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166화 (165/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66화

166. 무서운 비행기(1)

덥썩.

“이사장님!”

“왜, 왜 이러세요.”

상혁은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은 김상돈 교수를 쳐다봤다. 그가 하도 바짓자락을 당기는 바람에 바지가 흘러내릴 뻔한 걸 간신히 손으로 붙잡았다.

“이, 이건 기적입니다. 세계 환경에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일이란 말입니다. 우리의 후대에 훼손한 자연환경이 아니라 훨씬 더 나은 자연을 선사해 줄 수 있는 그런 기적이란 말입니다!”

촤라락!!

촤자자작!

문제는 상혁과 김상돈 교수가 독대 중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김상돈 교수는 기자들이 있는 그 자리에서 아예 상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환경학자로 여러 대기업의 사업에 발목을 잡는데 일등 공신이었던 김상돈이 상혁 앞에 무릎을 꿇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헤드라인에 걸리기 딱 좋은 소재였다.

거기에 모두가 상혁의 망신을 바랐다.

심지어 한국대학교의 임직원들마저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무슨 요술을 부린 것인지 상혁은 자신의 말을, 약속을 지켰다.

“이, 이러시지 말고요, 교수님.”

“알려 주시기 전까지는 이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김상돈 교수는 50줄에 들어선 중년의 교수다. 그런 그가 자신의 아들뻘인 상혁의 다리를 붙잡고 못 일어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모습은 거의 한 편의 콩트였다.

그러나 동시에 김상돈이 얼마나 환경 보존에 진심인지도 느껴졌다. 아무리 믿을 수 없는 결과를 봤다고 하더라도 김상돈처럼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저리 나올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았다.

‘유펜 마이어스 같네.’

상혁은 그런 김상돈을 보며 잊었다고 생각했던 몇십 년 전의 이름을 떠올렸다.

신진 마법사로 마나안과 과학, 수학적 지식을 이용해 쾌속하게 6서클에 오르며 이름을 날리던 자신 앞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마법사.

그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마탑의 마법사였던 그는 어느 날 상혁을 찾아왔다. 그러고는 상혁이 당시 마법계를 뜨겁게 달궜던 조합 마법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조합 마법.

‘과학으로는 간단한 이치였지만 마법으로는 아직 그 누구도 밝혀내지 못한 전인미답의 학설이었지.’

현대에서 과학을 공부한 상혁에게는 너무나도 간단한 이치가 마법이 발달한 가나안에서는 그러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불과 바람이 만나면 불이 커지고, 전기와 물이 만나면 전기가 강해지는 것 같은 그런 지극히 간단한 이치.

그것을 고의적으로 노려 조합 마법이란 것을 상혁은 만들었다. 문제는 그런 기본적인 과학 상식이 몇몇 마탑과 마법사들에 의해 비전처럼 내려오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마법 대결을 제안했고, 내가 이겼지.’

조합 마법으로.

그때 상혁에게 패배한 유펜 마이어스는 인간에 불과한 상혁이 그 정도의 어마어마한 진리에 대한 해답을 품고 있다는 것에 경외를 느꼈다.

그리고 마법 대결이 끝난 뒤 유펜 마이어스는 김상돈과 똑같이 굴었다.

[내게 마법을 가르쳐 주시게.]

6서클 마법사가 6서클 마법사에게. 그리고 신진 마법사라고는 하나 그 어떤 마탑에 속해 있지도 않은 야인이나 다름없던 상혁에게 엘리트 마법사인 유펜은 기꺼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난 받아들였지.’

순수한 지식에 대한 갈망을 외면할 수 없었다. 유펜은 정쟁에 빠져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고 있는 마법사들과는 달리 순수히 마법이란 진리에 자신의 삶을 쏟아부은 마법사였다.

그런 그를 상혁은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를 받아들였다.

6서클 마법사를 제자로. 상혁은 그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얕은 지식 안에서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을 그에게 알려 주었고 그와 활발히 교류했다.

그리고 그와 나란히 7서클에 올랐다.

그러나 상혁보다 스무 살이 많았던 유펜은 얼마 지나지 않아 생의 끝에 도달했다. 그는 눈을 감으며 상혁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넘겼고, 상혁은 유펜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주류 마법계에 신성으로 떠올랐다.

그때는 일란이라는 이름을 썼지만 상혁이 대마법사가 되어 마법계를 손에 넣을 수 있었던 데에는 유펜의 그런 지원이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유펜은 상혁에게 은혜를 입었다 했지만 상혁도 그에게 은혜를 입었다. 상혁은 단지 그의 순수한 열망을 외면하지 못했을 뿐이지만 유펜은 그보다 더 큰 것을 상혁에게 주었다.

그런 유펜이 김상돈과 겹쳐 보였다.

“좋습니다. 알려 드리지요.”

“예? 정말입니까?”

상혁은 이번에도 그런 김상돈을 외면할 수 없었다. 김상돈의 두 눈이 커졌다. 그는 상혁에게 매달리면서도 상혁이 그것을 알려 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그게 아니고서는 저리 놀랄 수 없었으니까.

“그냥 알려 드리긴 뭐하고. 자리를 옮기시죠.”

“아, 알겠습니다.”

김상돈은 두말할 것 없이 곧바로 상혁의 바짓자락을 놓았다. 아니, 아예 자신 때문에 구겨진 상혁의 바지를 손바닥으로 쓱쓱 밀어 펴 주기까지 했다.

언뜻 비굴하기까지 한 그의 모습에 셔터가 천둥소리처럼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는 사방에서 번쩍이는 플래시를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로지 자연과 환경.

김상돈의 두 눈에서는 그 두 가지에 대한 관심만이 느껴질 뿐, 그걸 위해서라면 김상돈은 이보다 더한 것도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는 자세가 된 모양이다.

“이 비서님.”

“예.”

이창엽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고는 주변에 눈짓하자 지금껏 나서지 않고 기자들을 지켜보고 있기만 하던 경호팀이 나섰다.

일호와 일영, 그리고 이호는 외국에서 들어오는 중국인들을 감시하느라 오늘은 오승택과 이창엽만 대동했다.

그리고 이창엽은 상혁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필요한 준비를 모두 다 마쳤다. 그걸 보면 확실히 그는 유능한 사람이었다.

“물러나세요.”

“취재는 여기까지입니다.”

“거기! 카메라 내려요.”

SG그룹의 경호팀이 나서자 현장에 순식간에 정리됐다. 백성철이 검찰에 있고, 백도현과 백이현이 리타이어 된 상태에서 상혁을 소홀히 할 간 큰 계열사는 없었다.

이런 현장이 능숙한 듯 아우성치는 기자들을 깔끔하게 밀어 버리자 길이 생겨났다. 이창엽이 상혁과 김상돈을 차로 안내했다.

“그럼 두 분, 말씀 나누십시오.”

이창엽이 그렇게 말하고는 차 문을 닫았다. 이런 곳에서 은밀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이라면 차가 적합했다.

상혁은 김상돈에게 말했다.

“100일 만에 오염 토양을 어떻게 정화했는지 그 방법이 알고 싶다고 하셨습니까?”

“예. 물론입니다.”

김상돈은 한 번 어딘가에 꽂히면 다른 곳을 돌아보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그 어떠한 것도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저 순수히 상혁이 어떻게 그런 기적을 일으켰는지에 대해서만 궁금할 따름.

평생을 환경학이란 분야에서 제 인생을 다 바친 외골수적인 기질에 그에게서 느껴졌다. 상혁은 빙긋 웃었다. 역시 자신은 이런 사람이 마음에 들 수밖에 없었다.

‘재려고 하지 않고, 밀당을 하려고 하지도 않고 순수히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향해 돌진하는 사람들.’

여기저기 다 재고, 다른 꿍꿍이를 품은 사람들만 줄곧 봐 왔기 때문일까. 김상돈 같은 사람을 보니 신선함이 느껴질 정도다.

상혁은 그에게 말했다.

“얼마 전 러시아에서 러시아 인근 해역에서 기준치 이상의 방사능이 검출되어 국제 사회가 일어났던 적이 있지 않습니까?”

“예. 러시아는 그런 일이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미국과 유럽은 명확하게 결과를 밝히라면서 압박을 가한 적이 있었죠. 그런데 몇 달 뒤에 러시아에서 문제가 없다는 결과를 들고나와서 저도 신기했…… 설마?”

김상돈이 상혁을 쳐다봤다. 상혁은 미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상돈은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라 러시아에서 어떤 조작을 가하지 않았나 했는데…… 그러면…….”

“제가 말씀드리기 전에.”

상혁이 김상돈의 말허리를 잘랐다.

“이번 용산 부지를 낙찰받는 전제 조건 중 하나가 SG 이름으로 된 환경 기금을 기반으로 재단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 있었습니다.”

“예, 그렇지요. 정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이렇게 빨리 끝날 줄은 몰랐지만…….”

“그래서 SG가 만드는 환경재단의 이사장을 김 교수님이 맡아 주시는 게 조건입니다.”

“제, 제가요?”

김상돈이 멈칫했다. 전혀 상상치도 못한 제안이었기 때문이다. 상혁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남의 영업 비밀을 알아가시는 게 쉬우리라 생각하진 않으셨겠지요.”

“…….”

김상돈은 눈을 굴렸다. 그의 머리는 재빠르게 회전했다. 그가 바라는 건 상혁이 일으킨 기적을 더 폭넓은 분야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지구가 앓고 있는 환경 파괴와 오염이라는 이 질병을 낫게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겠습니다.”

김상돈은 결국 그 자리를 맡을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있어 멸망에 치닫고 있는 지구의 환경을 되돌릴 수 있는 사람은 상혁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그럼 말씀드리죠.”

상혁이 김상돈을 보며 씩 웃었다. 김상돈은 두근거리는 얼굴로 상혁을 쳐다봤다. 상혁은 그를 향해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였다.

“여길 보세요.”

김상돈은 순순히 상혁의 손가락을 쳐다봤다. 그걸 보며 빙긋 웃은 상혁이 마나를 끌어올린 순간, 손가락 끝에 다섯 가지의 원소가 피어올랐다.

파앗-!

손가락 끝에 줄기 하나가 피어올랐다. 그러더니 바람 한 줄기가 불어와 줄기를 흔들었고 하늘에서 물방울이 맺히더니 줄기의 끝에 맺혔다.

그리고 한 줄기 불꽃이 줄기와 그 끝에 맺힌 물방울을 태웠고 흙이 쏟아져 불꽃을 덮어 불꽃을 껐다.

풀, 바람, 물, 불 그리고 흙.

“마법입니다.”

“……?”

“마법으로 한 겁니다.”

“……예?”

김상돈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예상을 일만 년쯤 아득하게 넘어섰기 때문이다. 마법이라니.

“제가 러시아에 넘긴 건 용왕이라 불리는 마도구. 마법을 이용해 만든 일종의 아티팩트라고 보시면 됩니다. 효능은 보시다시피 명확하구요. 그걸 만든 게.”

상혁이 손가락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저, 세계 유일의 마법삽니다.”

“그, 그게 대체…….”

당연히 김상돈이 그 한마디에 상혁의 말을 이해하고 넘어갈 리 없다. 상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빙긋 웃었다.

“믿기 힘들다는 거, 이해합니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이해하셔야 할 겁니다.”

김상돈을 환경재단의 이사장으로 앉힌 이유는 간단하다. 그라면 환경을 위해서라도 상혁의 비밀을 어딘가에 발설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명한 환경학자인 그의 명성이라면 앞으로 상혁이 마나를 쌓기 위해 여러 오염 구역을 방문할 때 조금 더 편안하게 운신할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걸 이해하게 될 거니까.’

그가 기대했던 것처럼 무언가 획기적인 기술이 있는 건 아니다. 이건 상혁이 아니라면 지구의 그 어느 누구도 이룰 수 없는 업적이니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김상돈은 더욱더 자신에게 협조해야만 할 것이다.

“다시 말씀드리죠.”

상혁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가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 이상의 사실을 맞닥뜨린 김상돈의 두 눈은 불안하게 흔들렸다.

“김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지구의 위기. 교수님은 늘 칼럼에 환경위기시계를 거론하시면서 지구의 멸망이 두 시간 남았다는 표현을 쓰시지 않으셨습니까.”

환경위기시계.

전쟁과 산업혁명을 겪으며 자연을 땔감 삼아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던 인류 문명의 위기를 강조하며 1992년도부터 환경위기시계라는 것이 만들어졌다.

그 시계가 12시를 가리키는 순간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지표인데, 지금 세계의 환경위기시계는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멸망까지 딱 2시간이 남은 셈.

상혁은 이곳에 오기 전에 김상돈이 쓴 칼럼을 모두 읽어 보았다. 그는 그 안에서 이 지구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조속히 마련되기를 바란다면서 사람들에게 환경 위기에 대해 알리는 것에 진심임을 보였다.

그러니 그는 알아야만 한다.

“그 시계를 멈출 수 있는 사람. 더 나아가 그 시계를 뒤로 돌릴 수 있는 사람은 저뿐이라는 것. 그걸 명심하세요.”

상혁이 자기 자신을 가리키면서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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