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169화 (168/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69화

169. 무서운 비행기(4)

탕!

국무부의 파월 국장은 노기 어린 얼굴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그러면 대체 어쩌란 말씀이십니까?”

파월의 일그러진 얼굴에도 그를 마주한 국무부 장관인 노스턴의 얼굴은 평온을 잃지 않았다.

“국무부의 일이지만, 펜타곤의 일이기도 합니다 파월 국장. 미국의 군사 기밀이란 뜻이죠. 파월 국장. 기밀의 뜻에 대해서 모르시진 않을 것 아닙니까.”

“그 기밀을 지키기 위해 네바다주 전체를 위험으로 몰아넣으실 생각이십니까?”

“어차피 사막이 대부분인 곳이에요. 국장.”

“그곳에 사는 미국 국민이 무려 300만 명입니다 장관님.”

파월 국장과 노스턴 국장의 의견은 평행선을 달렸다. 이런 식으로 벌써 세 시간째 다투고 있었지만 아무런 성과도 나오지 않았다.

“그럼 파월 국장이 알아서 하세요.”

“장관님.”

노스턴 장관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내가 바보로 보이십니까? 원탁과 프리메이슨의 파벌 다툼에 밀려 명색만 장관을 유지하고 있다고 해서 돌아가는 정세를 파악하지 못 하는 건 아닙니다.”

“…….”

“요새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미라클맨이 있다죠. 한국의 팩이라고 했나요?”

파월 국장은 노스턴 장관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황하지는 않았다. 이빨과 발톱이 빠졌다고 해서 호랑이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의 말대로 지금은 그냥 구색만 갖춘 국무부 장관인 노스턴 장관이지만 한때 그는 대권에까지 도전했던 정치인이다.

그러니 그 정도의 정보력은 갖추고 있는 게 당연했다.

한국의 팩.

백상혁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걸 믿습니까? 대한민국이란 작은 나라에 우리 미국조차 갖지 못한 기술이 있을 리 없죠. 그리고 설령 그게 있다고 하더라도 전 세계에서 그 정보를 가장 먼저 입수하는 나라는 바로 우리 미국입니다.”

그런데 상혁이 일으킨 기적은 아무런 전조도 없이 그냥 툭 튀어나왔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다. 그러니 그 진위를 의심하는 수밖에.

“파월 국장이 국무부의 이름으로 그자와 접선하려 한 이유는 그것 때문이 아니지 않습니까?”

노스턴 국장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러자 파월 국장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러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 알고 계신다니 더 설명할 필요는 없겠군요.”

“프리메이슨은 팩으로 원탁을 베려 하는 겁니까.”

“글쎄요.”

파월 국장은 프리메이슨 소속이다. 미국 정부는 깊숙한 곳까지 원탁과 프리메이슨에 의해 점령당한 지 오래다.

노스턴 장관처럼 돌풍을 일으키며 정치계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정도가 아니라면 미국 정계에서는 성공할 수 없다.

물론 그랬던 노스턴 장관도 결국 원탁과 프리메이슨에 밀려 좌천에 좌천을 거듭해 실권이 하나도 없는 국무부 장관으로 전락했다.

무언가 자신만의 정책을 펼쳐 보려고 해도 국무부 전체가 프리메이슨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었고 백악관 역시 그들의 영향권 아래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노스턴 장관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파월 국장. 300만 네바다주 국민을 위해서라는 입에 발린 말은 더는 하지 마시고.”

사람이 방사능에 노출되었을 때 안전한 양의 방사선량은 1년에 2msv(밀리시버트)다. 그런데 최근 네바다주의 토양과 지하수에서 인간이 견딜 수 있는 방사능 피폭 수치의 100배에 달하는 200msv/h가 검출된 것이다.

그리고 네바다주에는 51구역이 있었다. 그리고 몇 달 전 네바다주에는 강도 6.5의 큰 지진이 일어났다.

“그러는 장관님도 짐작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파월 국장은 이제는 노스턴 장관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원탁이 51구역에서 핵을 실험하고 있다는 것을요. 선을 먼저 넘고 있는 건 그들이 아닙니까.”

네바다주의 51구역은 대통령도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미국의 최고 기밀을 다루는 구역이다. 그 어떠한 위성으로도 잡히지 않으며 그곳에 함부로 침입했다가는 사살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관광지로 유명해진 바로 그 51구역이다.

그리고 그 51구역은 원탁의 제피렐리 가문의 소유였다.

“밝혀진 바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밝히고자 하는 겁니다. 백상혁과 환경이란 명분을 이용해서 말입니다.”

“그들이 받아들이리라 생각하십니까?”

“백상혁을 눈엣가시처럼 생각하는 것이 바로 글레이저와 제피렐리입니다. 글레이저는 프랭크의 아들인 윌리엄과 사만다 허드 때문에, 그리고 제피렐리는 용산 기지 때문에 말이죠. 묘하게도 백상혁이 그 연결고리에 있습니다.”

노스턴 장관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 정도라면 이미 원탁과 프리메이슨이 암중에서 벌이는 전쟁이 목전에 다다랐다는 뜻이다.

파월 국장은 지금 장관의 동의를 구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지금 통보하고 있었다.

파월 국장이 노스턴 장관에게 말했다.

“백상혁을 미끼로 원탁의 견고한 동맹에 균열을 일으킬 생각입니다 저희는.”

파월은 분명 ‘저희’라고 했다. 그렇다는 건 이건 파월의 뜻이 아니라는 뜻이다. 프리메이슨 전체의 뜻이라는 소리다.

“그래서 나보고 협력하라?”

“누구보다도 미국을 사랑하고 아끼는 분이 바로 장관님 아니십니까. 원탁이 수상한 인체 실험을 진행한 것을 넘어 미국 내에서 핵실험까지 하고 있다는 증거가 차고 넘칩니다. 지금이 아니면 대체 언제 움직이실 생각이십니까?”

“파월!”

애국자 노스턴.

그는 오로지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정책으로 강성 보수세력의 지지를 받아 일약 신드롬을 일으키며 하원을 거쳐 상원까지 쾌속하게 진격했다.

그러나 원탁과 프리메이슨의 견제에 날개가 꺾인 노스턴 장관 앞에서 그들과 한패인 파월이 감히 미국을 거론한다는 건 노스턴에게 있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미국을 좀 먹는 건 프리메이슨 역시 마찬가지지. 내 앞에서 그 더러운 입으로 미국이니 국민이니를 입에 담지 마시오. 아시겠소?”

노스턴 장관의 일갈에 파월 국장은 움찔했다. 지금은 영락했어도 한때 독자 세력으로 원탁과 프리메이슨을 곤란하게 만들었던 노스턴 장관의 기개다웠다.

“팩의 기적이 거짓이라면?”

하지만 노스턴 장관의 이어진 말에 파월은 입꼬리를 씰룩였다. 자신의 말에 분노를 토해 내기는 했어도 어쩔 수 없이 이쪽 손을 잡을 것이라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상관없습니다. 팩을 놓고 아마 글레이저와 제피렐리는 충돌할 테니까요.”

“사만다 허드라는 껄끄러운 패를 쥔 상혁을 없애려고 하는 글레이저와, 숨겨 둔 것을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 제피렐리 사이의 갈등이라.”

“한국의 최대 기업이자 글로벌 기업인 SG의 로열패밀리인 백상혁입니다. 아마 글레이저 가문이 독단적으로 움직인다고 해도 쉽지는 않을 테지요. 그렇게 되면 제피렐리 가문은 어떻겠습니까.”

“글레이저를 비난하겠군.”

“둘 사이는 예전부터 라이벌 관계였으니까요.”

원탁의 시초인 두 가문, 글레이저와 제피렐리는 같은 이상을 공유하지만 비즈니스적인 동맹 관계이지 혈맹 관계는 아니다.

정치의 글레이저와 군수의 제피렐리는 비슷한 노선이면서도 두 가문의 사상이 달랐기 때문에 친해질 수 없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51구역을 제피렐리 가문이 잃는다면 엄청난 손해일 겁니다. 그러니 그들과 사이가 나빠진 글레이저 가문에게는 호재로 느껴질 겁니다.”

“……알겠소. 손을 잡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파월 국장이 노스턴 국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노스턴 국장은 그 손을 빤히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국무부에서 김태양에게 접선하기 직전에 미국의 국무부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 * *

“핵실험으로 인한 네바다주의 방사능 오염이 심해졌고, 그걸 나더러 와서 정화해 달라는 건가?”

“요약하자면 그렇습니다.”

“의외군, 국무부라니.”

확실히 의외의 곳에서 연락이 왔다. 그러나 국무부가 우리나라의 외교부처럼 대외적인 미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부 부서라면 이상한 일은 아니다.

미라클맨이라 불리는 상혁의 소문을 들었다면 마음이 혹하지 않았을 리 없기 때문이다.

“방사능이라.”

김태양은 조심스럽게 상혁의 표정을 살폈다. 상혁이 말해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김태양이 참았던 말을 쏟아 냈다.

“무언가 내막이 더 있는 것 같았습니다.”

“무슨 내막? 제아무리 미국이라고 해도 핵실험에는 국제 사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지 않나? 뭐, 저기 윗동네처럼 경제 제재 같은 건 당하지 않겠지만.”

타국에서 핵 개발을 하고 핵실험을 하는 걸 강력하게 규탄하고 제재하지만 정작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을 지닌 핵보유국은 바로 미국이다.

애초에 인류의 전쟁 역사에서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핵폭탄을 투하했던 나라가 미국 아니던가.

그런 미국이 평화를 외치며 핵을 막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모순적이었지만 어쨌거나 미국이라도 핵에 관해서는 국제 사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즉, 이 일은 숨겨야만 하는 일이란 뜻이다.

“그게 아니라, 거참, 말로 하긴 뭐한데.”

벅벅.

김태양은 답답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었다. 그가 하는 말에 어떠한 증거나 논리는 없었다. 그저 지금껏 그를 그 세계에서 꽤 유명한 첩보원으로 만들었던 육감이 신호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린 냄새가 난다는 신호.

“굳이 국무부에서 나설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음.”

“아무리 이사장님이라고 하셔도 결국 일개 개인일 뿐입니다. 그것도 외국인이요. 그런데 이 사건은 미국 내에서도 특급 기밀로 다뤄지고 있는 케이스입니다.”

그런데 그걸 상혁에게 말하고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다 만약 상혁이 어딜 가서 폭로하기라도 하면 대체 어쩐다는 말인가.

상혁은 일개 개인이라고 하지만 그 뒤에는 SG그룹이 있었기에 그냥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는 개인이 아니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이사장님을 미국으로 부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나를 의도적으로 부른다라. 어째서지?”

“그 어떤 나라도, 회사도 고작 첫 번째 협상 테이블에서 모든 걸 까진 않습니다. 하지만 국무부는 초면에 모든 걸 까 버렸습니다.”

하긴 그랬다.

상혁을 부르려는 이유와 상혁이 이 문제를 해결해 주면 약속한 보상까지. 국무부는 숨기는 것 없이 외국인인 상혁에게 모든 것을 밝히고 도움을 요청했다.

“저야 이사장님의 능력을 의심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그 미국이 이렇게 덜컥 이사장님을 믿고 일을 맡기겠다는 것 자체가 누가 봐도 의심스럽지 않습니까?”

상혁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게다가 보상도 컸지.”

“예. SG전자가 미국으로 수출하는 품목에 대한 관세 철폐를 꺼내 들었으니까요.”

미국으로 들어오는 물건의 관세를 철폐해 주겠다.

이건 사실 국무부에서 제안할 수 있는 수준의 보상이 아니다. 관세는 대단히 예민하고 민감한 문제여서 마치 선심을 쓰듯 어떤 특정한 개인에게만 줄 수 있는 그런 혜택이 아니다.

그런데 그걸 국무부가 들고나왔다는 건 이미 윗선에서 결재가 다 끝났다는 소리다.

“좋아. 미국으로 가지.”

“이사장님.”

하지만 상혁은 그런 김태양의 우려를 모두 인정하면서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혁은 김태양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걱정을 모르는 건 아니야. 하지만 앞으로는 말리시기 전에 먼저 생각하도록. 난, 지구 유일의 마법사라는 걸.”

“…….”

“게다가 내가 필요한 걸 그쪽에서 먼저 주겠다는데 내가 거절할 필요가 없지.”

방사능.

마침 마지막 한 올 완성을 위해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이 필요하던 참이다. 인류가 만들어 낸 최악의 오염 물질이라 불리는 방사능이라면 그 퍼즐 한 조각이 되어 줄지도 모른다.

‘물론 그 전에 나를 이용하려던 놈이나 미국에 온다고 옳다고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는 놈들에게 절망을 선물해 준 다음에 말이지.’

상혁은 더 이상 생각을 바꾸는 일은 없다는 듯 손뼉을 치고는 김태양에게 말했다.

“출장 준비해.”

“저희도 갑니까?”

“한국으로 만족할 셈인가? 앞으로 나에게는 전 세계의 정보가 필요한데.”

김태양의 눈이 흔들렸다. 상혁의 스케일은 듣기만 하는 것만으로도 말문을 턱하고 막는 무언가 있었기 때문이다.

“CIA. 한번 넘어 보고 싶지 않아?”

하지만 상혁의 말에 김태양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반짝였다. CIA를 뛰어넘는 정보조직. 그걸 꿈꾸자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쿵 하고 뛰었기 때문이다.

“준비하겠습니다.”

그는 곧바로 상혁을 향해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