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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150화 (149/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50화

150. 복수는 차갑게 먹어야 제맛(5)

모리조 가문이 대한민국 정부의 편을 들어 한미 방위비 협상에서 미국의 완패를 이끌어 냈다.

프랭크 글레이저는 단문을 접하고는 극대노했다. 윌리엄이 직접 한국까지 가고도 고작 모리조에게 밀려 원하는 바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는 건 가문의 수치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사사건건 거의 모든 분야에서 대척점에 선 모리조 가문에게는 가위바위보도 져서는 안 된다.

그건 글레이저 가문의 자존심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윌리엄은 모리조의 직계도 아니고 고작 행크 모리조라는 이름도 없는 방계에 졌다.

한국에 간 내내 행크 모리조에 의해 휘둘린 것이다.

어떤 상황이건 간에 그건 용납될 일이 아니다. 프랭크 글레이저는 머리끝까지 진노한 채 윌리엄에게 1년의 근신령을 내렸다.

“저희는 여기까집니까?”

“인연이 닿는다면 또다시 만날 수 있겠죠.”

마이클 무어는 행크 모리조에게 자료를 제공했다. 행크 모리조는 마이클의 도움을 더 바랐지만 글레이저가 아니었다면 애당초 모리조에게 관심을 보였을 마이클이 아니다.

원탁이나 프리메이슨이나 CIA인 마이클 무어에게는 나라를 좀먹는 벌레들이다. 행크 모리조는 아쉬워하며 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윌리엄 글레이저를 물 먹인 상으로 본가로 들어가기로 했단다. 마이클은 행크와 작별한 뒤 곧바로 상혁에게 찾아왔다.

“저희는 여기까집니까?”

“예. 여기까집니다.”

상혁은 딱 잘라 마이클 무어를 밀어냈다. 마이클은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상혁이 얼마나 뛰어난 지략가인지 아는 사람은 마이클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고작 스무 살이다. 그런데 글레이저와 모리조를 싸우게 만들었어. 그 때문에 사만다에 대한 감시의 눈길이 느슨해졌다.’

그걸 해낸 것이 상혁이다. 마이클로서는 그런 지략에 SG의 후계자이기도 한 상혁이 고작 이 정도로 끝날 리가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상혁은 마이클과 끈을 이어 두고 싶어 하지 않았다.

“사는 세상이 다르지 않습니까. 가능한 미스터 무어와 난 만나지 않는 편이 더 좋습니다.”

상혁은 빙긋 웃으며 마이클을 달랬다. 비밀이 많은 상혁이다. 그런 상혁에게 세계 최고의 정보력을 가진 CIA는 아무래도 곁에 두기에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혹여 회사를 나오게 되신다면 제게 오십시오. 그때는 함께 일합시다.”

“그럴 리는 없을 겁니다.”

상혁의 말에 마이클은 씩 웃었다. 그는 제 발로 CIA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 상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뒤 그를 배웅했다.

“행크 모리조가 날뛰어 준 덕분에 용산 매물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었습니다.”

미군이, 정확히는 제피렐리의 사주를 받은 사령관이 용산 안에 비밀 연구소를 지었고 그로 인해 엄청난 환경 오염이 발생했다는 것이 알려졌다.

그 사실은 협상 테이블 안에서 묻고 가자고 했지만 한국 정부는 그다음 날 곧바로 움직였고, 행크 모리조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용산 기지로부터 흘러나온 오수의 오염도가 기준치를 아득히 상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군이 연루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사실이 신문에 대서특필되지는 않았다. 반미 감정이 고조되는 건 한국 정부로서도 바라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것 때문에 한미 방위비 협상은 한국의 압승으로 끝이 났다. 모든 증거물이 있는 상황에서는 제아무리 최강대국 미국이라고 해도 오리발을 내밀 수 없었다.

“사령관이 해임될 정도로 큰일이었으니까요. 그곳에 관심을 가질만한 기업이나 인물은 다 알았을 겁니다.”

미군은 내년도 방위비를 조금도 올리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깎였다. 그리고 사령관을 해임하는 것을 약조한 후에 한국 정부를 만족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소식은 쉬쉬했지만 은밀하게 퍼져 나갔다.

특히 미군이 왜 용산 매물의 입찰 조건에 환경 기금을 조성하라고 했는지 그 이유가 밝혀지면서 용산 매물에 관심을 보였던 기업과 컨소시엄들이 발을 하나둘씩 뺐다.

입지는 좋으나 용산 기지의 오염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행크 모리조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토양에는 다이옥신 농도가 기준치보다 40배는 더 높고 비소는 35배가 더 높았다.

그리고 한강에 무단으로 방류한 화학 물질에 대한 정화도 환경 기금 안에 들어가 있어야만 했다.

미군이 싼 똥을 용산 매물을 산 이들이 대신 치워야 한다는 뜻이니 아무리 용산이 탐이 나도 누가 그런 리스크를 짊어지면서 들어오겠는가.

용산 기지를 밀고 그 위에 무언가를 짓기 위해서는 당장 환경부의 엄격하기 그지없는 기준을 통과해야만 하는 실정이었다.

막말로 환경부에서 그걸 통과 안 시켜 주면 막대한 비용을 들여 용산 매물을 구입하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방치해야만 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정부에서 이걸 무기로 쥘 수도 있다는 뜻이지.’

그렇다는 건 결국 정치도 이쪽에 콩고물이 떨어지는 것이 없나 관심을 기울일 것이란 뜻이다.

정부는 환경부의 평가 통과를 무기로, 정치인들은 통과를 도와주겠다는 빌미로 손을 벌리며 달려들 것이다.

돈을 맡겨 둔 것도 아니지만 공돈을 향한 정치인들의 집념은 상상 이상이다.

정부 역시 마찬가지.

그럴듯한 명함 하나 달아 주고 정부 성과로 생색내기 위해 어떻게든 숟가락을 얹으려 할 것이다. 그러니 그곳에 아파트나 주거시설을 짓고 싶은 기업들이 빠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상혁에게는 관심 없는 이야기다.

‘있는 거라고는 돈밖에 없는 늙은이가 엘릭서를 얻기 위해서라도 알아서 처리하겠지.’

늙어 가는 백성철에게 있어 엘릭서는 천금을 줘도 얻지 못할 보물 중의 보물일 것이다. 그러니 용산의 가격이나 정부의 개입 등은 그가 알아서 전부 처리할 것이다.

상혁은 그냥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된다는 소리.

“그럼 안녕히 가십쇼.”

“다음에 만날 수 있다는 소리도 하지 않으시는군요.”

“만나서 좋을 것이 없지 않습니까.”

상혁은 씩 웃었다. 다음번에는 마이클이 상혁을 만나더라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상혁이 마이클을 찾을 일은 아는 사람이 하나라도 더 늘어서는 곤란한 일일 것이다.

만나도 기억을 하지 못하겠지.

‘나 좋으라고 쓰는 마법인데 뭐.’

상혁은 마이클과 악수했다. 그렇게 마이클이 떠난 뒤 상혁은 바삐 어디론가로 향했다. 당장 용산의 비밀 연구소로 뛰어가고 싶었지만 세상이 상혁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이 비서, 큰형님에게로 갈 겁니다.”

“예, 모시겠습니다.”

이제는 상처받은 큰아들인 백이현의 복수심을 살살 긁어 줄 차례다. 마침 그가 상혁을 찾았다. 백성철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 받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배신감을 느꼈을 때 가장 좋은 치유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복수.

‘복수는 차갑게 먹어야 제맛이지. 넌 내 칼이 될 것이다, 백이현.’

상혁이 비릿하게 웃었다.

* * *

백성철은 아들인 백도현을 불렀다.

엘릭서 프로젝트가 노출되었음을 눈치채고 있었던 백도현은 곧장 본사로 들어갔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기 때문이다.

엘릭서 프로젝트를 놓고 자신을 협박하던 건방진 윌리엄 글레이저는 오히려 제 정적에게 한 대 카운터를 맞고 본국으로 소환됐다.

하지만 그 산을 하나 넘으니 더 큰 산이 나타났다.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지. 아버지가 이제야 부른 건 이유가 있어서다.’

백이현이 엘릭서에 대한 단초를 잡았다는 것을 들은 건 며칠 전이다. 상혁에게서 들은 것인데 곧바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날 것 같았지만 며칠간은 조용했다.

가장 먼저 달려들어 물어뜯었을 백이현이 조용했다. 그렇다는 건 한 가지다.

‘아버지가 막으셨다.’

백성철이 막은 것이다. 백도현은 백성철이 백이현을 막았어야만 하는 이유를 열심히 생각했다.

그러자 나온 결론은 간단했다.

‘아버지는 엘릭서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계시는 거지?’

백성철.

그가 엘릭서 프로젝트에 욕심이 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백도현은 이게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음을 직감했다.

백성철이 원하는 것이 엘릭서라면, 그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인지가 궁금했다. 그래야 자신의 가치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회장님.”

백도현은 백성철을 보자마자 허리를 구십 도로 숙였다. 그러자 백성철이 자리에서 일어나 백도현에게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손을 휘둘렀다.

철썩!

쿵!

“일어나.”

백도현은 볼이 화끈한 느낌이 들었지만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이번에는 반대쪽 손이 날아왔다.

철썩!

70대의 근력이 맞나 싶을 정도로 백도현의 몸은 한 대 맞을 때마다 종잇장처럼 휘청거렸다. 잠시 후 백성철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자 손을 내렸다.

“후우, 도현아.”

“예, 아버지.”

백도현의 양 볼이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백도현은 단 한 번도 인상을 찡그리거나 반항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인 백성철은 내칠 생각이었으면 이렇게 굳이 자신의 손까지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당하지 못할 것에는 손을 대면 안 됐다.”

“예, 아버지.”

“네가 한 짓이 회사를 날려 먹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았어야 했다.”

“예, 아버지.”

“한 번 일을 하면 확실하게 했어야 하고.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이건 그걸 가지고 네게 협박할 사람이건 모든 대책이 세워져 있었어야 한다.”

모든 실패에 대한 대책이 있었어야 한다. SG의 명운이 걸려 있는 일에는 후계자라면 그랬어야 한다. 백도현이 맞은 이유는 그것 때문이다.

“넌 실패했다. 그리고 협박을 당했고. 다행히 하늘이 널 도운 모양이지만 다음에는 어찌 될지 모른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백도현은 무릎을 꿇었다. 백성철은 그런 백도현을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네가 해야 할 일을 알겠니?”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무슨 기회 말이냐. 이현이는 당장 널 내치자고 했다. 나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고. 넌 회사를 위험에 빠뜨렸어.”

윌리엄 글레이저는 진실을 알고 있다. 그게 언제 다시 비수가 되어 돌아올지 모른다. 그런 백도현이 후계자가 된다는 건 리스크를 짊어져야 한다는 소리다.

“아버지께서 한 번만 도와주십쇼.”

“내가? 난 늙었다. 이제는 너희들의 시대야.”

백성철은 한탄하듯 그렇게 말했지만 백도현은 그런 백성철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그 말을 하는 백성철의 두 눈도 야망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바라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

백성철은 백도현을 쳐다봤다. 영특한 둘째 아들은 자신의 처지를 알고 바짝 엎드렸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알겠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믿어 보마.”

“아버지.”

“이현이는 내가 이야기해 보마. 어리석은 아이가 아니니 내 말을 알아듣겠지.”

백성철은 백이현에게 받은 엘릭서 프로젝트의 증거 자료를 내밀었다. 백도현의 두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백이현이 이걸 어떻게 손에 넣었던 것일까.

아니, 지금은 저게 백이현의 손에 들어갔는데도 아직 자신의 목이 붙어 있다는데 기뻐해야 한다. 하필이면 백이현이 이걸 백성철에게 건넨 것이 자신의 목숨을 살렸다.

‘형은 아버지의 욕심을 여전히 모르는군.’

만약 자신이었다면 이런 건 결코 백성철에게 건네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이기 전에 그도 한 명의 권력자다. 오래 살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한 그런 권력자.

“용산에 의학연구소를 만들 것이다. 필요한 인력을 꾸려 빠르게 시작하거라.”

“예, 회장님.”

아버지에서 회장님으로 돌아온 백도현이 고개를 들었다. 백도현은 자신이 백척간두의 상황에서 간신히 살아남았음을 깨달았다.

‘결국 살아남으면 되는 것이다. 역사는 결국 승자에 의해 쓰이는 법이니. 내 기필코 살아남으리라.”

백도현의 두 눈이 푸르스름한 광망을 내뿜었다. 간신히 살아남은 백도현은 당분간 백성철이 하라는 대로 납작 엎드려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 또 다른 기회가 왔을 때 거머쥘 수 있다.

두 부자가 욕심과 야망으로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동상이몽을 꿈꿨다. 그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똑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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