급쟁이들이었기 때문이다.
헤르츨은 심지어 그 인력들의 인건비도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담당하기로 했다.
“이제 끝난 겁니까?”
“거의 끝나 갑니다.”
“거의면 다 끝난 건 아니군요.”
“예. 가시기 전에 백악관 한번…….”
헤르츨이 상혁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지난 한 달간 상혁이 한 것이라고는 헤르츨이 어디를 데려가면 가서 얼굴만 비춘 것이 전부다. 헤르츨을 따라간 곳에서 상혁은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났다. 하지만 상혁은 그들을 단 한 명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상혁을 본 이들은 상혁을 잊을 수 없었다.
거의 외부 활동을 하지 않는 로스차일드가 전격적으로 진격전을 하듯 원탁의 주요 사업체를 이삭줍기하는 것처럼 골라서 줍는 것도 놀라웠는데 무려 가주인 헤르츨이 나타나 지극히 공손한 태도를 보인 상혁을 억지로라도 기억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아마 앞으로 친구를 귀찮게 하는 간 큰 인간은 적어도 이 아메리카 대륙 내에는 없을 겁니다.”
상혁은 의도치 않았지만 확실하게 미국의 재계와 정계에 자신의 얼굴도장을 찍었다. 로스차일드는 그들에게 상혁에 대해서 대단히 적극적으로 알렸다.
로스차일드 가의 가주는 대통령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오히려 대통령이 헤르츨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그런데 헤르츨은 고민도 하지 않고 상혁의 앞에서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아랫사람이 된 듯한 행동을 보였다.
그렇다는 건 상혁이, 그들에게는 낯선 동양인 청년이 헤르츨보다, 그 로스차일드 가의 가주가 공경할 정도의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SG그룹?
한국인?
20대?
다 필요 없었다. 로스차일드는 자신들이 확보한 위자드에 대한 정보를 남김없이 정계와 재계에 풀었다. 그렇기에 그 정보 안의 내용이 사실 여부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상관이 있는 건 단 하나.
로스차일드가 그 정도로 백상혁이란 동양인 청년을 알아서 받들어 모시고 있다는 것.
원탁을 집어삼킨 프리메이슨의 맹주이자 로스차일드 가의 가주가 고개를 숙일 정도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정계와 재계의 거물들은 상혁의 이름과 얼굴을 머릿속에 똑바로 새겼다.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 된 것이다.
상혁은 자신의 눈치를 보는 헤르츨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미국 대통령이라. 못 만날 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죠.”
헤르츨의 표정이 밝아졌다. 상혁에게 귀찮은 일이 안 가게 하기 위해 로스차일드는 수백 년간 쌓인 가문의 저력을 총동원해야만 했다.
그 일에는 정치권을 설득하는 일도 있었는데 미국 대통령이 한 번쯤은 상혁을 꼭 보고 싶다고 계속해서 부탁했기 때문에 그냥 묵살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히 상혁이 흔쾌히 응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친구.”
“뭘요. 친구끼리.”
헤르츨은 상혁의 텔레포트를 경험한 직후 더욱더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사실 말이 회사 하나를 차린 것인지 588조 규모의 자본금을 가진 회사를 차린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던 것이다.
로스차일드가 아니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동시에 재계와 정계에서 소리가 나올만한 것도 로스차일드란 이름 하나에 다 막았으니 상혁도 나름 신세를 진 셈이다.
‘신세를 갚는 셈 치고.’
이제 미국은 프리메이슨, 정확히는 로스차일드의 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미 원탁 중 제피렐리는 폭삭 망했고, 고먼과 노리치, 그리고 포든 가문도 김태양과 두 명의 전 국정원 출신이 라스베가스에 있는 PMC의 서버실에서 찾아낸 비리 자료들로 거의 종신형 수준의 혐의를 달아 재판 중에 있었기 때문이다.
패자는 모든 것을 잃는다.
제피렐리의 패망으로 원탁은 모든 것을 잃었다. 정확히는 글레이저와 사만다로 인해 상혁이 그 일에 얽힌 순간부터 그들의 패망은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선물이 있습니다.”
헤르츨이 상혁에게 서류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사실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이걸 친구에게 드려도 되는지. 하지만 꼭 보셔야 할 일 같아서 준비했습니다.”
헤르츨의 두 눈에 옅은 긴장감이 서렸다. 그간 상혁에게 제법 익숙해진 헤르츨이지만 그럼에도 긴장한다는 건 서류 봉투 안에 심상치 않은 것이 들어 있다는 뜻이다.
“뭐길래 그러시는지.”
부스럭.
상혁은 서류 봉투를 열고 안에 들어 있는 종이 한 장을 꺼내서 읽어 내려갔다. 그렇게 읽어 내려가던 상혁의 눈이 살짝 커지더니 좌우로 흔들렸다.
“X발.”
상혁의 입에서 한국어로 된 욕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헤르츨이 흠칫했다. 한국어에 대해서 잘은 모르나 그게 욕이란 것은 알 수 있을 정도로 순간 상혁에게서 느껴진 분노가 진했기 때문이다.
“이게 뭡니까?”
“당시 CIA에서는 SG그룹의 막내인 고(故) 백성운 씨와 그 아내 고(故) 김성미 씨가 사망한 사건에 대해 의문점을 발견한 뒤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활화산 같은 상혁의 분노가 느껴졌다. 그러나 헤르츨은 그를 이해했다. 자신이 상혁이었다고 해도 똑같이 반응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명령을 받았다지만 그 명령에 따른 흉수를 찾은 셈이니까.’
서류 봉투에 담긴 건 어떤 남자의 인적 사항이었다. 하오슈안. 올해 49살의 남성으로 중국의 고위직인 국가안전부장이었다.
국가안전부는 한국의 국정원, 미국의 CIA와 같은 성격의 정보기관이자 첩보기관으로 전반적인 사항들이 기밀에 쌓여 밝혀지지 않은 것이 더 많은 곳이었다.
상혁은 살이 퉁퉁하게 붙고 안경을 낀 그 모습을 머릿속에 새겼다.
“그래서요?”
“그 결과 당시 부회장이었던 백성철 현(現) 회장이 회장직에 오르기 위해 골육상쟁을 벌이던 중 전대 회장님의 총애로 인망이 높은 백성운 씨를 견제하기 위해 중국 측과 접선한 것을 파악하였습니다.”
“중국.”
“당시 백성철 회장은 중국이 SG그룹의 미래 먹거리가 될 것이라 판단하고 중국 측과 이전부터 상당한 꽌시를 구축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헤르츨이 부연 설명을 마친 뒤 원래의 주제로 돌아왔다.
“백성철 회장은 백성운 씨의 암살을 중국에 의뢰하였고 그 보상으로 반도체 기술과 중국 내 낙후지역에 SG전자의 공장을 세워 주는 것을 제안하였고, 중국에서는 그걸 받아들였습니다.”
빠아아앙-!!
상혁의 귀에 그날의 사고가 나면서 차를 덮쳐 온 덤프트럭이 내는 거대한 소음이 그대로 재현되는 듯했다.
상혁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그러니까. 내 부모님의 죽음에 중국 새끼들이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그걸 끌어들인 건 다름 아닌 백성철이다. 이 말이죠?”
“예. 그렇습니다.”
헤르츨은 상혁의 살기에 침을 꿀꺽 삼키면서도 떨리지 않으려 애를 쓰며 말했다.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도운다. 어떻게요?”
“미국을 움직이겠습니다.”
미국을 움직이겠다는 말에 상혁의 입가로 바람이 새어 나왔다. 핏발이 선 눈으로 피식 웃은 상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복수를 남의 손에 맡기는 취미는 없습니다. 백성철만 치우면 될 줄 알았는데 중국이라는 거대한 덩어리가 나와서 놀란 거지.”
치워야 할 것이 하나가 더 생겼을 뿐이다. 헤르츨은 상혁이 이미 백성철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것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설마 SG그룹에 들어간 이유가.’
상혁이 눈에 은은한 살기를 머금은 채 헤르츨을 쳐다봤다.
“내 부모님을 죽인 놈들은 제피렐리처럼 단숨에 보내 줄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게 내 원칙이고 철칙입니다. 그러니까 로스차일드는 끼어들 생각하지 마세요.”
상혁은 그렇게 말하고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자신의 살기가 너무 강해져 헤르츨의 안색이 파리해지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조만간 한국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미리 언질해 주시면 준비해 놓겠습니다 친구.”
헤르츨은 더 이상 그 문제를 가지고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상혁이 그러겠다면 그러는 것이다. 상혁이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