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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132화 (131/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32화

132. 처음 타 보는 비행기(2)

상혁은 사만다를 호텔까지 바래다줬다. 상혁이 호텔에 도착하자 둘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 버선발로 뛰어나오는 주드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사장이 당신을 아끼는 모양이군요.”

“주드…….”

사만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상혁은 직접 차 문을 열고 내렸다. 호텔의 사유지이기 때문에 기자들의 출입을 금지시켰다고는 하나 호텔 밖에서, 호텔 방 안에서 대포 카메라를 통해 찰칵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했다.

어둑어둑해진 밤에는 어느새 달이 뽀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상혁은 더할 나위 없이 신사다운 몸가짐으로 조수석의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사만다에게 손을 내밀었다.

사만다는 그런 상혁을 보며 빙긋 웃어 보인 뒤 상혁이 내민 손을 잡았다. 상혁은 보드라운 사만다의 손을 잡고는 그녀를 가볍게 잡아당겨 차에서 내리기 편하도록 도왔다.

“그거, 언제까지 쓰고 있을 생각이에요?”

사만다가 손을 뻗어 상혁이 쓰고 있던 동물 귀 모양 헤어밴드를 뺐다. 상혁은 머쓱하게 웃었다. 사실 그걸 달고 있다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꼴로 신사다운 척을 했다니. 제아무리 상혁이라도 얼굴이 뜨끈해질 수밖에 없었다.

“오늘 즐거웠어요.”

그런 상혁에게 사만다가 말했다. 상혁은 피식 웃었다.

“거짓말을 능숙하게 잘하시네요.”

“들켰나요?”

사만다는 보이지 않는 곳에 계속해서 식은땀을 흘렸다. 오늘 하루 종일이 그녀에게는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 그들이 보내는 메시지가 명확했기에 사만다는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글레이저 가문.

그리고 그 뒤에 그들과 손을 잡고 사만다를 인체 실험의 희생양으로 팔아넘기려고 했던 그들에게 어떻게 보자면 선전 포고를 하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긴장을 많이 했어요.”

“티가 하나도 안 나던데.”

“이래 봬도 배우니까요.”

사만다는 빙긋 웃었다. 그녀는 굳이 붙일 필요 없는 사족을 덧붙이지 않기로 했다. 예를 들면 글레이저에서 보낸 히트맨들이 놀이공원에서 그녀를 습격하거나, 혹은 놀이기구에 탈 때 그 놀이기구를 조작하여 사고로 위장해 죽인다든가 하는 끔찍한 시나리오.

소설이나 영화에서 나오는 일이 아니냐고 누구는 의구심을 품겠지만 그런 걸 현실화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 글레이저 가문이었다.

“열하나.”

“네?”

상혁은 그런 사만다의 귀에 뜬금없이 숫자를 말했다. 사만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상혁은 애정 어린 말을 속삭이는 것처럼 나지막이 그녀의 귀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늘 우리를 습격하려고 했던 사람들의 숫자.”

“…….”

사만다의 눈이 더욱 커졌다. 상혁은 기자 쪽에서 보이지 않게 몸을 슥 움직여 그녀의 표정을 가렸다.

“다섯 번. 습격하려고 했던 횟수.”

“상혁 씨, 그게…….”

“하지만 여긴 한국이고, 미국에 글레이저가 있다면 한국에는 SG가 있죠.”

상혁은 그렇게 말했다. 한국에서는 글레이저라도 자신을 건드릴 수 없다는 자신감을 일부러 넣은 목소리다. 그러자 사만다의 굳은 눈매가 슬쩍 풀렸다.

“전 상혁 씨를 믿을게요.”

사만다는 SG보다 상혁에게 신뢰가 갔다. 자신을 구해 줬으니 당연한 일이다. 거기에 자신을 위해 글레이저 가문과 적이 될 수도 있는 위험한 길을 택한 남자다.

“그럼 들어가 볼게요.”

상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만다의 손을 놔주었다. 사만다가 들어가다가 고개를 돌려 상혁을 보며 방긋 웃었다.

“오늘 그냥 힘들기만 한 건 아니었어요.”

“…….”

상혁이 아무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자 사만다가 마저 말을 이었다.

“설레고, 재밌었어요. 긴장도 했지만. 그럼 다음 주에 봐요.”

사만다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주드가 나와서는 사만다 옆에 딱 달라붙었다. 그 모습이 사이좋은 부녀를 보는 것 같았기에 상혁은 피식 웃었다.

“설레고 재밌었다라.”

상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사만다가 아름답기는 했다. 거기에 매력적이기도 했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상혁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할 수 없었다.

“뭐, 이 몸이 잘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자신감 넘치게 스스로에게 중얼거린 상혁이 다시 차에 올라탔다.

* * *

열한 명의 습격자.

그리고 다섯 번의 시도.

상혁이 사만다에게 말한 건 거짓이 아니었다. 상혁이 사만다에게 말한 유일한 거짓이라면 SG가 그 시도들을 막아주었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막은 건 SG 따위가 아니었다. 상혁의 마법과 일영이라는 훌륭한 전투 골렘이었다.

“미친놈들. 진짜 놀이기구에 손을 대려고 했을 줄이야.”

거기에 사만다의 추측도 맞았다. 상혁이 습격자 중 세 놈을 잡은 건 에스랜드에서다. 상혁과 사만다가 타기로 한 놀이기구를 건드려 사고를 위장하려 한 놈이 세 놈이다.

그리고 그 세 놈은 인사불성이 된 채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다 토해 내야만 했다.

“글레이저. 글레이저. 글레이저.”

열한 명이 전부 다 글레이저와 연관된 놈들이었다. 직접적이건, 아니며 어딘가를 한 번 더 거쳤건 간에 어떻게든 글레이저와 다들 한 발씩을 걸치고 있었다.

“아니, 여기가 미국이야 한국이야?”

글레이저 가문이 한국에 얼마나 더 많은 영향력을 뿌린 것인지는 일호라고 해도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상대의 규모도, 전력도 모른 채 싸워야 한다는 소리네.”

마음 같아서는 그냥 확 글레이저라는 곳에 쳐들어가 뒤집어엎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기사의 스타일이지 마법사의 방식이 아니다.

“5서클로는 부족해.”

게다가 5서클 정도로는 미국의 흑막이라는 글레이저 가문을 상대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설령 그게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 이후가 문제였다.

원탁이라는 놈들.

제각기 미국의 한 분야에서 최고를 찍는 놈들이 글레이저 가문을 도우려고 한다면 그 순간부터는 상혁과 미국의 싸움이다.

5서클 수준으로는 지구 최강대국과 홀로 맞설 수가 없었다.

‘최소한 7서클, 아니 8서클은 찍어야지. 9서클은 돼야 압도할 수 있겠고.’

다른 국가와 초격차를 벌린 미국의 군사과학을 생각해 본다면 9서클에 오르지 않은 다음에야 변수와 위험성이 너무 높았다.

그렇다면 정면으로 쳐들어가 부수는 것은 무리.

“결국 판을 짜서 글레이저가 이쪽에 신경을 못 기울이게 해야 한다는 뜻인데.”

그때 상혁에게 누군가 찾아왔다. 찾아왔다고 해서 나가보니 낯익은 얼굴이었다.

“박정철 비서실장입니다.”

백도현의 오른팔인 박정철이 상혁을 찾아왔다. 박정철이 상혁에게 말했다.

“저희 사장님께서 이사장님을 뵙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백이현이 불러서 갔더니 이번에는 백도현의 차례였다. 상혁은 그가 왜 자신을 부른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사만다 때문인가?’

엘릭서 프로젝트.

가짜 엘릭서를 개발해 무병장수를 꿈꾸던 미국의 원탁이 실험을 진행했던 곳이 한국이고, 한국의 책임자가 백도현이었다.

그런데 그게 상혁의 손에 의해서 망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사만다가 튀어나왔으니, 이제야 백도현이 자신을 찾은 것이 더 수상할 정도다.

“가죠.”

그러나 상혁이 백도현의 초대를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이미 백이현을 통해 백도현이 한국대에서 숨기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고로 무기란 많을수록 좋은 법이다.

‘넌 뭘 또 숨기고 있을까?’

백도현의 고집스러운 얼굴을 떠올리며 상혁이 중얼거렸다.

* * *

“건설을 갔다는 소리는 들었어. 고생했다면서?”

백이현과는 달리 백도현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마 그런 걸 좋아하지도 않는 성격일뿐더러 마음이 급한 것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워낙 신중한 성격이라고 하니 이것저것 재보다가 상혁을 부른 것이다. 그러니 필요 없는 기 싸움을 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고생은요. 그냥 술 한잔했습니다.”

상혁은 능청스럽게 웃었다. 하지만 백도현은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것 같은 눈으로 상혁을 쳐다봤다.

“형은 네가 내 비밀을 말해 줬겠지. 그러니까 나도 너한테 형의 비밀을 말해 줄게. 넌 우리 형제의 비밀을 양손에 하나씩 쥐는 거야.”

백도현은 상혁에게 그렇게 말했다. 놀랍도록 이성적인 백도현을 보며 상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애초에 칼로 쓰기 위해 그룹에 들어왔으니, 주신다고 하여 마다하진 않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얻으시는 게 뭡니까?”

“너에게 하나 물어볼 게 있지.”

백도현은 그렇게 말하며 눈을 빛냈다. 상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단 이현 형님 이야기 먼저 들어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그래. 내 형에 대한 비밀을 먼저 들어야겠지.”

백도현의 비밀은 한국대 학생 중 하나가 미국에 연수차 갔다가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죽었고, 그것을 백도현이 나서서 무마시켰다는 것이다.

무언가 중요한 것들이 군데군데 빠져 있는 느낌.

그건 상혁이 알아서 알아내야 할 부분들이다. 그러니 얼개 정도만 갖춰져도 알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백도현은 상혁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대대로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 고유 기술을 개발하면 그걸 엄청난 자금을 동원해 압박하여 기술이나 회사, 혹은 원천 기술자를 스카우트하는 방식으로 지금의 이런 제국을 쌓아 올렸지.”

그건 대한민국 대기업의 병폐다.

경제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정계와 재계는 깊숙이 연관이 되어 있었고 때문에 규제를 피해 대기업들이 수많은 중소기업의 눈물로 성을 쌓아 올렸다.

“형도 딱 그런 윤리를 가지고 있거든. 형은 사실 요즘이 아니라 70, 80년대에 태어났었어야 했어.”

백도현은 그리 말하며 피식 웃었다.

“건축학과. 거기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학생이 하나 있었지. 거기는 학부부터 시작해 교수까지 SG건설 출신들이 많거든. 그런데 끝내주는 설계가 나온 거야.”

백도현은 그렇게 말하면서 태블릿을 가져와 무언가를 찾았다. 그러고는 액정을 돌려 상혁에게 보여 주었다.

“이거.”

상혁은 액정 안 사진을 봤다. 건축물이었는데 천편일률적인 도심의 건물과는 분명 다르게 생긴 건물이었다.

마법사인 상혁은 그냥 눈에 보이는 것보다 그 너머의 것을 봤다.

‘그림자인가.’

건축물은 상당히 독특하게 생긴 모습이었다. 상혁은 백도현에게 말했다.

“그림자입니까?”

“맞아. 사진만 보고 알았어?”

백도현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옥의 평온함, 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건축물이야. 뭐, 나는 이쪽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 모르지만 엄청나게 유명해졌지.”

상혁은 백도현의 말이 길어졌지만 그럼에도 참을성을 발휘하며 끝까지 기다렸다.

“프리커츠 상을 받았거든.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하더군.”

거기까지 나오자 상혁은 전말을 대충 유추할 수 있었다. 백도현 역시 상혁의 눈빛을 보고는 그가 알아들었음을 눈치챘다.

“물론 상을 받은 건 그 건축학과 학생이 아니야. 현기현이라는 건축가지. 정부에서 추진한 NPP 사업의 수혜자이자 SG건설과 주로 일하는 한국대 건축학과 교수.”

“그럼…….”

“응. 그 학생의 지도 교수. 아, 학부생이라 지도 교수는 딱히 아니려나? 어쨌든.”

아이디어를 훔쳐 갔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게 무려 정부 사업에 수혜자이던 교수를 프리커츠 상의 수상자로 만들어 주었다는 소리.

“그다음은.”

“제가 조사해 보겠습니다.”

백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상혁에게 물었다.

“어때? 이 정도면 충분하지?”

백이현과 백도현.

둘 다 정상은 아니다. 형제가 서로의 약점을 상혁에게 알려 주는 것도 모자라, 어른이고 SG그룹의 후계자를 노리는 이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치졸한 약점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혁에게는 이 치졸한 백도현이 필요했다.

‘글레이저 가문과의 가교가 될 테니까.’

상혁의 승낙에 백도현이 물었다.

“사만다 허드랑 사귄다면서. 뉴스에 난리던데.”

“뭐, 어쩌다 보니까요.”

“네가 한국에서 나고 자랐다는 건 알고 있어. 외국에 나가 본 적도 없고. 넌 이제 스무 살이니까. 그런데.”

백도현이 눈을 가늘게 좁혀 떴다.

“어디서 네가 사만다 허드를 만났을까? 그게 무척이나 궁금하거든.”

상혁은 잔뜩 몸이 달아 있는 백도현을 보며 속으로 히죽 웃었다.

‘어떻게 내 예상에서 1mm도 벗어나지 못할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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