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64화
164. 다 끝내고 갑시다(4)
백도현은 죽지 않았다.
일영에게 상혁이 내린 명령은 간단했다. 백도현을 뒤쫓아 결정적인 기회를 노리되, 백도현을 노리는 무리가 생긴다면 백도현을 확보할 것.
전투골렘인 일영은 학습 능력이 생긴 일호와는 다르게 명령을 섬세하게 수행할 순 없었다. 그래서 일호를 통해 실시간으로 통제받았다.
그리고 부산항에 황제파가 나타난 순간 일호는 백도현을 확보한다는 상혁의 계획을 한 차례 더 꼬았다.
백도현을 사고사로 위장하기로 한 것이다.
그 결과 차에 치인 것은 백도현이 아니라 일영이었다. 일영은 황제파가 타고 온 승합차를 탈취한 뒤 운전자를 기절시켜 운전석에 앉혀 놓고는 백도현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상혁이 마법을 통해 일영의 외관을 백도현으로 바꿨을 뿐이다.
물론 진짜 백도현을 확보해야 했기 때문에 일영은 백도현을 치는 척하고 차에서 내려 백도현을 기절시켜 승합차 안에 던져 놓았다.
그 일련의 과정에 물 흐르는 듯 부드러웠고 완벽한 사각지대를 찾아 눈 깜박할 사이에 움직였기에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근처에 대기시켜 놓은 이호를 통해 백도현을 빼돌린 뒤 일영은 병원에 실려 가는 척하고는 도중에 빠져나온 것이다.
우우웅!!
상혁 주변으로 넘실거리던 마나가 고요해졌다. 마나가 잠잠해진 뒤 상혁은 눈을 반짝하고 뜬 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무리했나.”
주르륵.
상혁의 코로 코피가 흘러나왔다. 백성철을 완벽하게 속이기 위해 상혁도 무리를 감수했다. 리스크 없이는 얻는 것도 없기에 기꺼이 선택한 길이지만 그럴 때마다 부족한 자신의 역량만 뼈저리게 느껴질 뿐이다.
슥.
상혁은 과도한 마나 사용으로 흐르는 코피를 손등으로 닦아냈다. 근래 굵직하게 마나를 쓸 일이 있어 무리한 탓이다.
“아무리 마나 고리가 두터워도 5서클은 5서클이란 소린가.”
거의 6서클에 육박하는 마나량을 가진 5서클 마법사인 상혁이지만 5서클의 한계는 분명했다. 상혁은 6서클에 대한 갈증을 강하게 느끼며 길게 심호흡했다.
[일호, 끝났다.]
[고생하셨습니다, 마스터.]
일호에게 고생했다는 소리를 듣다니. 상혁은 피식 웃었다. 가나안의 일호가 지구의 일호가 된 것도 신기한데 바뀐 일호는 더욱 신기했다.
[백도현은?]
[의식을 회복했습니다. 하지만 겁먹은 것인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선주는 입이 무거운 자겠지?]
[예. 걱정 마십시오.]
상혁은 일호와 대화를 종료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상혁의 눈에 저 멀리 희미하게 불이 켜진 검찰청이 눈에 들어왔다.
상혁은 검찰청과 멀지 않은 곳의 원룸에 앉아 있었다. 제아무리 상혁이라고 해도 5서클 수준으로 백성철에게 펼친 마법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부족한 5서클로 6서클을 흉내 냈으니 반작용이 있을 수밖에.’
이 세상 모든 것에는 대가가 있다. 그건 마법도 마찬가지다. 상혁은 백성철이 SG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시간을 끌기 위해 무리해서 마법을 썼고 그것은 상혁의 몸에 고스란히 돌아왔다.
의식 제어.
6서클의 정신 계열 마법으로 말 그대로 상대의 의식을 제어하는 마법이다. 8서클에 이르면 거리에 관계 없이 어디서든 펼칠 수 있지만 5서클에 불과한 상혁은 검찰청 인근까지 와야만 했다.
거리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소모하는 마나량을 줄이고자 함이었다.
게다가 인간의 정신 방벽은 연약하면서도 견고하기에 자칫하면 작은 충격만으로도 백치가 될 수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을 거쳐 정신에 간섭한다는 건 6서클에 도달해서야 비로소 펼칠 수 있는 것인데, 그걸 5서클로 펼쳤으니 반작용으로 코피가 흐른 것이다.
“이 정도면 그나마 다행이지.”
상혁은 쓰게 웃었다. 한 단계 위의 고위 마법을 펼쳤음에도 이 정도로 끝난 건 상혁이 8서클에 도달했던 경험과 6서클에 육박하는 마나량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마나 역류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시도였다.
어쨌거나 그 덕분에 마법은 성공했다.
‘백성철은 내 경고를 쉬이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백도현은 공해상의 한 선박 안에 억류되어 있었다. 그곳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신중해야 할 것이니 백정연이 원하는 시간을 벌어 준 셈이다.
상혁이 원룸 건물에서 내려오자 기다리고 있던 오승택이 차 문을 열었다.
“용산으로 모실까요?”
“그래.”
상혁은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켰다. 마나량은 거의 바닥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부터 용산 부지의 정화를 시작하기로 했다.
‘6서클. 두드려 봐야지.’
상혁은 차가 부드럽게 출발하는 진동을 느끼며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 * *
“이사장님.”
“음.”
상혁은 눈을 떴다. 그사이 깜박 잠이 든 모양이다. 오승택이 열어 주는 차 문으로 내린 상혁은 어두컴컴한 옛 용산 기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돌아가서 쉬어.”
“예.”
오승택은 군말하지 않고 차에 다시 올라탔다. 자신이 여기 있어 봤자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상혁은 미군이 빠지고 난 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풍기는 기지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로등 하나 불이 들어온 것이 없어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쓰레기와 함께 꽤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됐지만 상혁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저벅저벅.
상혁은 말없이 지난번 발견한 비밀 연구소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SG그룹이 낙찰을 통해 부지의 소유권까지 이미 다 옮긴 상태이기 때문에 지난번처럼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 들어올 필요가 없다는 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
“여긴가?”
상혁의 머리 위로 초아가 뽕하고 튀어나왔다. 그러더니 초아가 상혁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그렇게 초아의 안내를 받자 금세 상혁의 눈앞에 비밀 연구소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상혁은 비밀 연구소로 내려가 허공에 광원 마법을 띄웠다.
“라이트.”
화악!
전기도, 수도도 이미 모든 것이 끊긴 곳이다. 상혁은 여기저기 선명하게 남은 지난번의 흔적을 하나씩 훑어보며 제피렐리의 로고가 붙은 특수 용기에 손을 얹었다.
크기는 드럼통 정도.
“윈드 커터.”
서걱!
단단하게 용접으로 밀봉 처리가 된 드럼통에 절단 마법을 사용하자 이음새 부분이 힘없이 떨어져 나가며 뚜껑이 덜컥하고 움직였다.
그 찰나의 순간.
후욱!
뚜껑이 살짝 열린 순간에 안쪽에서 뿜어져 나온 가스가 상혁의 얼굴을 뒤덮었다. 그 순간 상혁의 눈이 커졌다.
불룩!
상혁의 피부에 불룩하고 수포가 솟아올랐다. 그러더니 눈에 핏줄이 툭툭하고 서더니 얼굴이 푸르뎅뎅한 색으로 변했다.
지독할 정도의 독기.
휘오오오오!!
하지만 다음 순간 상혁의 주변으로 마나가 몰아치더니 상혁의 얼굴이 평온해졌다. 그와 동시에 상혁의 손끝으로 지독한 액체가 한 방울 탁 맺혔다.
“후우우우.”
상혁의 숨결에 마나가 묻어 흘러나왔다. 상혁은 제피렐리의 로고가 붙은 특수 용기를 새삼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이놈들은 대체 뭘 만들려고 했던 거야?”
거의 바닥을 보이던 다섯 개의 마나 고리가 독기 한 모금에 20퍼센트 정도가 차올랐다. 상혁은 독가스가 얼굴에 분사된 순간 비슷한 느낌을 떠올렸다.
“드래곤 하트의 열화판 같은 느낌이었는데.”
순간 정신을 탁 놨다면 상혁은 죽었을 것이다. 과도한 마나는 독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영단, 영약 같은 것을 먹기 전에는 부작용에 유의해야만 한다.
그런데 독가스를 맡은 순간 그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드래곤 하트의 열화판.
물론 저걸 감히 드래곤 하트와 비교할 수는 없었다. 드래곤은 지상 최강의 생명체로 일만 년씩 산다고 알려진 전설 속의 생명체다.
인간이 사용하는 마법의 조종이며, 그 마법을 인간에게 전수한 것이 드래곤이기 때문이다. 드래곤 한 마리는 능히 한 왕국을 멸망시킬 정도이며 인간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9서클과 10서클이 드래곤의 영역이라는 설도 있었다.
그런 드래곤의 심장은 드래곤의 모든 힘을 집약한 거대한 마나 덩어리다.
상혁은 우연한 기회로 그 드래곤 하트를 직접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드래곤 하트를 마주한 순간 하마터면 마나가 폭주할 뻔한 것을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드래곤 하트는 8서클 대마법사인 상혁의 마나가 발작을 일으킬 정도의 힘을 품고 있었다.
드래곤의 일부분인 심장일 뿐이지만 심장의 주인인 드래곤에게서 떨어져 나왔음에도 드래곤 하트는 죽지 않고 박동하며 마나를 뿜어냈다.
상혁은 그것을 보면서 감히 드래곤 하트를 섭취할 욕심도 내지 못했다.
저건 먹는 순간 온몸이 마나의 폭풍에 의해 갈가리 찢겨져 나가리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상혁이 방금 맡은 제피렐리의 독가스가 그와 비슷한 느낌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물론 드래곤 하트에 비교한다면 진짜 드래곤 하트의 백만분의 일도 되지 않는 기운이지만 그만큼 순수한 독기였다는 뜻이다.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독이군. 생화학 무기인 건가.”
단언컨대 특수 용기 안을 단순하게 여는 것만으로 튀어나온 기화된 가스로도 사람 백 명은 거뜬히 10초 안에 즉사시킬 정도의 독기를 품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게 말로만 듣던 생화학 무기다.
화학적으로 여러 물질을 혼합해 인마를 살상할 목적으로 만든 최악의 무기.
핵과 더불어 인류가 만들어 낸 최악의 무기인 생화학 무기에 쓰이는 화학 물질이 든 통이라는 셈이다.
“한국에서 제피렐리 가문이 생화학 무기를 개발하고 있었다라.”
상혁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 저들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길래 인체 실험에 이어 생화학 무기의 개발과 실험을 이 땅에서 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어이가 없는 것은 없는 것이고, 상혁에게는 두 손을 붙잡고 흔들고 싶을 만큼 땡큐다.
드드득!
상혁은 마저 뚜껑을 잡아 뜯었다. 그러자 시커멓고 불투명한 녹색의 독수가 안에서 찰랑이는 것이 상혁의 눈에 들어왔다.
“100ℓ 정도.”
제작 용기 안에 반 정도가 찰랑이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 100ℓ는 적은 양처럼 보이지만 저걸 희석해 뿌린다고 생각하면 적지 않은 양이다.
어느 정도 독성을 가졌느냐에 따라 결국 달라진다는 소리.
쿡.
상혁은 찰랑이는 액체에 손가락을 담갔다가 그것을 입에 넣고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상혁의 목까지 수포가 올라왔다가 상혁의 손끝을 통해 시커먼 액체가 맺혔다.
“이 정도면 극소량만으로도 사람이 죽겠는데. 무력화시키는 용도라고 생각하면 1억 명 이상.”
1억 명 이상을 중독시킬 수 있는 양의 생화학 무기. 상혁은 히죽 웃고는 액체에 아예 손을 담갔다. 그러자 상혁의 어깨까지 잠겼다.
“땡큐, 제피렐리.”
상혁의 전신이 불룩거리며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초아가 상혁의 머리카락 사이에서 빠져나와서는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뱅글거리며 상혁의 머리 위를 돌았다.
잠시 후 상혁의 몸속으로 100ℓ에 달하는 생화학 무기가 모조리 스며들었다. 그 사이 상혁의 모습은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얼굴은 부풀어 올라 원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고 온몸의 피부가 시퍼렇고 팅팅 부어오르며 마치 금세라도 터질 것처럼 꿀렁였다.
몹시 고통스러워야 정상이지만 정작 상혁의 표정은 평온했다. 아니, 상혁은 모든 정신을 생화학 무기에 깃든 마나를 걸러내 한 올씩 꼬아 여섯 번째의 고리를 만들어 내는 데 집중했다.
상혁의 예상을 넘어서는 양의 마나가 노도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심각하게 오염된 토양을 통해 마나를 수급할 생각을 했던 상혁이다. 그러나 생화학 무기 100ℓ가 모든 것을 뒤바꿔 놓았다.
상혁의 온몸이 마나를 걸러내어 흡수하기 시작하면서 펄떡이기 시작했다. 상혁은 한쪽의 마나안을 뜬 채 스스로를 관조했다.
‘끔찍하군.’
오수를 정화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자신의 모습이다. 생화학 무기는 무려 1억 명을 중독시킬 정도의 양이다. 그 양을 집어삼켰으니 저럴 수밖에.
상혁은 끊임없이 자신의 몸을 공격하려 드는 생화학 무기를 막아 내며 그 안에서 마나를 추출했고, 그것을 꼬아 마나실로 만들어 여섯 번째 고리를 만들어 갔다.
파아아앗-!!
생화학 무기가 품고 있는 마나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그 때문에 늘 문제이던 마나가 이번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섯 번째 고리.
마나실 수백 개를 꼬아 만든 여섯 번째 고리가 심장에 안착한 순간 마나의 돌풍이 불며 사방을 몰아쳤다.
하지만 그 순간 상혁은 자신이 선택의 기로에 섰다는 것을 깨달았다.
‘7서클.’
생화학 무기가 품은 독성은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그 독성은 전부 다 풍부한 마나를 품고 있었다.
그렇다면 고민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마나는 늘 부족해서 고민이지 넘쳐 나는 게 고민이 되진 않는다.
‘간다.’
상혁이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상혁은 전력을 다해 생화학 무기에 담긴 독성을 단 한 톨도 놓치지 않은 채 그것을 모조리 마나로 치환하는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7서클.
아득하다고만 생각했던 그 경지가 손에 잡힐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